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아버지를 돌려주세요…KAL기 납북 피해자 가족
입력 2017.05.13 (08:20)
수정 2017.05.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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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월요일은 어버이날이었는데요,
백승주 앵커는 혹시 부모님께 카네이션 드리셨나요?
네.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께 선물했는데요.
그런데 이런 어버이날, 유독 더 가슴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요?
네. 48년 전 KAL기를 탔다 납북된 피해자의 가족들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48년간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내왔다고 하는군요.
네. 납북된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황인철씨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홍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동네 꽃집엔 활기가 돕니다.
손님들을 기다리는 화사하고 싱싱한 카네이션들...
용돈을 쪼개 꽃다발을 사려는 학생들도 눈에 띠는데요.
<인터뷰> 김예원(서울 신수중 1학년) : “어버이날이어서 부모님께 꽃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
<인터뷰> 심민교(서울 신수중 1학년) : “장미꽃이랑 카네이션이랑 안개꽃도 샀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손 편지도 쓴 학생들의 마음은 벌써 부모님께로 향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겨 보고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
그런데 이 어버이날이 되면 더욱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 앞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카네이션 대신 피켓을 든 사람... 납북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입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인도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북한 당국에게 내 아버지의 신병인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인철 씨의 아버지는 무려 48년 째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희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기 위해서 비행기를 탑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륙 후, 10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서 비행기가 납치를 당했어요.”
1969년 12월 11일.
강릉 발 서울 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됐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국제사회도 이를 강하게 비난하자 북한은 납치 66일 만에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습니다.
그런데 인철 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열 한명은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철 씨의 나이는 겨우 두 살...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를 찾았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얘기한 거는... 미국 출장 중으로 크리스마스 때면 돌아오신다고 하는 얘기를 가지고 저는 끊임없이 저희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알게 된 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인철 씨...
그런데 2001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 모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납북된 피해자는 어선의 선원 들을 포함해 500여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가족을 만난 건 겨우 37명.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도 돌아오는 건 생사 확인이 안 되니 기다리란 말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철 씨는 2010년, 국내 납북자 중 처음으로 UN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에 아버지의 사건을 접수 했고 2년 만에 북한 측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아버지는) 강제 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적대 세력에 의한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는 답변이 보내지게 됐고요.”
<인터뷰> 권영민(비영리단체 TNKR(탈북민 교육센터) 간사) : “제가 봤을 때 거짓된 답변으로 계속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좋아서 남는 거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고... 이 사안을 해결할 의지는 북한정권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른 둘 젊은 나이였지만 이제는 팔순의 노인이 됐을 아버지...
그리고 두 살배기였던 아들은 쉰 살이 돼서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는 제 아버지를 만나야 될 권리가 있고요. 저희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저희 가족을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만나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 빼놓고 그냥 같이 목욕하고 싶어요. 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고... 아버지 등의 때도 벗기고.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황인철 씨.
지난 해 부터는 여러 나라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황인철 씨의 간절한 호소가 수많은 봉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인철 씨의 사연이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알려진 건 지난 해 어느 비영리단체의 행사장이었는데요.
호주 출신의 피터 데일리 교수는 그곳에서 인철 씨의 사연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그동안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여러 이슈를 읽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사안만큼은 제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한 데 모아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단기적인 목표는 이 범죄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탈북민에게 무료 영어 교육을 하는 비영리 단체 TNKR도 인철 씨 가족의 얘기를 공론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인터뷰> 케이시 라티크(TNKR 공동대표) : “내가 첫 번째로 그에게 얘기한 것은 국제사회에 얘기하려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학생이 되라... 둘째로, 와서 같이 회의를 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줄 것이다... ”
이 단체는 국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올릴 송환 청원서와 다양한 언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 등을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를 연결해 돕고 있습니다.
인철 씨와 자원봉사자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달 말에는 서울 UN 인권사무소에 인철 씨가 초대됐습니다.
올해 유엔 인권 사무소 연례 보고서에 인철 씨 사례를 싣기로 결정한 폴슨 소장.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의 노력이 다른 납북자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 합니다.
<인터뷰> 시나 폴슨(UN 북한인권사무소 소장) : “황인철 씨 본인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내 전반적인 인권 개선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개인,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철 씨를 포함한 납북 피해자 가족들에게 생이별의 아픔은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좀더 관심을 갖고 돕는다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려는 이들의 바람이 응답을 얻을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은 어버이날이었는데요,
백승주 앵커는 혹시 부모님께 카네이션 드리셨나요?
네.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께 선물했는데요.
그런데 이런 어버이날, 유독 더 가슴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요?
네. 48년 전 KAL기를 탔다 납북된 피해자의 가족들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48년간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내왔다고 하는군요.
네. 납북된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황인철씨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홍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동네 꽃집엔 활기가 돕니다.
손님들을 기다리는 화사하고 싱싱한 카네이션들...
용돈을 쪼개 꽃다발을 사려는 학생들도 눈에 띠는데요.
<인터뷰> 김예원(서울 신수중 1학년) : “어버이날이어서 부모님께 꽃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
<인터뷰> 심민교(서울 신수중 1학년) : “장미꽃이랑 카네이션이랑 안개꽃도 샀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손 편지도 쓴 학생들의 마음은 벌써 부모님께로 향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겨 보고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
그런데 이 어버이날이 되면 더욱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 앞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카네이션 대신 피켓을 든 사람... 납북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입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인도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북한 당국에게 내 아버지의 신병인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인철 씨의 아버지는 무려 48년 째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희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기 위해서 비행기를 탑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륙 후, 10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서 비행기가 납치를 당했어요.”
1969년 12월 11일.
강릉 발 서울 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됐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국제사회도 이를 강하게 비난하자 북한은 납치 66일 만에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습니다.
그런데 인철 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열 한명은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철 씨의 나이는 겨우 두 살...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를 찾았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얘기한 거는... 미국 출장 중으로 크리스마스 때면 돌아오신다고 하는 얘기를 가지고 저는 끊임없이 저희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알게 된 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인철 씨...
그런데 2001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 모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납북된 피해자는 어선의 선원 들을 포함해 500여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가족을 만난 건 겨우 37명.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도 돌아오는 건 생사 확인이 안 되니 기다리란 말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철 씨는 2010년, 국내 납북자 중 처음으로 UN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에 아버지의 사건을 접수 했고 2년 만에 북한 측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아버지는) 강제 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적대 세력에 의한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는 답변이 보내지게 됐고요.”
<인터뷰> 권영민(비영리단체 TNKR(탈북민 교육센터) 간사) : “제가 봤을 때 거짓된 답변으로 계속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좋아서 남는 거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고... 이 사안을 해결할 의지는 북한정권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른 둘 젊은 나이였지만 이제는 팔순의 노인이 됐을 아버지...
그리고 두 살배기였던 아들은 쉰 살이 돼서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는 제 아버지를 만나야 될 권리가 있고요. 저희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저희 가족을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만나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 빼놓고 그냥 같이 목욕하고 싶어요. 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고... 아버지 등의 때도 벗기고.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황인철 씨.
지난 해 부터는 여러 나라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황인철 씨의 간절한 호소가 수많은 봉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인철 씨의 사연이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알려진 건 지난 해 어느 비영리단체의 행사장이었는데요.
호주 출신의 피터 데일리 교수는 그곳에서 인철 씨의 사연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그동안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여러 이슈를 읽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사안만큼은 제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한 데 모아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단기적인 목표는 이 범죄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탈북민에게 무료 영어 교육을 하는 비영리 단체 TNKR도 인철 씨 가족의 얘기를 공론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인터뷰> 케이시 라티크(TNKR 공동대표) : “내가 첫 번째로 그에게 얘기한 것은 국제사회에 얘기하려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학생이 되라... 둘째로, 와서 같이 회의를 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줄 것이다... ”
이 단체는 국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올릴 송환 청원서와 다양한 언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 등을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를 연결해 돕고 있습니다.
인철 씨와 자원봉사자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달 말에는 서울 UN 인권사무소에 인철 씨가 초대됐습니다.
올해 유엔 인권 사무소 연례 보고서에 인철 씨 사례를 싣기로 결정한 폴슨 소장.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의 노력이 다른 납북자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 합니다.
<인터뷰> 시나 폴슨(UN 북한인권사무소 소장) : “황인철 씨 본인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내 전반적인 인권 개선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개인,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철 씨를 포함한 납북 피해자 가족들에게 생이별의 아픔은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좀더 관심을 갖고 돕는다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려는 이들의 바람이 응답을 얻을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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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5-13 08:22:20
- 수정2017-05-13 08:45:43
<앵커 멘트>
지난 월요일은 어버이날이었는데요,
백승주 앵커는 혹시 부모님께 카네이션 드리셨나요?
네.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께 선물했는데요.
그런데 이런 어버이날, 유독 더 가슴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요?
네. 48년 전 KAL기를 탔다 납북된 피해자의 가족들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48년간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내왔다고 하는군요.
네. 납북된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황인철씨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홍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동네 꽃집엔 활기가 돕니다.
손님들을 기다리는 화사하고 싱싱한 카네이션들...
용돈을 쪼개 꽃다발을 사려는 학생들도 눈에 띠는데요.
<인터뷰> 김예원(서울 신수중 1학년) : “어버이날이어서 부모님께 꽃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
<인터뷰> 심민교(서울 신수중 1학년) : “장미꽃이랑 카네이션이랑 안개꽃도 샀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손 편지도 쓴 학생들의 마음은 벌써 부모님께로 향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겨 보고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
그런데 이 어버이날이 되면 더욱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 앞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카네이션 대신 피켓을 든 사람... 납북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입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인도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북한 당국에게 내 아버지의 신병인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인철 씨의 아버지는 무려 48년 째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희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기 위해서 비행기를 탑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륙 후, 10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서 비행기가 납치를 당했어요.”
1969년 12월 11일.
강릉 발 서울 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됐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국제사회도 이를 강하게 비난하자 북한은 납치 66일 만에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습니다.
그런데 인철 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열 한명은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철 씨의 나이는 겨우 두 살...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를 찾았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얘기한 거는... 미국 출장 중으로 크리스마스 때면 돌아오신다고 하는 얘기를 가지고 저는 끊임없이 저희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알게 된 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인철 씨...
그런데 2001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 모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납북된 피해자는 어선의 선원 들을 포함해 500여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가족을 만난 건 겨우 37명.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도 돌아오는 건 생사 확인이 안 되니 기다리란 말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철 씨는 2010년, 국내 납북자 중 처음으로 UN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에 아버지의 사건을 접수 했고 2년 만에 북한 측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아버지는) 강제 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적대 세력에 의한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는 답변이 보내지게 됐고요.”
<인터뷰> 권영민(비영리단체 TNKR(탈북민 교육센터) 간사) : “제가 봤을 때 거짓된 답변으로 계속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좋아서 남는 거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고... 이 사안을 해결할 의지는 북한정권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른 둘 젊은 나이였지만 이제는 팔순의 노인이 됐을 아버지...
그리고 두 살배기였던 아들은 쉰 살이 돼서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는 제 아버지를 만나야 될 권리가 있고요. 저희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저희 가족을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만나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 빼놓고 그냥 같이 목욕하고 싶어요. 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고... 아버지 등의 때도 벗기고.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황인철 씨.
지난 해 부터는 여러 나라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황인철 씨의 간절한 호소가 수많은 봉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인철 씨의 사연이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알려진 건 지난 해 어느 비영리단체의 행사장이었는데요.
호주 출신의 피터 데일리 교수는 그곳에서 인철 씨의 사연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그동안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여러 이슈를 읽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사안만큼은 제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한 데 모아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단기적인 목표는 이 범죄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탈북민에게 무료 영어 교육을 하는 비영리 단체 TNKR도 인철 씨 가족의 얘기를 공론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인터뷰> 케이시 라티크(TNKR 공동대표) : “내가 첫 번째로 그에게 얘기한 것은 국제사회에 얘기하려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학생이 되라... 둘째로, 와서 같이 회의를 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줄 것이다... ”
이 단체는 국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올릴 송환 청원서와 다양한 언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 등을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를 연결해 돕고 있습니다.
인철 씨와 자원봉사자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달 말에는 서울 UN 인권사무소에 인철 씨가 초대됐습니다.
올해 유엔 인권 사무소 연례 보고서에 인철 씨 사례를 싣기로 결정한 폴슨 소장.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의 노력이 다른 납북자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 합니다.
<인터뷰> 시나 폴슨(UN 북한인권사무소 소장) : “황인철 씨 본인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내 전반적인 인권 개선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개인,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철 씨를 포함한 납북 피해자 가족들에게 생이별의 아픔은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좀더 관심을 갖고 돕는다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려는 이들의 바람이 응답을 얻을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은 어버이날이었는데요,
백승주 앵커는 혹시 부모님께 카네이션 드리셨나요?
네.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께 선물했는데요.
그런데 이런 어버이날, 유독 더 가슴 아파하는 분들이 계시다면서요?
네. 48년 전 KAL기를 탔다 납북된 피해자의 가족들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48년간 소식도 잘 모르고 지내왔다고 하는군요.
네. 납북된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황인철씨와 그를 돕는 사람들을 홍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어버이날인 지난 8일.
동네 꽃집엔 활기가 돕니다.
손님들을 기다리는 화사하고 싱싱한 카네이션들...
용돈을 쪼개 꽃다발을 사려는 학생들도 눈에 띠는데요.
<인터뷰> 김예원(서울 신수중 1학년) : “어버이날이어서 부모님께 꽃 선물 드리려고 왔어요. ”
<인터뷰> 심민교(서울 신수중 1학년) : “장미꽃이랑 카네이션이랑 안개꽃도 샀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쑥스럽지만 사랑한다는 손 편지도 쓴 학생들의 마음은 벌써 부모님께로 향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겨 보고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
그런데 이 어버이날이 되면 더욱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 앞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로 카네이션 대신 피켓을 든 사람... 납북 피해자 가족 황인철 씨입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인도주의 원칙과 절차에 따라 북한 당국에게 내 아버지의 신병인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인철 씨의 아버지는 무려 48년 째 북한에 억류돼 있습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희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기 위해서 비행기를 탑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륙 후, 10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서 비행기가 납치를 당했어요.”
1969년 12월 11일.
강릉 발 서울 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 납치됐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이 타고 있었는데요.
인철 씨의 아버지 황원 씨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국제사회도 이를 강하게 비난하자 북한은 납치 66일 만에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습니다.
그런데 인철 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열 한명은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철 씨의 나이는 겨우 두 살...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를 찾았을 때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얘기한 거는... 미국 출장 중으로 크리스마스 때면 돌아오신다고 하는 얘기를 가지고 저는 끊임없이 저희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납북 사실을 알게 된 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인철 씨...
그런데 2001년 남북이산가족 상봉 때 아버지와 함께 납북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 모녀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납북된 피해자는 어선의 선원 들을 포함해 500여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가족을 만난 건 겨우 37명.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도 돌아오는 건 생사 확인이 안 되니 기다리란 말 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철 씨는 2010년, 국내 납북자 중 처음으로 UN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에 아버지의 사건을 접수 했고 2년 만에 북한 측의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아버지는) 강제 실종에 해당되지 않는다, 인도주의적 사안이 아니다, 북한의 적대 세력에 의한 대결 책동의 산물이라고 하는 답변이 보내지게 됐고요.”
<인터뷰> 권영민(비영리단체 TNKR(탈북민 교육센터) 간사) : “제가 봤을 때 거짓된 답변으로 계속 일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좋아서 남는 거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얘기를 했고... 이 사안을 해결할 의지는 북한정권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서른 둘 젊은 나이였지만 이제는 팔순의 노인이 됐을 아버지...
그리고 두 살배기였던 아들은 쉰 살이 돼서도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인터뷰> 황인철(KAL기 납북 피해 가족) : “저는 제 아버지를 만나야 될 권리가 있고요. 저희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로 저희 가족을 만날 권리가 있습니다. (만나면)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은 다 빼놓고 그냥 같이 목욕하고 싶어요. 내가 아들이고, 아버지고... 아버지 등의 때도 벗기고.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나도 아버지가 있구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황인철 씨.
지난 해 부터는 여러 나라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황인철 씨의 간절한 호소가 수많은 봉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인철 씨의 사연이 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알려진 건 지난 해 어느 비영리단체의 행사장이었는데요.
호주 출신의 피터 데일리 교수는 그곳에서 인철 씨의 사연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그동안 한국과 북한에 관련된 여러 이슈를 읽어왔기 때문에 당연히 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사안만큼은 제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관련된 정보들을 한 데 모아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피터 데일리(숙명여대 교수) : “단기적인 목표는 이 범죄가 잊혀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탈북민에게 무료 영어 교육을 하는 비영리 단체 TNKR도 인철 씨 가족의 얘기를 공론화하기 위해 적극 나섰습니다.
<인터뷰> 케이시 라티크(TNKR 공동대표) : “내가 첫 번째로 그에게 얘기한 것은 국제사회에 얘기하려면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학생이 되라... 둘째로, 와서 같이 회의를 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줄 것이다... ”
이 단체는 국제 온라인 청원사이트에 올릴 송환 청원서와 다양한 언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일 등을 다양한 국적의 전문가를 연결해 돕고 있습니다.
인철 씨와 자원봉사자의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달 말에는 서울 UN 인권사무소에 인철 씨가 초대됐습니다.
올해 유엔 인권 사무소 연례 보고서에 인철 씨 사례를 싣기로 결정한 폴슨 소장.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의 노력이 다른 납북자 가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 합니다.
<인터뷰> 시나 폴슨(UN 북한인권사무소 소장) : “황인철 씨 본인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해 오셨기 때문에 그 노력과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 내 전반적인 인권 개선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이 사안과 관련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개인, 단체와 지속적으로 연락할 것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철 씨를 포함한 납북 피해자 가족들에게 생이별의 아픔은 고스란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좀더 관심을 갖고 돕는다면, 가족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려는 이들의 바람이 응답을 얻을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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