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서거…이슬람 혁명 1세대
입력 2017.01.09 (03:37)
수정 2017.01.0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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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거물급 원로 정치인인 아크바르 사혜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83)이 8일(현지시간) 오후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끈 1세대로, 이후 이란 정치계에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을 잡는 정치적 수완으로 존재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한 뒤 1989년 제4회 대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는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으로 재직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이 있다.
동시에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최고지도자 보좌, 장기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 간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란 국영방송은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끈 1세대로, 이후 이란 정치계에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을 잡는 정치적 수완으로 존재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한 뒤 1989년 제4회 대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는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으로 재직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이 있다.
동시에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최고지도자 보좌, 장기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 간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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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서거…이슬람 혁명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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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1-09 03:37:08
- 수정2017-01-09 06:58:11

이란의 거물급 원로 정치인인 아크바르 사혜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83)이 8일(현지시간) 오후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현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끈 1세대로, 이후 이란 정치계에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을 잡는 정치적 수완으로 존재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한 뒤 1989년 제4회 대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는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으로 재직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이 있다.
동시에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최고지도자 보좌, 장기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 간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란 국영방송은 "라프산자니가 이슬람과 혁명을 향한 쉼없는 여정 끝에 천국으로 떠났다"고 그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그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끈 1세대로, 이후 이란 정치계에 최고위직을 두루 거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실용주의적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개혁 진영과도 손을 잡는 정치적 수완으로 존재감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라프산자니는 이슬람 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에 임명돼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
이듬해인 1980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으로 선출돼 9년간 재임한 뒤 1989년 제4회 대선에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 1997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1983년부터 사망 직전까지는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으로 재직했다. 이 헌법기관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이 있다.
동시에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최고지도자 보좌, 장기국가정책 입안, 국회와 헌법수호위원회 간 대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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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우 기자 futur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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