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입학 전인데”…도 넘은 ‘신입생 군기잡기’

입력 2017.01.05 (08:34) 수정 2017.01.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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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 3월 대학에 들어가는 신입생 단체 대화방에 최근 이런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신입생 행동규칙이라는 내용인데요.

선배를 만나면 정해진 형식대로 인사하라고 지시합니다.

또 말을 할 땐 다나까로 끝내고 선배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군대 생활과 다름없어 보이는데요.

선배들의 이른바 신입생 군기잡기가 입학도 하기 전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겁니다.

신입생들은 아직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의 이런 군기잡기에 벌써부터 겁을 먹고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신입생 군기잡기의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을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교.

신입생 선발이 끝나고 이제 입학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인데요.

그런데 이 학교, 항공관광과에 입학예정인 신입생들에게 선배들이 SNS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미리 연락을 해왔습니다.

<인터뷰>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학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요.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기들이 대화하다가 그렇게 된 거죠.”

선배들에게 SNS 메시지로 10줄 이상, 앞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다짐과 포부를 적어 보내라고 한 겁니다.

신입생들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선배들의 지시를 따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자 선배들로부터 돌아온 건 따뜻한 환영이 아니라 매서운 질책이었습니다.

실제 해당 학과 선배와 신입생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이모티콘을 빼라며 쏘아붙이거나, 맞춤법이 틀렸다며 비아냥댑니다.

선배가 SNS 친구 신청을 20분 내에 확인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화를 내기도 했는데요.

한 신입생의 경우 무려 5명의 선배로부터 동시에 메시지 쏟아졌다고 합니다.

선배들은 신입생이 즉시 답장을 못 했다 또 친구 신청에 바로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 무려 3일 동안 해당 신입생을 괴롭혔다는데요.

해당 신입생이 자신의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사흘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휴대전화 알림 소리만 들리면 무서워서 떨린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녹취> 예비 입학생 학부모(음성변조) : “우리 애가 문자 보여주면서 막 울어요. 왜냐하면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1년 선배라는 사람들이 뭐 인사를 어떻게 하라는 둥 벌써부터 군기를 잡으려고 애를 달달 볶아대니 애를 대학교에 보내기 참 무섭네요.”

선배들은 해당 학과 신입생들의 단체 대화방에 신입생 행동규칙까지 만들어 올렸습니다.

선배를 만나면 신입생이 먼저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밝히고 선배에겐 깍듯하게 존칭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선배의 이름을 불러서도 안 되고, 대화창에서 이모티콘을 써서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또 군대처럼 문장 끝을 다나까로 끝내라고 지시합니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규칙.

하지만, 선배들은 서비스를 배우는 학과인 만큼 일종의 트레이닝 차원에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는데요.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그 학생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런 의식도 없이 했다는 게 지금 더 문제죠. 또 합리화하는 게 뭐냐면 자기네들 나름대로는 트레이닝을 시켰다는데 그거는 우스운 소리고.”

해당 학과 교수는 소수 학생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학과와의 관련성을 일축했습니다.

<녹취> 해당 학과 교수(음성변조) : “정말 저희가 (한 학년의) 정원이 200명이거든요. 200명 중에 한두 명이 사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저희가 솔직히 파악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가르칠 일도 없고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재학생들은 해당 학과에서 오래전부터 군대식 규율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재학생(음성변조) : “(말 끝을) '…다'로 끝내야 되고 “안녕하십니까. 무슨 과 몇 학번 ,몇 번 누구입니다.” 이렇게(말해야 돼요.) 전화도 그렇게 받아야 하고요.”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선배들한테 당했던 게 그런 거죠. 서로 간에 쭉 내려오는 거 말로 막 하고.”

사건이 알려진 후 학교는 학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학교 측은 이른바 신입생 길들이기를 주도한 학생들을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어쨌든 학생들이 잘못했고 잘못했으니까 소속 학과로써 사과문도 게재했고요.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선배들의 신입생 군기잡기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올해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 입학을 앞둔 이 모 씨 역시 갑작스럽게 선배들이 만든 단체 대화방에 초대됐는데요.

일면식도 없는 선배들이 대뜸 입학하면 인사를 잘하라면서 미리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2017년 A 대학 신입생(음성변조) : “합격 소식 받고 1주일 좀 안 돼서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것 같아요. 얼굴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데 ‘만나면 인사 잘해라. 예의 바르게 해라.’ 강압적으로 좀 군대 같은 느낌 좀 받았어요.”

또 일부 학교의 경우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염색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여름에 치마나 반바지를 못 입게 하는 등 자체 규정을 만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신입생에 대한 복장 규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B 대학 재학생(음성변조) : “똑같죠. 똑같아요. 변하진 않아요. 앞 코 뚫린 구두를 신으면 안 된다. 살구색 스타킹을 신으면 안 된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

지난해 3월엔 부산의 한 대학교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오물이 든 막걸리를 신입생들의 몸에 붓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행사는 해마다 신입생들에게 관례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줬는데요.

<녹취> 해당 학과 재학생(음성변조) : “매년 해오던 거니까 저희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습니다.”

<녹취> 해당 학과 신입생(음성변조) : “관습 때문에 인식 때문에 그냥 해야겠죠.”

전문가는 반복되는 신입생의 군기 잡기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녹취> 김영훈(교수/연세대학교 심리학과) : “쉽게 얘기하면 통제 시스템이에요. 위계를 통해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사회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에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똑같은 관계잖아요. 며느리가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을 하지만 자기가 시어머니가 되면 또 비슷한 일을 하는 이유가 자기가 고생했지만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요.”

대학생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인터넷 익명게시판을 통해 고스란히 고발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어긋난 대학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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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입학 전인데”…도 넘은 ‘신입생 군기잡기’
    • 입력 2017-01-05 08:37:26
    • 수정2017-01-05 09: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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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 3월 대학에 들어가는 신입생 단체 대화방에 최근 이런 글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신입생 행동규칙이라는 내용인데요.

선배를 만나면 정해진 형식대로 인사하라고 지시합니다.

또 말을 할 땐 다나까로 끝내고 선배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군대 생활과 다름없어 보이는데요.

선배들의 이른바 신입생 군기잡기가 입학도 하기 전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는겁니다.

신입생들은 아직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의 이런 군기잡기에 벌써부터 겁을 먹고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신입생 군기잡기의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을 한번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수도권에 위치한 한 대학교.

신입생 선발이 끝나고 이제 입학 준비가 한창 진행 중인데요.

그런데 이 학교, 항공관광과에 입학예정인 신입생들에게 선배들이 SNS 단체 대화방을 만들어 미리 연락을 해왔습니다.

<인터뷰>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학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어요.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기들이 대화하다가 그렇게 된 거죠.”

선배들에게 SNS 메시지로 10줄 이상, 앞으로 학교생활에 대한 다짐과 포부를 적어 보내라고 한 겁니다.

신입생들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선배들의 지시를 따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메시지를 보냈는데요.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자 선배들로부터 돌아온 건 따뜻한 환영이 아니라 매서운 질책이었습니다.

실제 해당 학과 선배와 신입생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이모티콘을 빼라며 쏘아붙이거나, 맞춤법이 틀렸다며 비아냥댑니다.

선배가 SNS 친구 신청을 20분 내에 확인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화를 내기도 했는데요.

한 신입생의 경우 무려 5명의 선배로부터 동시에 메시지 쏟아졌다고 합니다.

선배들은 신입생이 즉시 답장을 못 했다 또 친구 신청에 바로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아 무려 3일 동안 해당 신입생을 괴롭혔다는데요.

해당 신입생이 자신의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사흘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휴대전화 알림 소리만 들리면 무서워서 떨린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녹취> 예비 입학생 학부모(음성변조) : “우리 애가 문자 보여주면서 막 울어요. 왜냐하면 아직 입학도 안 했는데 1년 선배라는 사람들이 뭐 인사를 어떻게 하라는 둥 벌써부터 군기를 잡으려고 애를 달달 볶아대니 애를 대학교에 보내기 참 무섭네요.”

선배들은 해당 학과 신입생들의 단체 대화방에 신입생 행동규칙까지 만들어 올렸습니다.

선배를 만나면 신입생이 먼저 자신의 학번과 이름을 밝히고 선배에겐 깍듯하게 존칭을 하라고 지시합니다.

선배의 이름을 불러서도 안 되고, 대화창에서 이모티콘을 써서도 안 된다고 하는데요.

또 군대처럼 문장 끝을 다나까로 끝내라고 지시합니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규칙.

하지만, 선배들은 서비스를 배우는 학과인 만큼 일종의 트레이닝 차원에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는데요.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그 학생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런 의식도 없이 했다는 게 지금 더 문제죠. 또 합리화하는 게 뭐냐면 자기네들 나름대로는 트레이닝을 시켰다는데 그거는 우스운 소리고.”

해당 학과 교수는 소수 학생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학과와의 관련성을 일축했습니다.

<녹취> 해당 학과 교수(음성변조) : “정말 저희가 (한 학년의) 정원이 200명이거든요. 200명 중에 한두 명이 사적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저희가 솔직히 파악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가르칠 일도 없고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재학생들은 해당 학과에서 오래전부터 군대식 규율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녹취> 재학생(음성변조) : “(말 끝을) '…다'로 끝내야 되고 “안녕하십니까. 무슨 과 몇 학번 ,몇 번 누구입니다.” 이렇게(말해야 돼요.) 전화도 그렇게 받아야 하고요.”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선배들한테 당했던 게 그런 거죠. 서로 간에 쭉 내려오는 거 말로 막 하고.”

사건이 알려진 후 학교는 학과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학교 측은 이른바 신입생 길들이기를 주도한 학생들을 상대로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학교 관계자(음성변조) : “어쨌든 학생들이 잘못했고 잘못했으니까 소속 학과로써 사과문도 게재했고요.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선배들의 신입생 군기잡기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올해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학 입학을 앞둔 이 모 씨 역시 갑작스럽게 선배들이 만든 단체 대화방에 초대됐는데요.

일면식도 없는 선배들이 대뜸 입학하면 인사를 잘하라면서 미리 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2017년 A 대학 신입생(음성변조) : “합격 소식 받고 1주일 좀 안 돼서 단체 대화방에 초대된 것 같아요. 얼굴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데 ‘만나면 인사 잘해라. 예의 바르게 해라.’ 강압적으로 좀 군대 같은 느낌 좀 받았어요.”

또 일부 학교의 경우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염색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여름에 치마나 반바지를 못 입게 하는 등 자체 규정을 만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신입생에 대한 복장 규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B 대학 재학생(음성변조) : “똑같죠. 똑같아요. 변하진 않아요. 앞 코 뚫린 구두를 신으면 안 된다. 살구색 스타킹을 신으면 안 된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

지난해 3월엔 부산의 한 대학교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 오물이 든 막걸리를 신입생들의 몸에 붓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행사는 해마다 신입생들에게 관례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줬는데요.

<녹취> 해당 학과 재학생(음성변조) : “매년 해오던 거니까 저희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습니다.”

<녹취> 해당 학과 신입생(음성변조) : “관습 때문에 인식 때문에 그냥 해야겠죠.”

전문가는 반복되는 신입생의 군기 잡기를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비유합니다.

<녹취> 김영훈(교수/연세대학교 심리학과) : “쉽게 얘기하면 통제 시스템이에요. 위계를 통해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사회적으로 많이 이용되는 방법이에요.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똑같은 관계잖아요. 며느리가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을 하지만 자기가 시어머니가 되면 또 비슷한 일을 하는 이유가 자기가 고생했지만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요.”

대학생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은 인터넷 익명게시판을 통해 고스란히 고발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어긋난 대학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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