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김정일 사망 5년…‘김정은 체제’ 5년

입력 2016.12.17 (08:08) 수정 2016.12.17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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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2월 17일, 오늘은 김정일이 사망한지 5년 째 되는 날입니다.

북한은 ‘정주년’이라고 해서 5년, 10년 단위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의 기념일이나 정치행사를 특별히 성대하게 치르곤 하는데요.

더구나 올해는 김정은이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고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등 김정일 사후 지난 5년간의 권력 다지기가 완결되는 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 집권 5년간의 변화를 살펴보고 북한 사회의 미래를 전망해 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지난 7일) : "어버이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각 계층 근로자들과 청년 학생들이 당 창건 기념탑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망 5년을 앞두고 북한 매체들은 최근 전국 각지의 추모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전했다.

<녹취> 김애순(평양시민) : "어버이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오는 12월에 여기 당 창건 기념탑을 바라보니 정말 우리 장군의 당 건설 업적이 더욱 더 가슴 뜨겁게 어려 옵니다."

김정일을 기리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

<녹취> 북한노래 ‘선군의 그 길을 생각할수록’ : "장군님. 그 위업 길이 받들며 변함없이 따르렵니다."

각종 선전물과 김정일의 일생을 다룬 기록영화도 잇따라 전파를 탔다.

<녹취> 北 기록영화(지난 11일/주체시대를 빛내신 위인) : "한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어 백두에서 개척된 성스러운 주체시대를 온 누리에 빛내 오신 절세의 위인 김정일 장군님."

김정은 역시 과거 김정일이 현지 지도한 곳 등을 찾아 이른바‘유훈’을 강조하며 추모 발언을 쏟아냈다.

<녹취> 조선중앙TV ‘김정은 원산구두공장 현지지도’(지난 9일) : "영광의 일터에서 일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우리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난 달 말에는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하고 있는 삼지연군을 방문해 최근 건립된 김정일 동상에 참배하기도 했다.

추모 분위기를 끌어올려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삼지연군 같은 경우에는 김일성의 혁명 성지로도 불리고, 또 김정일의 고향으로 상당히 선전돼 왔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상징성이 굉장히 높죠. 현재의 통치가 상당 부분 그런 연속성 안에 있고 안정적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취지가 굉장히 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28살 어린 나이에 권좌를 넘겨받은 김정은.

권력 장악을 위한 행보는 김정일 사망 보름 만에 본격화됐다.

김정일 장례 후 새해를 맞은 2012년 1월 1일.

새해 첫 일정으로 김정은은`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시찰했다.

주목할 점은 김정일 역시 김일성 사망 다음해인 1995년 1월 1일, 인민군 214부대를 시찰했다는 것.

집권 초기 아버지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하며 `유훈' 관철의 의지를 보여주려 했던 김정은.

짧은 후계 수업 기간에서 비롯된 불안과 위기감의 방증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예상과는 달리 지난 5년간 김정은은 권력을 빠르게 장악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 분야다.

김정은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제 환경 속에서 선군정치를 견지하면서도, 노동당 중심의 권력 체계를 복원했다.

김정일 사망 직후 최고사령관 직위에 오른 데 이어, 4개월 만에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추대된 김정은.

빠른 시간에 당·정·군 최고 직위를 차지하고 권력 승계를 완료했다.

<녹취> 김정은(2012년 4월 15일/김일성 탄생 100년 경축 중앙보고대회) : "나는 성스러운 선군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동지들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전우가 될 것이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과 혁명 앞에 지닌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그리고 집권 5년차인 올해, 김정은은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어 이른바 ‘셀프 대관식’을 치른다.

<녹취> 김영남(지난 5월/제7차 당대회 폐막식)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을 본 대회에 정중히 제의합니다."

‘노동당 위원장’ 이라는 새 직함에 오르면서 ‘제 1’ 꼬리표를 떼고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서른 셋, 젊은 지도자는 왜 이렇게 서둘러 최고 지도자 자리를 거머쥐고자 한 것일까?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일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이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통치도 했기 때문에 그런 타이틀을 빨리 가져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경우에는 다르죠. 급작스럽게 권력을 받다 보니까 이제 권력 타이틀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1위원장, 1비서 이런 임시적인 좀 과도적인 그런 과정을 거쳤다가 이번에는 아예 7차 당대회,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통해서 새로운 직함을 만들어서 이제 크라우닝, 왕관을 쓰게 된 거죠."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가 부분적으로 개선된 상황에서 경제 정책에도 다소의 변화가 가능했다.

이미 활성화된 장마당을 확대하고 ‘6.28 조치’를 통해 농장이나 기업소에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장마당이 최근 연간 2배로 확산이 됐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경제, 민생 이런 것들이 장마당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국가에서 배급 주고 국가에서 해결해주는 그런 것들이 여의치 않은 측면이 있고요. 그 다음에 또 국가 나름대로 이제 자기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장마당 수를 늘리고 이것을 통해서 세수도 확보하는 그런 양면적인 접근 정책을 펴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 속에 김정은은 현재 대체로 북한 체제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불만은 김정은식 공포정치다.

지난 2011년, 김정일의 운구차 옆에 섰던 7명의 당시 최고 실세들.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운구차 왼편을 지켰던 4명 모두 차례로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특히 집권 2년 만에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 마저 전격 처형한다.

김정일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정치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그만큼 권력 공고화에 혈안이 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의 새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만족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실질적으로 새 경제체계라는 게 개인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국가에서 더 빨아들이려고 만든 체제고 6.28 조치라고 하는 게...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이 야, 이게 아니로구나... 주민들이 이제 시장경제로 바뀌다 보니까 시장에서 나가서 쌀 벌어먹고, 죽지 않기 위해 산에 가서 약초를 캐가지고 팔아서 시장에 나가서 팔고.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주민들이 그 전처럼 수백만 명이 굶어죽지 않고 체제가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잘해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죠, 지금."

대외 관계는 더 악화됐다.

김정은은 아직 중국 방문도 하지 못한 상태.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월) : "주체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이는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을 받든다며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핵 개발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취> 김정은(지난 5월/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 : "수소탄까지 보유한 무진막강한 국력을 가진 우리 공화국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 주체의 핵 강국으로 위용 떨치고 있습니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 1월과 9월 4차, 5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김정은.

석탄 수출 제한까지 포함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최근 채택되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경제적 자립과 내부 결속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속도전’이었다.

올 초, 당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를 벌인 데 이어, 곧이어 시작된 ‘200일 전투’.

특히 이번 김정일 사망 5년에 맞춰 진행된 200일 전투는 수해 피해 지역 복구에 집중됐지만, 그마저도 부실공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주민들이 무서워서 들어가 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괜히 사람들을 들볶아 놓고 그 기간에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어 놨다 뿐이지. 주민들이 이제는 야, 그놈의 전투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건 뭐 우리는 전투가 없으면 살지 못하겠다고."

이미 그 부작용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속도전’이라는 낡은 카드를 김정은이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홍 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외부로부터의 대북제재라든가 또 핵무기 고도화 과정에서의 어떤 다양한 위기 환경들이 조성되는 부분들, 또 내적으로 공포정치라든가 이런 걸 통해가지고 조성된 어떤 주민들의 불안감, 이런 것들을 어떤 속도전식의 결속감을 만들어 냄으로써 상당 부분 희석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정치적인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지난 10월 11일) : "2017년 백두산위인칭송대회 국제준비위원회가 결성됐습니다."

북한은 내년 8월, 평양과 백두산에서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김씨 3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행사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은을 김일성·김정일 수준의 이제 수령으로 벌써 만들어놨죠. 김정은 생일을 국가적인 명절로 추대하고 이제 정하고. 그 다음에 여타 동상이랄지 아니면 초상장이라고 할지, 이런 것들을 김일성·김정은 수준에서 하는 것만 빼면 나머지들은 다 우상화가 이미 완성이 됐다고 봅니다."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자신의 우상화에도 본격 시동을 걸고 있는 김정은.

그러나 ‘김정은 북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인터뷰> 홍 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경제적인 부분이라든가 여러 부분에서 인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성과들이 5년, 10년 내에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면 상당히 피로감이 이제 더 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에 김정은이라든가 지도부에 대한 상당히 불신감이 더 팽배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김정은의 핵 도발과 공포정치.

북한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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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7 06:57:55
    • 수정2016-12-17 08: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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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2월 17일, 오늘은 김정일이 사망한지 5년 째 되는 날입니다.

북한은 ‘정주년’이라고 해서 5년, 10년 단위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의 기념일이나 정치행사를 특별히 성대하게 치르곤 하는데요.

더구나 올해는 김정은이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고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르는 등 김정일 사후 지난 5년간의 권력 다지기가 완결되는 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클로즈업 북한>은 김정일 사후, 김정은 집권 5년간의 변화를 살펴보고 북한 사회의 미래를 전망해 봤습니다.

<리포트>

<녹취> 조선중앙TV(지난 7일) : "어버이 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각 계층 근로자들과 청년 학생들이 당 창건 기념탑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김정일 사망 5년을 앞두고 북한 매체들은 최근 전국 각지의 추모 분위기를 집중적으로 전했다.

<녹취> 김애순(평양시민) : "어버이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오는 12월에 여기 당 창건 기념탑을 바라보니 정말 우리 장군의 당 건설 업적이 더욱 더 가슴 뜨겁게 어려 옵니다."

김정일을 기리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

<녹취> 북한노래 ‘선군의 그 길을 생각할수록’ : "장군님. 그 위업 길이 받들며 변함없이 따르렵니다."

각종 선전물과 김정일의 일생을 다룬 기록영화도 잇따라 전파를 탔다.

<녹취> 北 기록영화(지난 11일/주체시대를 빛내신 위인) : "한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시어 백두에서 개척된 성스러운 주체시대를 온 누리에 빛내 오신 절세의 위인 김정일 장군님."

김정은 역시 과거 김정일이 현지 지도한 곳 등을 찾아 이른바‘유훈’을 강조하며 추모 발언을 쏟아냈다.

<녹취> 조선중앙TV ‘김정은 원산구두공장 현지지도’(지난 9일) : "영광의 일터에서 일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우리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난 달 말에는 김정일의 출생지로 선전하고 있는 삼지연군을 방문해 최근 건립된 김정일 동상에 참배하기도 했다.

추모 분위기를 끌어올려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터뷰> 홍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삼지연군 같은 경우에는 김일성의 혁명 성지로도 불리고, 또 김정일의 고향으로 상당히 선전돼 왔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상징성이 굉장히 높죠. 현재의 통치가 상당 부분 그런 연속성 안에 있고 안정적이다 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취지가 굉장히 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28살 어린 나이에 권좌를 넘겨받은 김정은.

권력 장악을 위한 행보는 김정일 사망 보름 만에 본격화됐다.

김정일 장례 후 새해를 맞은 2012년 1월 1일.

새해 첫 일정으로 김정은은`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시찰했다.

주목할 점은 김정일 역시 김일성 사망 다음해인 1995년 1월 1일, 인민군 214부대를 시찰했다는 것.

집권 초기 아버지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하며 `유훈' 관철의 의지를 보여주려 했던 김정은.

짧은 후계 수업 기간에서 비롯된 불안과 위기감의 방증이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예상과는 달리 지난 5년간 김정은은 권력을 빠르게 장악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치 분야다.

김정은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제 환경 속에서 선군정치를 견지하면서도, 노동당 중심의 권력 체계를 복원했다.

김정일 사망 직후 최고사령관 직위에 오른 데 이어, 4개월 만에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추대된 김정은.

빠른 시간에 당·정·군 최고 직위를 차지하고 권력 승계를 완료했다.

<녹취> 김정은(2012년 4월 15일/김일성 탄생 100년 경축 중앙보고대회) : "나는 성스러운 선군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동지들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는 전우가 될 것이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과 혁명 앞에 지닌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

그리고 집권 5년차인 올해, 김정은은 36년 만에 노동당 대회를 열어 이른바 ‘셀프 대관식’을 치른다.

<녹취> 김영남(지난 5월/제7차 당대회 폐막식) :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할 것을 본 대회에 정중히 제의합니다."

‘노동당 위원장’ 이라는 새 직함에 오르면서 ‘제 1’ 꼬리표를 떼고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서른 셋, 젊은 지도자는 왜 이렇게 서둘러 최고 지도자 자리를 거머쥐고자 한 것일까?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일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이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통치도 했기 때문에 그런 타이틀을 빨리 가져올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경우에는 다르죠. 급작스럽게 권력을 받다 보니까 이제 권력 타이틀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1위원장, 1비서 이런 임시적인 좀 과도적인 그런 과정을 거쳤다가 이번에는 아예 7차 당대회,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통해서 새로운 직함을 만들어서 이제 크라우닝, 왕관을 쓰게 된 거죠."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가 부분적으로 개선된 상황에서 경제 정책에도 다소의 변화가 가능했다.

이미 활성화된 장마당을 확대하고 ‘6.28 조치’를 통해 농장이나 기업소에 시장경제 요소를 일부 도입했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장마당이 최근 연간 2배로 확산이 됐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경제, 민생 이런 것들이 장마당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국가에서 배급 주고 국가에서 해결해주는 그런 것들이 여의치 않은 측면이 있고요. 그 다음에 또 국가 나름대로 이제 자기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장마당 수를 늘리고 이것을 통해서 세수도 확보하는 그런 양면적인 접근 정책을 펴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 속에 김정은은 현재 대체로 북한 체제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불만은 김정은식 공포정치다.

지난 2011년, 김정일의 운구차 옆에 섰던 7명의 당시 최고 실세들.

맨 앞에 섰던 리영호 총참모장을 비롯해 운구차 왼편을 지켰던 4명 모두 차례로 숙청되거나 한직으로 물러났다.

특히 집권 2년 만에 고모부이자 후견인이었던 장성택 마저 전격 처형한다.

김정일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정치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그만큼 권력 공고화에 혈안이 돼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의 새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만족도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실질적으로 새 경제체계라는 게 개인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 국가에서 더 빨아들이려고 만든 체제고 6.28 조치라고 하는 게... 그러다 보니까 주민들이 야, 이게 아니로구나... 주민들이 이제 시장경제로 바뀌다 보니까 시장에서 나가서 쌀 벌어먹고, 죽지 않기 위해 산에 가서 약초를 캐가지고 팔아서 시장에 나가서 팔고.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까 주민들이 그 전처럼 수백만 명이 굶어죽지 않고 체제가 그대로 유지해 나가는 것뿐이지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가 잘해가지고 그러는 건 아니죠, 지금."

대외 관계는 더 악화됐다.

김정은은 아직 중국 방문도 하지 못한 상태.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월) : "주체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 완전 성공!"

이는 김정은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유훈을 받든다며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핵 개발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취> 김정은(지난 5월/제7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 : "수소탄까지 보유한 무진막강한 국력을 가진 우리 공화국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 주체의 핵 강국으로 위용 떨치고 있습니다."

2013년 3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 1월과 9월 4차, 5차 핵실험까지 강행한 김정은.

석탄 수출 제한까지 포함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최근 채택되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경제적 자립과 내부 결속을 위해 꺼내든 카드는 ‘속도전’이었다.

올 초, 당대회를 앞두고 ‘70일 전투’를 벌인 데 이어, 곧이어 시작된 ‘200일 전투’.

특히 이번 김정일 사망 5년에 맞춰 진행된 200일 전투는 수해 피해 지역 복구에 집중됐지만, 그마저도 부실공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주민들이 무서워서 들어가 살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괜히 사람들을 들볶아 놓고 그 기간에 먹고 살기 힘들게 만들어 놨다 뿐이지. 주민들이 이제는 야, 그놈의 전투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건 뭐 우리는 전투가 없으면 살지 못하겠다고."

이미 그 부작용과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속도전’이라는 낡은 카드를 김정은이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홍 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외부로부터의 대북제재라든가 또 핵무기 고도화 과정에서의 어떤 다양한 위기 환경들이 조성되는 부분들, 또 내적으로 공포정치라든가 이런 걸 통해가지고 조성된 어떤 주민들의 불안감, 이런 것들을 어떤 속도전식의 결속감을 만들어 냄으로써 상당 부분 희석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정치적인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지난 10월 11일) : "2017년 백두산위인칭송대회 국제준비위원회가 결성됐습니다."

북한은 내년 8월, 평양과 백두산에서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김씨 3부자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 행사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 김광진(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 "김정은을 김일성·김정일 수준의 이제 수령으로 벌써 만들어놨죠. 김정은 생일을 국가적인 명절로 추대하고 이제 정하고. 그 다음에 여타 동상이랄지 아니면 초상장이라고 할지, 이런 것들을 김일성·김정은 수준에서 하는 것만 빼면 나머지들은 다 우상화가 이미 완성이 됐다고 봅니다."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자신의 우상화에도 본격 시동을 걸고 있는 김정은.

그러나 ‘김정은 북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인터뷰> 홍 민(통일연구원 연구위원) : "경제적인 부분이라든가 여러 부분에서 인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성과들이 5년, 10년 내에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다면 상당히 피로감이 이제 더 할 수밖에 없고. 그다음에 김정은이라든가 지도부에 대한 상당히 불신감이 더 팽배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김정은의 핵 도발과 공포정치.

북한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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