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대신 태극기”…열사 된 의사들
입력 2017.01.05 (21:41)
수정 2017.01.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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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청진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이 있습니다.
해외 곳곳에 병원을 세워 독립 자금을 대고, 독립군 군의관으로 활동한 분도 계신데요,
국현호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 공원.
'몽골의 신의'로 추앙받는 이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에 이태준 선생은 의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몽골로 향합니다.
그가 세운 '동의의국'이란 병원은 얼마 안 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습니다.
<녹취>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 "(상해 임시정부로 군자금이) 하나는 만주 쪽으로 오고 또 한 쪽은 몽골 쪽으로 오게 되는데 몽골 쪽으로 오는 자금의 운송이라고 할까요 그 작업을 이태준 선생이 한 거죠."
이태준 선생은 특히 항일운동단체 의열단에 헝가리 폭파전문가를 소개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북만주에 병원을 세운 김필순 선생은 훗날 한인 정착촌이 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맺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인연은 의형제 사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녹취> 박형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 "도산(안창호 선생)이 서울에 올 때마다 김필순 씨 댁에 머문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걸로 봐서 두 분 사이가 매우 가까웠음을..."
백정의 아들이던 박서양 선생, 간도에서 독립군의 군의관으로까지 활동했지만 광복을 5년 앞두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부와 지위를 보장하던 청진기 대신 태극기를 든 의사들.
의사협회가 발굴한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150명이 넘습니다.
KBS 뉴스 국현호입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청진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이 있습니다.
해외 곳곳에 병원을 세워 독립 자금을 대고, 독립군 군의관으로 활동한 분도 계신데요,
국현호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 공원.
'몽골의 신의'로 추앙받는 이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에 이태준 선생은 의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몽골로 향합니다.
그가 세운 '동의의국'이란 병원은 얼마 안 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습니다.
<녹취>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 "(상해 임시정부로 군자금이) 하나는 만주 쪽으로 오고 또 한 쪽은 몽골 쪽으로 오게 되는데 몽골 쪽으로 오는 자금의 운송이라고 할까요 그 작업을 이태준 선생이 한 거죠."
이태준 선생은 특히 항일운동단체 의열단에 헝가리 폭파전문가를 소개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북만주에 병원을 세운 김필순 선생은 훗날 한인 정착촌이 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맺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인연은 의형제 사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녹취> 박형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 "도산(안창호 선생)이 서울에 올 때마다 김필순 씨 댁에 머문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걸로 봐서 두 분 사이가 매우 가까웠음을..."
백정의 아들이던 박서양 선생, 간도에서 독립군의 군의관으로까지 활동했지만 광복을 5년 앞두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부와 지위를 보장하던 청진기 대신 태극기를 든 의사들.
의사협회가 발굴한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150명이 넘습니다.
KBS 뉴스 국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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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진기 대신 태극기”…열사 된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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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1-05 21:42:33
- 수정2017-01-07 11:05:01

<앵커 멘트>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청진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이 있습니다.
해외 곳곳에 병원을 세워 독립 자금을 대고, 독립군 군의관으로 활동한 분도 계신데요,
국현호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 공원.
'몽골의 신의'로 추앙받는 이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에 이태준 선생은 의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몽골로 향합니다.
그가 세운 '동의의국'이란 병원은 얼마 안 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습니다.
<녹취>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 "(상해 임시정부로 군자금이) 하나는 만주 쪽으로 오고 또 한 쪽은 몽골 쪽으로 오게 되는데 몽골 쪽으로 오는 자금의 운송이라고 할까요 그 작업을 이태준 선생이 한 거죠."
이태준 선생은 특히 항일운동단체 의열단에 헝가리 폭파전문가를 소개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북만주에 병원을 세운 김필순 선생은 훗날 한인 정착촌이 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맺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인연은 의형제 사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녹취> 박형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 "도산(안창호 선생)이 서울에 올 때마다 김필순 씨 댁에 머문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걸로 봐서 두 분 사이가 매우 가까웠음을..."
백정의 아들이던 박서양 선생, 간도에서 독립군의 군의관으로까지 활동했지만 광복을 5년 앞두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부와 지위를 보장하던 청진기 대신 태극기를 든 의사들.
의사협회가 발굴한 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150명이 넘습니다.
KBS 뉴스 국현호입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청진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항일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이 있습니다.
해외 곳곳에 병원을 세워 독립 자금을 대고, 독립군 군의관으로 활동한 분도 계신데요,
국현호 기자가 소개해 드립니다.
<리포트>
몽골 울란바토르 시내 한 공원.
'몽골의 신의'로 추앙받는 이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조국을 잃은 슬픔에 이태준 선생은 의학교를 졸업한 뒤 1914년 몽골로 향합니다.
그가 세운 '동의의국'이란 병원은 얼마 안 가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습니다.
<녹취>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 "(상해 임시정부로 군자금이) 하나는 만주 쪽으로 오고 또 한 쪽은 몽골 쪽으로 오게 되는데 몽골 쪽으로 오는 자금의 운송이라고 할까요 그 작업을 이태준 선생이 한 거죠."
이태준 선생은 특히 항일운동단체 의열단에 헝가리 폭파전문가를 소개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시기 북만주에 병원을 세운 김필순 선생은 훗날 한인 정착촌이 된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맺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의 인연은 의형제 사이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녹취> 박형우(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 "도산(안창호 선생)이 서울에 올 때마다 김필순 씨 댁에 머문다고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걸로 봐서 두 분 사이가 매우 가까웠음을..."
백정의 아들이던 박서양 선생, 간도에서 독립군의 군의관으로까지 활동했지만 광복을 5년 앞두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부와 지위를 보장하던 청진기 대신 태극기를 든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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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호 기자 eichitw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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