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핀란드 국민성 바꾼 노래방 문화

입력 2018.03.24 (21:43) 수정 2018.03.2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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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에서 가장 노래방을 사랑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한국이나 일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유럽의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핀란드입니다.

노래방을 찾아 보기 힘든 유럽에서, 유독 이곳에서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방을 즐긴다고 합니다.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로 이민우 특파원이 안내합니다.

[리포트]

헬싱키에 인접한 반타시 시립 도서관.

많은 주민들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1층 한 켠.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 솜씨를 뽐내는 주민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서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줍니다.

[랄프 리에젠/반타시 시민 :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오는데 이 노래방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 도서관에 노래방이 들어선 것은 지난해 초.

[빌레 카리넨/도서관 직원 : "노래방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문을 여는데, 한 달 전에 이미 예약이 꽉 찹니다."]

한반도 1.5배의 영토를 자랑하지만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한 핀란드.

핀란드 하면 한국에는 산타클로스와 사우나의 나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핀란드에서 이들만큼이나 유명하고 사랑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노래방입니다.

헬싱키 시내의 한 노래방. 이른 저녁부터 손님들로 가득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는 한 청년.

흥이 난 다른 손님들도 이내 함께 부르기 시작합니다.

[미이카 발로/노래방 손님 : "노래를 부르고 나면 편안해지고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한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분이 듭니다."]

인구 60만, 헬싱키의 노래방은 40여 곳.

노래방 기계를 갖춘 작은 술집까지 감안하면 백 곳에 육박합니다.

한 겨울엔 오후 3시도 되지 않아 해가 지는 긴긴 밤.

별다른 놀이 문화가 없는 핀란드에는, 더할 나위 없는 레져 공간입니다.

[야리 파아나넨/노래방 주인 : "친구와 함께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옵니다. 재미있게 놀면서 몇 곡 부르다 보면 서로 친구가 되죠."]

전 세계의 노래방 실력자들이 모이는 국제 노래방 경연대회도 핀란드에서 열립니다.

핀란드 기업이 개최하는 이 대회는, 해마다 핀란드에서 최종 결선을 갖고 한 해의 우승자를 가립니다.

핀란드가 비록, 노래방을 탄생시킨 나라는 아니지만, 노래방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세계적인 '노래방 강국'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헬싱키 중심가에 자리 잡은 핀란드 국회의사당.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이는 유호 에롤라 의원입니다.

에롤라 의원에게는 특별한 직함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입니다.

노래방이,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유독 핀란드에서만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호 에롤라/핀란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 : "노래방의 가장 좋은 점은 누구라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거죠. 노래를 못해도 목소리가 나빠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어요."]

에롤라 의원의 노래방 예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래방이, 내성적인 핀란드인의 국민성을 바꿔 놓았고, 그 덕분에 핀란드 역시 더 밝고 쾌활한 사회로 변화했다는 주장입니다.

[유호 에롤라/핀란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 : "노래방이 들어온 뒤 핀란드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수줍어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고, 또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같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핀란드에 노래방 문화가 처음 유입된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핀란드에겐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이 뒤따랐습니다.

6개월이나 지속되는 긴 겨울, 해가 좀처럼 뜨지 않는 우중충한 날씨에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행복감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핀란드는,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대책까지 마련하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티모 파르토넨/교수/핀란드 정신 건강 복지 센터 : "모든 자살 사례들을 수집하고 사례별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당시 핀란드가 필요로 하는 자살예방 권고안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 이후 인구 10만 명당 30.2명이던 자살률이 2014년에는 절반 가량인 14.1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이같은 자살률 감소에 노래방 역시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는 게 핀란드 국민들의 일반적 평갑니다.

[티모 파르토넨/교수/핀란드 정신 건강 복지 센터 : "노래방의 기여는 분명합니다. 노래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을 표출하고,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는 31살의 산나 무카.

길고 긴 밤이 기다리는 북유럽의 겨울, 혼자 사는 그녀에겐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핀란드 가정의 25%가 설치했다는 노래방 기곕니다.

[산나 무카/통신사 엔지니어 : "가끔은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노래는 부르고 싶어요.그것이 진짜 쉬는 것이죠."]

노래방은 이제 핀란드인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노래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고독을 이겨내는,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된 것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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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현장] 핀란드 국민성 바꾼 노래방 문화
    • 입력 2018-03-24 22:08:56
    • 수정2018-03-24 22: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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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계에서 가장 노래방을 사랑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한국이나 일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유럽의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핀란드입니다.

노래방을 찾아 보기 힘든 유럽에서, 유독 이곳에서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방을 즐긴다고 합니다.

북유럽의 강소국 핀란드로 이민우 특파원이 안내합니다.

[리포트]

헬싱키에 인접한 반타시 시립 도서관.

많은 주민들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독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1층 한 켠.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 솜씨를 뽐내는 주민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서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줍니다.

[랄프 리에젠/반타시 시민 :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오는데 이 노래방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이 도서관에 노래방이 들어선 것은 지난해 초.

[빌레 카리넨/도서관 직원 : "노래방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문을 여는데, 한 달 전에 이미 예약이 꽉 찹니다."]

한반도 1.5배의 영토를 자랑하지만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한 핀란드.

핀란드 하면 한국에는 산타클로스와 사우나의 나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핀란드에서 이들만큼이나 유명하고 사랑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노래방입니다.

헬싱키 시내의 한 노래방. 이른 저녁부터 손님들로 가득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는 한 청년.

흥이 난 다른 손님들도 이내 함께 부르기 시작합니다.

[미이카 발로/노래방 손님 : "노래를 부르고 나면 편안해지고 뭔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한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기분이 듭니다."]

인구 60만, 헬싱키의 노래방은 40여 곳.

노래방 기계를 갖춘 작은 술집까지 감안하면 백 곳에 육박합니다.

한 겨울엔 오후 3시도 되지 않아 해가 지는 긴긴 밤.

별다른 놀이 문화가 없는 핀란드에는, 더할 나위 없는 레져 공간입니다.

[야리 파아나넨/노래방 주인 : "친구와 함께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옵니다. 재미있게 놀면서 몇 곡 부르다 보면 서로 친구가 되죠."]

전 세계의 노래방 실력자들이 모이는 국제 노래방 경연대회도 핀란드에서 열립니다.

핀란드 기업이 개최하는 이 대회는, 해마다 핀란드에서 최종 결선을 갖고 한 해의 우승자를 가립니다.

핀란드가 비록, 노래방을 탄생시킨 나라는 아니지만, 노래방과 관련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세계적인 '노래방 강국'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헬싱키 중심가에 자리 잡은 핀란드 국회의사당.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이는 유호 에롤라 의원입니다.

에롤라 의원에게는 특별한 직함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입니다.

노래방이,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달리 유독 핀란드에서만 전 국민적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호 에롤라/핀란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 : "노래방의 가장 좋은 점은 누구라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거죠. 노래를 못해도 목소리가 나빠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시도할 수 있어요."]

에롤라 의원의 노래방 예찬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노래방이, 내성적인 핀란드인의 국민성을 바꿔 놓았고, 그 덕분에 핀란드 역시 더 밝고 쾌활한 사회로 변화했다는 주장입니다.

[유호 에롤라/핀란드 국회 노래방 클럽 회장 : "노래방이 들어온 뒤 핀란드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수줍어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고, 또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같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핀란드에 노래방 문화가 처음 유입된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핀란드에겐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이 뒤따랐습니다.

6개월이나 지속되는 긴 겨울, 해가 좀처럼 뜨지 않는 우중충한 날씨에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민들의 행복감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핀란드는,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대책까지 마련하며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티모 파르토넨/교수/핀란드 정신 건강 복지 센터 : "모든 자살 사례들을 수집하고 사례별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당시 핀란드가 필요로 하는 자살예방 권고안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1990년 이후 인구 10만 명당 30.2명이던 자살률이 2014년에는 절반 가량인 14.1명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이같은 자살률 감소에 노래방 역시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는 게 핀란드 국민들의 일반적 평갑니다.

[티모 파르토넨/교수/핀란드 정신 건강 복지 센터 : "노래방의 기여는 분명합니다. 노래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을 표출하고,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는 31살의 산나 무카.

길고 긴 밤이 기다리는 북유럽의 겨울, 혼자 사는 그녀에겐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핀란드 가정의 25%가 설치했다는 노래방 기곕니다.

[산나 무카/통신사 엔지니어 : "가끔은 너무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노래는 부르고 싶어요.그것이 진짜 쉬는 것이죠."]

노래방은 이제 핀란드인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린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노래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고독을 이겨내는,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 된 것입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이민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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