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김정남 피살…北 로열패밀리 잔혹사

입력 2017.02.18 (08:08) 수정 2017.02.18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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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백주대낮에 여성 암살범에게 최후를 맞은 김정남,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장남이라도 권력 투쟁에서 밀려날 경우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요.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비극적인 인생과 이복동생 김정은의 잔혹성이 다시한번 조명받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남 피살을 계기로 북한 로열패밀리의 위태로운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2007년 2월 중국 베이징 공항.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취> “김정남씨 맞습니까?”

<녹취> “한마디만 해주세요.“

세습 독재국가 북한의 당시 절대권력자 김정일의 장남.

외신들의 취재 경쟁에 발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드릴 말씀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차량 추격전까지 벌이며 집요하게 따라붙는 취재진.

결국 말문을 연 김정남은 북한 정권과 자신은 별 관계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북경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개인적 용무로 왔고요.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6자회담이나 그 어떤 금융제재나 무관한 사람이에요. 그냥 개인적 용무로 왔단 말입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뒤를 계승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정작 수많은 취재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취재진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저보다 더 취재할 일이 많으실 분들이 왜 여기 와서 이러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인기가 많으십니다.) 아, 네.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농담을 건넬 만큼 여유가 넘치던 김정남.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혹시 있다가 나중에 다시 내려오면 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다시 보자던 김정남은 꼭 10년 뒤인 지난 13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녹취> 정준희(통일부 대변인/지난 15일) : “정부는 이 지금 살해된 인물이 김정남이 확실시된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긴밀하게 말레이시아 정부와 협조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제 공항.

지난 13일 오전 김정남은 마카오로 떠나기 위해 이곳 국제선 청사를 찾았다.

직접 체크인을 하는 수속을 밟던 순간, 여성 2명의 습격을 받은 김정남.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용의자들이 속속 체포되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관련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때 김정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밀려나면서 마흔 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정남.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김정남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동화 속 왕자의 삶과 같았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김정일이가 대장 군복을 입혀서 어린 나이에 김정일 자기 집무실에 자기 책상 위에 앉혀놓고 앞으로 네가 앉을 자리가 이 자리다.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정말 애지중지하던 아들입니다. 김정남이가 김정일한테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큰 홀에 장난감이 가득 쌓일 정도로...”

은둔의 독재자라고 불리던 김정일.

하지만 아들 정남에겐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게 해외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증언이다.

<녹취> 성혜랑 회고록 ‘등나무집’ : “젊은 왕자(김정일)는 잠투정 하는 아들을 업어 재웠고 울음이 그칠 때 까지 업고 들추며 엄마들이 우는 아이 달래듯 아기와 중얼 거리며 얼렀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김정일과 만났을 당시 이미 유부녀였던 성혜림.

강제로 이혼하고 김정일과 결혼해 아들 정남까지 낳았지만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 아끼는 자식이었지만 김정일 역시 두 사람을 떳떳하게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녹취> 성혜랑 회고록 ‘등나무집’ : “정남은 울타리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어울려 뛰어 노는 즐거움을 모르고 기형적으로 키워지고 있었다.”

여기에 훗날 김정은의 생모가 되는 고용희까지 등장한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가장 중요한 건 김정일이 고용희라는 세 번째 여자를 앉히면서 (성혜림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그 영향을 김정남도 분명히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성혜림은 1974년 모스크바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2002년 사망해 모스크바 시내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혀있다.

김정남 역시 1981년,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김정일의 사랑은 고용희에게서 얻은 정철, 정은, 여정 세 자식으로 옮겨가 있었다.

이후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보직을 맡는 등 후계 수업을 받는 듯 했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잦은 돌출행동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다.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 불법입국을 시도하다 마카오로 추방당한 사건은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계기로 알려져 있다.

2009년 1월, 다시 베이징에 나타난 김정남은 특유의 유머감각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녹취> 김정남(2009년 1월) :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어디로 가는지 아시면 쫓아오시려고요?”

하지만 후계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꼈다.

<녹취> 김정남(2009년 1월) : “그건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건 아버님께서만 결정하실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후계자 지정이 공식화될 무렵부터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녹취> 김정남(2009년 6월/日아사히TV 인터뷰) : “(김정은이) 북한 인민들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이후 2010년엔 일본 아사히 TV와, 2012년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가장 중요한 거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후계자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자라왔는데, 다른 자녀들한테 사랑이 가고 후계 작업이 그쪽에서 진행이 되고 고용희 쪽에서 후계 작업이 진행된다는 소리를 2000년대 초반부터 들으면서 그것이 실망하고 그것이 분노로 바뀌고... 그러니까 결국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난 데 대한 분노가 계속 해서 쌓여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고,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제거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교수/전 국정원 1차장) : “장성택 처형 이후 지난 3년 동안 김정남의 위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보가 울렸습니다. 즉, 첫 번째는 김정남이가 노골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비판을 가했고 두 번째는 김정은의 성격이 굉장히 격정적이고 충동적입니다. 김정은이가 노골적으로 체제와 정권을 비판하는 이복형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경보를 울렸고 그것이 이런 돌발사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해 왔다는 사실이 김정은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중국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김정은이 통치를 잘 못해서 북한이 혼란에 빠지면 대타로 김정남을 기용는 그런 플랜 B를 준비했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이 없는 북한이 혼란에 빠졌을 때 대안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를 했고, 그 씨앗이 역시 이복형 김정남이라고 판단을 했고...”

비록 이복형제지만 혈육에까지 칼을 들이댄 김정은.

김정남의 죽음과 함께 북한 로열패밀리들의 운명도 주목받고 있다.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종사촌 이한영.

북한 로열패밀리의 삶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97년 집 앞에서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13년엔 오랜 세월 실세로 군림하던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반역죄로 처형됐다.

해외를 떠도는 로열패밀리도 많다.

김정일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한 이복동생 김평일.

그는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폴란드 대사 등으로 30년 가까이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씨 부부도 로열패밀리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녹취> 리강(김정은 이모부/2015년) : “김정일 위원장 옆에서 한 20년 살면서 권력의 무상함이라 할까 권력의 비정함이라 할까 원리, 이치 이런 것들이 터득되면서 권력 가까운데 있는 게 크게 좋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

김정남이 사라진 지금, 특히 주목을 받는 건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다.

과거 KBS와 핀란드 언론 등과의 인터뷰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한솔.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마카오와 유럽 등지를 떠돌아야 했다.

할아버지 김정일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심지어 자신이 그의 손자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김한솔은 활발한 SNS 활동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핀란드 YLE 인터뷰) : “할아버지(김정일)과 삼촌(김정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그 분(김정은)과 할아버지(김정일) 사이의 일이고요. 저도 궁금합니다.”

김한솔의 이런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이미 김정은을 자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아마 뭐 김한솔이까지 죽이고야싶겠죠. 김한솔 군도 역시 아버지가.. 지도자한테 죽었는데 그 지도자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질까요? 그러면 이게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장기 적으로 처리하려고 들 거지만 단기적으로 일단 모든 나라가 지금 각성하고 있어서 단기간에 실행을 하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중장기적으로는 해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피살 직후 김정남의 가족들이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의 죽음은 북한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교수/전 국정원 1차장) : “당정군 간부가 이렇게 되면 더 무서워서 그야말로 극단적인 공포통치에서 일이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상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셈이 되는 거거든요. 피의 숙청이 지금 절정에 달해있기 때문에 앞으로 체제 균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겉으로는 카리스마가 생기고 우상화 작업이 완성될지 모르지만 안에서는 돌발적인 사건사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집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일단 김정은의 잔인성과 일종의 비인간성이 국제적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김정은이 국제 사회의 지도자로서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밀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며, 이것이 북한과 중국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 간의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고, 김정은이 국제 사회에 고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도 예상이 됩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은 김정은 집권 이래 취소 명령 없이는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이른바 ‘스탠딩 오더’였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떠돌다 이복동생에게 희생된 김정남.

역시 권력자에게 버림받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진 성혜림.

이들 모자의 비극적인 최후는 북한 독재 권력의 비정함과 잔혹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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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8 08:02:37
    • 수정2017-02-18 08: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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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대낮에 여성 암살범에게 최후를 맞은 김정남,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장남이라도 권력 투쟁에서 밀려날 경우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요.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의 비극적인 인생과 이복동생 김정은의 잔혹성이 다시한번 조명받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오늘은 김정남 피살을 계기로 북한 로열패밀리의 위태로운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2007년 2월 중국 베이징 공항.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모습을 드러냈다.

<녹취> “김정남씨 맞습니까?”

<녹취> “한마디만 해주세요.“

세습 독재국가 북한의 당시 절대권력자 김정일의 장남.

외신들의 취재 경쟁에 발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드릴 말씀이 없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차량 추격전까지 벌이며 집요하게 따라붙는 취재진.

결국 말문을 연 김정남은 북한 정권과 자신은 별 관계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북경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개인적 용무로 왔고요.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대로 6자회담이나 그 어떤 금융제재나 무관한 사람이에요. 그냥 개인적 용무로 왔단 말입니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뒤를 계승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정작 수많은 취재진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취재진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저보다 더 취재할 일이 많으실 분들이 왜 여기 와서 이러시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인기가 많으십니다.) 아, 네.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농담을 건넬 만큼 여유가 넘치던 김정남.

<녹취> 김정남(2007년 2월) : “혹시 있다가 나중에 다시 내려오면 뵙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다시 보자던 김정남은 꼭 10년 뒤인 지난 13일, 싸늘한 주검이 되어 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녹취> 정준희(통일부 대변인/지난 15일) : “정부는 이 지금 살해된 인물이 김정남이 확실시된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긴밀하게 말레이시아 정부와 협조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 국제 공항.

지난 13일 오전 김정남은 마카오로 떠나기 위해 이곳 국제선 청사를 찾았다.

직접 체크인을 하는 수속을 밟던 순간, 여성 2명의 습격을 받은 김정남.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용의자들이 속속 체포되며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만, 관련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때 김정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이복동생 김정은에게 밀려나면서 마흔 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김정남.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김정남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동화 속 왕자의 삶과 같았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김정일이가 대장 군복을 입혀서 어린 나이에 김정일 자기 집무실에 자기 책상 위에 앉혀놓고 앞으로 네가 앉을 자리가 이 자리다.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로 정말 애지중지하던 아들입니다. 김정남이가 김정일한테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큰 홀에 장난감이 가득 쌓일 정도로...”

은둔의 독재자라고 불리던 김정일.

하지만 아들 정남에겐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게 해외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증언이다.

<녹취> 성혜랑 회고록 ‘등나무집’ : “젊은 왕자(김정일)는 잠투정 하는 아들을 업어 재웠고 울음이 그칠 때 까지 업고 들추며 엄마들이 우는 아이 달래듯 아기와 중얼 거리며 얼렀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김정일과 만났을 당시 이미 유부녀였던 성혜림.

강제로 이혼하고 김정일과 결혼해 아들 정남까지 낳았지만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 아끼는 자식이었지만 김정일 역시 두 사람을 떳떳하게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녹취> 성혜랑 회고록 ‘등나무집’ : “정남은 울타리 바깥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어울려 뛰어 노는 즐거움을 모르고 기형적으로 키워지고 있었다.”

여기에 훗날 김정은의 생모가 되는 고용희까지 등장한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가장 중요한 건 김정일이 고용희라는 세 번째 여자를 앉히면서 (성혜림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그 영향을 김정남도 분명히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성혜림은 1974년 모스크바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2002년 사망해 모스크바 시내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혀있다.

김정남 역시 1981년,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김정일의 사랑은 고용희에게서 얻은 정철, 정은, 여정 세 자식으로 옮겨가 있었다.

이후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보직을 맡는 등 후계 수업을 받는 듯 했지만, 자유분방한 성격과 잦은 돌출행동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다.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 불법입국을 시도하다 마카오로 추방당한 사건은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계기로 알려져 있다.

2009년 1월, 다시 베이징에 나타난 김정남은 특유의 유머감각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녹취> 김정남(2009년 1월) :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어디로 가는지 아시면 쫓아오시려고요?”

하지만 후계 문제에 있어서는 말을 아꼈다.

<녹취> 김정남(2009년 1월) : “그건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건 아버님께서만 결정하실 겁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후계자 지정이 공식화될 무렵부터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녹취> 김정남(2009년 6월/日아사히TV 인터뷰) : “(김정은이) 북한 인민들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이후 2010년엔 일본 아사히 TV와, 2012년엔 도쿄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가장 중요한 거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 나를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후계자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자라왔는데, 다른 자녀들한테 사랑이 가고 후계 작업이 그쪽에서 진행이 되고 고용희 쪽에서 후계 작업이 진행된다는 소리를 2000년대 초반부터 들으면서 그것이 실망하고 그것이 분노로 바뀌고... 그러니까 결국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난 데 대한 분노가 계속 해서 쌓여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김정은에겐 눈엣가시처럼 느껴졌고,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제거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교수/전 국정원 1차장) : “장성택 처형 이후 지난 3년 동안 김정남의 위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보가 울렸습니다. 즉, 첫 번째는 김정남이가 노골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비판을 가했고 두 번째는 김정은의 성격이 굉장히 격정적이고 충동적입니다. 김정은이가 노골적으로 체제와 정권을 비판하는 이복형을 내버려둘 리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경보를 울렸고 그것이 이런 돌발사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해 왔다는 사실이 김정은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중국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김정은이 통치를 잘 못해서 북한이 혼란에 빠지면 대타로 김정남을 기용는 그런 플랜 B를 준비했습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자신이 없는 북한이 혼란에 빠졌을 때 대안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분개를 했고, 그 씨앗이 역시 이복형 김정남이라고 판단을 했고...”

비록 이복형제지만 혈육에까지 칼을 들이댄 김정은.

김정남의 죽음과 함께 북한 로열패밀리들의 운명도 주목받고 있다.

198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종사촌 이한영.

북한 로열패밀리의 삶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1997년 집 앞에서 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13년엔 오랜 세월 실세로 군림하던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반역죄로 처형됐다.

해외를 떠도는 로열패밀리도 많다.

김정일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한 이복동생 김평일.

그는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폴란드 대사 등으로 30년 가까이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1998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씨 부부도 로열패밀리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녹취> 리강(김정은 이모부/2015년) : “김정일 위원장 옆에서 한 20년 살면서 권력의 무상함이라 할까 권력의 비정함이라 할까 원리, 이치 이런 것들이 터득되면서 권력 가까운데 있는 게 크게 좋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

김정남이 사라진 지금, 특히 주목을 받는 건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다.

과거 KBS와 핀란드 언론 등과의 인터뷰로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던 김한솔.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마카오와 유럽 등지를 떠돌아야 했다.

할아버지 김정일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심지어 자신이 그의 손자라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김한솔은 활발한 SNS 활동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핀란드 YLE 인터뷰) : “할아버지(김정일)과 삼촌(김정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그 분(김정은)과 할아버지(김정일) 사이의 일이고요. 저도 궁금합니다.”

김한솔의 이런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이미 김정은을 자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아마 뭐 김한솔이까지 죽이고야싶겠죠. 김한솔 군도 역시 아버지가.. 지도자한테 죽었는데 그 지도자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질까요? 그러면 이게 반역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중장기 적으로 처리하려고 들 거지만 단기적으로 일단 모든 나라가 지금 각성하고 있어서 단기간에 실행을 하긴 어렵겠지만 어쨌든 중장기적으로는 해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정보원은 김정남 피살 직후 김정남의 가족들이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남의 죽음은 북한 안팎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뷰> 남주홍(경기대 교수/전 국정원 1차장) : “당정군 간부가 이렇게 되면 더 무서워서 그야말로 극단적인 공포통치에서 일이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상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셈이 되는 거거든요. 피의 숙청이 지금 절정에 달해있기 때문에 앞으로 체제 균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겉으로는 카리스마가 생기고 우상화 작업이 완성될지 모르지만 안에서는 돌발적인 사건사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집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일단 김정은의 잔인성과 일종의 비인간성이 국제적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으로 김정은이 국제 사회의 지도자로서 공개석상에 얼굴을 내밀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며, 이것이 북한과 중국 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중 간의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고, 김정은이 국제 사회에 고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도 예상이 됩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은 김정은 집권 이래 취소 명령 없이는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이른바 ‘스탠딩 오더’였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떠돌다 이복동생에게 희생된 김정남.

역시 권력자에게 버림받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숨진 성혜림.

이들 모자의 비극적인 최후는 북한 독재 권력의 비정함과 잔혹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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