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주석 차관 ‘5·18 왜곡’ 조직서 활동

입력 2018.02.07 (23:03) 수정 2018.02.07 (23: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KBS의 단독보도입니다.

현 정부 국방부 차관이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군이 만든 비공개 조직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조직은 1988년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구성된 것으로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진실을 숨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곽선정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 1988년, 국회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국방부는 비밀리에 대응 조직을 만듭니다.

발족일인 5월 11일을 따라 이름 지은 '511연구위원회'입니다.

KBS가 입수한 당시 실무위원 명단입니다.

육군과 보안사, 한국국방연구원 등에서 14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명단을 보면 눈에 띄는 이름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국방연구원, KIDA의 서주석 연구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현재 국방부 차관입니다.

문안 검토와 발표문 작성을 맡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서 차관은 국방연구원, KIDA에서 '대국회 광주문제 대책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고, 511연구회에서도 그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해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각각 59쪽, 46쪽인 두 문서를 분석했습니다.

"시위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적 자위권 행사가 불가피", "사태 해결이라는 명목하에 정치적으로 희생돼 군의 사기와 명예가 훼손되서는 안된다" 등 군의 잔혹한 진압과 살상 행위를 합리화한 논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처럼 두 보고서의 18쪽이 복사한 것처럼 비슷합니다.

왜곡 사례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로 시민 40여 명이 사망했지만, 두 문서는 이 같은 사실은 숨기고, 시민군이 사격을 가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 차관은 당시 입사 2년만에 자의와 무관하게 511연구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단독] 서주석 차관 ‘5·18 왜곡’ 조직서 활동
    • 입력 2018-02-07 23:04:48
    • 수정2018-02-07 23:29:45
    뉴스라인 W
[앵커]

KBS의 단독보도입니다.

현 정부 국방부 차관이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군이 만든 비공개 조직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조직은 1988년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구성된 것으로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진실을 숨기는 역할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곽선정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지난 1988년, 국회의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청문회를 앞두고 당시 국방부는 비밀리에 대응 조직을 만듭니다.

발족일인 5월 11일을 따라 이름 지은 '511연구위원회'입니다.

KBS가 입수한 당시 실무위원 명단입니다.

육군과 보안사, 한국국방연구원 등에서 14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명단을 보면 눈에 띄는 이름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국방연구원, KIDA의 서주석 연구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현재 국방부 차관입니다.

문안 검토와 발표문 작성을 맡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서 차관은 국방연구원, KIDA에서 '대국회 광주문제 대책안'을 만드는 데 참여했고, 511연구회에서도 그 내용을 고스란히 반영해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각각 59쪽, 46쪽인 두 문서를 분석했습니다.

"시위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적 자위권 행사가 불가피", "사태 해결이라는 명목하에 정치적으로 희생돼 군의 사기와 명예가 훼손되서는 안된다" 등 군의 잔혹한 진압과 살상 행위를 합리화한 논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처럼 두 보고서의 18쪽이 복사한 것처럼 비슷합니다.

왜곡 사례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로 시민 40여 명이 사망했지만, 두 문서는 이 같은 사실은 숨기고, 시민군이 사격을 가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서 차관은 당시 입사 2년만에 자의와 무관하게 511연구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