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노동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택배 천국?’

입력 2017.03.03 (05:23) 수정 2017.03.0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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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르고 저렴한 택배 서비스...왜, 마음이 불편할까?

늦은 밤 졸린 눈과 지친 표정으로 택배 상자를 나르는 운전기사의 모습을 일본에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큼이나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배달을 하는데, 인원 부족과 배달물량 증가가 겹치면 연장근로는 불가피하다.

일전에, 낮 12시쯤 온라인 쇼핑몰에서 조립식 가구를 주문했더니 당일 저녁 무렵 도착했다. 이른바 당일 배송, 그것도 한나절 만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은 기본이고 배송 시간도 전쟁이다. 소비자는 배송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 재고가 없으면, 배송 예정일이 7주일 이상 지연되거나 달이 바뀌기도 하지만, 웬만한 상품은 하루, 이틀이 무색하게 빠르게 배송된다.

편리해서 좋긴 한데, 뭔가 부담스럽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관련 종사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정신없이 일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배송 시간 경쟁의 임계점에 왔다는 비명이 쏟아지고 있다. 택배회사의 최일선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날개 단 온라인 쇼핑몰…. 폭발하는 택배시장



택배 시장의 성장은 온라인 유통업계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1인 가구의 급증은 온라인 쇼핑에 날개를 달았다.

경제산업상 통계를 보면,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시장 규모는 2015년 13조 7천7백억 엔(약 138조원)가량으로, 2010년에 비해 1.7배로 커졌다.



택배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도 11억 개에서 2000년 25억 개, 2007년도에는 30억 개, 2015년엔 37억 개를 돌파했다.

2015년 국토교통성의 택배업계 시장점유율 조사를 보면, 야마토 운수가 46.6%, 사가와규빈(사가와 급편)이 32.3%, 닛본유빈(일본우편)이 13.8 %순이다.

업계 1위의 영광…. 택배기사들의 땀과 눈물



업계를 대표하는 야마토 운수의 택배 차량에는 특유의 깜찍한 로고가 붙어 있다. '아기 고양이를 물어 옮기는 어미 고양이'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겠다는 뜻인가? 하루에 한 번은 꼭 보게 된다.

이 회사 노동조합은 올해 노사협상에서 택배 수주량을 2016년(지난해)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퇴근 이후 최소한 10시간을 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야마토가 저가수주를 감수하고 온라인 쇼핑업체의 물량 확보에 치중한 반면, 사가와규빈은 박리다매 경쟁에서 빠졌다. 그런데 오히려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닛폰유빈도 저가 수주경쟁에서 발을 뺐다. 결과적으로, 저가 물량이 집중된 야모토에서 직원들의 노동 환경이 악화됐다.

야마토 직원 수는 약 20만 명이다. 직원을 계속 늘려왔지만, 역부족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업종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보편화된 당일·익일 배송, 지정 배송, 그리고 재배달 서비스까지 모두 노동강도를 높인다. 소비자들의 편익 증진과 온라인 쇼핑 업체의 성장 이면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땀방울이 있었던 셈이다.

경영환경의 변화…. 직원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까?



지금까지 택배 물량 확보에 진력해온 야마토 운수 측도 한발 물러섰다. 영업과 경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택배 서비스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인원을 마냥 늘리기도, 임금을 크게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능력을 초과하는 물량 확보는 결국 서비스 질 저하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리다매 전략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택배 기사들이 배달물량을 받는 횟수부터 축소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6회에 걸쳐 배달짐을 받아 왔는데, 배달 시간 지정 서비스 이용이 적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운전기사 등이 휴식을 하게 했다.

 

야간 배달시간 종료 시점도 앞당길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중으로 배달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잔업 시간 단축을 의미한다. 온라인 쇼핑 등 대규모 거래처와 요금 인상 등에 대한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국토교통성 통계를 보면, 수신자 부재 등으로 재배달되는 화물 비율이 20%나 된다. 재배달을 위해서만 연인원 90만 명이 필요하다. 배송기사들이 역이나 편의점 등에 택배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서두르고 있지만, 아직은 초보 단계이다.



택배 1위 업체의 경영 전략 전환 방침이 모두 시행된다면 필연적으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서비스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택배요금이 올라갈 수도 있고, 불편해질 수도 있다. 혹자는 택배 기사 등 관련 종사자들의 고된 노동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고, 혹자는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의 축소라고 반발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일본 사회의 시행착오를 답습하듯 따라해온 한국사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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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03-03 09:59:10
    특파원 리포트
너무 빠르고 저렴한 택배 서비스...왜, 마음이 불편할까?

늦은 밤 졸린 눈과 지친 표정으로 택배 상자를 나르는 운전기사의 모습을 일본에서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한국에서 만큼이나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보통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배달을 하는데, 인원 부족과 배달물량 증가가 겹치면 연장근로는 불가피하다.

일전에, 낮 12시쯤 온라인 쇼핑몰에서 조립식 가구를 주문했더니 당일 저녁 무렵 도착했다. 이른바 당일 배송, 그것도 한나절 만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격은 기본이고 배송 시간도 전쟁이다. 소비자는 배송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 재고가 없으면, 배송 예정일이 7주일 이상 지연되거나 달이 바뀌기도 하지만, 웬만한 상품은 하루, 이틀이 무색하게 빠르게 배송된다.

편리해서 좋긴 한데, 뭔가 부담스럽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관련 종사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정신없이 일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이제는 배송 시간 경쟁의 임계점에 왔다는 비명이 쏟아지고 있다. 택배회사의 최일선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노동강도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날개 단 온라인 쇼핑몰…. 폭발하는 택배시장



택배 시장의 성장은 온라인 유통업계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1인 가구의 급증은 온라인 쇼핑에 날개를 달았다.

경제산업상 통계를 보면,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 시장 규모는 2015년 13조 7천7백억 엔(약 138조원)가량으로, 2010년에 비해 1.7배로 커졌다.



택배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0년도 11억 개에서 2000년 25억 개, 2007년도에는 30억 개, 2015년엔 37억 개를 돌파했다.

2015년 국토교통성의 택배업계 시장점유율 조사를 보면, 야마토 운수가 46.6%, 사가와규빈(사가와 급편)이 32.3%, 닛본유빈(일본우편)이 13.8 %순이다.

업계 1위의 영광…. 택배기사들의 땀과 눈물



업계를 대표하는 야마토 운수의 택배 차량에는 특유의 깜찍한 로고가 붙어 있다. '아기 고양이를 물어 옮기는 어미 고양이'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겠다는 뜻인가? 하루에 한 번은 꼭 보게 된다.

이 회사 노동조합은 올해 노사협상에서 택배 수주량을 2016년(지난해)과 같은 수준으로 동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 퇴근 이후 최소한 10시간을 쉴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야마토가 저가수주를 감수하고 온라인 쇼핑업체의 물량 확보에 치중한 반면, 사가와규빈은 박리다매 경쟁에서 빠졌다. 그런데 오히려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닛폰유빈도 저가 수주경쟁에서 발을 뺐다. 결과적으로, 저가 물량이 집중된 야모토에서 직원들의 노동 환경이 악화됐다.

야마토 직원 수는 약 20만 명이다. 직원을 계속 늘려왔지만, 역부족이다.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타업종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보편화된 당일·익일 배송, 지정 배송, 그리고 재배달 서비스까지 모두 노동강도를 높인다. 소비자들의 편익 증진과 온라인 쇼핑 업체의 성장 이면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땀방울이 있었던 셈이다.

경영환경의 변화…. 직원 처우 개선으로 이어질까?



지금까지 택배 물량 확보에 진력해온 야마토 운수 측도 한발 물러섰다. 영업과 경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택배 서비스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인원을 마냥 늘리기도, 임금을 크게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능력을 초과하는 물량 확보는 결국 서비스 질 저하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박리다매 전략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택배 기사들이 배달물량을 받는 횟수부터 축소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6회에 걸쳐 배달짐을 받아 왔는데, 배달 시간 지정 서비스 이용이 적은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운전기사 등이 휴식을 하게 했다.

 

야간 배달시간 종료 시점도 앞당길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중으로 배달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잔업 시간 단축을 의미한다. 온라인 쇼핑 등 대규모 거래처와 요금 인상 등에 대한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국토교통성 통계를 보면, 수신자 부재 등으로 재배달되는 화물 비율이 20%나 된다. 재배달을 위해서만 연인원 90만 명이 필요하다. 배송기사들이 역이나 편의점 등에 택배를 맡길 수 있는 서비스를 서두르고 있지만, 아직은 초보 단계이다.



택배 1위 업체의 경영 전략 전환 방침이 모두 시행된다면 필연적으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서비스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택배요금이 올라갈 수도 있고, 불편해질 수도 있다. 혹자는 택배 기사 등 관련 종사자들의 고된 노동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고, 혹자는 당연히 누려야 할 혜택의 축소라고 반발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일본 사회의 시행착오를 답습하듯 따라해온 한국사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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