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무법천지 베네수엘라, 국민 ‘대탈출’

입력 2017.03.04 (21:57) 수정 2017.03.0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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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베네수엘라에선 지금,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인 10명 중 8명이 지난해, 8킬로가 넘게 체중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얼마 전 발표됐는데요,

먹을 것이 없어서랍니다.

국민의 82%가 빈곤 상태인데요,

한때 '오일머니'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이처럼 극심한 경제난에 빠졌습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면서 처음에는 부자들이 이민을 갔지만, 이제는 가난한 서민들까지 이민 보따리를 싸고 있는 베네수엘라, 박영관 특파원이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미국 메이저리그가 끝나는 10월에 베네수엘라에서는 겨울리그 야구가 시작됩니다.

수도 카라카스를 연고로 하는 레온 팀과 라이벌인 라과이라 티브로네스 팀의 경기,

예전에는 2만 관중이 야구장을 가득 메웠지만, 요즘엔 많아야 5천 명 정도입니다.

지난해 최고 5천 볼리바르, 약 2천 원 정도이던 입장권 가격이 올해는 9,800볼리바르로 두 배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리바스(야구 팬) : "작년에는 그래도 경기장이 꽉 찼는데 올해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입장권과 맥주, 음식값이 올라서 예전처럼 경기장이 꽉 차지를 않아요."

남미 다른 나라들과 달리 축구 대신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얻고 있는 베네수엘라지만, 이곳에서 뛰는 선수들의 수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겨울리그 넉 달 동안 일반 선수들이 받는 돈은 100만 볼리바르, 약 40만 원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베네수엘라를 벗어나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게 모든 선수의 희망입니다.

12살 야구 선수 호이커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팀에서 주전 2루수로 활약할 만큼 실력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호이커가 가고 싶은 팀은 LA 다저스입니다.

<인터뷰> 호이커(12살/야구 선수) : "메이저리그로 가서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호이커의 집은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서민층 가정입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냉장고는 거의 텅 비었고, 세제 같은 생필품도 떨어졌습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인터뷰> 고메스(호이커 어머니) : "제 주변에 살이 빠진 사람들이 많아요. 예전과 다르게 밥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dis/ 이제는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굶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아침을 굶어야 해요."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형 슈퍼마켓 뒤편, 임신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습니다.

닭고기와 빵 등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따로 봉지에 담습니다.

이렇게 모은 음식이 이 가족이 오늘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한 끼 식사입니다.

<인터뷰> 루나(임신 5개월) : "이렇게 사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먹을 것을 구하려다 보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거리 곳곳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빵을 살 돈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빅토르(카라카스 시민) : "오늘 저녁에는 먹을 게 없어요. 뭔가 먹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해요."

베네수엘라에서는 요즘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의 실정으로 만성적인 식량난이 확산하면서 모든 국민이 강제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는 겁니다.

실제로 시몬 볼리바르 대학이 지난해 6,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가구의 75%에서 평균 8.6kg 정도 체중 감소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33%는 하루 한 끼 내지 두 끼만 먹는 것으로 나타났고, 현재 수입으로 음식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답한 가정이 93%나 됐습니다.

<인터뷰> 다니엘라(카라카스 시민) : "좀 전에 아들이 빵을 먹는 것을 보고 혼내고 왔어요. '빵을 많이 먹지 마, 지금 먹으면 밤에는 먹을 빵이 없어...' 이게 현실이에요."

식량난과 함께 의료 서비스도 사실상 붕괴 상태입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신생아를 종이 상자에 눕혀 놓고 있고, 기본적인 의약품조차 없어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곤살레스(의사) : "혈청도 없고, 항생제도 없고, 수술 도구 마저 없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카벨료 씨는 최근 평생 살아온 베네수엘라를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억척스럽게 일해서 번 돈으로 3층 집까지 지었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키운 네 아들 가운데 세 명은 5년 전 동네에서 범죄 조직원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어렵게 칠레 이민을 결심하자 함께 떠나기로 한 겁니다.

<인터뷰> 카벨료(칠레 이민 준비) : "자기 조국을 떠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에 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며 살았던 흔적을 다 남기고 떠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달리 선택할 게 없어요."

대학에서 화공과를 졸업한 아들 다니엘 씨는 칠레에서 목수로 일할 생각입니다.

이미 칠레에 작은 작업장을 마련해 놓고 왔습니다.

<인터뷰> 다니엘(카벨료 씨 아들) : "여기(베네수엘라)는 누구나 총기를 휴대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법은 제멋대로 이용되죠. 거기(칠레)는 다릅니다. 경찰이 엄중하게 국민을 보호하고, 여기처럼 부패해 있지도 않아요."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대사를 지낸 클라비에르 씨의 집은 작은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상류층 가정이지만, 클라비에르 씨의 세 자녀는 모두 외국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13년 전에 그리스로 갔고, 딸은 7년 전에 스페인으로, 막내아들은 지난해에 멕시코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인터뷰> 클라비에르(전직 대사) : "베네수엘라에서는 범죄로 인해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시리아에서 전쟁으로 죽는 숫자와 비슷합니다. 1년에 적어도 2만 명이 살해당합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인 범죄율이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젊은이들 가운데 30% 이상이 베네수엘라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터뷰> 파에즈(국립중앙대 교수) : "베네수엘라 국민 60% 이상이 실업자나 비정규직입니다. 개인 고용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당연히 사람들이 떠나려고 결심하게 되는 겁니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 17년 동안 베네수엘라에서는 2백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의 7%가 조국을 등진 겁니다.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브라질 국경도시 파카라이마에는 베네수엘라 국민 2백여 명이 난민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지만, 그나마 일거리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리메이라(베네수엘라 국민) : "여기서는 일을 해서 돈 주고 음식을 살 수가 있어요. 저쪽(베네수엘라)보다 훨씬 나아요."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극심한 경제난, 그리고 치안 불안까지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박영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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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현장] 무법천지 베네수엘라, 국민 ‘대탈출’
    • 입력 2017-03-04 22:14:15
    • 수정2017-03-04 22: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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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베네수엘라에선 지금, 이민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인 10명 중 8명이 지난해, 8킬로가 넘게 체중이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도 얼마 전 발표됐는데요,

먹을 것이 없어서랍니다.

국민의 82%가 빈곤 상태인데요,

한때 '오일머니'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이처럼 극심한 경제난에 빠졌습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면서 처음에는 부자들이 이민을 갔지만, 이제는 가난한 서민들까지 이민 보따리를 싸고 있는 베네수엘라, 박영관 특파원이 찾아가봤습니다.

<리포트>

미국 메이저리그가 끝나는 10월에 베네수엘라에서는 겨울리그 야구가 시작됩니다.

수도 카라카스를 연고로 하는 레온 팀과 라이벌인 라과이라 티브로네스 팀의 경기,

예전에는 2만 관중이 야구장을 가득 메웠지만, 요즘엔 많아야 5천 명 정도입니다.

지난해 최고 5천 볼리바르, 약 2천 원 정도이던 입장권 가격이 올해는 9,800볼리바르로 두 배가 됐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리바스(야구 팬) : "작년에는 그래도 경기장이 꽉 찼는데 올해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입장권과 맥주, 음식값이 올라서 예전처럼 경기장이 꽉 차지를 않아요."

남미 다른 나라들과 달리 축구 대신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얻고 있는 베네수엘라지만, 이곳에서 뛰는 선수들의 수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겨울리그 넉 달 동안 일반 선수들이 받는 돈은 100만 볼리바르, 약 40만 원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베네수엘라를 벗어나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게 모든 선수의 희망입니다.

12살 야구 선수 호이커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팀에서 주전 2루수로 활약할 만큼 실력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호이커가 가고 싶은 팀은 LA 다저스입니다.

<인터뷰> 호이커(12살/야구 선수) : "메이저리그로 가서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돈도 많이 벌어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호이커의 집은 베네수엘라의 평범한 서민층 가정입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냉장고는 거의 텅 비었고, 세제 같은 생필품도 떨어졌습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인터뷰> 고메스(호이커 어머니) : "제 주변에 살이 빠진 사람들이 많아요. 예전과 다르게 밥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dis/ 이제는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굶거나 점심을 먹기 위해 아침을 굶어야 해요."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대형 슈퍼마켓 뒤편, 임신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습니다.

닭고기와 빵 등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 따로 봉지에 담습니다.

이렇게 모은 음식이 이 가족이 오늘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한 끼 식사입니다.

<인터뷰> 루나(임신 5개월) : "이렇게 사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먹을 것을 구하려다 보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거리 곳곳에서 배고픈 사람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빵을 살 돈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빅토르(카라카스 시민) : "오늘 저녁에는 먹을 게 없어요. 뭔가 먹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을 뒤져야 해요."

베네수엘라에서는 요즘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의 실정으로 만성적인 식량난이 확산하면서 모든 국민이 강제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는 겁니다.

실제로 시몬 볼리바르 대학이 지난해 6,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가구의 75%에서 평균 8.6kg 정도 체중 감소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33%는 하루 한 끼 내지 두 끼만 먹는 것으로 나타났고, 현재 수입으로 음식값을 감당할 수 없다고 답한 가정이 93%나 됐습니다.

<인터뷰> 다니엘라(카라카스 시민) : "좀 전에 아들이 빵을 먹는 것을 보고 혼내고 왔어요. '빵을 많이 먹지 마, 지금 먹으면 밤에는 먹을 빵이 없어...' 이게 현실이에요."

식량난과 함께 의료 서비스도 사실상 붕괴 상태입니다.

산부인과에서는 신생아를 종이 상자에 눕혀 놓고 있고, 기본적인 의약품조차 없어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곤살레스(의사) : "혈청도 없고, 항생제도 없고, 수술 도구 마저 없는데 어쩌라는 겁니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카벨료 씨는 최근 평생 살아온 베네수엘라를 떠날 결심을 했습니다.

억척스럽게 일해서 번 돈으로 3층 집까지 지었지만, 하루하루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힘들게 키운 네 아들 가운데 세 명은 5년 전 동네에서 범죄 조직원의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어렵게 칠레 이민을 결심하자 함께 떠나기로 한 겁니다.

<인터뷰> 카벨료(칠레 이민 준비) : "자기 조국을 떠나는 것은 참 슬픈 일이에 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며 살았던 흔적을 다 남기고 떠나는 거니까요. 하지만 달리 선택할 게 없어요."

대학에서 화공과를 졸업한 아들 다니엘 씨는 칠레에서 목수로 일할 생각입니다.

이미 칠레에 작은 작업장을 마련해 놓고 왔습니다.

<인터뷰> 다니엘(카벨료 씨 아들) : "여기(베네수엘라)는 누구나 총기를 휴대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법은 제멋대로 이용되죠. 거기(칠레)는 다릅니다. 경찰이 엄중하게 국민을 보호하고, 여기처럼 부패해 있지도 않아요."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대사를 지낸 클라비에르 씨의 집은 작은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베네수엘라 상류층 가정이지만, 클라비에르 씨의 세 자녀는 모두 외국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13년 전에 그리스로 갔고, 딸은 7년 전에 스페인으로, 막내아들은 지난해에 멕시코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인터뷰> 클라비에르(전직 대사) : "베네수엘라에서는 범죄로 인해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합니다. 시리아에서 전쟁으로 죽는 숫자와 비슷합니다. 1년에 적어도 2만 명이 살해당합니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살인 범죄율이 높은 나라가 됐습니다.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젊은이들 가운데 30% 이상이 베네수엘라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터뷰> 파에즈(국립중앙대 교수) : "베네수엘라 국민 60% 이상이 실업자나 비정규직입니다. 개인 고용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당연히 사람들이 떠나려고 결심하게 되는 겁니다."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 17년 동안 베네수엘라에서는 2백만 명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체 국민의 7%가 조국을 등진 겁니다.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브라질 국경도시 파카라이마에는 베네수엘라 국민 2백여 명이 난민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도 없이 거리에서 살지만, 그나마 일거리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리메이라(베네수엘라 국민) : "여기서는 일을 해서 돈 주고 음식을 살 수가 있어요. 저쪽(베네수엘라)보다 훨씬 나아요."

먹을 것조차 구하기 힘든 극심한 경제난, 그리고 치안 불안까지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박영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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