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유일 격전지 ‘산동교의 그날’ 재현
입력 2016.06.09 (09:52)
수정 2016.06.0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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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66주년 기념일까지 이제 보름 정도가 남았는데요.
6.25 당시 호남지방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광주 산동교 전투가 처음으로 재현됐습니다.
이한글 기자입니다.
<리포트>
빛바랜 사진 속 두 동강이 난 다리.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군이 끊어놓은 옛 산동교의 모습입니다.
치열했던 광주 산동교 전투를 재현한 연극이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한 달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파죽지세로 남하한 인민군이 광주의 관문인 산동교에 이르자 비상이 걸립니다.
<녹취> "(이대로 싸우다간 다 죽는다. 여기서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안됩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광주를 내주게 됩니다."
인민군 3천여 명을 막아야 하는 군경은 고작 5백여 명.
국군은 광주시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녹취> "총이 없으면 주먹으로...물어 뜯어서라도 막아라! 우리가 버텨야 광주시민이 살 수 있다."
당시 우리 측은 100여 명, 인민군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재현행사를 맞아 격전의 현장을 찾은 백발의 참전용사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터뷰> 조귀보(89살/산동교 전투 참여) : "나보다 먼저 가서 영령들이 된 내 친구들, 또 선배, 상사들... 그 생각하니까 눈물 밖에 안 난다 이 말이에요."
지난 2011년 광주의 유일한 6.25 한국전쟁 전적지로 지정된 옛 산동교.
광주지방보훈청은 내년에도 걷기대회 등 산동교 전투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한글입니다.
6.25 전쟁 66주년 기념일까지 이제 보름 정도가 남았는데요.
6.25 당시 호남지방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광주 산동교 전투가 처음으로 재현됐습니다.
이한글 기자입니다.
<리포트>
빛바랜 사진 속 두 동강이 난 다리.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군이 끊어놓은 옛 산동교의 모습입니다.
치열했던 광주 산동교 전투를 재현한 연극이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한 달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파죽지세로 남하한 인민군이 광주의 관문인 산동교에 이르자 비상이 걸립니다.
<녹취> "(이대로 싸우다간 다 죽는다. 여기서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안됩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광주를 내주게 됩니다."
인민군 3천여 명을 막아야 하는 군경은 고작 5백여 명.
국군은 광주시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녹취> "총이 없으면 주먹으로...물어 뜯어서라도 막아라! 우리가 버텨야 광주시민이 살 수 있다."
당시 우리 측은 100여 명, 인민군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재현행사를 맞아 격전의 현장을 찾은 백발의 참전용사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터뷰> 조귀보(89살/산동교 전투 참여) : "나보다 먼저 가서 영령들이 된 내 친구들, 또 선배, 상사들... 그 생각하니까 눈물 밖에 안 난다 이 말이에요."
지난 2011년 광주의 유일한 6.25 한국전쟁 전적지로 지정된 옛 산동교.
광주지방보훈청은 내년에도 걷기대회 등 산동교 전투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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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유일 격전지 ‘산동교의 그날’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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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6-09 10:26:22
- 수정2016-06-09 10:56:34
<앵커 멘트>
6.25 전쟁 66주년 기념일까지 이제 보름 정도가 남았는데요.
6.25 당시 호남지방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광주 산동교 전투가 처음으로 재현됐습니다.
이한글 기자입니다.
<리포트>
빛바랜 사진 속 두 동강이 난 다리.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군이 끊어놓은 옛 산동교의 모습입니다.
치열했던 광주 산동교 전투를 재현한 연극이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한 달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파죽지세로 남하한 인민군이 광주의 관문인 산동교에 이르자 비상이 걸립니다.
<녹취> "(이대로 싸우다간 다 죽는다. 여기서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안됩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광주를 내주게 됩니다."
인민군 3천여 명을 막아야 하는 군경은 고작 5백여 명.
국군은 광주시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녹취> "총이 없으면 주먹으로...물어 뜯어서라도 막아라! 우리가 버텨야 광주시민이 살 수 있다."
당시 우리 측은 100여 명, 인민군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재현행사를 맞아 격전의 현장을 찾은 백발의 참전용사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터뷰> 조귀보(89살/산동교 전투 참여) : "나보다 먼저 가서 영령들이 된 내 친구들, 또 선배, 상사들... 그 생각하니까 눈물 밖에 안 난다 이 말이에요."
지난 2011년 광주의 유일한 6.25 한국전쟁 전적지로 지정된 옛 산동교.
광주지방보훈청은 내년에도 걷기대회 등 산동교 전투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한글입니다.
6.25 전쟁 66주년 기념일까지 이제 보름 정도가 남았는데요.
6.25 당시 호남지방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열악한 상황에서 벌어졌던 광주 산동교 전투가 처음으로 재현됐습니다.
이한글 기자입니다.
<리포트>
빛바랜 사진 속 두 동강이 난 다리.
인민군을 저지하기 위해 국군이 끊어놓은 옛 산동교의 모습입니다.
치열했던 광주 산동교 전투를 재현한 연극이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한 달이 지난 1950년 7월 23일.
파죽지세로 남하한 인민군이 광주의 관문인 산동교에 이르자 비상이 걸립니다.
<녹취> "(이대로 싸우다간 다 죽는다. 여기서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안됩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광주를 내주게 됩니다."
인민군 3천여 명을 막아야 하는 군경은 고작 5백여 명.
국군은 광주시민들의 피난 시간을 벌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녹취> "총이 없으면 주먹으로...물어 뜯어서라도 막아라! 우리가 버텨야 광주시민이 살 수 있다."
당시 우리 측은 100여 명, 인민군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재현행사를 맞아 격전의 현장을 찾은 백발의 참전용사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인터뷰> 조귀보(89살/산동교 전투 참여) : "나보다 먼저 가서 영령들이 된 내 친구들, 또 선배, 상사들... 그 생각하니까 눈물 밖에 안 난다 이 말이에요."
지난 2011년 광주의 유일한 6.25 한국전쟁 전적지로 지정된 옛 산동교.
광주지방보훈청은 내년에도 걷기대회 등 산동교 전투를 알리기 위한 행사를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KBS 뉴스 이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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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글 기자 hangur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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