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아카데미 시상식을 ‘회계사’가 망쳤다고?
입력 2017.03.03 (10:09)
수정 2017.03.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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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가 보니에게 폭탄을 넘겼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마지막 순서, 작품상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연 워런 비티,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봉투를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다.
봉투를 받아든 더너웨이, 바로 "라라랜드"라고 수상작을 발표한다. 언론들은 즉시 라라랜드의 수상 소식을 타전했고 라라랜드 제작자들이 무대에 올라 감격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 80여 년 아카데미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작품상이 잘못 발표된 것이다.
주최 측이 "농담이 아니다."라며 수상작을 다시 발표했고, 작품상은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극장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 '문라이트'에게 돌아간다.

어떻게 이런 '촌극'이 벌어졌을까? 작품상을 발표하러 나온 워런 비티에게 전달된 빨간 봉투가 문제였다. 이 봉투 안에는 여우주연상 수상자와 작품이 적혀 있었다.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고. 워런 비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발표를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옆에 있는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 것이다. 더너웨이는 즉시 읽어버렸고.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는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한국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연 배우다. 그래서 미국의 한 언론은 클라이드가 보니에게 폭탄을 넘겼다고 표현했고, 유튜브에는 이 상황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다양한 영상이 올라왔다.
[관련 링크] “워런 비티를 비난하지 마세요!”
문제는 회계사였다. 아카데미 시상식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회계사였다. 의아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왜, 어떻게, 회계사가 망쳤을까? 굴지의 회계법인 PwC(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의 파트너 회계사 브라이언 컬리넌. 그가 워런 비티에게 빨간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
그런데 왜 회계사가 수상작 봉투를 전달할까? 이 궁금증은 잠시 뒤에 풀어보기로 하고, '봉투 게이트'라고까지 불린 어이없는 촌극의 경위를 먼저 알아보자.
작품상이 발표되기 직전 무대 뒤편, 발표자인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비티 옆에 있는 컬리넌의 손에는 두 개의 빨간 봉투(작품상과 여우주연상)가 들려 있다. 그의 휴대전화와 함께.
이제 곧 작품상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 때 컬리넌은 바삐 움직인다. 휴대전화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엠마 스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컬리넌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었고, 바로 SNS에 올린다. "여우주연상 수상자 엠마 스톤이 무대 뒤에 있다."라며 자랑스럽게 PWC라는 회사 이름을 태그로 달아서.
아카데미는 무대 뒤에서 수상자들의 사진을 찍거나 SNS에 올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카데미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컬리넌이 그 긴장된 순간에, 여배우의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리는 '특권'을 누리느라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워런 비티에게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이 회계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PwC의 대표는 매우 너그러운 사람인 듯하다. "나쁜 뉴스는 곧 잊힌다."며 그를 감싸는 인터뷰를 했다. 컬리넌은 별다른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듯하다. 더 이상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설 수 없게 된 것 말고는.
그런데 문제는 또 온라인에서 불거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망친'데 대해 '격분'한 사람들이 컬리넌과, 그와 함께 봉투 전달 역할을 맡았던 동료 회계사 마사 루이즈의 집을 공개했다. 온갖 욕설과 공격을 위협하는 글이 잇따랐다. 결국, 두 사람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용은 회사가 낸다. 참 좋은 회사다.
자 이제, 왜 회계사가 아카데미 수상작 봉투를 전달했는지 알아보자.
컬리넌의 회사, 회계법인 PwC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를 집계하고, 시상 순간까지 보안을 유지하며, 봉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상작 선정 과정의 관리를 맡고 있다. 89년 아카데미 역사 중에 83년이나 이 일을 해왔다.

왜 회계법인 PwC가 이 일을 맡고 있을까? PwC는 전 세계 150여 개 나라에 네트워크를 가진 그야말로 세계적인 회계법인이다. 런던에서 출발한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와 미국의 '쿠퍼스 앤 라이브랜드'가 지난 1998년 합병해 만들어진 회사다. 2014년 매출 340억 달러,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421개가 이 회사의 고객이다. 흔히 딜로이트, KPMG, 언스트 앤 영과 함께 회계컨설팅 업계의 '빅4'로 불린다.
회계는 투명성을 생명으로 한다. 특히, PwC는 '무결점'이라는 평판을 자랑해왔다. 아카데미는 수십 년 간 회계법인의 이런 투명성을 차용해 왔던 걸로 풀이된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아카데미 협회(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아카데미 회원은 6천 명이 넘는다. 이들의 표를 집계하고 보안을 유지해 오스카상의 권위를 확보하는데 투명성은 꼭 필요한 요소다. 이런 투명성과 권위가 '봉투 게이트'라는 촌극으로 상처를 입었다.
한 저명한 경영학 교수는 PwC가 차라리 특정 기업의 회계에서 실수한 게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실수는 더 널리 알려질 테니까 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를 배격했다는 의미 있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차별'에 위트와 유머, 풍자로 맞섰다. 역사상 두 번째로 흑인 감독이 작품상을 받았다.
시상식 막바지에 벌어진 '촌극'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너무 정치에 집중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 만든 극우 성향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패한 할리우드를 때려 최후의 승리를 얻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봉투 게이트'의 장본인 컬리넌은 '정치'에 집중한 게 아니라 '특권적 개인사'에 집중한 게 분명해 보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 승리'는 아카데미를 때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델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 비욘세에게준 것처럼 '문라이트' 제작진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갤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오스카 트로피는 사람의 형상인지라.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마지막 순서, 작품상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연 워런 비티,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봉투를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다.
봉투를 받아든 더너웨이, 바로 "라라랜드"라고 수상작을 발표한다. 언론들은 즉시 라라랜드의 수상 소식을 타전했고 라라랜드 제작자들이 무대에 올라 감격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 80여 년 아카데미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작품상이 잘못 발표된 것이다.
주최 측이 "농담이 아니다."라며 수상작을 다시 발표했고, 작품상은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극장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 '문라이트'에게 돌아간다.

어떻게 이런 '촌극'이 벌어졌을까? 작품상을 발표하러 나온 워런 비티에게 전달된 빨간 봉투가 문제였다. 이 봉투 안에는 여우주연상 수상자와 작품이 적혀 있었다.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고. 워런 비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발표를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옆에 있는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 것이다. 더너웨이는 즉시 읽어버렸고.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는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한국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연 배우다. 그래서 미국의 한 언론은 클라이드가 보니에게 폭탄을 넘겼다고 표현했고, 유튜브에는 이 상황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다양한 영상이 올라왔다.
[관련 링크] “워런 비티를 비난하지 마세요!”
문제는 회계사였다. 아카데미 시상식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회계사였다. 의아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왜, 어떻게, 회계사가 망쳤을까? 굴지의 회계법인 PwC(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의 파트너 회계사 브라이언 컬리넌. 그가 워런 비티에게 빨간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
그런데 왜 회계사가 수상작 봉투를 전달할까? 이 궁금증은 잠시 뒤에 풀어보기로 하고, '봉투 게이트'라고까지 불린 어이없는 촌극의 경위를 먼저 알아보자.
작품상이 발표되기 직전 무대 뒤편, 발표자인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비티 옆에 있는 컬리넌의 손에는 두 개의 빨간 봉투(작품상과 여우주연상)가 들려 있다. 그의 휴대전화와 함께.
이제 곧 작품상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 때 컬리넌은 바삐 움직인다. 휴대전화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엠마 스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컬리넌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었고, 바로 SNS에 올린다. "여우주연상 수상자 엠마 스톤이 무대 뒤에 있다."라며 자랑스럽게 PWC라는 회사 이름을 태그로 달아서.
아카데미는 무대 뒤에서 수상자들의 사진을 찍거나 SNS에 올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카데미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컬리넌이 그 긴장된 순간에, 여배우의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리는 '특권'을 누리느라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워런 비티에게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이 회계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PwC의 대표는 매우 너그러운 사람인 듯하다. "나쁜 뉴스는 곧 잊힌다."며 그를 감싸는 인터뷰를 했다. 컬리넌은 별다른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듯하다. 더 이상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설 수 없게 된 것 말고는.
그런데 문제는 또 온라인에서 불거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망친'데 대해 '격분'한 사람들이 컬리넌과, 그와 함께 봉투 전달 역할을 맡았던 동료 회계사 마사 루이즈의 집을 공개했다. 온갖 욕설과 공격을 위협하는 글이 잇따랐다. 결국, 두 사람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용은 회사가 낸다. 참 좋은 회사다.
자 이제, 왜 회계사가 아카데미 수상작 봉투를 전달했는지 알아보자.
컬리넌의 회사, 회계법인 PwC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를 집계하고, 시상 순간까지 보안을 유지하며, 봉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상작 선정 과정의 관리를 맡고 있다. 89년 아카데미 역사 중에 83년이나 이 일을 해왔다.

왜 회계법인 PwC가 이 일을 맡고 있을까? PwC는 전 세계 150여 개 나라에 네트워크를 가진 그야말로 세계적인 회계법인이다. 런던에서 출발한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와 미국의 '쿠퍼스 앤 라이브랜드'가 지난 1998년 합병해 만들어진 회사다. 2014년 매출 340억 달러,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421개가 이 회사의 고객이다. 흔히 딜로이트, KPMG, 언스트 앤 영과 함께 회계컨설팅 업계의 '빅4'로 불린다.
회계는 투명성을 생명으로 한다. 특히, PwC는 '무결점'이라는 평판을 자랑해왔다. 아카데미는 수십 년 간 회계법인의 이런 투명성을 차용해 왔던 걸로 풀이된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아카데미 협회(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아카데미 회원은 6천 명이 넘는다. 이들의 표를 집계하고 보안을 유지해 오스카상의 권위를 확보하는데 투명성은 꼭 필요한 요소다. 이런 투명성과 권위가 '봉투 게이트'라는 촌극으로 상처를 입었다.
한 저명한 경영학 교수는 PwC가 차라리 특정 기업의 회계에서 실수한 게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실수는 더 널리 알려질 테니까 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를 배격했다는 의미 있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차별'에 위트와 유머, 풍자로 맞섰다. 역사상 두 번째로 흑인 감독이 작품상을 받았다.
시상식 막바지에 벌어진 '촌극'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너무 정치에 집중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 만든 극우 성향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패한 할리우드를 때려 최후의 승리를 얻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봉투 게이트'의 장본인 컬리넌은 '정치'에 집중한 게 아니라 '특권적 개인사'에 집중한 게 분명해 보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 승리'는 아카데미를 때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델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 비욘세에게준 것처럼 '문라이트' 제작진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갤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오스카 트로피는 사람의 형상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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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가 보니에게 폭탄을 넘겼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마지막 순서, 작품상 수상작이 적힌 봉투를 연 워런 비티, 뭔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봉투를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다.
봉투를 받아든 더너웨이, 바로 "라라랜드"라고 수상작을 발표한다. 언론들은 즉시 라라랜드의 수상 소식을 타전했고 라라랜드 제작자들이 무대에 올라 감격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 80여 년 아카데미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작품상이 잘못 발표된 것이다.
주최 측이 "농담이 아니다."라며 수상작을 다시 발표했고, 작품상은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 극장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 '문라이트'에게 돌아간다.
어떻게 이런 '촌극'이 벌어졌을까? 작품상을 발표하러 나온 워런 비티에게 전달된 빨간 봉투가 문제였다. 이 봉투 안에는 여우주연상 수상자와 작품이 적혀 있었다.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고. 워런 비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발표를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옆에 있는 페이 더너웨이에게 넘긴 것이다. 더너웨이는 즉시 읽어버렸고.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는 1967년에 만들어진 영화 '보니 앤 클라이드'(한국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주연 배우다. 그래서 미국의 한 언론은 클라이드가 보니에게 폭탄을 넘겼다고 표현했고, 유튜브에는 이 상황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다양한 영상이 올라왔다.
[관련 링크] “워런 비티를 비난하지 마세요!”
문제는 회계사였다. 아카데미 시상식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회계사였다. 의아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왜, 어떻게, 회계사가 망쳤을까? 굴지의 회계법인 PwC(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의 파트너 회계사 브라이언 컬리넌. 그가 워런 비티에게 빨간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
그런데 왜 회계사가 수상작 봉투를 전달할까? 이 궁금증은 잠시 뒤에 풀어보기로 하고, '봉투 게이트'라고까지 불린 어이없는 촌극의 경위를 먼저 알아보자.
작품상이 발표되기 직전 무대 뒤편, 발표자인 워런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비티 옆에 있는 컬리넌의 손에는 두 개의 빨간 봉투(작품상과 여우주연상)가 들려 있다. 그의 휴대전화와 함께.
이제 곧 작품상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 때 컬리넌은 바삐 움직인다. 휴대전화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엠마 스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컬리넌은 결국 멋진 사진을 찍었고, 바로 SNS에 올린다. "여우주연상 수상자 엠마 스톤이 무대 뒤에 있다."라며 자랑스럽게 PWC라는 회사 이름을 태그로 달아서.
아카데미는 무대 뒤에서 수상자들의 사진을 찍거나 SNS에 올리는 행위를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카데미가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직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컬리넌이 그 긴장된 순간에, 여배우의 사진을 찍고 트위터에 올리는 '특권'을 누리느라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워런 비티에게 봉투를 잘못 전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럼, 이런 '대형 사고'를 친 이 회계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PwC의 대표는 매우 너그러운 사람인 듯하다. "나쁜 뉴스는 곧 잊힌다."며 그를 감싸는 인터뷰를 했다. 컬리넌은 별다른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듯하다. 더 이상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설 수 없게 된 것 말고는.
그런데 문제는 또 온라인에서 불거졌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망친'데 대해 '격분'한 사람들이 컬리넌과, 그와 함께 봉투 전달 역할을 맡았던 동료 회계사 마사 루이즈의 집을 공개했다. 온갖 욕설과 공격을 위협하는 글이 잇따랐다. 결국, 두 사람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용은 회사가 낸다. 참 좋은 회사다.
자 이제, 왜 회계사가 아카데미 수상작 봉투를 전달했는지 알아보자.
컬리넌의 회사, 회계법인 PwC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를 집계하고, 시상 순간까지 보안을 유지하며, 봉투를 전달하는 역할까지, 수상작 선정 과정의 관리를 맡고 있다. 89년 아카데미 역사 중에 83년이나 이 일을 해왔다.
왜 회계법인 PwC가 이 일을 맡고 있을까? PwC는 전 세계 150여 개 나라에 네트워크를 가진 그야말로 세계적인 회계법인이다. 런던에서 출발한 '프라이스 워터하우스'와 미국의 '쿠퍼스 앤 라이브랜드'가 지난 1998년 합병해 만들어진 회사다. 2014년 매출 340억 달러, 포춘 선정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421개가 이 회사의 고객이다. 흔히 딜로이트, KPMG, 언스트 앤 영과 함께 회계컨설팅 업계의 '빅4'로 불린다.
회계는 투명성을 생명으로 한다. 특히, PwC는 '무결점'이라는 평판을 자랑해왔다. 아카데미는 수십 년 간 회계법인의 이런 투명성을 차용해 왔던 걸로 풀이된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아카데미 협회(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아카데미 회원은 6천 명이 넘는다. 이들의 표를 집계하고 보안을 유지해 오스카상의 권위를 확보하는데 투명성은 꼭 필요한 요소다. 이런 투명성과 권위가 '봉투 게이트'라는 촌극으로 상처를 입었다.
한 저명한 경영학 교수는 PwC가 차라리 특정 기업의 회계에서 실수한 게 나을 뻔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실수는 더 널리 알려질 테니까 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종차별', '백인 우월주의'를 배격했다는 의미 있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각종 '차별'에 위트와 유머, 풍자로 맞섰다. 역사상 두 번째로 흑인 감독이 작품상을 받았다.
시상식 막바지에 벌어진 '촌극'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너무 정치에 집중해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 만든 극우 성향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패한 할리우드를 때려 최후의 승리를 얻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봉투 게이트'의 장본인 컬리넌은 '정치'에 집중한 게 아니라 '특권적 개인사'에 집중한 게 분명해 보인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 승리'는 아카데미를 때려서 얻을 수 있는 게 절대 아니다.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아델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개 비욘세에게준 것처럼 '문라이트' 제작진이 트로피를 반으로 쪼갤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오스카 트로피는 사람의 형상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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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한 기자 han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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