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놀림·게이·경찰 꿈 무산’…올랜도 총격범의 굴절된 삶

입력 2016.06.19 (05:09) 수정 2016.06.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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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올랜도 총기테러범인 오바르 마틴은 어린시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화를 많이 내고 친구들과 잦은 불화를 겪는 등 심각한 심리·행동장애를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뚱보'라는 놀림을 받았고, 학교 급우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으며, 성인이 된 후 경찰관이 되려는 꿈을 품었으나 주변을 위협하는 언행 때문에 중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1면 톱으로 출생부터 학창시절, 직장, 결혼, 종교, 성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마틴의 일생을 집중 해부한 기사를 실었다.

1986년 11월 뉴욕에서 출생한 마틴은 어린 시절을 플로리다주 해안가에 위치한 포트 세인트 루시에서 보냈다.

아프간계 무슬림인 마틴의 가족은 평범한 미국의 가정으로 보였다.

마틴의 문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주변에 화를 자주 냈다.

이후 마틴 카운티 고등학교에 진학한 마틴은 수학을 듣던 중 동료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문제가 돼 학교에서 쫓겨났고, 2001년 행동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스펙트럼' 대안학교로 보내졌다.

9·11테러가 마틴의 정신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분석했다. 한 교사가 교실에서 TV를 틀어줬고 두 번째 비행기가 뉴욕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자 마틴은 기뻐하며 웃었다고 당시 같은 반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증언했다.

그는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이 내 삼촌이다. 나에게 총을 어떻게 쏘는 지 가르쳐줬다"고 주장해 교장실로 불려갔다.

또 괴짜로 알려진 마틴은 과체중인 탓에 '뚱보'라는 놀림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야만적인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고 WP는 보도했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틴은 2006년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고 짐꾼, 계산원, 영업사원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화나와 엑스터시를 즐기기도 했던 그의 동성애 취향이 이때부터 나타났다.

이후 보디빌딩에 관심을 두면서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었고,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2년제 인디언 리버 커뮤니티 칼리지의 범죄학과에 입학한 마틴은 성인들을 구금하는 플로리다 주 교정시설에서 시간당 14달러를 받고 일했다.

당시 "나무랄 데가 없는 친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07년 봄 인디언 리버 스테이트 칼리지의 경찰 훈련학교에 등록했고, 이곳에서 총기를 정확히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마틴의 '이상행동'이 또다시 불거져 쫓겨났다.

이후 마틴은 유명 경호업체 G4S에 취직했고 계약직 경호원으로서 비행청소년 보호시설과 골프장, 지방법원 등지에서 근무했다.

마틴은 동성애적 성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결혼했는데, 2009년 4월 첫번째 부인과 결혼했지만, 부인을 지속적으로 구타해 9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팔레스타인계 무슬림 여성인 누르 자히 살만과 만나 2011년 9월 아들을 낳았다.

이 때부터 마틴은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다.

두 사람은 아들과 함께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WP는 수사당국이 마지막 행적에서 범행동기의 주요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틴은 6월 첫째주 공격용 소총과 권총을 구입했으며 실탄을 구입할 때와 올랜도와 범행장소를 사전답사할 때 부인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후 범행 하루 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슬람 테러지도자에게 충성 서약을 한 뒤 12일 새벽 충격적인 테러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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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9 05:09:51
    • 수정2016-06-19 10:00:01
    국제
미국 올랜도 총기테러범인 오바르 마틴은 어린시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채 화를 많이 내고 친구들과 잦은 불화를 겪는 등 심각한 심리·행동장애를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뚱보'라는 놀림을 받았고, 학교 급우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으며, 성인이 된 후 경찰관이 되려는 꿈을 품었으나 주변을 위협하는 언행 때문에 중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1면 톱으로 출생부터 학창시절, 직장, 결혼, 종교, 성적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마틴의 일생을 집중 해부한 기사를 실었다.

1986년 11월 뉴욕에서 출생한 마틴은 어린 시절을 플로리다주 해안가에 위치한 포트 세인트 루시에서 보냈다.

아프간계 무슬림인 마틴의 가족은 평범한 미국의 가정으로 보였다.

마틴의 문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예측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주변에 화를 자주 냈다.

이후 마틴 카운티 고등학교에 진학한 마틴은 수학을 듣던 중 동료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문제가 돼 학교에서 쫓겨났고, 2001년 행동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스펙트럼' 대안학교로 보내졌다.

9·11테러가 마틴의 정신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WP는 분석했다. 한 교사가 교실에서 TV를 틀어줬고 두 번째 비행기가 뉴욕 쌍둥이 빌딩에 충돌하는 장면이 나오자 마틴은 기뻐하며 웃었다고 당시 같은 반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증언했다.

그는 "(9·11 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이 내 삼촌이다. 나에게 총을 어떻게 쏘는 지 가르쳐줬다"고 주장해 교장실로 불려갔다.

또 괴짜로 알려진 마틴은 과체중인 탓에 '뚱보'라는 놀림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야만적인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고 WP는 보도했다.

200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틴은 2006년까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고 짐꾼, 계산원, 영업사원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화나와 엑스터시를 즐기기도 했던 그의 동성애 취향이 이때부터 나타났다.

이후 보디빌딩에 관심을 두면서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었고,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2년제 인디언 리버 커뮤니티 칼리지의 범죄학과에 입학한 마틴은 성인들을 구금하는 플로리다 주 교정시설에서 시간당 14달러를 받고 일했다.

당시 "나무랄 데가 없는 친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07년 봄 인디언 리버 스테이트 칼리지의 경찰 훈련학교에 등록했고, 이곳에서 총기를 정확히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마틴의 '이상행동'이 또다시 불거져 쫓겨났다.

이후 마틴은 유명 경호업체 G4S에 취직했고 계약직 경호원으로서 비행청소년 보호시설과 골프장, 지방법원 등지에서 근무했다.

마틴은 동성애적 성적 취향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결혼했는데, 2009년 4월 첫번째 부인과 결혼했지만, 부인을 지속적으로 구타해 9개월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후 팔레스타인계 무슬림 여성인 누르 자히 살만과 만나 2011년 9월 아들을 낳았다.

이 때부터 마틴은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다.

두 사람은 아들과 함께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로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WP는 수사당국이 마지막 행적에서 범행동기의 주요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틴은 6월 첫째주 공격용 소총과 권총을 구입했으며 실탄을 구입할 때와 올랜도와 범행장소를 사전답사할 때 부인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후 범행 하루 전 페이스북을 통해 이슬람 테러지도자에게 충성 서약을 한 뒤 12일 새벽 충격적인 테러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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