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바다향과 함께 키우는 정착의 꿈

입력 2018.03.31 (08:20) 수정 2018.03.3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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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통일로 미래로〉 코너에서는 그동안 농촌에서 정착의 꿈을 키우는 탈북민들을 몇차례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 사연은 조금 다르다고요?

네 귀어라고 할까요?

남도에서 전복 양식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탈북민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귀어 귀촌에 관심 갖는 분들도 많은데, 어떤 비결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바다향 가득한 전남 강진으로 이다솜 리포터가 안내하겠습니다.

[리포트]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봄 바다입니다.

결혼 10년 차인 이은영 씨 부부가 오늘도 다정하게 배를 몰고 나섭니다.

이곳은 금슬 좋은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이자 일터인데요.

[이은영/탈북민 : "이 가두리 안에 전복이 들어 있어요."]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탈북민 은영 씨는 남편과 함께 8년 전부터 이 가두리 양식장에서 전복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은영/탈북민 : "처음에는 그냥 백 칸... 안 먹고 안 쓰고 여행 안 가고 그다음 해에 또 백 칸 늘리고 해서 일 년, 일 년, 일 년... 백 칸 씩 늘렸거든요. 그러니까 8년 세월이 흘렀으니까 지금은 820칸..."]

큼직하고 싱싱해 보이는 이 전복은 이은영 씨 부부가 정성껏 기른 겁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한 덕분이데요.

은영 씨가 이 마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비결도 바로 그 인내 덕분이라고 합니다.

전복을 잘 키우기 위해 두 사람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미역 농사입니다.

미역이 전복들에겐 좋은 영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은영/탈북민 : "올해 미역 농사가 진짜 잘 됐어요. 잘 돼야 전복들이 배불리 잘 먹고 잘 크죠."]

사흘 동안 배에 한 가득, 40톤 정도의 미역을 채취한 뒤 전복 양식장으로 옮깁니다.

[이은영/탈북민 : "옛날에는 사람이 이걸 다... 40톤 채우면 사람이 하나하나 들고... 그러니까 어깨가 빠지죠. 그렇게 작업을 (했어요.) "]

이 해역은 바닷물의 염분이 적어 다른 곳에 비해 전복의 성장이 조금 느린 편이라는데요.

은영 씨 부부는 크고 실한 전복을 얻기 위해 햇수로 5년, 만으로는 3년을 꾹 참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달고 담백하고 맛이 굉장히 좋아. 그런데 어민들은 약간 손해를 보는 거지. 빨리 안 크니까, 얘들(전복)이."]

품질로 인정받겠다는 소신을 지킨 덕분에 이제는 수입도 상당하다는데요.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저희 가두리에서 매출이 한 5억에서 6억 정도, 올해 출하 예상량이 16톤 정도 돼요."]

은영 씨는 특히 싹싹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졌던 탈북민에 대한 편견의 벽도 허물고 있습니다.

[김종현/이웃 주민 : "유명한 사람이에요. 악바리, 악바리라고 소문이 났어요. 잘 살아보려고 그러는 거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칭찬도 많이 받고, 열심히 사니까..."]

20년 전 탈북한 뒤 도시에서 살다 10년 전 남편을 따라 이곳에 정착한 은영 씨.

성장 배경과 문화가 다른 남남북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어촌에서 함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박경석/강진군청 주무관 : "몇 년 전에 뵈었을 때는 조금 삶이 고단한... 얼굴 표정이 좀 그러셨어요. 그런데 작년에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더라고요."]

하지만 하나씩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갔고, 늦둥이 시훈이가 태어나면서 가족애도 더 끈끈해졌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진심이 통한 거겠죠?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실상 엄마라는 말이 잘 안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애들이... 근데 자기들이 스스로 이렇게 서로 또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정말 어떻게 보면 잘해요, 애들이. 애들이 잘하고 저 아이(시훈이)가 태어나면서 흩어졌던 가족들이 어떻게 보면 다 뭉치게 된 거지..."]

바다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 온 은영 씨가 김 오른 찜통에 갓 따온 전복까지 쪄서 푸짐하게 차려낸 저녁상!

시간 맞춰 이웃들이 하나 둘 찾아옵니다.

은영 씨가 이 마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인데요.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죠?

이들에게 은영 씨는 과연 어떤 이웃일까요?

[김주승/이웃 주민 : "한 마디로 새 각시인데... 너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뻘(진흙)을 묻혀도 그런 거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하니까 달리 봤죠. 그런데 지금까지 쭉 와서 보니까 그게 가식이 아니었고.."]

은영 씨는 태어난 곳은 북녘이지만 이곳 강진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어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으로도 꼽히는데요.

자신의 정착 경험을 더 많은 고향 사람들과 나누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은영 씨.

20년 전 한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바닷가에 정착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요.

지금은 이만한 행운이 또 없다 싶습니다.

[이은영/탈북민 : "‘로또 복권 두 번째 맞았다’라고 생각을 해요. 진짜예요."]

[김성호/남편 : "언제 한 번 맞았어?"]

[이은영/탈북민 : "한 번은 여기 온 거... 살아생전에 여기서 살아볼 수 있었던 거... 자유 누릴 수 있고. 아... 눈물 나온다 진짜로..."]

은영 씨는 지난해부터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탈북민들의 귀어를 돕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박경석/강진군청 주무관 : "갓난아이를 업고 군청으로 이렇게 서류를 들고 오셨는데... 연말에 서울에서 하는 그런 발표에서도 이은영 씨가 직접 행정안전부에서 발표도 하시고 행정안전부 장관상도 받으셨어요."]

더 많은 탈북민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이은영/탈북민 : "제 2의 내 고향처럼 살고 있잖아요. 저 같은 분들이 또 이제 바닷가에 정착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언제든지 저희 집을 내어 드릴 수 있어요. 저희 남편하고 걸어 온 길, 그대로 이제 전수해 줄 수 있어요."]

망망대해 앞에선 누구나 두려워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해하고 친해지면 바다는 어머니처럼 많은 것을 내어 주는데요.

은영 씨는 이 바다에서 인내와 정성의 의미를 배우고 정착의 보람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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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바다향과 함께 키우는 정착의 꿈
    • 입력 2018-03-31 08:34:10
    • 수정2018-03-31 08: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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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통일로 미래로〉 코너에서는 그동안 농촌에서 정착의 꿈을 키우는 탈북민들을 몇차례 소개해드렸는데요,

오늘 사연은 조금 다르다고요?

네 귀어라고 할까요?

남도에서 전복 양식을 하며 꿈을 키우고 있는 탈북민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최근 귀어 귀촌에 관심 갖는 분들도 많은데, 어떤 비결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바다향 가득한 전남 강진으로 이다솜 리포터가 안내하겠습니다.

[리포트]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봄 바다입니다.

결혼 10년 차인 이은영 씨 부부가 오늘도 다정하게 배를 몰고 나섭니다.

이곳은 금슬 좋은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이자 일터인데요.

[이은영/탈북민 : "이 가두리 안에 전복이 들어 있어요."]

황해도 사리원 출신인 탈북민 은영 씨는 남편과 함께 8년 전부터 이 가두리 양식장에서 전복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은영/탈북민 : "처음에는 그냥 백 칸... 안 먹고 안 쓰고 여행 안 가고 그다음 해에 또 백 칸 늘리고 해서 일 년, 일 년, 일 년... 백 칸 씩 늘렸거든요. 그러니까 8년 세월이 흘렀으니까 지금은 820칸..."]

큼직하고 싱싱해 보이는 이 전복은 이은영 씨 부부가 정성껏 기른 겁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한 덕분이데요.

은영 씨가 이 마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비결도 바로 그 인내 덕분이라고 합니다.

전복을 잘 키우기 위해 두 사람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미역 농사입니다.

미역이 전복들에겐 좋은 영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은영/탈북민 : "올해 미역 농사가 진짜 잘 됐어요. 잘 돼야 전복들이 배불리 잘 먹고 잘 크죠."]

사흘 동안 배에 한 가득, 40톤 정도의 미역을 채취한 뒤 전복 양식장으로 옮깁니다.

[이은영/탈북민 : "옛날에는 사람이 이걸 다... 40톤 채우면 사람이 하나하나 들고... 그러니까 어깨가 빠지죠. 그렇게 작업을 (했어요.) "]

이 해역은 바닷물의 염분이 적어 다른 곳에 비해 전복의 성장이 조금 느린 편이라는데요.

은영 씨 부부는 크고 실한 전복을 얻기 위해 햇수로 5년, 만으로는 3년을 꾹 참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달고 담백하고 맛이 굉장히 좋아. 그런데 어민들은 약간 손해를 보는 거지. 빨리 안 크니까, 얘들(전복)이."]

품질로 인정받겠다는 소신을 지킨 덕분에 이제는 수입도 상당하다는데요.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저희 가두리에서 매출이 한 5억에서 6억 정도, 올해 출하 예상량이 16톤 정도 돼요."]

은영 씨는 특히 싹싹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졌던 탈북민에 대한 편견의 벽도 허물고 있습니다.

[김종현/이웃 주민 : "유명한 사람이에요. 악바리, 악바리라고 소문이 났어요. 잘 살아보려고 그러는 거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칭찬도 많이 받고, 열심히 사니까..."]

20년 전 탈북한 뒤 도시에서 살다 10년 전 남편을 따라 이곳에 정착한 은영 씨.

성장 배경과 문화가 다른 남남북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어촌에서 함께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박경석/강진군청 주무관 : "몇 년 전에 뵈었을 때는 조금 삶이 고단한... 얼굴 표정이 좀 그러셨어요. 그런데 작년에 얼굴이 많이 밝아지셨더라고요."]

하지만 하나씩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갔고, 늦둥이 시훈이가 태어나면서 가족애도 더 끈끈해졌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진심이 통한 거겠죠?

[김성호/이은영씨 남편 : "실상 엄마라는 말이 잘 안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애들이... 근데 자기들이 스스로 이렇게 서로 또 (마음의) 문을 열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정말 어떻게 보면 잘해요, 애들이. 애들이 잘하고 저 아이(시훈이)가 태어나면서 흩어졌던 가족들이 어떻게 보면 다 뭉치게 된 거지..."]

바다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 온 은영 씨가 김 오른 찜통에 갓 따온 전복까지 쪄서 푸짐하게 차려낸 저녁상!

시간 맞춰 이웃들이 하나 둘 찾아옵니다.

은영 씨가 이 마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웃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인데요.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죠?

이들에게 은영 씨는 과연 어떤 이웃일까요?

[김주승/이웃 주민 : "한 마디로 새 각시인데... 너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뻘(진흙)을 묻혀도 그런 거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하니까 달리 봤죠. 그런데 지금까지 쭉 와서 보니까 그게 가식이 아니었고.."]

은영 씨는 태어난 곳은 북녘이지만 이곳 강진을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어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으로도 꼽히는데요.

자신의 정착 경험을 더 많은 고향 사람들과 나누려고 노력 중입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는 은영 씨.

20년 전 한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바닷가에 정착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요.

지금은 이만한 행운이 또 없다 싶습니다.

[이은영/탈북민 : "‘로또 복권 두 번째 맞았다’라고 생각을 해요. 진짜예요."]

[김성호/남편 : "언제 한 번 맞았어?"]

[이은영/탈북민 : "한 번은 여기 온 거... 살아생전에 여기서 살아볼 수 있었던 거... 자유 누릴 수 있고. 아... 눈물 나온다 진짜로..."]

은영 씨는 지난해부터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탈북민들의 귀어를 돕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박경석/강진군청 주무관 : "갓난아이를 업고 군청으로 이렇게 서류를 들고 오셨는데... 연말에 서울에서 하는 그런 발표에서도 이은영 씨가 직접 행정안전부에서 발표도 하시고 행정안전부 장관상도 받으셨어요."]

더 많은 탈북민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이은영/탈북민 : "제 2의 내 고향처럼 살고 있잖아요. 저 같은 분들이 또 이제 바닷가에 정착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언제든지 저희 집을 내어 드릴 수 있어요. 저희 남편하고 걸어 온 길, 그대로 이제 전수해 줄 수 있어요."]

망망대해 앞에선 누구나 두려워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해하고 친해지면 바다는 어머니처럼 많은 것을 내어 주는데요.

은영 씨는 이 바다에서 인내와 정성의 의미를 배우고 정착의 보람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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