한국독립운동의 해외 창구 ‘파리대표위원회’

입력 2016.04.12 (09:54) 수정 2016.04.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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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부서이기도 한 파리 위원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서구 사회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일제의 잔혹한 식민정책을 고발했습니다.

이 활동이 결국 훗날 3.1 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에서는 이 파리 위원회를 재조명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파리에서 박진현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세계 1차 대전 직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규식 선생 등을 파리로 급파해 파리 위원부를 결성합니다.

전후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면서 약소 민족의 독립을 보장하는 민족 자결 원칙이 논의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이때부터 파리위원부의 외교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홍보 책자 '회람'을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독립공고서'를 각국 수반에 발송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년반 동안 계속된 파리위원부는 일본이 국권을 빼앗은 과정과 이후 강압 통치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3.1운동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명화(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파리강화회의에 대표파견이 국제사회에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3.1 운동을 일으키게 했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위원부를 돕기 위해 프랑스 지식인들이 모였고 한국 친우회도 결성되기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도 베트남 등을 식민 지배했던 상황에서 프랑스의 양심이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터뷰> 윤주경(독립기념관장) : "세계 정의가 무언인가를 생각하고 양심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저희 독립운동을 도와주셨던 것이죠."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학술 대회에는 김규식 선생 등 당시 파리 위원들의 후손들도 참여해 한층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박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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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독립운동의 해외 창구 ‘파리대표위원회’
    • 입력 2016-04-12 10:01:25
    • 수정2016-04-12 10: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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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부서이기도 한 파리 위원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서구 사회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일제의 잔혹한 식민정책을 고발했습니다.

이 활동이 결국 훗날 3.1 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파리에서는 이 파리 위원회를 재조명하는 국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파리에서 박진현 특파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세계 1차 대전 직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규식 선생 등을 파리로 급파해 파리 위원부를 결성합니다.

전후 새로운 질서를 재편하면서 약소 민족의 독립을 보장하는 민족 자결 원칙이 논의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이때부터 파리위원부의 외교 활동이 시작됐습니다.

홍보 책자 '회람'을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독립공고서'를 각국 수반에 발송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년반 동안 계속된 파리위원부는 일본이 국권을 빼앗은 과정과 이후 강압 통치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3.1운동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명화(한국독립운동사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파리강화회의에 대표파견이 국제사회에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3.1 운동을 일으키게 했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리위원부를 돕기 위해 프랑스 지식인들이 모였고 한국 친우회도 결성되기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도 베트남 등을 식민 지배했던 상황에서 프랑스의 양심이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터뷰> 윤주경(독립기념관장) : "세계 정의가 무언인가를 생각하고 양심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저희 독립운동을 도와주셨던 것이죠."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학술 대회에는 김규식 선생 등 당시 파리 위원들의 후손들도 참여해 한층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박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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