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도 없이 실내 온도를 5도나 낮춰줄 수 있는 '에어컨'이 발명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IT기업 그라민인텔이 만들었다는 에코-쿨러, 이른바 페트병에어컨이 그 주인공이다.
창문 크기의 판넬에 바닥 부분을 잘라낸 페트병 수십개를, 주둥이를 집 안쪽으로 향하게 붙여서 모으면 에코-쿨러가 완성된다. 입을 오므리고 바람을 불면 찬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좁은 구멍을 통과한 공기는 온도가 떨어지는 원리를 활용해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라민인텔의 설명이다.
매셔블 등 외신은 이 에코-쿨러가 한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방글라데시에서 실내 기온을 5도까지 낮춰줄 수 있어 이들의 여름나기를 도울 것이라며 이미 방글라데시 전역의 약 2만 5000가구에 에코-쿨러가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언론도 앞다퉈 이 '착한 발명'을 소개했고, 일부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직접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어 실내 온도를 떨어트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페트병에어컨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하지만 이 같은 훈훈한 분위기에 한 대기업 연구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반론을 제기했다. '새다리'라는 블로거는 ‘페트병 에어컨의 진실 -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I)’라는 글을 통해 "페트병 주둥이로 바람이 통과하면 눈곱의 눈곱만큼 온도가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지만, 실내온도가 5도 떨어진다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그냥 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페트병 에어컨의 원리를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에선 학부의 열역학 과정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원리'라고 소개하며 "하지만 일반적인 바람에 의한 정도의 압력으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람의 세기가 강할수록 냉각 효과가 커지는데, 일반적인 자연 바람으로는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만큼의 냉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직접 실험을 통해 온도 차가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 블로거 '새다리'는 "(사람들은) 문틈으로의 틈새 바람 등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했을 텐데, 난 한 번도 그 정도의 강력한 냉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밖에서 바람이 부는데 답답하게 페트병으로 틀어막지 말고 그냥 활짝 열어두는 게 훨씬 시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블로거까지 등장했다. 맥드라이버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 박성완씨는 60여 개의 페트병을 모아 직접 만든 페트병에어컨을 그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이 블로그에는 "생고생을 다 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블로그 보는 분들 헛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에어컨 사서 쓰는 게 낫다"는 박 씨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블로그에 만드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사진을 찍어 공개한 박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아침 방송을 보고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겠다 싶어 직접 페트병에어컨 만들기에 도전했다"며 "15만원 이상을 들이고 페트병 모으느라 일주일을 고생해 페트병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온도가 떨어졌던 TV프로그램 실험은?
그렇다면 직접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보여줬던 TV프로그램은 어찌된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 문의한 결과, 조작은 없었지만 실내온도 하락을 페트병에어컨의 효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페트병에어컨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PD는 "프로그램에서도 설명했듯 효과를 키우기 위해 페트병에어컨 설치 후,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며 "온도를 조작하지는 않았고,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내려간 것을 찍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실내온도 하락에 창문을 열어둔 효과도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실험시간도 온도가 내려가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처음 온도를 잰 것이 오후 2시쯤이었다고 했다. 2시에 온도를 재서 3시간 후인 5시에 온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본 것인데, 하루 중 가장 더웠던 시간인 2시에서 오후 5시가 되면서 외부 기온이 떨어졌다면 실내 기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실내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던 방송프로그램 속 실험은 외부 변수가 완전히 통제된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 "이론적으론 맞지만 강한 바람 불어줘야.."
전문가들도 실제로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 등 특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우갑 교수는 "맞는 얘긴데,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바깥에서 아주 강력하게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바람이 세게 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대학 화학과 교수도 "효과 자체가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있는 효과이고 가능한 얘기"라며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니까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현상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부분은 편집돼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IT기업 그라민인텔이 만들었다는 에코-쿨러, 이른바 페트병에어컨이 그 주인공이다.
창문 크기의 판넬에 바닥 부분을 잘라낸 페트병 수십개를, 주둥이를 집 안쪽으로 향하게 붙여서 모으면 에코-쿨러가 완성된다. 입을 오므리고 바람을 불면 찬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좁은 구멍을 통과한 공기는 온도가 떨어지는 원리를 활용해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라민인텔의 설명이다.
매셔블 등 외신은 이 에코-쿨러가 한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방글라데시에서 실내 기온을 5도까지 낮춰줄 수 있어 이들의 여름나기를 도울 것이라며 이미 방글라데시 전역의 약 2만 5000가구에 에코-쿨러가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언론도 앞다퉈 이 '착한 발명'을 소개했고, 일부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직접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어 실내 온도를 떨어트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페트병에어컨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하지만 이 같은 훈훈한 분위기에 한 대기업 연구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반론을 제기했다. '새다리'라는 블로거는 ‘페트병 에어컨의 진실 -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I)’라는 글을 통해 "페트병 주둥이로 바람이 통과하면 눈곱의 눈곱만큼 온도가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지만, 실내온도가 5도 떨어진다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그냥 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페트병 에어컨의 원리를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에선 학부의 열역학 과정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원리'라고 소개하며 "하지만 일반적인 바람에 의한 정도의 압력으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람의 세기가 강할수록 냉각 효과가 커지는데, 일반적인 자연 바람으로는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만큼의 냉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직접 실험을 통해 온도 차가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 블로거 '새다리'는 "(사람들은) 문틈으로의 틈새 바람 등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했을 텐데, 난 한 번도 그 정도의 강력한 냉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밖에서 바람이 부는데 답답하게 페트병으로 틀어막지 말고 그냥 활짝 열어두는 게 훨씬 시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블로거까지 등장했다. 맥드라이버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 박성완씨는 60여 개의 페트병을 모아 직접 만든 페트병에어컨을 그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이 블로그에는 "생고생을 다 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블로그 보는 분들 헛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에어컨 사서 쓰는 게 낫다"는 박 씨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블로그에 만드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사진을 찍어 공개한 박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아침 방송을 보고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겠다 싶어 직접 페트병에어컨 만들기에 도전했다"며 "15만원 이상을 들이고 페트병 모으느라 일주일을 고생해 페트병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온도가 떨어졌던 TV프로그램 실험은?
그렇다면 직접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보여줬던 TV프로그램은 어찌된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 문의한 결과, 조작은 없었지만 실내온도 하락을 페트병에어컨의 효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페트병에어컨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PD는 "프로그램에서도 설명했듯 효과를 키우기 위해 페트병에어컨 설치 후,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며 "온도를 조작하지는 않았고,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내려간 것을 찍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실내온도 하락에 창문을 열어둔 효과도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실험시간도 온도가 내려가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처음 온도를 잰 것이 오후 2시쯤이었다고 했다. 2시에 온도를 재서 3시간 후인 5시에 온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본 것인데, 하루 중 가장 더웠던 시간인 2시에서 오후 5시가 되면서 외부 기온이 떨어졌다면 실내 기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실내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던 방송프로그램 속 실험은 외부 변수가 완전히 통제된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 "이론적으론 맞지만 강한 바람 불어줘야.."
전문가들도 실제로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 등 특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우갑 교수는 "맞는 얘긴데,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바깥에서 아주 강력하게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바람이 세게 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대학 화학과 교수도 "효과 자체가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있는 효과이고 가능한 얘기"라며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니까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현상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부분은 편집돼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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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 없는 ‘착한에어컨’ 실효성 논란…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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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6-30 07:00:10
최근 전기도 없이 실내 온도를 5도나 낮춰줄 수 있는 '에어컨'이 발명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IT기업 그라민인텔이 만들었다는 에코-쿨러, 이른바 페트병에어컨이 그 주인공이다.
창문 크기의 판넬에 바닥 부분을 잘라낸 페트병 수십개를, 주둥이를 집 안쪽으로 향하게 붙여서 모으면 에코-쿨러가 완성된다. 입을 오므리고 바람을 불면 찬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좁은 구멍을 통과한 공기는 온도가 떨어지는 원리를 활용해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라민인텔의 설명이다.
매셔블 등 외신은 이 에코-쿨러가 한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방글라데시에서 실내 기온을 5도까지 낮춰줄 수 있어 이들의 여름나기를 도울 것이라며 이미 방글라데시 전역의 약 2만 5000가구에 에코-쿨러가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언론도 앞다퉈 이 '착한 발명'을 소개했고, 일부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직접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어 실내 온도를 떨어트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페트병에어컨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하지만 이 같은 훈훈한 분위기에 한 대기업 연구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반론을 제기했다. '새다리'라는 블로거는 ‘페트병 에어컨의 진실 -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I)’라는 글을 통해 "페트병 주둥이로 바람이 통과하면 눈곱의 눈곱만큼 온도가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지만, 실내온도가 5도 떨어진다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그냥 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페트병 에어컨의 원리를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에선 학부의 열역학 과정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원리'라고 소개하며 "하지만 일반적인 바람에 의한 정도의 압력으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람의 세기가 강할수록 냉각 효과가 커지는데, 일반적인 자연 바람으로는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만큼의 냉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직접 실험을 통해 온도 차가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 블로거 '새다리'는 "(사람들은) 문틈으로의 틈새 바람 등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했을 텐데, 난 한 번도 그 정도의 강력한 냉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밖에서 바람이 부는데 답답하게 페트병으로 틀어막지 말고 그냥 활짝 열어두는 게 훨씬 시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블로거까지 등장했다. 맥드라이버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 박성완씨는 60여 개의 페트병을 모아 직접 만든 페트병에어컨을 그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이 블로그에는 "생고생을 다 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블로그 보는 분들 헛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에어컨 사서 쓰는 게 낫다"는 박 씨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블로그에 만드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사진을 찍어 공개한 박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아침 방송을 보고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겠다 싶어 직접 페트병에어컨 만들기에 도전했다"며 "15만원 이상을 들이고 페트병 모으느라 일주일을 고생해 페트병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온도가 떨어졌던 TV프로그램 실험은?
그렇다면 직접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보여줬던 TV프로그램은 어찌된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 문의한 결과, 조작은 없었지만 실내온도 하락을 페트병에어컨의 효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페트병에어컨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PD는 "프로그램에서도 설명했듯 효과를 키우기 위해 페트병에어컨 설치 후,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며 "온도를 조작하지는 않았고,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내려간 것을 찍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실내온도 하락에 창문을 열어둔 효과도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실험시간도 온도가 내려가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처음 온도를 잰 것이 오후 2시쯤이었다고 했다. 2시에 온도를 재서 3시간 후인 5시에 온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본 것인데, 하루 중 가장 더웠던 시간인 2시에서 오후 5시가 되면서 외부 기온이 떨어졌다면 실내 기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실내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던 방송프로그램 속 실험은 외부 변수가 완전히 통제된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 "이론적으론 맞지만 강한 바람 불어줘야.."
전문가들도 실제로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 등 특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우갑 교수는 "맞는 얘긴데,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바깥에서 아주 강력하게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바람이 세게 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대학 화학과 교수도 "효과 자체가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있는 효과이고 가능한 얘기"라며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니까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현상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부분은 편집돼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IT기업 그라민인텔이 만들었다는 에코-쿨러, 이른바 페트병에어컨이 그 주인공이다.
창문 크기의 판넬에 바닥 부분을 잘라낸 페트병 수십개를, 주둥이를 집 안쪽으로 향하게 붙여서 모으면 에코-쿨러가 완성된다. 입을 오므리고 바람을 불면 찬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좁은 구멍을 통과한 공기는 온도가 떨어지는 원리를 활용해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었다는 것이 그라민인텔의 설명이다.
매셔블 등 외신은 이 에코-쿨러가 한여름 기온이 45도까지 치솟는 방글라데시에서 실내 기온을 5도까지 낮춰줄 수 있어 이들의 여름나기를 도울 것이라며 이미 방글라데시 전역의 약 2만 5000가구에 에코-쿨러가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이에 국내 언론도 앞다퉈 이 '착한 발명'을 소개했고, 일부 아침 프로그램에서는 직접 페트병에어컨을 만들어 실내 온도를 떨어트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페트병에어컨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하지만 이 같은 훈훈한 분위기에 한 대기업 연구원이라고 밝힌 블로거가 반론을 제기했다. '새다리'라는 블로거는 ‘페트병 에어컨의 진실 - 과학으로 포장된 집단 무지 (I)’라는 글을 통해 "페트병 주둥이로 바람이 통과하면 눈곱의 눈곱만큼 온도가 떨어지는 것은 과학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지만, 실내온도가 5도 떨어진다는 것은 과학도 아니고 그냥 뻥"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페트병 에어컨의 원리를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에선 학부의 열역학 과정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원리'라고 소개하며 "하지만 일반적인 바람에 의한 정도의 압력으로는 냉각 효과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바람의 세기가 강할수록 냉각 효과가 커지는데, 일반적인 자연 바람으로는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만큼의 냉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직접 실험을 통해 온도 차가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 블로거 '새다리'는 "(사람들은) 문틈으로의 틈새 바람 등 살면서 비슷한 상황을 많이 접했을 텐데, 난 한 번도 그 정도의 강력한 냉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없다"며 "밖에서 바람이 부는데 답답하게 페트병으로 틀어막지 말고 그냥 활짝 열어두는 게 훨씬 시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 직접 만들어봤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블로거까지 등장했다. 맥드라이버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 박성완씨는 60여 개의 페트병을 모아 직접 만든 페트병에어컨을 그의 블로그에 공개했다.
이 블로그에는 "생고생을 다 했는데 효과는 전혀 없었다. 블로그 보는 분들 헛고생하지 마시고 그냥 에어컨 사서 쓰는 게 낫다"는 박 씨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블로그에 만드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사진을 찍어 공개한 박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아침 방송을 보고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겠다 싶어 직접 페트병에어컨 만들기에 도전했다"며 "15만원 이상을 들이고 페트병 모으느라 일주일을 고생해 페트병에어컨을 설치했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전혀 볼 수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온도가 떨어졌던 TV프로그램 실험은?
그렇다면 직접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보여줬던 TV프로그램은 어찌된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에 문의한 결과, 조작은 없었지만 실내온도 하락을 페트병에어컨의 효과로만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페트병에어컨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PD는 "프로그램에서도 설명했듯 효과를 키우기 위해 페트병에어컨 설치 후,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며 "온도를 조작하지는 않았고, 시간이 지나 온도가 내려간 것을 찍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 실내온도 하락에 창문을 열어둔 효과도 도움이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실험시간도 온도가 내려가는데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처음 온도를 잰 것이 오후 2시쯤이었다고 했다. 2시에 온도를 재서 3시간 후인 5시에 온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본 것인데, 하루 중 가장 더웠던 시간인 2시에서 오후 5시가 되면서 외부 기온이 떨어졌다면 실내 기온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실내 온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던 방송프로그램 속 실험은 외부 변수가 완전히 통제된 실험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 "이론적으론 맞지만 강한 바람 불어줘야.."
전문가들도 실제로 실내온도를 떨어트릴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강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 등 특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최우갑 교수는 "맞는 얘긴데, 문제는 이렇게 하려면 바깥에서 아주 강력하게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이론적으로 가능한데, 바람이 세게 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 대학 화학과 교수도 "효과 자체가 거짓말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고, 있는 효과이고 가능한 얘기"라며 "다만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니까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현상이긴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는데, '강한 바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부분은 편집돼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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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기자 jjw@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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