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 가문 50년 통치 못 참겠다”…유혈 사태 확산
입력 2016.09.02 (16:42)
수정 2016.09.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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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봉고 가문에 진절머리가 나요. 50년이면 충분해요. 무려 50년 동안이나 통치를 했어요. 이제는 물러나야 해요"
지난 1일(현지시각)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시위를 벌인 시민들의 주장이다. 인구 180만 명의 서아프리카의 조그마한 나라 가봉 공화국이 갑작스럽게 국제 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현직 대통령인 알리 봉고의 재집권이 확정 발표된 이후 야당 지지자들의 항의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선거가 치러진 뒤 나흘만인 지난달 31일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그동안 승리를 확신했던 야당의 장 핑 지지자들은 "선거를 도둑맞았다. 투표 조작이고 사기다"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가봉 내무부가 공식 발표한 두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1.6% 포인트, 표 차이는 5천여 표에 불과했다. 특히 전국 9개 주의 평균 투표율은 59.4%였지만 봉고 대통령 가문의 고향인 오트오그웨 주의 경우는 투표율 99.9%에 봉고 대통령의 득표율은 99.5%로 집계되면서 부정 선거 의혹은 더욱 확산했다.

지난 1967년부터 42년 동안 가봉을 통치했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의 아들인 알리 봉고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아버지가 숨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알리 봉고가 이번에 7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하면서 봉고 부자의 가봉 통치가 반세기를 훌쩍 넘기게 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봉고 대통령의 재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위대들이 불을 질러 검게 그을린 국회 의사당[사진=AP]](/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09.jpg)
성난 시위대의 일부는 의사당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거리 곳곳에서 건물과 자동차 방화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한 은행도 공격을 받았고 일부 상점이 약탈당하기도 했다. 가봉 군인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해 해산을 시도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벌였다. 인터넷도 차단됐다. 가봉당국은 이틀 동안 시위 진압과정에서 3명이 숨지고 천 2백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의 한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상 캡처]](/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0.jpg)
![지난 1일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봉고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상 캡처]](/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1.jpg)
이번 선거에서 패한 장 핑 후보 측은 정당 본부가 대통령 경호대와 경찰의 공격을 받아 2명이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핑 후보 측은 "선관위의 수치는 가짜 서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가봉 국민을 보호해달라"고 촉구했다.
국제사회, 폭력 사태 중단 촉구
유엔과 미국, 프랑스 등 국제사회는 폭력 사태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일 프랑스의 요청에 따라 긴급회의를 열어 "모든 후보, 그들의 지지자, 정당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가 침착하게 폭력과 도발을 자제하고 기존 헌법·사법체계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가봉 정부에 "정치적 구금자들을 바로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또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독립방송 등 단절된 통신도 즉각 복구하라고 요구했다.
![1일 프랑스에 사는 가봉 국민들이 파리에서 봉고 대통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2.jpg)
오랜 기간 가봉을 식민 통치한 프랑스의 장마르크 에로 외무장관은 이번 폭력 사태에 "극도로 우려한다"며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내고 양측이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라고 당부하면서 가봉의 보안군에도 자제력을 발휘해달라고 밝혔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가봉은 석유와 우라늄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개발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현재는 인구 180만여 명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530달러이다.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국가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오마르 봉고 대통령 한국 4차례 방문
가봉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알리 봉고 대통령의 아버지인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은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정부는 수십만 명을 길가에 동원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이후에도 봉고 대통령은 10년 주기로 한국을 찾았으며 1982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가봉을 방문하기도 했다.
초점이 약간 빗나간 얘기지만 우리나라 승합차의 상징인 봉고가 가봉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는 얘기는 사실일까? 지난 2007년 8월 우리나라를 네 번째 방문한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과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내 이름이 한국의 한 미니버스에 붙여지기도 했다"고 말한 이후 기아자동차에서 출시한 승합차에 '봉고'라는 이름을 단 것은 가봉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세간의 얘기가 거의 정설로 굳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어로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야생 영양을 뜻하는 봉고라는 이름은 1980년 우리나라 생산 당시 기아산업의 기술 제휴선에 있었던 일본 마쓰다의 차종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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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고 가문 50년 통치 못 참겠다”…유혈 사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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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9-02 16:42:40
- 수정2016-09-02 16:47:08

"우리는 봉고 가문에 진절머리가 나요. 50년이면 충분해요. 무려 50년 동안이나 통치를 했어요. 이제는 물러나야 해요"
지난 1일(현지시각)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시위를 벌인 시민들의 주장이다. 인구 180만 명의 서아프리카의 조그마한 나라 가봉 공화국이 갑작스럽게 국제 사회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현직 대통령인 알리 봉고의 재집권이 확정 발표된 이후 야당 지지자들의 항의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선거가 치러진 뒤 나흘만인 지난달 31일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그동안 승리를 확신했던 야당의 장 핑 지지자들은 "선거를 도둑맞았다. 투표 조작이고 사기다"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가봉 내무부가 공식 발표한 두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1.6% 포인트, 표 차이는 5천여 표에 불과했다. 특히 전국 9개 주의 평균 투표율은 59.4%였지만 봉고 대통령 가문의 고향인 오트오그웨 주의 경우는 투표율 99.9%에 봉고 대통령의 득표율은 99.5%로 집계되면서 부정 선거 의혹은 더욱 확산했다.

지난 1967년부터 42년 동안 가봉을 통치했던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의 아들인 알리 봉고 대통령은 지난 2009년 아버지가 숨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알리 봉고가 이번에 7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하면서 봉고 부자의 가봉 통치가 반세기를 훌쩍 넘기게 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봉고 대통령의 재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위대들이 불을 질러 검게 그을린 국회 의사당[사진=AP]](/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09.jpg)
성난 시위대의 일부는 의사당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의사당에 불을 질렀다. 거리 곳곳에서 건물과 자동차 방화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한 은행도 공격을 받았고 일부 상점이 약탈당하기도 했다. 가봉 군인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해 해산을 시도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벌였다. 인터넷도 차단됐다. 가봉당국은 이틀 동안 시위 진압과정에서 3명이 숨지고 천 2백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의 한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상 캡처]](/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0.jpg)
![지난 1일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서 봉고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영상 캡처]](/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1.jpg)
이번 선거에서 패한 장 핑 후보 측은 정당 본부가 대통령 경호대와 경찰의 공격을 받아 2명이 숨지고 20명 이상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핑 후보 측은 "선관위의 수치는 가짜 서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가봉 국민을 보호해달라"고 촉구했다.
국제사회, 폭력 사태 중단 촉구
유엔과 미국, 프랑스 등 국제사회는 폭력 사태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일 프랑스의 요청에 따라 긴급회의를 열어 "모든 후보, 그들의 지지자, 정당을 비롯한 모든 관련자가 침착하게 폭력과 도발을 자제하고 기존 헌법·사법체계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가봉 정부에 "정치적 구금자들을 바로 조건 없이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또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SNS), 독립방송 등 단절된 통신도 즉각 복구하라고 요구했다.
![1일 프랑스에 사는 가봉 국민들이 파리에서 봉고 대통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data/fckeditor/new/image/20160902chs512.jpg)
오랜 기간 가봉을 식민 통치한 프랑스의 장마르크 에로 외무장관은 이번 폭력 사태에 "극도로 우려한다"며 양측에 자제를 촉구했다. 미국 국무부도 성명을 내고 양측이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라고 당부하면서 가봉의 보안군에도 자제력을 발휘해달라고 밝혔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가봉은 석유와 우라늄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개발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현재는 인구 180만여 명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530달러이다. 최근 국제 유가 하락으로 국가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오마르 봉고 대통령 한국 4차례 방문
가봉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알리 봉고 대통령의 아버지인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은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정부는 수십만 명을 길가에 동원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이후에도 봉고 대통령은 10년 주기로 한국을 찾았으며 1982년에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가봉을 방문하기도 했다.
초점이 약간 빗나간 얘기지만 우리나라 승합차의 상징인 봉고가 가봉 대통령의 이름을 따왔다는 얘기는 사실일까? 지난 2007년 8월 우리나라를 네 번째 방문한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과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내 이름이 한국의 한 미니버스에 붙여지기도 했다"고 말한 이후 기아자동차에서 출시한 승합차에 '봉고'라는 이름을 단 것은 가봉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세간의 얘기가 거의 정설로 굳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영어로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야생 영양을 뜻하는 봉고라는 이름은 1980년 우리나라 생산 당시 기아산업의 기술 제휴선에 있었던 일본 마쓰다의 차종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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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철 기자 kim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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