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특강] 생각과 습관이 언어를 만든다

입력 2016.11.16 (08:49) 수정 2016.11.1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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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 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도 질문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한국을 일컫는 말 중에 어떤 표현들을 들어보셨나요?

한국의 빼어난 경관을 지칭하는 금수강산 (錦繡江山) 군자의 나라라는 뜻의 군자지국(君子之國), 하얀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뜻의 백의민족(白衣民族), 고요한 아침의 나라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아니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인 타고르(Tagore)가 묘사한 동방의 등불(the lamp-bearer), 또 공자도 방문하고 싶어했던, 동쪽의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의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모두 '자연, 조용함, 예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예의를 갖추기 위해 우리 민족은 의복을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이런 생각이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 있습니다.

같이 한번 보실까요?

1. 의식주(衣食住) 2. 식의주(食衣住)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나요? 당연히 1번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순서가 흥미롭습니다.

의식주 즉 '의복->음식-> 주거'의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음식이나 집보다도 옷을 더 우선시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이런 3가지 요소를 영어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3. clothing, food, and shelter 4. food, clothing, and shelter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이라면 예외 없이 '음식 -> 의복 -> 주거'의 순서인 4번이 자연스럽다고 할 겁니다.

물론 한국어와 영어에서의 이런 표현의 순서가 다른 것은 그냥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실까요? 다음의 빈칸에 알맞은 우리말 단어(동사)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5. 바지를 _______

6. 양말을 _______

7. 허리 띠를 ______ 8. 목걸이를 ______ 9. 시계를 ________ 10. 장갑을 ________ 11. 외투를 ________ 12. 안경을 ________ 13. 넥타이를 ________ 14. 향수를 ________ 15. 명찰을 _______

다들 빈칸에 순서대로 '입다, 신다, 하다, 걸다, 차다, 끼다, 걸치다, 쓰다, 매다, 뿌리다, 달다.'라고 하셨을 겁니다.

물론 빈칸에 몇 가지 단어는 서로 섞어 쓸 수 있지만, 이렇게 의복을 입는 동작과 관계된 단어가 한국어에는 정말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에서는 어떨까요?

16. Make sure to wear your seat belt. 17. What perfume/cologne are you wearing?

당연히 영어에서도 몇 가지 바꾸어 쓸 수 있는 표현이 있지만, to wear(입다)라는 단어 하나로 앞서 나왔던 한국어의 다양한 동사들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또 16번의 '안전벨트'나 17번의 '향수'까지도 '입다(wear)'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한편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생각이 반복된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언어에 투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 각 나라의 언어 속에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남아있다는 말도 됩니다.

앞서 보았던 의복에 대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이해하면, 의복을 통해 예의를 표현하려 했던 한국에서 왜 명품에 대한 열망이 미국보다 훨씬 더 큰지, 또 한국과는 달리 의복의 실용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미국에서는 강의실의 대학교수, 토크쇼에 출연한 영화배우, 심지어 대통령도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왜 어색하지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사회에서는 우리의 의복과 비슷한 개념이 바로 '개인공간'입니다.

양손을 뻗은 만큼의 공간이 바로 personal zone인데, 이 공간을 늘 존중하려고 노력하거나, 불가피하게 겹칠 때에는 서로 인지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 표시 방법이죠.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인사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다가도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눈인사를 주고 받고, 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또 식당에서 바로 옆 테이블의 소금이나 휴지는 내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그 식당의 공공재가 아닌 당연히 그 테이블 손님의 것으로 인식합니다.

결국 우리가 의복을 입듯, 그들도 개인공간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동방예의지국의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뜻하지 않게 무례하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테고, 나아가 그들에게 한국의 예의표시 방법도 더 효율적으로 잘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어, 생각,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Have a meaningful day,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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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에 특강] 생각과 습관이 언어를 만든다
    • 입력 2016-11-16 08:51:59
    • 수정2016-11-16 09: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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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근철입니다.

언어 속에 숨어있는 생각과 문화를 들여다 보고 그 이유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 오늘도 질문으로 출발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한국을 일컫는 말 중에 어떤 표현들을 들어보셨나요?

한국의 빼어난 경관을 지칭하는 금수강산 (錦繡江山) 군자의 나라라는 뜻의 군자지국(君子之國), 하얀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뜻의 백의민족(白衣民族), 고요한 아침의 나라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아니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인 타고르(Tagore)가 묘사한 동방의 등불(the lamp-bearer), 또 공자도 방문하고 싶어했던, 동쪽의 예의에 밝은 나라라는 뜻의 동방예의지국(東邦禮義之國)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의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모두 '자연, 조용함, 예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예의를 갖추기 위해 우리 민족은 의복을 중요하게 여겼는데요.

이런 생각이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된 표현이 있습니다.

같이 한번 보실까요?

1. 의식주(衣食住) 2. 식의주(食衣住)

1번과 2번 중 어느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들리나요? 당연히 1번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순서가 흥미롭습니다.

의식주 즉 '의복->음식-> 주거'의 차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음식이나 집보다도 옷을 더 우선시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이런 3가지 요소를 영어에서는 어떻게 표현할까요?

3. clothing, food, and shelter 4. food, clothing, and shelter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원어민이라면 예외 없이 '음식 -> 의복 -> 주거'의 순서인 4번이 자연스럽다고 할 겁니다.

물론 한국어와 영어에서의 이런 표현의 순서가 다른 것은 그냥 우연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보실까요? 다음의 빈칸에 알맞은 우리말 단어(동사)를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5. 바지를 _______

6. 양말을 _______

7. 허리 띠를 ______ 8. 목걸이를 ______ 9. 시계를 ________ 10. 장갑을 ________ 11. 외투를 ________ 12. 안경을 ________ 13. 넥타이를 ________ 14. 향수를 ________ 15. 명찰을 _______

다들 빈칸에 순서대로 '입다, 신다, 하다, 걸다, 차다, 끼다, 걸치다, 쓰다, 매다, 뿌리다, 달다.'라고 하셨을 겁니다.

물론 빈칸에 몇 가지 단어는 서로 섞어 쓸 수 있지만, 이렇게 의복을 입는 동작과 관계된 단어가 한국어에는 정말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에서는 어떨까요?

16. Make sure to wear your seat belt. 17. What perfume/cologne are you wearing?

당연히 영어에서도 몇 가지 바꾸어 쓸 수 있는 표현이 있지만, to wear(입다)라는 단어 하나로 앞서 나왔던 한국어의 다양한 동사들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또 16번의 '안전벨트'나 17번의 '향수'까지도 '입다(wear)'는 동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한편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생각이 반복된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언어에 투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현재 각 나라의 언어 속에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낼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남아있다는 말도 됩니다.

앞서 보았던 의복에 대한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를 이해하면, 의복을 통해 예의를 표현하려 했던 한국에서 왜 명품에 대한 열망이 미국보다 훨씬 더 큰지, 또 한국과는 달리 의복의 실용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미국에서는 강의실의 대학교수, 토크쇼에 출연한 영화배우, 심지어 대통령도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는 것이 왜 어색하지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사회에서는 우리의 의복과 비슷한 개념이 바로 '개인공간'입니다.

양손을 뻗은 만큼의 공간이 바로 personal zone인데, 이 공간을 늘 존중하려고 노력하거나, 불가피하게 겹칠 때에는 서로 인지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 표시 방법이죠.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끼리 인사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다가도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눈인사를 주고 받고, 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또 식당에서 바로 옆 테이블의 소금이나 휴지는 내가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그 식당의 공공재가 아닌 당연히 그 테이블 손님의 것으로 인식합니다.

결국 우리가 의복을 입듯, 그들도 개인공간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동방예의지국의 한국 사람이 외국에서 뜻하지 않게 무례하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테고, 나아가 그들에게 한국의 예의표시 방법도 더 효율적으로 잘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어, 생각, 문화의 이근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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