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수술해 받은 반포 아파트, 그 시절로 가보니

입력 2016.08.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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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9월 14일 서울 반포 아파트 주택 전시관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로 대표되던 산아 제한이 국가적 목표이던 76년 11월, 경제기획원은 '제4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동안 연평균 인구 증가율을 1.6%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데다, 한 가구 당 3~4명의 자녀를 낳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는 실질적인 산아 제한 대책의 효과를 위해 아파트 청약 제도에 우대 조항을 만들었다.

즉 77년 청약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주택청약 부금 가입자 중에서 1순위에 경쟁이 있을 때 해외 근로자면서 영구 불임시술자→영구 불임시술자→해외 취업근로자의 순서대로 분양 대상자를 정했다.

'내 집 마련'에 목말라 있던 시민들에게 정부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 76년말 8만 여명에 불과하던 영구 불임시술자가 77년 8월말 14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여성보다는 주로 남자들이 받는 정관수술이 많았다.

아파트 청약용 정관수술이 화제가 된 때는 77년 9월 반포 주공 아파트 청약 때였다.


당시 신문에 나오는 사연을 보면 이렇다.

남편 김모(35세)씨는 아침 일찍 신청장소에 나왔다가 불임 시술자 우대 사실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불임 시술을 받도록 한 뒤 증명서를 떼와 청약을 신청했다.

주부 박모(44)씨의 사연은 더 재밌다. 5년 전 불임 수술을 받았다는 그녀는 병원이 문을 닫자 다른 병원(적십자 병원)에서 ‘무난자 증명서’를 받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난자’가 선천적인 이상인 것인지 불임 시술에 의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

주공 직원은 박씨에게 아들이 있는 것을 주민등록등본으로 확인 한 다음에야 접수를 받았다. 단 조건이 붙었다. 다른 국립 병원에서 ‘불임 시술에 의한 무난자 확인증’을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임 시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순위를 받은 박모 할아버지(71)는 “45세 이상의 사람들은 효과가 없다고 보건소에서 무료로 시술을 해주지 않는데 순위를 차별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늙은 사람은 새 아파트에서 살아보기도 힘들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어떤 신청자는 "아들 딸 둘만 낳아 가족 계획을 철저히 지켰다"며 "같은 불임 시술자라도 아이들이 4~5명이 있는 신청자와 나처럼 자식을 둘만 낳은 사람을 똑같이 대접해서야 되겠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과부(미망인)도 수술을 해야 하느냐" "폐경기인데 무슨 불임 시술이 필요하냐"등의 문의 전화도 왔다고 당시 신문은 전했다. 이처럼 받은 영구 불임시술자의 아파트 청약 통장은 2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한다.

심지어 불임 시술자에 대한 아파트 우선 분양을 두고 소송전도 벌어졌다.

원모씨는 1988년 7월 경기도 강화군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한 가족계획협의의 권유로 정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9월 세번째 아이를 출산했고, 아파트 분양권이 취소됐다. 원씨는 이에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상대로 1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분양이 이뤄졌던 반포 주공아파트는 지금은 국내 최고가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꼽힌다.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꼽힌다.

◆저출산 비상 걸린 대한민국

반포 아파트까지 주면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한민국의 산아 제한 정책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1970년에 100만명을 넘던 출생아수는 80년에는 86만명, 90년에는 64만명까지 떨어졌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자 시대의 산물이던 불임 시술자에 대한 아파트 우선 분양은 1990년 중반에 중단됐다.

1996년 4월 김양배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35년간 시행한 인구 억제 정책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했고, 97년 7월 18일 '주택공급규칙'이 개정되면서 영구 불임 시술자 우대조치는 삭제됐다.

출산율이 저하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2000년대 들어 속속 발표했다.

2006년에도 인구 정책을 주택청약제도와 연결하는 정책이 발표됐는데, 방향은 반대였다.

건교부는 2006년 8월 주택공급규칙을 개정, '민법상 미성녀자인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무주택 세대주에게 건설량의 3% 범위 안에서 1회에 한해 특별 공급할 수 있다"고 정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년간 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1.21명(2014년 기준)의 초(超)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이 지금은 마카오·홍콩·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낮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2050년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다. 2016년 생산 가능인구(15~64세)가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지만, 그때 되면 2535만명으로 급감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이 바닥나고 현재의 군 인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해외에서 8만명의 용병을 수입해와야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반포 아파트 분양권까지 주면 강력하게 추진했던 산아제한 정책처럼 지금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현재 저출산의 원인은 취업난, 주택난, 보육과 교옥의 어려움 등 세가지에서 비롯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젊은층에게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정책을 펴는 것이 인구 5000만명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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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관수술해 받은 반포 아파트, 그 시절로 가보니
    • 입력 2016-08-23 14:59:49
    취재K
1977년 9월 14일 서울 반포 아파트 주택 전시관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로 대표되던 산아 제한이 국가적 목표이던 76년 11월, 경제기획원은 '제4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 동안 연평균 인구 증가율을 1.6%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던 데다, 한 가구 당 3~4명의 자녀를 낳는 경우도 많았다.

정부는 실질적인 산아 제한 대책의 효과를 위해 아파트 청약 제도에 우대 조항을 만들었다.

즉 77년 청약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민주택청약 부금 가입자 중에서 1순위에 경쟁이 있을 때 해외 근로자면서 영구 불임시술자→영구 불임시술자→해외 취업근로자의 순서대로 분양 대상자를 정했다.

'내 집 마련'에 목말라 있던 시민들에게 정부 조치는 효과가 있었다. 76년말 8만 여명에 불과하던 영구 불임시술자가 77년 8월말 14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여성보다는 주로 남자들이 받는 정관수술이 많았다.

아파트 청약용 정관수술이 화제가 된 때는 77년 9월 반포 주공 아파트 청약 때였다.


당시 신문에 나오는 사연을 보면 이렇다.

남편 김모(35세)씨는 아침 일찍 신청장소에 나왔다가 불임 시술자 우대 사실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불임 시술을 받도록 한 뒤 증명서를 떼와 청약을 신청했다.

주부 박모(44)씨의 사연은 더 재밌다. 5년 전 불임 수술을 받았다는 그녀는 병원이 문을 닫자 다른 병원(적십자 병원)에서 ‘무난자 증명서’를 받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무난자’가 선천적인 이상인 것인지 불임 시술에 의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

주공 직원은 박씨에게 아들이 있는 것을 주민등록등본으로 확인 한 다음에야 접수를 받았다. 단 조건이 붙었다. 다른 국립 병원에서 ‘불임 시술에 의한 무난자 확인증’을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불임 시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후순위를 받은 박모 할아버지(71)는 “45세 이상의 사람들은 효과가 없다고 보건소에서 무료로 시술을 해주지 않는데 순위를 차별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늙은 사람은 새 아파트에서 살아보기도 힘들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어떤 신청자는 "아들 딸 둘만 낳아 가족 계획을 철저히 지켰다"며 "같은 불임 시술자라도 아이들이 4~5명이 있는 신청자와 나처럼 자식을 둘만 낳은 사람을 똑같이 대접해서야 되겠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과부(미망인)도 수술을 해야 하느냐" "폐경기인데 무슨 불임 시술이 필요하냐"등의 문의 전화도 왔다고 당시 신문은 전했다. 이처럼 받은 영구 불임시술자의 아파트 청약 통장은 20만원 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한다.

심지어 불임 시술자에 대한 아파트 우선 분양을 두고 소송전도 벌어졌다.

원모씨는 1988년 7월 경기도 강화군의 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대한 가족계획협의의 권유로 정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9월 세번째 아이를 출산했고, 아파트 분양권이 취소됐다. 원씨는 이에 대한가족계획협회를 상대로 15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분양이 이뤄졌던 반포 주공아파트는 지금은 국내 최고가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반포래미안퍼스티지.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꼽힌다.
◆저출산 비상 걸린 대한민국

반포 아파트까지 주면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던 대한민국의 산아 제한 정책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1970년에 100만명을 넘던 출생아수는 80년에는 86만명, 90년에는 64만명까지 떨어졌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자 시대의 산물이던 불임 시술자에 대한 아파트 우선 분양은 1990년 중반에 중단됐다.

1996년 4월 김양배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35년간 시행한 인구 억제 정책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했고, 97년 7월 18일 '주택공급규칙'이 개정되면서 영구 불임 시술자 우대조치는 삭제됐다.

출산율이 저하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2000년대 들어 속속 발표했다.

2006년에도 인구 정책을 주택청약제도와 연결하는 정책이 발표됐는데, 방향은 반대였다.

건교부는 2006년 8월 주택공급규칙을 개정, '민법상 미성녀자인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무주택 세대주에게 건설량의 3% 범위 안에서 1회에 한해 특별 공급할 수 있다"고 정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년간 80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1.21명(2014년 기준)의 초(超)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출산율이 지금은 마카오·홍콩·싱가포르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낮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2050년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다. 2016년 생산 가능인구(15~64세)가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지만, 그때 되면 2535만명으로 급감한다. 국민연금, 건강보험이 바닥나고 현재의 군 인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해외에서 8만명의 용병을 수입해와야할 판이다.

전문가들은 반포 아파트 분양권까지 주면 강력하게 추진했던 산아제한 정책처럼 지금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현재 저출산의 원인은 취업난, 주택난, 보육과 교옥의 어려움 등 세가지에서 비롯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젊은층에게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정책을 펴는 것이 인구 5000만명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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