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세속국가 터키, 이슬람화 가속

입력 2017.04.15 (21:46) 수정 2017.04.1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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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터키는 지금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통과될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9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데요,

터키는 무슬림 인구가 대다수지만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세속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채택해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해 왔습니다.

그런 터키가 에르도안 집권 이후 급속하게 이슬람화하고 있는데요,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국민 투표, 그리고 터키의 향방을 김형덕 특파원이 짚어드립니다.

<리포트>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터키 최대 도시의 심장과 같은 이곳 한가운데서 이 나라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광장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광장은 터키의 건국이념인 세속주의를 상징합니다.

이 광장에 최근 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새로 건설하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4년 전 터키 정부가 모스크 건립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로 무산됐었는데, 이번에는 발표와 함께 신속하게 건설 중입니다.

지난해 쿠데타가 진압된 이후 조직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인터뷰> 갈립(탁심 광장 관리 사무소) : "지금 터키의 집권 여당이 보수적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설명했지요. 왜 모스크를 세워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의 요구가 있는지 말입니다."

이스탄불의 한 대학교.

단짝인 루메이사와 누르센은 대학 등교 때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도 히잡을 착용합니다.

터키 대학에서는 5년여 전에야 히잡 착용이 허용됐습니다.

<인터뷰> 루메이사(대학교 4학년) : "예전에 제한이 있을 때는 우리 언니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는 고등학생이라서 영향 안 받았는데, 그래도 걱정했죠. 언니들한테 히잡을 쓸까? 학교 다닐까봐 물어보며 고민했었어요."

이들은 종교의 자유 이전에 여성에게 어떤 복장을 입으라 입지마라 하는 규제 자체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인터뷰> 누르셴(대학교 4학년) : "이슬람 여성을 옷으로 판단하지 말고 마음과 하는 일에 따라 판단했으면 합니다. 서양 여자처럼 보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에도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의 득세에 따라 히잡 착용은 허용됐다가 다시 금지된 적도 있습니다.

히잡은 터키에서 이슬람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대학교에서 허용된 이후 공공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됐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허용된 이후 여성 공직자들에 이어 중고생까지 확대된 후 여성 경찰도 착용이 가능해집니다.

급기야 지난 2월 군대 내에서도 히잡 착용을 허용합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니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터키 사회를 이슬람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입장이 부딪칩니다.

<인터뷰> 아흐멧 투란(파티술탄 메흐멧 대학 학장) : "공무원들도 이제 히잡 써도 돼요. 히잡 쓰는 여성이 대학 졸업후 공무원 되고 싶은데 막는 것은 안되잖아요. 인권에 따라 안되잖아요."

<인터뷰> 일케르(아타튀르크 협회) : " 정치적 의도가 있지요. 가족과 주변의 강권으로 강제로 부르카를 입는 사례도 있는데, 여성들이 자유롭게 살 수가 없지요."

교육 행정직 공무원인 류틉씨는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근무 중에 외출을 합니다.

근처 모스크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섭니다.

예전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지난해부터 공무원의 금요일 모스크 참석이 보장되며 이제는 한결 가벼운 마음입니다.

<인터뷰> 류틉(공무원) : "(전에는) 직장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금요기도회 참석을 못했어요. 이제는 그런 제한이 없지요."

이슬람에 뿌리를 둔 터키 정의개발당은 2002년 집권 이후 지속적인 음주 규제 정책을 펴왔습니다.

술 판매 시간과 광고를 제한하고 세금을 대폭 올렸습니다.

<인터뷰> 셀핫(자영업자) : "술값이 올라서 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셔요. 마트하고 술집 가격도 차이가 커서 주로 집에서 마시게 돼요."

일부에선 이런 음주 규제 정책도 이슬람 영향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터키 사회 전반의 이슬람화가 국민 생활 속속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규진균다르(대학 4학년) : "공무원 면접 시험 때 신앙심이 깊은, 여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을 우대하거든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터키는 국민의 90% 이상이 무슬림입니다.

그럼에도 건국 이념으로 세속주의를 엄격하게 내세우면서 종교와 국가를 엄격하게 나누는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차 대전 패전 후 술탄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하며 터키를 재건합니다.

종교의 자유와 함께 서구식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도입한 유일한 중동 국가가 됐습니다.

이후 터키의 세속주의는 '케말리즘’으로 불리면서 터키 사회를 지탱해 왔습니다.

최근 이슬람화가 가속화되면서 세속주의를 상징하는 국부 아타튀르크의 위상조차 흔들려는 시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인터뷰> 무스타파(고등학교 교사) : "아타튀르크를 반대해 온 세력들이 교과서 개정안에서 지도자 아타튀르크에 대해 재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연일 계속돼 온 찬성 지지 집회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지 세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이슬람주의 지지자들이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내용의 개헌안이 통과되면 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9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집니다.

<인터뷰> 레일라(개헌안 '찬성' 지지자) : "집안 영향도 있었지만 자라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개헌안 찬성을 지지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개헌안에 반대하는 쪽의 집회는 훨씬 규모도 적고 소박합니다.

찬성지지 집회의 위세에는 못 미치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보면 찬반이 비등합니다.

개헌안 반대자들은 국부 아타튀르크가 확립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의 공화국이 흔들리고 독재정치가 우려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무스타파(애국당(야당)지부장) : "헌법을 몇 번 바꾸더라도 아타튀르크 공화국을 없애려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 반대합니다."

오래도록 긴장 속에 공존해 온 터키 내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균형추가 국민투표에서 어느 쪽으로 쏠릴지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지리적 역할을 넘어 문화적 완충지대 역할을 해 온 터키가 가는 길을 세계가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김형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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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현장] 세속국가 터키, 이슬람화 가속
    • 입력 2017-04-15 22:14:55
    • 수정2017-04-15 22: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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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터키는 지금 의원내각제를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통과될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9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데요,

터키는 무슬림 인구가 대다수지만 이슬람 국가와는 달리 세속주의를 건국이념으로 채택해 정치와 종교를 엄격하게 분리해 왔습니다.

그런 터키가 에르도안 집권 이후 급속하게 이슬람화하고 있는데요,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국민 투표, 그리고 터키의 향방을 김형덕 특파원이 짚어드립니다.

<리포트>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터키 최대 도시의 심장과 같은 이곳 한가운데서 이 나라의 국부 케말 아타튀르크가 광장을 내려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광장은 터키의 건국이념인 세속주의를 상징합니다.

이 광장에 최근 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새로 건설하는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4년 전 터키 정부가 모스크 건립을 추진하다 거센 반발로 무산됐었는데, 이번에는 발표와 함께 신속하게 건설 중입니다.

지난해 쿠데타가 진압된 이후 조직적인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인터뷰> 갈립(탁심 광장 관리 사무소) : "지금 터키의 집권 여당이 보수적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설명했지요. 왜 모스크를 세워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의 요구가 있는지 말입니다."

이스탄불의 한 대학교.

단짝인 루메이사와 누르센은 대학 등교 때는 물론이고 일상 생활에서도 히잡을 착용합니다.

터키 대학에서는 5년여 전에야 히잡 착용이 허용됐습니다.

<인터뷰> 루메이사(대학교 4학년) : "예전에 제한이 있을 때는 우리 언니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우리는 고등학생이라서 영향 안 받았는데, 그래도 걱정했죠. 언니들한테 히잡을 쓸까? 학교 다닐까봐 물어보며 고민했었어요."

이들은 종교의 자유 이전에 여성에게 어떤 복장을 입으라 입지마라 하는 규제 자체가 잘못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인터뷰> 누르셴(대학교 4학년) : "이슬람 여성을 옷으로 판단하지 말고 마음과 하는 일에 따라 판단했으면 합니다. 서양 여자처럼 보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에도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세력의 득세에 따라 히잡 착용은 허용됐다가 다시 금지된 적도 있습니다.

히잡은 터키에서 이슬람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대학교에서 허용된 이후 공공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됐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허용된 이후 여성 공직자들에 이어 중고생까지 확대된 후 여성 경찰도 착용이 가능해집니다.

급기야 지난 2월 군대 내에서도 히잡 착용을 허용합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니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터키 사회를 이슬람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입장이 부딪칩니다.

<인터뷰> 아흐멧 투란(파티술탄 메흐멧 대학 학장) : "공무원들도 이제 히잡 써도 돼요. 히잡 쓰는 여성이 대학 졸업후 공무원 되고 싶은데 막는 것은 안되잖아요. 인권에 따라 안되잖아요."

<인터뷰> 일케르(아타튀르크 협회) : " 정치적 의도가 있지요. 가족과 주변의 강권으로 강제로 부르카를 입는 사례도 있는데, 여성들이 자유롭게 살 수가 없지요."

교육 행정직 공무원인 류틉씨는 금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근무 중에 외출을 합니다.

근처 모스크에서 열리는 금요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섭니다.

예전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지난해부터 공무원의 금요일 모스크 참석이 보장되며 이제는 한결 가벼운 마음입니다.

<인터뷰> 류틉(공무원) : "(전에는) 직장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금요기도회 참석을 못했어요. 이제는 그런 제한이 없지요."

이슬람에 뿌리를 둔 터키 정의개발당은 2002년 집권 이후 지속적인 음주 규제 정책을 펴왔습니다.

술 판매 시간과 광고를 제한하고 세금을 대폭 올렸습니다.

<인터뷰> 셀핫(자영업자) : "술값이 올라서 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셔요. 마트하고 술집 가격도 차이가 커서 주로 집에서 마시게 돼요."

일부에선 이런 음주 규제 정책도 이슬람 영향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터키 사회 전반의 이슬람화가 국민 생활 속속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규진균다르(대학 4학년) : "공무원 면접 시험 때 신앙심이 깊은, 여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을 우대하거든요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터키는 국민의 90% 이상이 무슬림입니다.

그럼에도 건국 이념으로 세속주의를 엄격하게 내세우면서 종교와 국가를 엄격하게 나누는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해 왔습니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차 대전 패전 후 술탄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하며 터키를 재건합니다.

종교의 자유와 함께 서구식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도입한 유일한 중동 국가가 됐습니다.

이후 터키의 세속주의는 '케말리즘’으로 불리면서 터키 사회를 지탱해 왔습니다.

최근 이슬람화가 가속화되면서 세속주의를 상징하는 국부 아타튀르크의 위상조차 흔들려는 시도가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인터뷰> 무스타파(고등학교 교사) : "아타튀르크를 반대해 온 세력들이 교과서 개정안에서 지도자 아타튀르크에 대해 재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연일 계속돼 온 찬성 지지 집회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지 세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이슬람주의 지지자들이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내용의 개헌안이 통과되면 현 에르도안 대통령은 2029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집니다.

<인터뷰> 레일라(개헌안 '찬성' 지지자) : "집안 영향도 있었지만 자라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됐어요. 저는 개헌안 찬성을 지지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개헌안에 반대하는 쪽의 집회는 훨씬 규모도 적고 소박합니다.

찬성지지 집회의 위세에는 못 미치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보면 찬반이 비등합니다.

개헌안 반대자들은 국부 아타튀르크가 확립한 세속주의와 정교분리 원칙의 공화국이 흔들리고 독재정치가 우려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무스타파(애국당(야당)지부장) : "헌법을 몇 번 바꾸더라도 아타튀르크 공화국을 없애려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 반대합니다."

오래도록 긴장 속에 공존해 온 터키 내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균형추가 국민투표에서 어느 쪽으로 쏠릴지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지리적 역할을 넘어 문화적 완충지대 역할을 해 온 터키가 가는 길을 세계가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김형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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