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베일 벗나…‘공주 송산리 고분군’ 30년 만에 발굴
입력 2018.01.29 (08:16)
수정 2018.01.29 (08: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data/news/2018/01/29/3599455_b2N.jpg)
웅진도읍기 백제(475∼538)의 왕릉과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이 30년 만에 발굴된다. 29일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문화재청에 따르면 1988년 송산리 고분군 조사에서 확인된 적석 유구(積돌로 쌓은 건물의 자취) 두 곳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2월 말부터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송산리 고분군에는 구릉을 따라 무령왕릉을 포함해 백제 고분 7기가 있다. 계곡을 사이로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이 가운데 1∼6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됐고,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1∼5호분은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이다.
이번에 조사가 이뤄지는 곳은 무령왕릉과 모형전시관 사이에 있는 A지구 1천20㎡와 1∼4호분 북쪽 D지구 625㎡이다. 나무로 덮여 있는 A지구에서는 30년 전 조사에서 한 변의 길이가 14.2m로 추정되는 사각형 석축의 일부가 나왔다. 당시 조사단은 신목을 세울 수 있는 기초시설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유적을 제례의식과 관련된 시설로 판단했다.
봉분 형태로 복원된 D지구에서는 폭이 1단 15m, 2단 11.4m, 3단 6.6m인 계단형 적석 유구가 드러났다. 목관과 같은 매장시설은 없었고, 세발토기와 옹관 조각 등이 수습됐다.
이 유구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2호분이나 4호분과 유사해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했을 때 목숨을 잃은 백제 개로왕의 가묘(임시로 조성한 무덤)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제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종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장은 "30년 전에는 시굴조사 형태여서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적석 유구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적석 유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송산리 고분군의 정비와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한다"며 "발굴조사를 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data/fckeditor/new/image/AKR20180128047000005_02_i_org.jpg)
한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내달 8일 백제시대 제단시설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백제시대의 제의', '백제시대의 제단시설', '제단시설 조사 방향'에 대한 연구자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송산리 고분군에는 구릉을 따라 무령왕릉을 포함해 백제 고분 7기가 있다. 계곡을 사이로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이 가운데 1∼6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됐고,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1∼5호분은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이다.
이번에 조사가 이뤄지는 곳은 무령왕릉과 모형전시관 사이에 있는 A지구 1천20㎡와 1∼4호분 북쪽 D지구 625㎡이다. 나무로 덮여 있는 A지구에서는 30년 전 조사에서 한 변의 길이가 14.2m로 추정되는 사각형 석축의 일부가 나왔다. 당시 조사단은 신목을 세울 수 있는 기초시설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유적을 제례의식과 관련된 시설로 판단했다.
봉분 형태로 복원된 D지구에서는 폭이 1단 15m, 2단 11.4m, 3단 6.6m인 계단형 적석 유구가 드러났다. 목관과 같은 매장시설은 없었고, 세발토기와 옹관 조각 등이 수습됐다.
이 유구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2호분이나 4호분과 유사해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했을 때 목숨을 잃은 백제 개로왕의 가묘(임시로 조성한 무덤)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제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종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장은 "30년 전에는 시굴조사 형태여서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적석 유구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적석 유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송산리 고분군의 정비와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한다"며 "발굴조사를 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data/fckeditor/new/image/AKR20180128047000005_02_i_org.jpg)
한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내달 8일 백제시대 제단시설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백제시대의 제의', '백제시대의 제단시설', '제단시설 조사 방향'에 대한 연구자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백제 베일 벗나…‘공주 송산리 고분군’ 30년 만에 발굴
-
- 입력 2018-01-29 08:16:39
- 수정2018-01-29 08:44:13
![](/data/news/2018/01/29/3599455_b2N.jpg)
웅진도읍기 백제(475∼538)의 왕릉과 왕릉급 무덤이 모여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이 30년 만에 발굴된다. 29일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문화재청에 따르면 1988년 송산리 고분군 조사에서 확인된 적석 유구(積돌로 쌓은 건물의 자취) 두 곳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한 발굴조사가 2월 말부터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송산리 고분군에는 구릉을 따라 무령왕릉을 포함해 백제 고분 7기가 있다. 계곡을 사이로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이 가운데 1∼6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됐고,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1∼5호분은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이다.
이번에 조사가 이뤄지는 곳은 무령왕릉과 모형전시관 사이에 있는 A지구 1천20㎡와 1∼4호분 북쪽 D지구 625㎡이다. 나무로 덮여 있는 A지구에서는 30년 전 조사에서 한 변의 길이가 14.2m로 추정되는 사각형 석축의 일부가 나왔다. 당시 조사단은 신목을 세울 수 있는 기초시설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유적을 제례의식과 관련된 시설로 판단했다.
봉분 형태로 복원된 D지구에서는 폭이 1단 15m, 2단 11.4m, 3단 6.6m인 계단형 적석 유구가 드러났다. 목관과 같은 매장시설은 없었고, 세발토기와 옹관 조각 등이 수습됐다.
이 유구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2호분이나 4호분과 유사해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했을 때 목숨을 잃은 백제 개로왕의 가묘(임시로 조성한 무덤)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제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종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장은 "30년 전에는 시굴조사 형태여서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적석 유구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적석 유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송산리 고분군의 정비와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한다"며 "발굴조사를 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data/fckeditor/new/image/AKR20180128047000005_02_i_org.jpg)
한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내달 8일 백제시대 제단시설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백제시대의 제의', '백제시대의 제단시설', '제단시설 조사 방향'에 대한 연구자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일부인 송산리 고분군에는 구릉을 따라 무령왕릉을 포함해 백제 고분 7기가 있다. 계곡을 사이로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이 가운데 1∼6호분은 일제강점기에 조사됐고,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1∼5호분은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이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이다.
이번에 조사가 이뤄지는 곳은 무령왕릉과 모형전시관 사이에 있는 A지구 1천20㎡와 1∼4호분 북쪽 D지구 625㎡이다. 나무로 덮여 있는 A지구에서는 30년 전 조사에서 한 변의 길이가 14.2m로 추정되는 사각형 석축의 일부가 나왔다. 당시 조사단은 신목을 세울 수 있는 기초시설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이 유적을 제례의식과 관련된 시설로 판단했다.
봉분 형태로 복원된 D지구에서는 폭이 1단 15m, 2단 11.4m, 3단 6.6m인 계단형 적석 유구가 드러났다. 목관과 같은 매장시설은 없었고, 세발토기와 옹관 조각 등이 수습됐다.
이 유구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2호분이나 4호분과 유사해 고구려가 한성을 함락했을 때 목숨을 잃은 백제 개로왕의 가묘(임시로 조성한 무덤)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제사시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종수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장은 "30년 전에는 시굴조사 형태여서 제대로 된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로 인해 적석 유구에 대한 논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적석 유구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송산리 고분군의 정비와 복원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한다"며 "발굴조사를 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data/fckeditor/new/image/AKR20180128047000005_02_i_org.jpg)
한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은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앞서 내달 8일 백제시대 제단시설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백제시대의 제의', '백제시대의 제단시설', '제단시설 조사 방향'에 대한 연구자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
이근우 기자 lkw@kbs.co.kr
이근우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