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자력갱생”·“속도전”…北 수해 복구 시스템

입력 2016.10.08 (08:08) 수정 2016.10.08 (09:2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북한 두만강 유역의 홍수로 큰 피해가 난지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연일 피해 복구 상황을 전하고 있지만, 중장비 보다는 인력을 집중 투입해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이번 함경북도 홍수를 계기로 북한의 재해 복구 시스템과 그 한계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 제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북한 함경북도 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많게는 하루 100㎜ 안팎으로 닷새나 지속된 비.

일부 지역은 단 사흘간의 강수량이 무려 300㎜를 기록하기도 했다.

피해가 집중된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아 있는 회령시와 그 인근 무산군, 연사군 등 6개 지역.

유엔 산하 기구들이 현지 조사를 거쳐 공개한 보고서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인명 피해만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5백 명을 훌쩍 넘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침수되거나 파괴된 가옥은 약 3만 7천여 채, 이로 인한 이재민 수만 약 12만 명에 달한다.

<녹취> 패트릭 퓰러(국제적십자사 홍보팀장) :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본 홍수 중에 가장 최악의 홍수임이 분명한 데다, 아직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재해와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상황을 아직 모릅니다."

피해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나선 유엔 산하 기구들.

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거라는 게 현지 소식을 빈번히 접하는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수위가 갑자기, 물기둥이 15m로 휩쓸었다... 그러니까 물 태풍이 왔다, 쓰나미다 할 정도로 확 밀려가는 것이어서... 작년에 나진에서 50명 정도 어렇게 사망 실종으로 처리했는데, 실제는 3천명 이상의 시신을 수습했어요. 발표를 안 한 건데, 이번에도 사망자는 적어도 3천명 이상으로 보는 거죠."

국내 전문가들도 이번 수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를 훨씬 웃돌 거라고 말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북한 매체 표현대로 100년만의 대재앙일 정도로 폭우가 많이 온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해당 지역에 세 개의 거대한 발전용 댐이 있는데 그 댐이... 새벽에 방류를 했어요. 새벽 3시와 5시 사이에. 그렇기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여 지고요."

밤새 내린 비로 심야에 두만강 물이 불어나면서 긴급한 상황이 전개된 사실은 중국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밤중 예기치 못한 폭우로 급히 인근 지역 댐의 수문을 열었지만, 주민들을 미처 대피시키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수위 조절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을 함으로서 일시에 물을 방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거죠. 또 하나는 대피 명령이라든지 아니면 대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체계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 당국이 발표한 피해보다 대략 10배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요."

<녹취> 지난 달 10일, 조선중앙TV : "해방 후 기상관측 이래 처음 보는 돌풍이 불어치고 무더기 비가 쏟아져 여러 시군에서 막대한 자연재해를 입게 되었다."

해방 이후 최악의 홍수였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는 북한 매체들.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 즉 사람의 잘못이 피해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다.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수해 복구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달 말 두만강변의 북중 접경지역을 KBS 취재진이 직접 둘러봤다.

주민들의 탈북과 밀수를 막기 위해 쳐놓은 철조망은 대부분 유실됐고, 국경 경비대의 초소도 상당수가 파괴됐다.

수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함경북도 무산시.

상당수 가옥들이 홍수에 밀려온 흙더미에 부서진 채 파묻혀있다.

<녹취> 중국 동포 : "(수해복구) 지원 나간 사람들 얘기로는 북한 군인들 시신 3구인가, 4구를 중국 남평 쪽에서 수습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요란한 선동 가요를 들으며 복구 작업에 한창인 주민들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사실상 맨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살림집 복구보다 군 막사와 유실된 철도 보수에 우선 동원된다.

탈진한 듯 아예 모래밭에 드러누운 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북한 당국은 지난 달 10일,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 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10일)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완공을 눈앞에 둔 려명거리 건설도 중지하고 여기에 집중하였던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자를 포함한 북한군 부대와 돌격대, 주민 10만 명이 수해 복구 현장에 투입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비 없이 인력에만 의존하다 보니 복구는 더디기만 한 상황...

이 때문에 수해 복구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속도전’이 강조된다.

<녹취> 조선중앙TV : "폭풍처럼, 화약에 불이 달린 것처럼 단숨에의 기상으로 맡은 복구 건설 과제 수행에서 ‘만리마 속도’를 창출하자!"

<인터뷰> 이OO(북한군 공병부대 출신/2012년 탈북) : "김정은이 10월 10일까지 끝내라면 죽든 살든 끝내야 되는 거예요. 그걸 지키지 못하면 결국 위에 있는 간부들부터 자기 목이 달아나니까 결국 아랫사람들 시키고. 속도전이라는 게 결국 부실공사를 초래하는 기본 원인이 그 안에 있죠."

주민들을 독려하는 노랫소리가 수해 복구 현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있다.

속도전과 함께 수해 복구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호는 이른바 ‘자력 갱생’.

<인터뷰> 이OO(북한군 공병부대 출신/2012년 탈북) : "시멘트하고 철근 같은 건 정 수해가 크게 난 지역에는 조금씩은 보내줘요. 그런데 그 양이 한 20~30% 정도나 될까. 나머지는 수해 복구를 맡은 단위에서 알아서 자체로 돈 주고 사든가 다른 대체 물자로 바꿔오든가 알아서 해야되는 거죠."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공사비 모금과 노동력 동원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체계적인 노력 동원을 위해 북한은 주민들을 상대로 준 군사조직에 가까운 ‘돌격대’까지 꾸리고 있다.

돌격대는 중학교 졸업생들 가운데 이른바 출신성분과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반강제적으로 징집해 구성하는데,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거나 환경이 열악한 공사 현장에 우선적으로 투입된다고 한다.

<녹취> 박00(북한 돌격대 출신/2010년 탈북) : "시멘트 하차 작업이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뭐 일단 더우니까 웃통을 다 벗고 여자들은 옷을 입고 나르는데 이 시멘트가 몸에 다 붙어가지고 콧구멍과 다 붙어가지고 땀과 같이 콘크리트가 돼요. 정말 그게 제일 괴로웠던 것 같고 가죽이 등가죽이 벗겨졌던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생리도 못한다, 너무 힘들어가지고..."

이렇게 북한 내 조직된 돌격대의 규모는 약 40만 명 정도.

수해 복구 등의 현장엔 우선적으로 공병 등의 군부대와 이 같은 전문 돌격대가 동원되고, 모자라면 각 지역이나 공장, 기업소별로 조직되는 돌격대, 가정주부, 학생들까지 투입된다.

작업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월급은커녕 충분한 식사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전문 돌격대는 사실상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다고 인권 단체들은 말한다.

<녹취> 권은경(대북인권단체 ‘열린 북한’ 대표) : "보통 근로자들은 개인 장사를 해서 돈을 벌수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돈 벌 기회를 박탈당하는 겁니다 이런 기이한 형태의 노동 착취구조가 북한에 아주 체계적으로 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될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수해 복구 작업에 총동원되고 있지만 홍수가 난 지 한 달이 넘게 김정은은 피해 현장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

도리어, 복구 작업이 한창인 지역에 김정일의 대형 동상을 세우는가 하면, 식수난에 시달리는 이재민은 아랑곳없이 최근에는 평양 시민들을 위한 생수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30일) : "룡악산 샘물공장이 훌륭히 개건됨으로써 수도시민들에게 샘물을 더 풍족하게 공급해 줄 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김정은이 피해 현장을 철저히 외면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지금은 만약에 김정은이 현지 시찰을 나온다 하더라도 피해 복구 상황의 진척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에 낼 수 있는 효과가, 김정은이 왔다고 효과를 내야 그것이 치적으로 될 건데 그 부분이 아마도 시점이 지금은 맞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안 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해 지역이 너무 방대하고 넓고 피해 양이 크기 때문에..."

흉흉해진 지역 민심을 고려해 아예 수해 지역을 찾지 않거나, 지난 해 라선시 수해지역의 경우처럼 살림집 건설이 거의 다 끝날 무렵 찾아가 수해 복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자연보다는 사람의 책임이 훨씬 큰 북한의 수해는 해마다 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다.

나무를 심고 하천을 준설하는 등 근본 대책이 절실하지만 김정은은 자원과 재원을 수도 평양의 전시성 사업과 핵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극심한 홍수 피해 속에 강행된 북한의 5차 핵실험.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 사회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녹취> 정준희(통일부 대변인/지난달 30일) : "막대한 노력이 소요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는 전력을 다하면서 민생을 외면하는 이런 북한의 이중적 행태가 문제다..."

또, 북한 주민을 위한 지원 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금껏 여러 경로로 확인돼 왔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피해복구 물자들이 직접 주민한테 가면 왜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겠습니까. 주민한테 안 가고 예를 들어 100개가 간다고 하면 거의 1개 내지 2개, 10개가 가도 저는 대단하다고 보거든요. 개성공단 도로 복구할 때도 그랬고, 삼지연 공항 건설해 준 자재도 하나도 안 갔어요. 다 어디로 갔냐. 군사 시설 보강하는 데 다 갔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입은 피해가 지금껏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해를 당한 함경북도가 곧 영하의 추위로 떨어질 거라는 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김정은이 그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핵 개발로 전용이 가능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금 어려운 상황이고요. 다만 유아용 의약품이나 아니면 긴급 의약품, 그 다음에 긴급 재난 구조용 키트나 모포 같은 그런 전용이 어려운 물품들에 있어서는 인도적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이제 추위와 싸워야 할 북한 주민들.

외부 도움의 손길마저 제대로 닿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은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클로즈업 북한] “자력갱생”·“속도전”…北 수해 복구 시스템
    • 입력 2016-10-08 09:06:55
    • 수정2016-10-08 09:24:19
    남북의 창
<앵커 멘트>

북한 두만강 유역의 홍수로 큰 피해가 난지 한 달을 넘어섰습니다.

북한 매체들이 연일 피해 복구 상황을 전하고 있지만, 중장비 보다는 인력을 집중 투입해 복구 작업을 하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이번 함경북도 홍수를 계기로 북한의 재해 복구 시스템과 그 한계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 제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북한 함경북도 지방에 많은 양의 비가 쏟아졌다.

많게는 하루 100㎜ 안팎으로 닷새나 지속된 비.

일부 지역은 단 사흘간의 강수량이 무려 300㎜를 기록하기도 했다.

피해가 집중된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아 있는 회령시와 그 인근 무산군, 연사군 등 6개 지역.

유엔 산하 기구들이 현지 조사를 거쳐 공개한 보고서에는 현재까지 확인된 인명 피해만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쳐 5백 명을 훌쩍 넘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침수되거나 파괴된 가옥은 약 3만 7천여 채, 이로 인한 이재민 수만 약 12만 명에 달한다.

<녹취> 패트릭 퓰러(국제적십자사 홍보팀장) :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본 홍수 중에 가장 최악의 홍수임이 분명한 데다, 아직 이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재해와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상황을 아직 모릅니다."

피해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나선 유엔 산하 기구들.

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거라는 게 현지 소식을 빈번히 접하는 대북 소식통의 전언이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수위가 갑자기, 물기둥이 15m로 휩쓸었다... 그러니까 물 태풍이 왔다, 쓰나미다 할 정도로 확 밀려가는 것이어서... 작년에 나진에서 50명 정도 어렇게 사망 실종으로 처리했는데, 실제는 3천명 이상의 시신을 수습했어요. 발표를 안 한 건데, 이번에도 사망자는 적어도 3천명 이상으로 보는 거죠."

국내 전문가들도 이번 수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를 훨씬 웃돌 거라고 말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북한 매체 표현대로 100년만의 대재앙일 정도로 폭우가 많이 온 건 사실입니다. 문제는 해당 지역에 세 개의 거대한 발전용 댐이 있는데 그 댐이... 새벽에 방류를 했어요. 새벽 3시와 5시 사이에. 그렇기 때문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여 지고요."

밤새 내린 비로 심야에 두만강 물이 불어나면서 긴급한 상황이 전개된 사실은 중국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밤중 예기치 못한 폭우로 급히 인근 지역 댐의 수문을 열었지만, 주민들을 미처 대피시키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수위 조절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을 함으로서 일시에 물을 방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거죠. 또 하나는 대피 명령이라든지 아니면 대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체계들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희생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 당국이 발표한 피해보다 대략 10배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요."

<녹취> 지난 달 10일, 조선중앙TV : "해방 후 기상관측 이래 처음 보는 돌풍이 불어치고 무더기 비가 쏟아져 여러 시군에서 막대한 자연재해를 입게 되었다."

해방 이후 최악의 홍수였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는 북한 매체들.

하지만 실제로는 자연 재해가 아닌 인재, 즉 사람의 잘못이 피해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다.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수해 복구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달 말 두만강변의 북중 접경지역을 KBS 취재진이 직접 둘러봤다.

주민들의 탈북과 밀수를 막기 위해 쳐놓은 철조망은 대부분 유실됐고, 국경 경비대의 초소도 상당수가 파괴됐다.

수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함경북도 무산시.

상당수 가옥들이 홍수에 밀려온 흙더미에 부서진 채 파묻혀있다.

<녹취> 중국 동포 : "(수해복구) 지원 나간 사람들 얘기로는 북한 군인들 시신 3구인가, 4구를 중국 남평 쪽에서 수습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요란한 선동 가요를 들으며 복구 작업에 한창인 주민들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사실상 맨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살림집 복구보다 군 막사와 유실된 철도 보수에 우선 동원된다.

탈진한 듯 아예 모래밭에 드러누운 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북한 당국은 지난 달 10일,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 인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10일)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완공을 눈앞에 둔 려명거리 건설도 중지하고 여기에 집중하였던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자를 포함한 북한군 부대와 돌격대, 주민 10만 명이 수해 복구 현장에 투입됐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비 없이 인력에만 의존하다 보니 복구는 더디기만 한 상황...

이 때문에 수해 복구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속도전’이 강조된다.

<녹취> 조선중앙TV : "폭풍처럼, 화약에 불이 달린 것처럼 단숨에의 기상으로 맡은 복구 건설 과제 수행에서 ‘만리마 속도’를 창출하자!"

<인터뷰> 이OO(북한군 공병부대 출신/2012년 탈북) : "김정은이 10월 10일까지 끝내라면 죽든 살든 끝내야 되는 거예요. 그걸 지키지 못하면 결국 위에 있는 간부들부터 자기 목이 달아나니까 결국 아랫사람들 시키고. 속도전이라는 게 결국 부실공사를 초래하는 기본 원인이 그 안에 있죠."

주민들을 독려하는 노랫소리가 수해 복구 현장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있다.

속도전과 함께 수해 복구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구호는 이른바 ‘자력 갱생’.

<인터뷰> 이OO(북한군 공병부대 출신/2012년 탈북) : "시멘트하고 철근 같은 건 정 수해가 크게 난 지역에는 조금씩은 보내줘요. 그런데 그 양이 한 20~30% 정도나 될까. 나머지는 수해 복구를 맡은 단위에서 알아서 자체로 돈 주고 사든가 다른 대체 물자로 바꿔오든가 알아서 해야되는 거죠."

이 때문에 주민들은 공사비 모금과 노동력 동원의 이중고를 겪게 된다.

체계적인 노력 동원을 위해 북한은 주민들을 상대로 준 군사조직에 가까운 ‘돌격대’까지 꾸리고 있다.

돌격대는 중학교 졸업생들 가운데 이른바 출신성분과 신체 조건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반강제적으로 징집해 구성하는데, 안전사고의 위험이 크거나 환경이 열악한 공사 현장에 우선적으로 투입된다고 한다.

<녹취> 박00(북한 돌격대 출신/2010년 탈북) : "시멘트 하차 작업이 있었습니다. 남자들은 뭐 일단 더우니까 웃통을 다 벗고 여자들은 옷을 입고 나르는데 이 시멘트가 몸에 다 붙어가지고 콧구멍과 다 붙어가지고 땀과 같이 콘크리트가 돼요. 정말 그게 제일 괴로웠던 것 같고 가죽이 등가죽이 벗겨졌던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대부분 생리도 못한다, 너무 힘들어가지고..."

이렇게 북한 내 조직된 돌격대의 규모는 약 40만 명 정도.

수해 복구 등의 현장엔 우선적으로 공병 등의 군부대와 이 같은 전문 돌격대가 동원되고, 모자라면 각 지역이나 공장, 기업소별로 조직되는 돌격대, 가정주부, 학생들까지 투입된다.

작업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월급은커녕 충분한 식사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전문 돌격대는 사실상 현대판 노예와 다름없다고 인권 단체들은 말한다.

<녹취> 권은경(대북인권단체 ‘열린 북한’ 대표) : "보통 근로자들은 개인 장사를 해서 돈을 벌수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그 돈 벌 기회를 박탈당하는 겁니다 이런 기이한 형태의 노동 착취구조가 북한에 아주 체계적으로 자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될 것 같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수해 복구 작업에 총동원되고 있지만 홍수가 난 지 한 달이 넘게 김정은은 피해 현장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

도리어, 복구 작업이 한창인 지역에 김정일의 대형 동상을 세우는가 하면, 식수난에 시달리는 이재민은 아랑곳없이 최근에는 평양 시민들을 위한 생수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30일) : "룡악산 샘물공장이 훌륭히 개건됨으로써 수도시민들에게 샘물을 더 풍족하게 공급해 줄 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김정은이 피해 현장을 철저히 외면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지금은 만약에 김정은이 현지 시찰을 나온다 하더라도 피해 복구 상황의 진척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에 낼 수 있는 효과가, 김정은이 왔다고 효과를 내야 그것이 치적으로 될 건데 그 부분이 아마도 시점이 지금은 맞지 않거나, 아니면 아예 안 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해 지역이 너무 방대하고 넓고 피해 양이 크기 때문에..."

흉흉해진 지역 민심을 고려해 아예 수해 지역을 찾지 않거나, 지난 해 라선시 수해지역의 경우처럼 살림집 건설이 거의 다 끝날 무렵 찾아가 수해 복구를 자신의 공으로 돌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자연보다는 사람의 책임이 훨씬 큰 북한의 수해는 해마다 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다.

나무를 심고 하천을 준설하는 등 근본 대책이 절실하지만 김정은은 자원과 재원을 수도 평양의 전시성 사업과 핵개발에 쏟아 붓고 있다.

극심한 홍수 피해 속에 강행된 북한의 5차 핵실험.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우리 정부를 비롯한 국제 사회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녹취> 정준희(통일부 대변인/지난달 30일) : "막대한 노력이 소요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는 전력을 다하면서 민생을 외면하는 이런 북한의 이중적 행태가 문제다..."

또, 북한 주민을 위한 지원 물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금껏 여러 경로로 확인돼 왔다.

<인터뷰> 서재평(탈북자 동지회 사무국장) : "피해복구 물자들이 직접 주민한테 가면 왜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겠습니까. 주민한테 안 가고 예를 들어 100개가 간다고 하면 거의 1개 내지 2개, 10개가 가도 저는 대단하다고 보거든요. 개성공단 도로 복구할 때도 그랬고, 삼지연 공항 건설해 준 자재도 하나도 안 갔어요. 다 어디로 갔냐. 군사 시설 보강하는 데 다 갔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입은 피해가 지금껏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해를 당한 함경북도가 곧 영하의 추위로 떨어질 거라는 점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김정은이 그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핵 개발로 전용이 가능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금 어려운 상황이고요. 다만 유아용 의약품이나 아니면 긴급 의약품, 그 다음에 긴급 재난 구조용 키트나 모포 같은 그런 전용이 어려운 물품들에 있어서는 인도적 지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서 이제 추위와 싸워야 할 북한 주민들.

외부 도움의 손길마저 제대로 닿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현실은 김정은 정권이 핵을 포기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