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민간 교류 역할 ‘반공포로’ 현동화 씨 국민훈장 받아
입력 2017.10.24 (19:34)
수정 2017.10.2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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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주인도 대사대리는 24일 인도 수도 뉴델리 한국대사관에서 현동화(85) 재인도한인회 고문에게 국민국장 석류장을 수여했다.
현 고문은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고 강원도 화천에서 국군에 귀순해 '반공포로'가 됐다.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멕시코로 가기를 희망했다가 결국 인도에 남았다.
현 고문은 중립국 행을 택한 계기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묘사하듯 이념적 고려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멕시코에 가면 나중에 이웃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도 다니고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중립국 행을 기다리던 80여명의 반공포로 대부분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난 후에도 애초 포로 수용 의사를 밝혔던 멕시코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현 고문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반공포로 동료 3명과 함께 결국 인도에 정착하게 됐다.
인도에 귀화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1962년 뉴델리에 한국 총영사관이 생기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1964년부터 2년간 총영사관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현 고문은 1984년부터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내며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는 등 양국 민간 교류와 인도 한인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현 고문은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고 강원도 화천에서 국군에 귀순해 '반공포로'가 됐다.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멕시코로 가기를 희망했다가 결국 인도에 남았다.
현 고문은 중립국 행을 택한 계기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묘사하듯 이념적 고려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멕시코에 가면 나중에 이웃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도 다니고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중립국 행을 기다리던 80여명의 반공포로 대부분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난 후에도 애초 포로 수용 의사를 밝혔던 멕시코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현 고문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반공포로 동료 3명과 함께 결국 인도에 정착하게 됐다.
인도에 귀화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1962년 뉴델리에 한국 총영사관이 생기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1964년부터 2년간 총영사관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현 고문은 1984년부터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내며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는 등 양국 민간 교류와 인도 한인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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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10-24 19: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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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주인도 대사대리는 24일 인도 수도 뉴델리 한국대사관에서 현동화(85) 재인도한인회 고문에게 국민국장 석류장을 수여했다.
현 고문은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고 강원도 화천에서 국군에 귀순해 '반공포로'가 됐다.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멕시코로 가기를 희망했다가 결국 인도에 남았다.
현 고문은 중립국 행을 택한 계기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묘사하듯 이념적 고려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멕시코에 가면 나중에 이웃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도 다니고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중립국 행을 기다리던 80여명의 반공포로 대부분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난 후에도 애초 포로 수용 의사를 밝혔던 멕시코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현 고문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반공포로 동료 3명과 함께 결국 인도에 정착하게 됐다.
인도에 귀화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1962년 뉴델리에 한국 총영사관이 생기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1964년부터 2년간 총영사관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현 고문은 1984년부터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내며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는 등 양국 민간 교류와 인도 한인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현 고문은 193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인민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갖고 강원도 화천에서 국군에 귀순해 '반공포로'가 됐다. 그는 휴전 협정 체결 후 한국이나 북한이 아닌 멕시코로 가기를 희망했다가 결국 인도에 남았다.
현 고문은 중립국 행을 택한 계기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묘사하듯 이념적 고려는 아니었다며 오히려 "멕시코에 가면 나중에 이웃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도 다니고 더 공부할 수 있겠다"는 현실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도에서 중립국 행을 기다리던 80여명의 반공포로 대부분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떠난 후에도 애초 포로 수용 의사를 밝혔던 멕시코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현 고문은 지금은 고인이 된 반공포로 동료 3명과 함께 결국 인도에 정착하게 됐다.
인도에 귀화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1962년 뉴델리에 한국 총영사관이 생기면서 한국 국적도 취득하고 1964년부터 2년간 총영사관 직원으로도 근무했다.
현 고문은 1984년부터 20년간 재인도한인회장을 지내며 '한국 기금'을 만들어 한국어 과정을 마친 인도 학생의 연수를 지원하는 등 양국 민간 교류와 인도 한인 사회의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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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기자 sweep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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