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종군위안부 모집을 지시하고 통제했다는 공식 기록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2년 일본인 교수에 의해 일본 방위청에서 발견됐습니다.
'극비문서'라는 도장이 찍힌 이 서류 안에는 위안부 모집과 수용, 성병 감염 여부까지 관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 당시 이 기록물의 발견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소녀상'을 이유로 대사가 일시 귀국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진심어린 사죄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극비문서'라는 도장이 찍힌 이 서류 안에는 위안부 모집과 수용, 성병 감염 여부까지 관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 당시 이 기록물의 발견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소녀상'을 이유로 대사가 일시 귀국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진심어린 사죄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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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 뉴스] 日 ‘위안부 통제’ 공식기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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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1-11 07:01:12
일본군이 종군위안부 모집을 지시하고 통제했다는 공식 기록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2년 일본인 교수에 의해 일본 방위청에서 발견됐습니다.
'극비문서'라는 도장이 찍힌 이 서류 안에는 위안부 모집과 수용, 성병 감염 여부까지 관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 당시 이 기록물의 발견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소녀상'을 이유로 대사가 일시 귀국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진심어린 사죄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극비문서'라는 도장이 찍힌 이 서류 안에는 위안부 모집과 수용, 성병 감염 여부까지 관리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일본의 주장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 당시 이 기록물의 발견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소녀상'을 이유로 대사가 일시 귀국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진심어린 사죄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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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hono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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