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트럼프, ‘반쪽 박수’ 95차례…“미국 대통령 된 그 순간”은?

입력 2017.03.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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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통합' 강조…'반쪽 박수' 95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 오후 9시(미국 동부시간) 미국 의회에서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대개 1월 말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의회 연설을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 선서를 하고 백악관에 입성했기 때문에 취임 첫 해인 올해 연설 일자는 부득이하게 2월 말로 잡혔다. 취임 39일 만이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2월) 축하 행사가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시민의 권리들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지나온 길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과제를 상기하게 됩니다." 트럼프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백인 중산층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그가 연설 첫 부분을 흑인 공동체를 배려하는 수사로 시작한 것은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실제 트럼프는 "화합과 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고, 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라며 미국의 단합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편 가르기 이미지가 강한 트럼프의 평소 모습과 달라서였을까? 연설 내내 박수가 이어졌다. 비공식 속기록 상 집계로는 약 1시간 동안의 연설에서 나온 박수 횟수는 모두 95차례다. 박수 때문에 연설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취임사 때의 어두웠던 주제와는 달리 의회 연설에서는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며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중계 화면에 비친 의회 내부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트럼프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는 청중은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연단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위치한 공화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동안 연단 왼쪽에 자리한 민주당 의원들은 일어서기는커녕 박수도 치지 않는 대조적인 모습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른바 '반쪽 박수'를 받은 트럼프가 '통합'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 CNN 감동?…"미국 대통령 된 바로 그 순간"


의회 연설장의 분위기가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미국 CNN 방송은 연설 직후 "트럼프가 그 순간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정치평론가 밴 존스의 발언을 주요 기사로 실었다. 밴 존스는 민주당 성향의 CNN 정치평론가이다. 더구나 트럼프와는 관계가 껄끄러운 CNN이 우호적인(?) 기사를 실었다는 사실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밴 존스가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한 바로 그 순간은 언제일까?


당시 방청석에서는 여성 한 명이 트럼프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트럼프 취임 후인 1월 29일 예멘 대테러 작전 수행 중 사망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속 윌리엄 라이언 오언스 중사의 부인 캐린 오언스였다. 트럼프는 연설 도중 라이언에 대해 성공적인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국가 안보를 지키는 과정에서 숨진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부인을 소개했다. 트럼프는 라이언의 유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모든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약 2분 정도 이어졌는데, 이날 연설 도중 나온 가장 긴 박수였다. 캐린 오언스는 간혹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트럼프 연설의 곳곳에서 공화, 민주당의 분열상이 드러났지만, 조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순간만큼은 미국이 하나 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바로 이 순간을 이날 의회 연설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성향의 CNN 정치평론가 밴 존스는 "트럼프가 그 순간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밴 존스는 자신은 트럼프와 의견이 다르지만, 트럼프가 이런 감동적인 순간을 국민들에게 계속 보여준다면 대통령을 8년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CNN에 나와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치평론가 밴 존스와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바로 가기] CNN 홈페이지


◇ 정책 방향 그대로…지지도는 반전?

이런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기 때문일까? 의회 연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CNN 방송이 ORC와 공동으로 시청자 50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긍정적 반응이 10명 중 8명 정도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매우 긍정' 57% '다소 긍정' 21%로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78%였고, '매우 부정'과 '다소 부정'은 각각 10%, 11%였다.

세부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긍정이 부정보다 높았다. 분야별로 보면, 경제 정책에 대해 '올바른 방향' 72%, '잘못된 방향' 25%라고 답해 긍정적 반응이 우세했고, 이민 정책 역시 62% 대 36%로 긍정적 비율이 높았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선언한 건강보험정책은 61% 대 33%로 긍정이 앞섰고, 대 테러 정책은 70% 대 28%, 세금 감면 정책은 64% 대 30%로 역시 긍정적 반응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최근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와는 상반된다. 미국 NBC뉴스와 서베이몽키가 2월 13일~19일 공동 실시한 트럼프의 국정 지지도는 반대가 54%로 더 높게 나타났고, 퓨리서치센터의 2월 7일~12일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반대는 56%로 과반을 넘었었다.

트럼프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구체적 정책 청사진을 밝히지 않았고, 핵심 정책에 관해 기존 입장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지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난 건 무슨 이유일까? 이에 대해 CNN은 트럼프가 지지율 부진을 만회하고 이미지 쇄신을 위한 수단으로 의회 연설을 활용했다고 분석했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부드러워진 어조는 정치적 시간 벌기라고 꼬집었다. 어떤 조사 결과가 맞고 어떤 분석이 맞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취임 40일을 넘긴 만큼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 실현 방안을 제시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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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3 10:05:50
    특파원 리포트
◇ 트럼프 '통합' 강조…'반쪽 박수' 95차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 28일 오후 9시(미국 동부시간) 미국 의회에서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대개 1월 말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의회 연설을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 선서를 하고 백악관에 입성했기 때문에 취임 첫 해인 올해 연설 일자는 부득이하게 2월 말로 잡혔다. 취임 39일 만이다.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 2월) 축하 행사가 마무리된 것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시민의 권리들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지나온 길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과제를 상기하게 됩니다." 트럼프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백인 중산층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하는 그가 연설 첫 부분을 흑인 공동체를 배려하는 수사로 시작한 것은 통합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실제 트럼프는 "화합과 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오늘 밤 이곳에 왔고, 이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라며 미국의 단합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편 가르기 이미지가 강한 트럼프의 평소 모습과 달라서였을까? 연설 내내 박수가 이어졌다. 비공식 속기록 상 집계로는 약 1시간 동안의 연설에서 나온 박수 횟수는 모두 95차례다. 박수 때문에 연설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취임사 때의 어두웠던 주제와는 달리 의회 연설에서는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며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중계 화면에 비친 의회 내부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트럼프의 연설에 박수를 보내는 청중은 대부분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연단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위치한 공화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는 동안 연단 왼쪽에 자리한 민주당 의원들은 일어서기는커녕 박수도 치지 않는 대조적인 모습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이른바 '반쪽 박수'를 받은 트럼프가 '통합'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 CNN 감동?…"미국 대통령 된 바로 그 순간"


의회 연설장의 분위기가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미국 CNN 방송은 연설 직후 "트럼프가 그 순간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는 정치평론가 밴 존스의 발언을 주요 기사로 실었다. 밴 존스는 민주당 성향의 CNN 정치평론가이다. 더구나 트럼프와는 관계가 껄끄러운 CNN이 우호적인(?) 기사를 실었다는 사실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일 수 있다. 밴 존스가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한 바로 그 순간은 언제일까?


당시 방청석에서는 여성 한 명이 트럼프의 연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트럼프 취임 후인 1월 29일 예멘 대테러 작전 수행 중 사망한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속 윌리엄 라이언 오언스 중사의 부인 캐린 오언스였다. 트럼프는 연설 도중 라이언에 대해 성공적인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고 국가 안보를 지키는 과정에서 숨진 영웅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부인을 소개했다. 트럼프는 라이언의 유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모든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박수는 약 2분 정도 이어졌는데, 이날 연설 도중 나온 가장 긴 박수였다. 캐린 오언스는 간혹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트럼프 연설의 곳곳에서 공화, 민주당의 분열상이 드러났지만, 조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순간만큼은 미국이 하나 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바로 이 순간을 이날 의회 연설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성향의 CNN 정치평론가 밴 존스는 "트럼프가 그 순간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밴 존스는 자신은 트럼프와 의견이 다르지만, 트럼프가 이런 감동적인 순간을 국민들에게 계속 보여준다면 대통령을 8년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CNN에 나와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치평론가 밴 존스와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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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방향 그대로…지지도는 반전?

이런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기 때문일까? 의회 연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CNN 방송이 ORC와 공동으로 시청자 50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긍정적 반응이 10명 중 8명 정도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매우 긍정' 57% '다소 긍정' 21%로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78%였고, '매우 부정'과 '다소 부정'은 각각 10%, 11%였다.

세부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긍정이 부정보다 높았다. 분야별로 보면, 경제 정책에 대해 '올바른 방향' 72%, '잘못된 방향' 25%라고 답해 긍정적 반응이 우세했고, 이민 정책 역시 62% 대 36%로 긍정적 비율이 높았다. 오바마케어 폐지를 선언한 건강보험정책은 61% 대 33%로 긍정이 앞섰고, 대 테러 정책은 70% 대 28%, 세금 감면 정책은 64% 대 30%로 역시 긍정적 반응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는 최근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와는 상반된다. 미국 NBC뉴스와 서베이몽키가 2월 13일~19일 공동 실시한 트럼프의 국정 지지도는 반대가 54%로 더 높게 나타났고, 퓨리서치센터의 2월 7일~12일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반대는 56%로 과반을 넘었었다.

트럼프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구체적 정책 청사진을 밝히지 않았고, 핵심 정책에 관해 기존 입장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지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난 건 무슨 이유일까? 이에 대해 CNN은 트럼프가 지지율 부진을 만회하고 이미지 쇄신을 위한 수단으로 의회 연설을 활용했다고 분석했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부드러워진 어조는 정치적 시간 벌기라고 꼬집었다. 어떤 조사 결과가 맞고 어떤 분석이 맞는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취임 40일을 넘긴 만큼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 실현 방안을 제시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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