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4등까지 당선’ 4인 선거구 반대는 ‘거대 양당의 횡포’?

입력 2018.03.26 (17:29) 수정 2018.03.26 (19: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치러질 기초의회의 선거구가 모두 획정됐습니다. 그런데 최종 획정안을 두고 전국 시도가 시끄럽습니다. 지난 2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선거구획정안 최종 가결을 두고 몸싸움까지 벌어질 정도였는데요.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바로 '4인 선거구'입니다.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안한 첫 잠정안에서는 4인 선거구를 35곳 만들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히며 결국 '0곳'으로 최종 가결됐습니다. 서울뿐만이 아닙니다.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의회에서 소수인 정당들은 4인 선거구를 도입하려 하고, 다수당에서는 막으려 하고... 대체 4인 선거구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몸싸움까지 벌이는 걸까요?

2인 선거구제 vs 4인 선거구제


보시다시피 선거구가 작고 뽑는 의원 수가 소수라면 주로 인지도가 높은 정당의 후보가 당선됩니다. 예를 들어 2인 선거구라면 최소 2등을 해야 기초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자연히 의회는 대부분 큰 정당의 의원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나라의 양대 정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2인 선거구를 훨씬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 선거구가 크고 뽑는 의원 수가 많으면 중소정당의 후보가 뽑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작은 정당의 정치신인이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의 후보들을 제치고 2등 안에 들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4인 선거구라면 4등까지 기회가 생기니 가능성이 생깁니다. 자연히 4인 선거구에서는 2인 선거구에 비해 다양한 정당 출신의 의원들로 의회가 구성될 수 있습니다. 중소 정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4인 선거구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무조건 4인 선거구가 좋은 걸까요? 단점도 있습니다. 선거구가 넓으면 이해관계가 다른 지역들이 함께 묶이게 돼 지역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기 어렵습니다. 또 주민과 밀착된 의정을 펼치기도 힘들어지죠. 넓은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해야 하니 돈도 더 많이 들고, 후보 난립으로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22일, 국회에서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선거구획정안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념적 성향이 다른 세 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소 이례적입니다. 이 자리에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전국의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3인이나 4인 선거구는 씨가 마르고, 2인 선거구로 하는 선거구제가 확정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1,035개 선거구 가운데, 4인 선거구는 28개뿐이라 중소정당에 불리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비판한 걸까요?


기자회견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입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거대 양당, 민주당과 한국당의 폭거는 사실 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했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지방정부를 강화하는 개헌안을 제출해 놓고, 동시에 지방자치를 독점하려는 2인 선거구제를 확장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4인 선거구와 지방자치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언뜻 생각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지방자치와 4인 선거구의 관계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강화되려면, 지방정부에 더 큰 권한을 주되 그에 대한 견제장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각 자치단체의 의회가 그 역할을 맡고 있죠. 그런데 행정부와 의회가 대부분 같은 당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한 식구'간에 제대로 된 비판이 이뤄지질 수 있을까요? 강하게 따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견제가 활성화되려면 정치적으로 다양한 목소리, 같은 편이 아닌 구성원이 많아야 합니다. '지방분권'을 이야기할 때 '4인 선거구'가 뒤따라오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4인 선거구가 정치적 다양성을 더 강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방분권을 주장하면서도 기초의회의 선거구 쪼개기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게 '거대 양당'인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죠. 평소 다른 사안에서는 앙숙처럼 날을 세우며 으르렁거리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2인 선거구에도, 4인 선거구에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선거구 형태가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당들이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 각자에게 유리한 쪽을 주장하는 것도 비난할 문제만은 아니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 여기선 이렇게 말하다가 불리해지면 일제히 침묵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거대 양당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중소 정당들의 비판에 더 귀가 기울여집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4등까지 당선’ 4인 선거구 반대는 ‘거대 양당의 횡포’?
    • 입력 2018-03-26 17:29:35
    • 수정2018-03-26 19:46:44
    취재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치러질 기초의회의 선거구가 모두 획정됐습니다. 그런데 최종 획정안을 두고 전국 시도가 시끄럽습니다. 지난 20일 서울시의회에서는 선거구획정안 최종 가결을 두고 몸싸움까지 벌어질 정도였는데요.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바로 '4인 선거구'입니다.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안한 첫 잠정안에서는 4인 선거구를 35곳 만들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히며 결국 '0곳'으로 최종 가결됐습니다. 서울뿐만이 아닙니다. 부산, 대구, 경기, 인천 등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의회에서 소수인 정당들은 4인 선거구를 도입하려 하고, 다수당에서는 막으려 하고... 대체 4인 선거구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몸싸움까지 벌이는 걸까요?

2인 선거구제 vs 4인 선거구제


보시다시피 선거구가 작고 뽑는 의원 수가 소수라면 주로 인지도가 높은 정당의 후보가 당선됩니다. 예를 들어 2인 선거구라면 최소 2등을 해야 기초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자연히 의회는 대부분 큰 정당의 의원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나라의 양대 정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2인 선거구를 훨씬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 선거구가 크고 뽑는 의원 수가 많으면 중소정당의 후보가 뽑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작은 정당의 정치신인이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의 후보들을 제치고 2등 안에 들기는 불가능에 가깝지만, 4인 선거구라면 4등까지 기회가 생기니 가능성이 생깁니다. 자연히 4인 선거구에서는 2인 선거구에 비해 다양한 정당 출신의 의원들로 의회가 구성될 수 있습니다. 중소 정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4인 선거구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무조건 4인 선거구가 좋은 걸까요? 단점도 있습니다. 선거구가 넓으면 이해관계가 다른 지역들이 함께 묶이게 돼 지역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기 어렵습니다. 또 주민과 밀착된 의정을 펼치기도 힘들어지죠. 넓은 지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해야 하니 돈도 더 많이 들고, 후보 난립으로 자격 미달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22일, 국회에서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선거구획정안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념적 성향이 다른 세 당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소 이례적입니다. 이 자리에서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전국의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3인이나 4인 선거구는 씨가 마르고, 2인 선거구로 하는 선거구제가 확정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1,035개 선거구 가운데, 4인 선거구는 28개뿐이라 중소정당에 불리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비판한 걸까요?


기자회견의 내용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입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는 거대 양당, 민주당과 한국당의 폭거는 사실 반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고 했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지방정부를 강화하는 개헌안을 제출해 놓고, 동시에 지방자치를 독점하려는 2인 선거구제를 확장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4인 선거구와 지방자치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언뜻 생각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지방자치와 4인 선거구의 관계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강화되려면, 지방정부에 더 큰 권한을 주되 그에 대한 견제장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각 자치단체의 의회가 그 역할을 맡고 있죠. 그런데 행정부와 의회가 대부분 같은 당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한 식구'간에 제대로 된 비판이 이뤄지질 수 있을까요? 강하게 따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견제가 활성화되려면 정치적으로 다양한 목소리, 같은 편이 아닌 구성원이 많아야 합니다. '지방분권'을 이야기할 때 '4인 선거구'가 뒤따라오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4인 선거구가 정치적 다양성을 더 강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방분권을 주장하면서도 기초의회의 선거구 쪼개기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게 '거대 양당'인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죠. 평소 다른 사안에서는 앙숙처럼 날을 세우며 으르렁거리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입니다.

2인 선거구에도, 4인 선거구에도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선거구 형태가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당들이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 각자에게 유리한 쪽을 주장하는 것도 비난할 문제만은 아니죠. 하지만 상황에 따라 여기선 이렇게 말하다가 불리해지면 일제히 침묵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거대 양당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중소 정당들의 비판에 더 귀가 기울여집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