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순식간에 잿더미”…고성 산불

입력 2018.03.30 (08:32) 수정 2018.03.3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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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제 오전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 작업이 어제 마무리됐습니다.

순식간에 축구장 56개에 해당하는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민가까지 불길이 번졌습니다.

산불 확산 속도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강풍을 타고 불씨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옮겨붙는 걸 보고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강원도 영동 지역의 산불,

특히 4월에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긴장을 늦춰선 안될 거 같습니다.

고성 산불 현장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마을이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급하게 집에서 뛰어 나온 주민들은 마을로 번지고 있는 산불을 보며 발만 동동 구릅니다.

[박정희/강원도 고성군 : "검은 구름 연기가 이쪽으로 막 오더라고요. 우리 집으로 불덩어리 이런 게 막 떨어지는 거예요. 어머, 이거 어떡해! 어떡해! 하다가 나왔더니 눈을 뜰 수가 없더라고요."]

불이 시작된 건 그제 오전 6시 10분쯤입니다.

마을 뒤편 야산에서 처음 불길이 번졌습니다.

[장명순/강원도 고성군 : "불덩어리 이만한 게 막 날아오고……. 아휴, 놀라서 심장이 아직도 쿵쾅쿵쾅 뛰어요."]

불은 삽시간에 작은 산속 마을을 집어삼켰고, 도롯가에도 시뻘건 불길이 솟구칩니다.

소방 헬기가 동원돼 물을 퍼부어 보지만, 불길은 초속 10미터 이상의 강풍을 타고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새 잔불 정리가 계속됐고, 인근 체육관과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던 주민 천3백여 명도 어제 오전에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진형민/강원도 고성소방서장 : "발생시각이 오전 6시 14분인데 한 시간 이내에 강풍을 타고서 산과 산을 넘어서 동해안 가진항 인근까지 7번 국도를 넘어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한영준/강원도 고성군 : "불을 내가 당해보니까 금방이에요. 여긴데 금방 내 발 앞에 와서 (불이) 붙더라고요. 그러니까 도망 나올 수밖에……. 하늘은 완전 잿빛이고 (앞이) 안보였어요. 산에서 낙엽이 타서 눈을 뜨려는데 눈이 아파서 뜨지를 못했어요."]

화마는 삶의 터전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불길에 녹아 형태만 남아 있는 집을 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영준/강원도 고성군 : "부모님 사진 있던 거 그것도 하나도 못 들고, 신발 신은 대로 그대로 뛰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옆에서 불이 넘어오고 후끈후끈한 데 어떻게 있어요."]

15년 넘게 가꾸면서 터를 잡은 집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습니다.

불길이 집 턱밑까지 밀려오고서야 맨몸으로 대피했습니다.

[김법래/강원도 고성군 : "밖을 보니까 저쪽 보이는 데가 연기로 꽉 찼더라고요. 경찰하고 소방대원들이 와서 대피하라고 명령을 내리더라고요. 빨리 피하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바람에……."]

잿더미가 된 가재도구 사이를 맨손으로 뒤집니다.

국가 유공자였던 남편의 유품, 무공훈장을 찾고 있습니다.

[최옥단/강원도 고성군 : "이게 할아버지 정복에 달렸던 옷 단추. 여기에 할아버지 훈장이랑 사진이랑 액자로 만들어서 넣어놨던 게 있어요. 근데 여기를 찾으니깐 지금 아무것도 없고 다 이렇게 재가 됐네요. 이 단추 하나밖에 안 나와요. 다 없애려니까 섭섭해서 한 벌 넣어놨는데 그렇게 됐네요."]

불길은 인근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들에게도 목격됐습니다.

마을 쪽으로 불길이 옮겨붙자 급하게 배를 돌려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황금석/강원도 고성군 : "연기가 하도 많이 올라와서. 보다가 바람도 너무 세지고 날씨도 안 좋아져서 (항구로)들어왔죠."]

불길은 금세 항구 쪽까지 번졌습니다.

불길이 정박해 있던 어선까지 위협하자, 어민들은 불길을 피해 다시 바다로 배를 몰았습니다.

[황금석/강원도 고성군 : "가진항에 있다가 포구 위에 불이 붙는 바람에 35척이 (바다로) 다 나갔죠. 배에 불이 붙을까 봐 겁이 나서 바다로 다 피신하고 말았죠."]

잔불이 정리되고 대부분 주민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화마에 휩싸인 집 주인들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밥을 먹을 공간조차 마땅하지 않아 신문지 위에서 단출하게 차린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유회분/강원도 고성군 : "완전히 아무것도 없이 다 탔어요. 내 것도 다 잃은 데다가 낯설고 그런데 여기 와서 자려니까 비몽사몽 꿈같은 무슨 그런 것만 상상이 돼서 잠을 한잠도 못 잤죠."]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유회분/강원도 고성군 : "기약이 없죠. 기약이 없고 가서 잔해라도 좀 건질까 하고 아까 갔다가 그냥 너무 참담해서……."]

이번 산불은 순식간에 40만 제곱미터, 축구장 56개 정도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봄마다 부는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영동지역에는 고온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불게 되는데, 이런 강풍이 이번에도 산불을 급속하게 확산시켰습니다.

강풍 때문에 불똥이 날아다니며 산불을 확산시키는 ‘비화 현상’이 유발된다는 겁니다.

[김차분/강원도 고성군 : "도깨비불 같은 게 불이 휙 하고 저쪽에 뚝 떨어지고 이쪽에 떨어지고 중간중간 불이 막 나는 거예요."]

[최준석/동부지방산림청 청장 : "(강풍으로) 대형 산불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입산객이나 쓰레기 소각, 농산물 폐기물 소각 등은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산림청은 다음 달 22일까지를 대형산불 특별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산불재난 국가 위기 경보도 '경계'로 상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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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순식간에 잿더미”…고성 산불
    • 입력 2018-03-30 08:37:48
    • 수정2018-03-30 09: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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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제 오전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 진화 작업이 어제 마무리됐습니다.

순식간에 축구장 56개에 해당하는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민가까지 불길이 번졌습니다.

산불 확산 속도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강풍을 타고 불씨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옮겨붙는 걸 보고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강원도 영동 지역의 산불,

특히 4월에 산불이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긴장을 늦춰선 안될 거 같습니다.

고성 산불 현장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마을이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급하게 집에서 뛰어 나온 주민들은 마을로 번지고 있는 산불을 보며 발만 동동 구릅니다.

[박정희/강원도 고성군 : "검은 구름 연기가 이쪽으로 막 오더라고요. 우리 집으로 불덩어리 이런 게 막 떨어지는 거예요. 어머, 이거 어떡해! 어떡해! 하다가 나왔더니 눈을 뜰 수가 없더라고요."]

불이 시작된 건 그제 오전 6시 10분쯤입니다.

마을 뒤편 야산에서 처음 불길이 번졌습니다.

[장명순/강원도 고성군 : "불덩어리 이만한 게 막 날아오고……. 아휴, 놀라서 심장이 아직도 쿵쾅쿵쾅 뛰어요."]

불은 삽시간에 작은 산속 마을을 집어삼켰고, 도롯가에도 시뻘건 불길이 솟구칩니다.

소방 헬기가 동원돼 물을 퍼부어 보지만, 불길은 초속 10미터 이상의 강풍을 타고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새 잔불 정리가 계속됐고, 인근 체육관과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던 주민 천3백여 명도 어제 오전에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진형민/강원도 고성소방서장 : "발생시각이 오전 6시 14분인데 한 시간 이내에 강풍을 타고서 산과 산을 넘어서 동해안 가진항 인근까지 7번 국도를 넘어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한영준/강원도 고성군 : "불을 내가 당해보니까 금방이에요. 여긴데 금방 내 발 앞에 와서 (불이) 붙더라고요. 그러니까 도망 나올 수밖에……. 하늘은 완전 잿빛이고 (앞이) 안보였어요. 산에서 낙엽이 타서 눈을 뜨려는데 눈이 아파서 뜨지를 못했어요."]

화마는 삶의 터전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불길에 녹아 형태만 남아 있는 집을 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영준/강원도 고성군 : "부모님 사진 있던 거 그것도 하나도 못 들고, 신발 신은 대로 그대로 뛰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옆에서 불이 넘어오고 후끈후끈한 데 어떻게 있어요."]

15년 넘게 가꾸면서 터를 잡은 집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습니다.

불길이 집 턱밑까지 밀려오고서야 맨몸으로 대피했습니다.

[김법래/강원도 고성군 : "밖을 보니까 저쪽 보이는 데가 연기로 꽉 찼더라고요. 경찰하고 소방대원들이 와서 대피하라고 명령을 내리더라고요. 빨리 피하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바람에……."]

잿더미가 된 가재도구 사이를 맨손으로 뒤집니다.

국가 유공자였던 남편의 유품, 무공훈장을 찾고 있습니다.

[최옥단/강원도 고성군 : "이게 할아버지 정복에 달렸던 옷 단추. 여기에 할아버지 훈장이랑 사진이랑 액자로 만들어서 넣어놨던 게 있어요. 근데 여기를 찾으니깐 지금 아무것도 없고 다 이렇게 재가 됐네요. 이 단추 하나밖에 안 나와요. 다 없애려니까 섭섭해서 한 벌 넣어놨는데 그렇게 됐네요."]

불길은 인근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어부들에게도 목격됐습니다.

마을 쪽으로 불길이 옮겨붙자 급하게 배를 돌려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황금석/강원도 고성군 : "연기가 하도 많이 올라와서. 보다가 바람도 너무 세지고 날씨도 안 좋아져서 (항구로)들어왔죠."]

불길은 금세 항구 쪽까지 번졌습니다.

불길이 정박해 있던 어선까지 위협하자, 어민들은 불길을 피해 다시 바다로 배를 몰았습니다.

[황금석/강원도 고성군 : "가진항에 있다가 포구 위에 불이 붙는 바람에 35척이 (바다로) 다 나갔죠. 배에 불이 붙을까 봐 겁이 나서 바다로 다 피신하고 말았죠."]

잔불이 정리되고 대부분 주민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화마에 휩싸인 집 주인들은 갈 곳을 잃었습니다.

밥을 먹을 공간조차 마땅하지 않아 신문지 위에서 단출하게 차린 음식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유회분/강원도 고성군 : "완전히 아무것도 없이 다 탔어요. 내 것도 다 잃은 데다가 낯설고 그런데 여기 와서 자려니까 비몽사몽 꿈같은 무슨 그런 것만 상상이 돼서 잠을 한잠도 못 잤죠."]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유회분/강원도 고성군 : "기약이 없죠. 기약이 없고 가서 잔해라도 좀 건질까 하고 아까 갔다가 그냥 너무 참담해서……."]

이번 산불은 순식간에 40만 제곱미터, 축구장 56개 정도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봄마다 부는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영동지역에는 고온 건조하고 강한 바람이 불게 되는데, 이런 강풍이 이번에도 산불을 급속하게 확산시켰습니다.

강풍 때문에 불똥이 날아다니며 산불을 확산시키는 ‘비화 현상’이 유발된다는 겁니다.

[김차분/강원도 고성군 : "도깨비불 같은 게 불이 휙 하고 저쪽에 뚝 떨어지고 이쪽에 떨어지고 중간중간 불이 막 나는 거예요."]

[최준석/동부지방산림청 청장 : "(강풍으로) 대형 산불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입산객이나 쓰레기 소각, 농산물 폐기물 소각 등은 특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산림청은 다음 달 22일까지를 대형산불 특별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산불재난 국가 위기 경보도 '경계'로 상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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