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735일 악몽 이후…케네스 배의 새로운 도전

입력 2017.04.15 (08:20) 수정 2017.04.1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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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재미동포 케네스 배씨, 기억하십니까?

5년 전 북한에 억류됐다 2년여 만에 간신히 풀려났었는데요.

네.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애를 태웠죠?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면서요?

네. 국내에 있는 북한인권운동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아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을 텐데요.

케네스 배씨를 홍은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북한인권 관련 시민단체의 사무실.

직원들이 곧 시작될 탈북민 대상 영어 강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녹취> “광고된 지 한 5분도 안된 거 같아요. (5분 안에 지금 7명이 연락이 왔어요?)”

2006년 설립된 이 단체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인권보호시설과 지원 거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9년부터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진 원어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탈북민 영어교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선영(북한인권 NGO ‘서빙라이프’ 사무국장) : “(탈북) 고아들의 친척, 엄마들의 친척 이런 분들을 알게 돼서 연결이 돼서... 저희가 탈북민 정착 사업이 조금 씩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에밀리(캐나다인 자원봉사자) : “그들(탈북민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고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번 학기 진행 전 과정을 꼼꼼하게 챙기는 이 사람.

얼마 전 공동대표로 취임한 케네스 배 씨입니다.

<인터뷰> 박선영(북한인권 NGO ‘서빙라이프’ 사무국장) : “처음 작년 10월에 만나 뵈었을 때,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은... 특별히 이제 3월부터 공동대표로 같이 식구로서 가족으로서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사실 상당히 감회가 새로웠죠.”

미국계 한국인 선교사인 케네스 배 씨가 이처럼 유명해 진 것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억류사건 때문입니다.

캐네스 배 씨는 2012년 11월 방북했다 억류돼 2년 만에 풀려났는데요.

735일 동안 그가 경험한 북한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경험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북한에 억류된 케네스 배 씨는 초췌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녹취> 케네스 배(배준호/2014년 1월 北 억류 당시) : “미국 정부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지금 1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여러 가지 많이 노력하신 건 알고 있지만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기를 요청하고...”

북한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억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는데요.

그가 북한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저희 아버지가 평안북도 영변이라는 데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이 실향민 가족이고... 외부 사람들에게 북한을 알리고 북한 내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사 대표의 자격으로, 2010년부터 18차례나 방북했던 그를 2012년 11월, 북한 당국이 전격 체포합니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컴퓨터 외장하드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외장하드에는 북한 취재했던 서방 언론의 동영상들이 들어가 있었고, 그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그들에게 거슬리는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억류가 되었죠.”

외부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에서 그의 외장하드는 순식간에 ‘북한을 전복시키기 위한 선동 도구’로 둔갑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가전복음모죄’를 뒤집어 씌워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한 뒤 수감했습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그곳에서 이제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일 동안 농사일도 하게 되고 석탄을 푼다든지 나눈다, 석탄재를 부순다든지 돌을 나른다든지...”

고된 수감 생활로 석 달 만에 체중이 27kg이나 줄고 영양실조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 속에 보내던 나날들.

그런데 자유는 극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억류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석방을 위해 특사로 파견된 미 고위 관리와 함께 귀국하게 된 겁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억류 마지막날) 인터뷰한다고 그래서 저를 이제 어느 호텔로 데려가서 대기시켜놓은 상황에서 6시간을 제가 대기하면서 기다렸고 그 후에 가서 오후 3시 돼서야 제가 석방이 된다는 얘기를 그때서야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4시에는 제가 출국을 한, 그런 마지막 순간까지 몰랐던 그런 긴장되는 순간이었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온 케네스 배.

그가 겪은 2년간의 악몽 같은 시간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 인권, 국내외 탈북민을 위한 NGO 활동에 힘을 모으게 된 겁니다.

거대한 감옥과 같은 곳!

케네스 배 씨는 북한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 감옥의 빗장이 열리는 그 날까지 북한 주민들과 탈북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것이 새 삶을 얻은 그의 목표입니다.

이번 달 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국내외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경험도 나누고 북한 주민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일도 합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수감 당시)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

북한에 억류돼 있을 당시, 감옥 밖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는 케네스 배 씨.

그의 호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인터뷰> 신예린(경기도 남양주군) : “(탈북)고아들이 있는지도 몰랐고 해서 마음이 아팠고 직접 가서 좀 도와줄 수 있으면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누구보다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탈북민들은 공감을 넘어 사명감까지 느낍니다.

<인터뷰> 김요셉(탈북민) : “친구, 친지들, 고향 마을 사람들... 북한 전체 인민들한테 죄지은 감이란 말입니다. 인권 신장을 위한 그 사역에 함께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그 빚을 약간 갚는다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차원에 나가면 나는 결코 나 혼자 하루 삼시 잘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존재구나 하는 사명감을 가진 값진 존재로 될 수 있다...”

북한에서 보낸 735일, 긴 악몽이었지만 소명의식을 다지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케네스 배 씨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하고... 삶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면서... 사랑의 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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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735일 악몽 이후…케네스 배의 새로운 도전
    • 입력 2017-04-15 08:23:46
    • 수정2017-04-15 08:3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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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재미동포 케네스 배씨, 기억하십니까?

5년 전 북한에 억류됐다 2년여 만에 간신히 풀려났었는데요.

네.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많은 이들의 애를 태웠죠?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면서요?

네. 국내에 있는 북한인권운동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아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을 텐데요.

케네스 배씨를 홍은지 리포터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북한인권 관련 시민단체의 사무실.

직원들이 곧 시작될 탈북민 대상 영어 강의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녹취> “광고된 지 한 5분도 안된 거 같아요. (5분 안에 지금 7명이 연락이 왔어요?)”

2006년 설립된 이 단체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인권보호시설과 지원 거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9년부터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진 원어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탈북민 영어교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선영(북한인권 NGO ‘서빙라이프’ 사무국장) : “(탈북) 고아들의 친척, 엄마들의 친척 이런 분들을 알게 돼서 연결이 돼서... 저희가 탈북민 정착 사업이 조금 씩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에밀리(캐나다인 자원봉사자) : “그들(탈북민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고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번 학기 진행 전 과정을 꼼꼼하게 챙기는 이 사람.

얼마 전 공동대표로 취임한 케네스 배 씨입니다.

<인터뷰> 박선영(북한인권 NGO ‘서빙라이프’ 사무국장) : “처음 작년 10월에 만나 뵈었을 때, 마치 연예인을 본 것 같은... 특별히 이제 3월부터 공동대표로 같이 식구로서 가족으로서 일을 하게 됐을 때는 사실 상당히 감회가 새로웠죠.”

미국계 한국인 선교사인 케네스 배 씨가 이처럼 유명해 진 것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억류사건 때문입니다.

캐네스 배 씨는 2012년 11월 방북했다 억류돼 2년 만에 풀려났는데요.

735일 동안 그가 경험한 북한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리고 그 경험은 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북한에 억류된 케네스 배 씨는 초췌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녹취> 케네스 배(배준호/2014년 1월 北 억류 당시) : “미국 정부에게 다시 한 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지금 1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제는 여러 가지 많이 노력하신 건 알고 있지만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기를 요청하고...”

북한 정권이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억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는데요.

그가 북한에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저희 아버지가 평안북도 영변이라는 데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이 실향민 가족이고... 외부 사람들에게 북한을 알리고 북한 내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사 대표의 자격으로, 2010년부터 18차례나 방북했던 그를 2012년 11월, 북한 당국이 전격 체포합니다.

그가 소지하고 있던 컴퓨터 외장하드를 문제 삼았습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외장하드에는 북한 취재했던 서방 언론의 동영상들이 들어가 있었고, 그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그들에게 거슬리는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억류가 되었죠.”

외부 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에서 그의 외장하드는 순식간에 ‘북한을 전복시키기 위한 선동 도구’로 둔갑됐습니다.

북한 당국은 ‘국가전복음모죄’를 뒤집어 씌워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한 뒤 수감했습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그곳에서 이제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 6일 동안 농사일도 하게 되고 석탄을 푼다든지 나눈다, 석탄재를 부순다든지 돌을 나른다든지...”

고된 수감 생활로 석 달 만에 체중이 27kg이나 줄고 영양실조로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습니다.

하루하루 불안 속에 보내던 나날들.

그런데 자유는 극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억류된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석방을 위해 특사로 파견된 미 고위 관리와 함께 귀국하게 된 겁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억류 마지막날) 인터뷰한다고 그래서 저를 이제 어느 호텔로 데려가서 대기시켜놓은 상황에서 6시간을 제가 대기하면서 기다렸고 그 후에 가서 오후 3시 돼서야 제가 석방이 된다는 얘기를 그때서야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4시에는 제가 출국을 한, 그런 마지막 순간까지 몰랐던 그런 긴장되는 순간이었죠.”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 온 케네스 배.

그가 겪은 2년간의 악몽 같은 시간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 인권, 국내외 탈북민을 위한 NGO 활동에 힘을 모으게 된 겁니다.

거대한 감옥과 같은 곳!

케네스 배 씨는 북한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그 감옥의 빗장이 열리는 그 날까지 북한 주민들과 탈북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 그것이 새 삶을 얻은 그의 목표입니다.

이번 달 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국내외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일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경험도 나누고 북한 주민을 위해 마음을 모으는 일도 합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수감 당시)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

북한에 억류돼 있을 당시, 감옥 밖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는 케네스 배 씨.

그의 호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인터뷰> 신예린(경기도 남양주군) : “(탈북)고아들이 있는지도 몰랐고 해서 마음이 아팠고 직접 가서 좀 도와줄 수 있으면 가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누구보다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탈북민들은 공감을 넘어 사명감까지 느낍니다.

<인터뷰> 김요셉(탈북민) : “친구, 친지들, 고향 마을 사람들... 북한 전체 인민들한테 죄지은 감이란 말입니다. 인권 신장을 위한 그 사역에 함께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는 그 빚을 약간 갚는다 하는 것도 있지만, 더 큰 차원에 나가면 나는 결코 나 혼자 하루 삼시 잘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존재구나 하는 사명감을 가진 값진 존재로 될 수 있다...”

북한에서 보낸 735일, 긴 악몽이었지만 소명의식을 다지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케네스 배 씨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인터뷰> 케네스 배(북한인권운동단체 공동 대표) :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하고... 삶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면서... 사랑의 다리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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