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현장] 중국 문화대혁명, 마오쩌둥 주도 ‘사상.정치·계급 투쟁’
입력 2016.05.16 (20:36)
수정 2016.05.16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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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국에선 지금도 '문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지만 사상 통제 등 문혁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하이 연결합니다.
<질문>
김태욱 특파원! 먼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어떤 운동이었는지부터 정리해주시죠.
<답변>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66년 오늘,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 독초를 뿌리뽑자'는 선동의 깃발을 들어올립니다.
바로 문화대혁명의 시작입니다.
'수정주의자'로 몰린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들이 거리로 내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무차별적 폭력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선봉은 10대 '홍위병'들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려 죽이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였습니다.
학교가 모두 폐쇄되고 유교 등 전통 가치들도 파괴됐습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숨지기까지 10년 동안 무려 300만 명이 숙청됐습니다.
이 같은 문화대혁명은 1950년대말 중공업 우선정책, 즉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권력투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질문>
오늘이 50주년인데, 중국에서는 문혁에 대해 어떻게 조명하고 있습니까?
<답변>
아무런 기념행사도, 재평가 작업도 없었습니다.
관영매체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정부는 지난 1981년 '문혁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공식 규정했는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자칫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좌파운동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지금 중국에 과거 문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답변>
문혁의 핵심은 '사상통제를 통한 마오쩌둥 1인 체제 강화'에 있었습니다.
최근 베이징 정가를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화면 한번 보시죠.
중국 가수들이 나와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혁을 상징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국내외에서 문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 논란이 일었습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 갈수록 언론과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시진핑 개인숭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혁의 유령이 아직도 중국대륙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마오쩌둥의 권위를, 다른 한 손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쥔 시진핑 주석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상하이였습니다.
오늘은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국에선 지금도 '문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지만 사상 통제 등 문혁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하이 연결합니다.
<질문>
김태욱 특파원! 먼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어떤 운동이었는지부터 정리해주시죠.
<답변>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66년 오늘,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 독초를 뿌리뽑자'는 선동의 깃발을 들어올립니다.
바로 문화대혁명의 시작입니다.
'수정주의자'로 몰린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들이 거리로 내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무차별적 폭력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선봉은 10대 '홍위병'들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려 죽이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였습니다.
학교가 모두 폐쇄되고 유교 등 전통 가치들도 파괴됐습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숨지기까지 10년 동안 무려 300만 명이 숙청됐습니다.
이 같은 문화대혁명은 1950년대말 중공업 우선정책, 즉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권력투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질문>
오늘이 50주년인데, 중국에서는 문혁에 대해 어떻게 조명하고 있습니까?
<답변>
아무런 기념행사도, 재평가 작업도 없었습니다.
관영매체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정부는 지난 1981년 '문혁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공식 규정했는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자칫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좌파운동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지금 중국에 과거 문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답변>
문혁의 핵심은 '사상통제를 통한 마오쩌둥 1인 체제 강화'에 있었습니다.
최근 베이징 정가를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화면 한번 보시죠.
중국 가수들이 나와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혁을 상징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국내외에서 문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 논란이 일었습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 갈수록 언론과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시진핑 개인숭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혁의 유령이 아직도 중국대륙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마오쩌둥의 권위를, 다른 한 손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쥔 시진핑 주석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상하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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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국에선 지금도 '문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지만 사상 통제 등 문혁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하이 연결합니다.
<질문>
김태욱 특파원! 먼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어떤 운동이었는지부터 정리해주시죠.
<답변>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66년 오늘,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 독초를 뿌리뽑자'는 선동의 깃발을 들어올립니다.
바로 문화대혁명의 시작입니다.
'수정주의자'로 몰린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들이 거리로 내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무차별적 폭력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선봉은 10대 '홍위병'들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려 죽이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였습니다.
학교가 모두 폐쇄되고 유교 등 전통 가치들도 파괴됐습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숨지기까지 10년 동안 무려 300만 명이 숙청됐습니다.
이 같은 문화대혁명은 1950년대말 중공업 우선정책, 즉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권력투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질문>
오늘이 50주년인데, 중국에서는 문혁에 대해 어떻게 조명하고 있습니까?
<답변>
아무런 기념행사도, 재평가 작업도 없었습니다.
관영매체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정부는 지난 1981년 '문혁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공식 규정했는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자칫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좌파운동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지금 중국에 과거 문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답변>
문혁의 핵심은 '사상통제를 통한 마오쩌둥 1인 체제 강화'에 있었습니다.
최근 베이징 정가를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화면 한번 보시죠.
중국 가수들이 나와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혁을 상징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국내외에서 문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 논란이 일었습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 갈수록 언론과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시진핑 개인숭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혁의 유령이 아직도 중국대륙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마오쩌둥의 권위를, 다른 한 손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쥔 시진핑 주석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상하이였습니다.
오늘은 중국 현대사의 암흑기라 불리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중국에선 지금도 '문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지만 사상 통제 등 문혁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하이 연결합니다.
<질문>
김태욱 특파원! 먼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어떤 운동이었는지부터 정리해주시죠.
<답변>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66년 오늘,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 독초를 뿌리뽑자'는 선동의 깃발을 들어올립니다.
바로 문화대혁명의 시작입니다.
'수정주의자'로 몰린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들이 거리로 내몰려 인민재판을 받고 무차별적 폭력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선봉은 10대 '홍위병'들이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때려 죽이는 인간성 말살의 시대였습니다.
학교가 모두 폐쇄되고 유교 등 전통 가치들도 파괴됐습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숨지기까지 10년 동안 무려 300만 명이 숙청됐습니다.
이 같은 문화대혁명은 1950년대말 중공업 우선정책, 즉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빠진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벌인 권력투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질문>
오늘이 50주년인데, 중국에서는 문혁에 대해 어떻게 조명하고 있습니까?
<답변>
아무런 기념행사도, 재평가 작업도 없었습니다.
관영매체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정부는 지난 1981년 '문혁은 당과 국가, 인민에게 심각한 좌절과 손실을 안겨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공식 규정했는데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상징인 마오쩌둥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자칫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좌파운동이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지금 중국에 과거 문혁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답변>
문혁의 핵심은 '사상통제를 통한 마오쩌둥 1인 체제 강화'에 있었습니다.
최근 베이징 정가를 화들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화면 한번 보시죠.
중국 가수들이 나와서 마오쩌둥과 시진핑의 모습을 배경으로 문혁을 상징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국내외에서 문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 논란이 일었습니다.
시진핑 정부 들어 갈수록 언론과 사상통제가 강화되고 있고, 시진핑 개인숭배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혁의 유령이 아직도 중국대륙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손에는 마오쩌둥의 권위를, 다른 한 손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쥔 시진핑 주석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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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욱 기자 tw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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