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남북의 창’이 바라본 남북 관계 30년

입력 2018.03.10 (08:08) 수정 2018.03.10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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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곳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남북관계 전시관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7.4 남북공동성명 등 남북 간 화해와 갈등의 역사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는데요.

<남북의창>도 1989년 문을 연 이래 30년 간 북한의 현실과 남북 관계 현안들을 시청자 여러분께 소상히 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그동안 <남북의창>이 전한 역사적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남북의창>의 주인, 시청자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이다솔 리포텁니다.

[리포트]

1989년 3월 14일. 국내 대표 북한 전문 프로그램 <남북의 창>이 첫 전파를 탔습니다.

남북의 창이 처음 주목한 곳은 헝가리.

동유럽 공산권 블록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기, 공산 국가인 헝가리의 교육제도를 현지 르포로 전하고 북한의 교육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北 학생 : "(너는 무엇을 위하여 영어를 배우니?) 나는 조선 혁명을 위하여 영어를 배웁니다."]

이후 남북의 창은 본격적으로 남북 관계 주요 순간들을 전달했습니다.

분단 이후 55년 만에 처음 이뤄진 1차 남북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북측과 일정을 협의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측 선발대의 방북 활동 등 준비 과정부터 자세히 전달하고,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을 노래로 옮긴 가수 안치환을 찾아 소회도 들어봤습니다.

[안치환/가수 :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는 남과 북은 동반자이자, 동행의 벗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담은 10.3 합의가 타결되면서 성사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남북의 창은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본 이산가족과 납북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박근균/납북자 가족 : "납북자 가족들의 첫째 희망은 생사 확인, 둘째는 상봉. "]

금강산 유람선의 역사적 첫 출항 등 남북 교류 현장에도 함께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가족 : "우리 아들 잘 갔다오너라. 무사히 도착해라."]

당시 800여 명의 관광객을 태운 금강호가 북방한계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 "뭐라고 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어요. 참 속이 이상합니다. 잠도 안 오고..."]

우리측이 전기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개성공단 조성사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추진 4년 만에 첫 제품을 생산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개성공단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는 소식 전해 드립니다.

경색된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남북 3대 경협사업의 하나인 개성공단 사업 과정은 물론, 각종 민간 교류 현장도 카메라에 담으며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힘을 보탰습니다.

남북의 창은 김일성,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김씨 일가의 권력 세습 과정도 조명했습니다.

[조선중앙TV : "김정일 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2주 연속 특집 방송을 편성하고, 김정일의 일대기부터 김정은 시대 권력 지형, 남북 관계 재편까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남북의 창은 일반적인 보도 뉴스가 전하기 어려운 심층보도에 해당을 하고 분석을 곁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남북관계 그 다음에 북한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게 사실이고요. 그러기 때문에 남북의창이 프라임 타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보도에 대한 신뢰성과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거죠."]

북한의 잇단 군사적 도발과 한반도 갈등의 역사도 주목했습니다.

["53년 휴전협정 이후 첫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50대 여성이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천안함 침몰사태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북한이..."]

이처럼 지난 30년 간 남북관계사의 중요 순간순간을 기록한 남북의 창.

세계 곳곳에서 촬영된 현지 르포는 때로는 북한의 실상을, 때로는 분단국가의 참상을 생생히 전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소현정/KBS 기자 : "22살 꽃 다운 나이에 산화한 고 서정우 하사의 전사지입니다. 소나무에 박힌 서하사의 모포가 그날의 충격과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현택/KBS 기자 : ["지금 제 뒤로 보이는 곳이 북한의 평안북도 청수군입니다. 공장들은 가동이 중단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 역력합니다."]

[강나루/KBS 기자 :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경기장 건설이 한창입니다. 바로 길 건너편에 북한 노동자들을 위한 컨테이너 숙소가 마련돼 있습니다."]

탈북민을 통해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코너도 오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혜영의 북녘 소식>은 쉽고 흥미로운 주제로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김혜영/탈북민 출신 방송인 : "북쪽에서는요. 퉁퉁한 몸매에 적당한 키, 둥그스름한 얼굴을 선호하고 있죠. (북한에서는 어떤 여배우를 북한 미인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여배우로 든다면요. 1987년도에 도라지꽃으로 최우수여배우상을 받았던 오미란 씨를 들 수 있죠."]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탈북민들을 소개했던 <꿈을 심는 사람들>과 <나도 한국인>.

[박수현/탈북 한의사 1호 : "한국에서는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하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많이 어려웠습니다."]

통일에 대비하는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는 <통일로 미래로>의 모태가 되었던 코너이기도 합니다.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는 활동을 통해 주목받은 유해발굴감식단과,

[윤필상/병장/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가볍게 생각할 사업이 아니구나, 정말 숭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해야겠다..."]

대북 방송의 산증인, 오승룡 선생의 사명감과 열정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오승룡/원로 성우/83세 : "김정일의 장남이 피살당했는데, 쉬쉬한다고 주민들이 모르겠는가..."]

유명 인사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습니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남북의 창을 통해 북한과 김정은의 실상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태영호/前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 : "북한 주민들은 전혀 몰라요. 외부에서 알려줘서 그들이 마음에서 기둥을 허물어버려야 합니다. 기득권 세력이 김정은을 반대해서 인민들과 같이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남북의 창은 시대 상황에 맞춰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2000년 대 초 <북한 리포트>로 잠시 이름을 바꾸고 남북방송교류 코너도 신설했습니다.

KBS가 기획하고,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촬영한 <지금 북한은>이 대표적입니다.

[백운기/KBS 기자/前 남북의 창 진행자 :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에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 취재팀이 북한에 직접 가서 취재도 하고 영상도 담고 그렇게 하면서 훨씬 더 공급할 수 있는 영상도 많아지고.. 좀 더 북한의 실상을 우리 시각으로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자. 그런 차원에서 이름도 북한 리포트로 바꾸고 북한 현지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좀 더 많이 내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처럼 형식에 변화를 주거나 잠시 이름을 바꾼 적도 있지만 남북의창이 지난 30년 꾸준히 방송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오랜 기간 프로그램을 봐주신 시청자를 직접 찾아 어떤 방송을 바라시는지 들어봤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남북의 창을 꾸준히 시청해 왔다는 채규식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북한과 남북 관계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6.25의 아픔과 개성이 고향인 아내 때문입니다.

이미경 할머니는 지금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미경/76세/남북의 창 시청자 : "1.4 후퇴 때 그 때 제 나이가 여덟 살이었거든요. 그런데 외할머니 한 분하고 이모 한 분이 못 나오셨어요. 고통 받고 힘들게 살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서 더 유심히 이제 남북의 창을 보게 됐죠."]

북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습관처럼 시청하게 된 남북의 창.

요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에 마음이 들뜹니다.

[채규식/82세/남북의 창 시청자 : "그동안 핵실험하고 미사일 쏘고 했던 북한이 이번 평창올림픽을 기해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여든이 넘었는데 우리가 죽기 전에 남북 통일 되는 것 한번 보고 죽는 것이 원이 없다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창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채규식 할아버지. 열혈 시청자로서 남북의 창에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채규식/82세/남북의 창 시청자 : "평양 밖에 있는 주민들의 실생활을 좀 보여주셨으면 고맙겠고요. 좀 더 생생한 내용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30년간 남북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던 남북의 창. 시청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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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남북의 창’이 바라본 남북 관계 30년
    • 입력 2018-03-10 08:34:38
    • 수정2018-03-10 08:54:55
    남북의 창
[앵커]

이곳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남북 관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남북관계 전시관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7.4 남북공동성명 등 남북 간 화해와 갈등의 역사가 빼곡하게 기록돼 있는데요.

<남북의창>도 1989년 문을 연 이래 30년 간 북한의 현실과 남북 관계 현안들을 시청자 여러분께 소상히 전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그동안 <남북의창>이 전한 역사적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남북의창>의 주인, 시청자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이다솔 리포텁니다.

[리포트]

1989년 3월 14일. 국내 대표 북한 전문 프로그램 <남북의 창>이 첫 전파를 탔습니다.

남북의 창이 처음 주목한 곳은 헝가리.

동유럽 공산권 블록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기, 공산 국가인 헝가리의 교육제도를 현지 르포로 전하고 북한의 교육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北 학생 : "(너는 무엇을 위하여 영어를 배우니?) 나는 조선 혁명을 위하여 영어를 배웁니다."]

이후 남북의 창은 본격적으로 남북 관계 주요 순간들을 전달했습니다.

분단 이후 55년 만에 처음 이뤄진 1차 남북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북측과 일정을 협의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측 선발대의 방북 활동 등 준비 과정부터 자세히 전달하고,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을 노래로 옮긴 가수 안치환을 찾아 소회도 들어봤습니다.

[안치환/가수 :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함께 갈 수 있는 남과 북은 동반자이자, 동행의 벗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담은 10.3 합의가 타결되면서 성사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남북의 창은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본 이산가족과 납북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박근균/납북자 가족 : "납북자 가족들의 첫째 희망은 생사 확인, 둘째는 상봉. "]

금강산 유람선의 역사적 첫 출항 등 남북 교류 현장에도 함께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가족 : "우리 아들 잘 갔다오너라. 무사히 도착해라."]

당시 800여 명의 관광객을 태운 금강호가 북방한계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 : "뭐라고 말로 다 표현을 못하겠어요. 참 속이 이상합니다. 잠도 안 오고..."]

우리측이 전기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개성공단 조성사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추진 4년 만에 첫 제품을 생산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개성공단이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는 소식 전해 드립니다.

경색된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남북 3대 경협사업의 하나인 개성공단 사업 과정은 물론, 각종 민간 교류 현장도 카메라에 담으며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힘을 보탰습니다.

남북의 창은 김일성,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김씨 일가의 권력 세습 과정도 조명했습니다.

[조선중앙TV : "김정일 동지께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2주 연속 특집 방송을 편성하고, 김정일의 일대기부터 김정은 시대 권력 지형, 남북 관계 재편까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남북의 창은 일반적인 보도 뉴스가 전하기 어려운 심층보도에 해당을 하고 분석을 곁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남북관계 그 다음에 북한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게 사실이고요. 그러기 때문에 남북의창이 프라임 타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보도에 대한 신뢰성과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거죠."]

북한의 잇단 군사적 도발과 한반도 갈등의 역사도 주목했습니다.

["53년 휴전협정 이후 첫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금강산 관광에 나선 50대 여성이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숨졌습니다. 천안함 침몰사태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발표를 하지 않고 있는 북한이..."]

이처럼 지난 30년 간 남북관계사의 중요 순간순간을 기록한 남북의 창.

세계 곳곳에서 촬영된 현지 르포는 때로는 북한의 실상을, 때로는 분단국가의 참상을 생생히 전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소현정/KBS 기자 : "22살 꽃 다운 나이에 산화한 고 서정우 하사의 전사지입니다. 소나무에 박힌 서하사의 모포가 그날의 충격과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현택/KBS 기자 : ["지금 제 뒤로 보이는 곳이 북한의 평안북도 청수군입니다. 공장들은 가동이 중단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 역력합니다."]

[강나루/KBS 기자 :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경기장 건설이 한창입니다. 바로 길 건너편에 북한 노동자들을 위한 컨테이너 숙소가 마련돼 있습니다."]

탈북민을 통해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는 코너도 오랜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혜영의 북녘 소식>은 쉽고 흥미로운 주제로 북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습니다.

[김혜영/탈북민 출신 방송인 : "북쪽에서는요. 퉁퉁한 몸매에 적당한 키, 둥그스름한 얼굴을 선호하고 있죠. (북한에서는 어떤 여배우를 북한 미인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여배우로 든다면요. 1987년도에 도라지꽃으로 최우수여배우상을 받았던 오미란 씨를 들 수 있죠."]

남한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탈북민들을 소개했던 <꿈을 심는 사람들>과 <나도 한국인>.

[박수현/탈북 한의사 1호 : "한국에서는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하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많이 어려웠습니다."]

통일에 대비하는 생생한 현장을 소개하는 <통일로 미래로>의 모태가 되었던 코너이기도 합니다.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습하는 활동을 통해 주목받은 유해발굴감식단과,

[윤필상/병장/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가볍게 생각할 사업이 아니구나, 정말 숭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을 해야겠다..."]

대북 방송의 산증인, 오승룡 선생의 사명감과 열정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오승룡/원로 성우/83세 : "김정일의 장남이 피살당했는데, 쉬쉬한다고 주민들이 모르겠는가..."]

유명 인사들의 발걸음도 이어졌습니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는 남북의 창을 통해 북한과 김정은의 실상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태영호/前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 : "북한 주민들은 전혀 몰라요. 외부에서 알려줘서 그들이 마음에서 기둥을 허물어버려야 합니다. 기득권 세력이 김정은을 반대해서 인민들과 같이 들고 일어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남북의 창은 시대 상황에 맞춰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2000년 대 초 <북한 리포트>로 잠시 이름을 바꾸고 남북방송교류 코너도 신설했습니다.

KBS가 기획하고,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촬영한 <지금 북한은>이 대표적입니다.

[백운기/KBS 기자/前 남북의 창 진행자 :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이후에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 취재팀이 북한에 직접 가서 취재도 하고 영상도 담고 그렇게 하면서 훨씬 더 공급할 수 있는 영상도 많아지고.. 좀 더 북한의 실상을 우리 시각으로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자. 그런 차원에서 이름도 북한 리포트로 바꾸고 북한 현지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을 좀 더 많이 내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처럼 형식에 변화를 주거나 잠시 이름을 바꾼 적도 있지만 남북의창이 지난 30년 꾸준히 방송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었습니다.

남북의창은 700회를 맞아 오랜 기간 프로그램을 봐주신 시청자를 직접 찾아 어떤 방송을 바라시는지 들어봤습니다.

지난 10여 년 간 남북의 창을 꾸준히 시청해 왔다는 채규식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북한과 남북 관계에 유독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겪은 6.25의 아픔과 개성이 고향인 아내 때문입니다.

이미경 할머니는 지금도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이미경/76세/남북의 창 시청자 : "1.4 후퇴 때 그 때 제 나이가 여덟 살이었거든요. 그런데 외할머니 한 분하고 이모 한 분이 못 나오셨어요. 고통 받고 힘들게 살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서 더 유심히 이제 남북의 창을 보게 됐죠."]

북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습관처럼 시청하게 된 남북의 창.

요즘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들려오는 반가운 소식에 마음이 들뜹니다.

[채규식/82세/남북의 창 시청자 : "그동안 핵실험하고 미사일 쏘고 했던 북한이 이번 평창올림픽을 기해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여든이 넘었는데 우리가 죽기 전에 남북 통일 되는 것 한번 보고 죽는 것이 원이 없다 하는 얘기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창이 통일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는 채규식 할아버지. 열혈 시청자로서 남북의 창에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채규식/82세/남북의 창 시청자 : "평양 밖에 있는 주민들의 실생활을 좀 보여주셨으면 고맙겠고요. 좀 더 생생한 내용을 가지고 방송을 제작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 30년간 남북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던 남북의 창. 시청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30년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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