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8624명 ‘성명서 선언서’ 원본 107년 만에 발견

입력 2017.11.13 (10:55) 수정 2017.11.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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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8624명 참여 ‘성명서 선언서’ 원본 107년 만에 발견

독립운동 8624명 참여 ‘성명서 선언서’ 원본 107년 만에 발견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주도로 1910년 세계에 독립 의지를 천명했던 ‘성명회(聲明會) 선언서’원본이 107년 만에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가 밝혔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성명회 선언서’ 원본.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성명회 선언서’ 원본.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성명회 선언서' 원본은, 지난달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더채널’의 김광만 PD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명회 선언서'는 지금까지 기록과 입소문으로만 전해져왔는데,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선언서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인 8624명이 서명한 것으로 '3·1독립선언서'와 비슷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강조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의 선언서에는 8624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록이 112장을 차지한다.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의 선언서에는 8624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록이 112장을 차지한다.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는 이상설과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을 비롯해 이범윤 김학만 등이 함께 뜻을 모은 독립운동단체다. 1910년 8월 강제병합이 전해지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학교에 모인 한인들은 ‘성명회’를 결성하고 사흘 뒤 성명서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두 달 뒤, 8624명이란 인원이 참여한 성명서가 연해주에서 미국 땅으로 보내졌다.

보재 이상설보재 이상설

이상설이 집필하고 유인석이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선언서는 성명회 조직 후 첫 사업이었다. 성명회는 독립운동을 위해선 서구 열강의 인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일제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음을 규탄했다.

또 하나 놀라운 건 '성명회 선언서'가 당대 정파나 사상을 초월했다는 점이다. 서명록엔 훗날 대한독립군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을 비롯해 김치보 유진율 이갑 등 다양한 인사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당시 연해주는 계파 분열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일반 백성도 고려인파 경성파 함경도파 평안도파 등으로 갈라져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이석형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이상설 유인석 선생 등은 구한말부터 곧은 절개를 지켰던 선비의식이 투철했던 독립운동가”라며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투신하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성명서에 담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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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11-13 18: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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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 주도로 1910년 세계에 독립 의지를 천명했던 ‘성명회(聲明會) 선언서’원본이 107년 만에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석형)가 밝혔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성명회 선언서’ 원본.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성명회 선언서' 원본은, 지난달 근대사 다큐멘터리 제작사‘더채널’의 김광만 PD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성명회 선언서'는 지금까지 기록과 입소문으로만 전해져왔는데, 원본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선언서는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인 8624명이 서명한 것으로 '3·1독립선언서'와 비슷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강조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의 선언서에는 8624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록이 112장을 차지한다. 김광만 PD·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 제공
1910년 한일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는 이상설과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유인석을 비롯해 이범윤 김학만 등이 함께 뜻을 모은 독립운동단체다. 1910년 8월 강제병합이 전해지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학교에 모인 한인들은 ‘성명회’를 결성하고 사흘 뒤 성명서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두 달 뒤, 8624명이란 인원이 참여한 성명서가 연해주에서 미국 땅으로 보내졌다.

보재 이상설
이상설이 집필하고 유인석이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선언서는 성명회 조직 후 첫 사업이었다. 성명회는 독립운동을 위해선 서구 열강의 인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일제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음을 규탄했다.

또 하나 놀라운 건 '성명회 선언서'가 당대 정파나 사상을 초월했다는 점이다. 서명록엔 훗날 대한독립군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을 비롯해 김치보 유진율 이갑 등 다양한 인사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당시 연해주는 계파 분열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일반 백성도 고려인파 경성파 함경도파 평안도파 등으로 갈라져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이석형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이상설 유인석 선생 등은 구한말부터 곧은 절개를 지켰던 선비의식이 투철했던 독립운동가”라며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투신하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성명서에 담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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