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분단과 대화의 상징…판문점 65년

입력 2018.04.14 (08:07) 수정 2018.04.1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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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과 북이 대치하는 판문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7일 바로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판문점은 남북 간 대결의 상징이도 하지만 수많은 남북 회담이 열리면서 교류와 대화의 공간으로도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는 판문점의 역사와 현황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남측 대표단이 탄 차량이 판문점으로 가는 관문 통일 대교를 지난다.

이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건너 북측으로 넘어갔다.

지난 1월에 이어 판문점에서 다시 만난 남과 북의 대표단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리선권/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북측 단장 :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

회담 장소인 판문점의 의미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조명균/통일부 장관/남측 수석대표 : "지난번 평화의 집에서 했고, 오늘은 통일각에서 진행합니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이 연결되는 좋은 의미가 그 자체에서 있지 않겠는가..."]

[리선권/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북측 단장 : "판문점이 민족 분열의 상징 아닙니까? 통일각 안에서도 진행이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8 남북정상회담의 일정이 확정됐다.

[조명균/통일부 장관/남측 수석대표 : "남북 정상회담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지난 1월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회담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그리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때론 대치와 긴장, 때론 대화의 65년을 보내온 판문점.

한반도에서 판문점은 어떤 의미일까?

남과 북이 둘로 나뉘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6.25 전쟁.

3년이 넘는 전쟁 끝에 1953년 유엔군과 중국, 북한군 대표는 정전 협정을 체결했다.

이때부터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됐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휴전회담이 정점으로 치닫는 이 과정에서는 보다 쉽게 북한 또 중국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써 시내보다는 바로 옆 판문점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휴전회담을 하는... 당시에 동영상이나 이런 것을 보면 거의 전체적으로 주변은 논밭밖에 없고 판문점에 한옥으로 임시로 지은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서 이제 휴전회담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과거의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의 시골마을 널문리.

이곳의 작은 가게 앞에 회담장이 마련됐고, 중국군이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판문점이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상 동서로 800미터 정도 걸쳐 있는 공동경비구역을 의미한다.

남측의 상징적 건물로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인 평화의 집은 1989년 준공된 지상 3층의 건물이다.

회담장과 남북회담 대표 대기실이 있고 대회의실과 소회의실도 마련되어 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유의 집은 1998년 증축해 준공된 지상 4층짜리 건물이다.

각종 편의시설과 남북 적십자 연락사무소, 대회의실과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북측 지역의 대표 건물은 판문각과 통일각이다.

판문각은 판문점의 주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69년에 건립됐다.

지난 2012년 판문점을 현지 시찰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지역을 바라본 전망대도 이곳이다.

내부에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북한 경비병 지휘소와 판문점 대표부, 적십자 연락대표부가 있다.

1985년 준공된 통일각은 남측의 '평화의 집'에 대응하는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다.

대부분 남북 회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판문점 설치 이후 남북의 군인들은 판문점 구역 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판문점에서 복무했던 병사는 당시 북한 병사들과도 접촉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배재복/JSA 전우회 회원/1976년 경비병 복무 : "라이터 같은 거는 담배 피울 때 필요하니까 라이터 가스 같은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다달라고요?) 네, 사다달라고."]

하지만 1976년 8월,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진다.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이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배재복/JSA 전우회 회원/1976년 경비병 복무 : "(제가) 도끼 사건의 (현장에 있던) 장본인이니까 사고 이후에도 (판문점에서) 근무를 (했고), 저 자신도 안 죽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왔더니 북한 근무자들이 '너 왜 안 죽고 살았냐?' 이런 이야기도 하고 했습니다."]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으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장소지만 남북교류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을 시작으로 남북 간의 각종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됐으며..."]

이후 판문점에는 상설연락사무소가 생겼고 남북 직통전화가 개설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이어졌다.

자주·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담은 남북 당국의 첫 공식 합의였다.

민간 차원의 교류에서도 판문점은 화해의 관문이 되었다.

1998년 정주영 회장 일행이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측으로 이동했다.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 :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북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세계가 주목한 순간이었다.

[뉴스9/2000년 4월 : "남북한은 오늘 판문점에서 1차 준비접촉을 가진 데 이어서 오는 27일 2차 접촉을 갖기로 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두 달 앞두고 남북 대표가 판문점에서 준비 접촉을 가졌다.

때 맞춰 내린 봄비만큼 판문점엔 활기가 돌았다.

[양영식/당시 남측 수석대표 : "대화의 시대로 열어나가자는 데 공감했다는 것은 오늘 출발할 때부터 이게 좋은 성과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김령성/당시 북측 단장 : "우리와의 중대한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길에서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지 않겠냐..."]

당시 북한 매체 역시 이 같은 판문점의 분위기를 신속하게 전달했다.

[조선 중앙TV/2000년 4월 :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통일을 앞당겨 이룩하는데서 전환적 국면이 열리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판문점 내 남측과 북측 지역을 오가며 다섯차 례 진행된 준비 접촉은 분단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남북이 뭔가 대화로 가는 방향에 있어서 또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했던 공간, 예를 들면 남북이 실질적으로 7.4공동성명을 내오고 그 이후에 전반적인 남북관계가 어려웠지만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 남북관계 개선되는 흐름에서도 역시 판문점을 통해서 남북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그래서 판문점은 한편으로는 대결과 갈등의 공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북 간의 교류의 물꼬를 트는 그런 상징적인 공간으로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졌던 그런 곳이라고 봐야 합니다."]

2000년대 중반엔 남북 간의 실질적 긴장 완화를 위한 장성급 군사회담도 잇따라 진행됐다.

[문성묵/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2001년) 남측 대표 : "공동어로 관련 문제와 철도도로 통행의 군사보장 합의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북측에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수시로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었던 예비역 장성은 현장의 긴장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군사분계선을 딱 넘어가는 순간 이제 북한 땅으로 들어간 것 아니예요... 거기서부터는 딱 북측 안내장교에게 인계가 되어가지고 북한 군인들이 안내하는 것 따라서 가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아 내가 괜찮을까 안전할까 그런 생각이 들죠. 서로 간에 신변안전에 대한 합의를 다 하고 그런 것들이 보장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 내가 북한 땅에 와서 회담을 하는구나 그런 것이 때로는 좀 위축도 되기도 하고 걱정도 되기도 하고..."]

남북 대치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회담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고도 설명한다.

[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언제 어느 때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이제 남북 간에는 만나면 서로 말도 조심하고 또 제스쳐라든지 이런 것도 다 조심하거든요. 그러니까 말도 우리측, 귀측, 북측, 남측 이렇게 용어를 쓰지 북한 남한 뭐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용어들도 조심을 하고 행동도 예를 들어서 상대방을 향해서 뭐 손가락질 한다든지 그렇게 하질 않죠. 일거수일투족이 상대방에게 굉장히 민감하니까 그런 점에서 서로 간에 충분한 협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될 거예요."]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과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당시에도 남과 북은 판문점에서 만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며 위기 해소의 계기를 만들었다.

10년 가까운 경색 기간, 여기에 북한의 핵 도발이 겹치며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이달 말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고 있다.

판문점이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판문점이 대결과 갈등의 공간에서 대화와 협력,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는 그 계기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되어야 된다. 정상회담 이후에 판문점의 콘셉트 자체를, 판문점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바꿔야 되고 그 과정에서 판문점을 충분히 남북 당국 또 남북 구성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98년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판문점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판문점에서 열린 사상 첫 클래식 음악회...평화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 번 평화의 기운이 돌고 있는 판문점에서 남과 북 정상이 어떤 회담 결과를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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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분단과 대화의 상징…판문점 65년
    • 입력 2018-04-14 08:30:00
    • 수정2018-04-14 08:41:10
    남북의 창
[앵커]

남과 북이 대치하는 판문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27일 바로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판문점은 남북 간 대결의 상징이도 하지만 수많은 남북 회담이 열리면서 교류와 대화의 공간으로도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는 판문점의 역사와 현황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남측 대표단이 탄 차량이 판문점으로 가는 관문 통일 대교를 지난다.

이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건너 북측으로 넘어갔다.

지난 1월에 이어 판문점에서 다시 만난 남과 북의 대표단은 반가움을 감추지 않았다.

[리선권/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북측 단장 :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

회담 장소인 판문점의 의미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조명균/통일부 장관/남측 수석대표 : "지난번 평화의 집에서 했고, 오늘은 통일각에서 진행합니다. 그래서 평화와 통일이 연결되는 좋은 의미가 그 자체에서 있지 않겠는가..."]

[리선권/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북측 단장 : "판문점이 민족 분열의 상징 아닙니까? 통일각 안에서도 진행이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8 남북정상회담의 일정이 확정됐다.

[조명균/통일부 장관/남측 수석대표 : "남북 정상회담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지난 1월 고위급 회담을 시작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회담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그리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때론 대치와 긴장, 때론 대화의 65년을 보내온 판문점.

한반도에서 판문점은 어떤 의미일까?

남과 북이 둘로 나뉘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던 6.25 전쟁.

3년이 넘는 전쟁 끝에 1953년 유엔군과 중국, 북한군 대표는 정전 협정을 체결했다.

이때부터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 됐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휴전회담이 정점으로 치닫는 이 과정에서는 보다 쉽게 북한 또 중국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써 시내보다는 바로 옆 판문점이라고 하는 마을에서 휴전회담을 하는... 당시에 동영상이나 이런 것을 보면 거의 전체적으로 주변은 논밭밖에 없고 판문점에 한옥으로 임시로 지은 건물이 있었고 거기에서 이제 휴전회담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과거의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의 시골마을 널문리.

이곳의 작은 가게 앞에 회담장이 마련됐고, 중국군이 널문리 가게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판문점이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의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상 동서로 800미터 정도 걸쳐 있는 공동경비구역을 의미한다.

남측의 상징적 건물로는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인 평화의 집은 1989년 준공된 지상 3층의 건물이다.

회담장과 남북회담 대표 대기실이 있고 대회의실과 소회의실도 마련되어 있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유의 집은 1998년 증축해 준공된 지상 4층짜리 건물이다.

각종 편의시설과 남북 적십자 연락사무소, 대회의실과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북측 지역의 대표 건물은 판문각과 통일각이다.

판문각은 판문점의 주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1969년에 건립됐다.

지난 2012년 판문점을 현지 시찰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 지역을 바라본 전망대도 이곳이다.

내부에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북한 경비병 지휘소와 판문점 대표부, 적십자 연락대표부가 있다.

1985년 준공된 통일각은 남측의 '평화의 집'에 대응하는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다.

대부분 남북 회담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판문점 설치 이후 남북의 군인들은 판문점 구역 안에서 비교적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다.

1970년대 판문점에서 복무했던 병사는 당시 북한 병사들과도 접촉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배재복/JSA 전우회 회원/1976년 경비병 복무 : "라이터 같은 거는 담배 피울 때 필요하니까 라이터 가스 같은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다달라고요?) 네, 사다달라고."]

하지만 1976년 8월, 이른바 ‘도끼 만행 사건’이 벌어진다.

공동경비구역 내 미루나무를 가지치기하던 미군 장교 두 명을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이후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배재복/JSA 전우회 회원/1976년 경비병 복무 : "(제가) 도끼 사건의 (현장에 있던) 장본인이니까 사고 이후에도 (판문점에서) 근무를 (했고), 저 자신도 안 죽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왔더니 북한 근무자들이 '너 왜 안 죽고 살았냐?' 이런 이야기도 하고 했습니다."]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으로 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장소지만 남북교류의 상징이기도 하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을 시작으로 남북 간의 각종 회담이 이곳에서 열렸다.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됐으며..."]

이후 판문점에는 상설연락사무소가 생겼고 남북 직통전화가 개설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7.4 남북 공동 성명으로 이어졌다.

자주·평화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담은 남북 당국의 첫 공식 합의였다.

민간 차원의 교류에서도 판문점은 화해의 관문이 되었다.

1998년 정주영 회장 일행이 소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측으로 이동했다.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 :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남북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세계가 주목한 순간이었다.

[뉴스9/2000년 4월 : "남북한은 오늘 판문점에서 1차 준비접촉을 가진 데 이어서 오는 27일 2차 접촉을 갖기로 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두 달 앞두고 남북 대표가 판문점에서 준비 접촉을 가졌다.

때 맞춰 내린 봄비만큼 판문점엔 활기가 돌았다.

[양영식/당시 남측 수석대표 : "대화의 시대로 열어나가자는 데 공감했다는 것은 오늘 출발할 때부터 이게 좋은 성과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김령성/당시 북측 단장 : "우리와의 중대한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길에서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지 않겠냐..."]

당시 북한 매체 역시 이 같은 판문점의 분위기를 신속하게 전달했다.

[조선 중앙TV/2000년 4월 :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통일을 앞당겨 이룩하는데서 전환적 국면이 열리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판문점 내 남측과 북측 지역을 오가며 다섯차 례 진행된 준비 접촉은 분단이후 최초의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남북이 뭔가 대화로 가는 방향에 있어서 또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했던 공간, 예를 들면 남북이 실질적으로 7.4공동성명을 내오고 그 이후에 전반적인 남북관계가 어려웠지만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 남북관계 개선되는 흐름에서도 역시 판문점을 통해서 남북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그래서 판문점은 한편으로는 대결과 갈등의 공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북 간의 교류의 물꼬를 트는 그런 상징적인 공간으로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졌던 그런 곳이라고 봐야 합니다."]

2000년대 중반엔 남북 간의 실질적 긴장 완화를 위한 장성급 군사회담도 잇따라 진행됐다.

[문성묵/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2001년) 남측 대표 : "공동어로 관련 문제와 철도도로 통행의 군사보장 합의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북측에 설명하였습니다."]

당시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수시로 판문점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었던 예비역 장성은 현장의 긴장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군사분계선을 딱 넘어가는 순간 이제 북한 땅으로 들어간 것 아니예요... 거기서부터는 딱 북측 안내장교에게 인계가 되어가지고 북한 군인들이 안내하는 것 따라서 가게 되거든요. 그러면 이제 아 내가 괜찮을까 안전할까 그런 생각이 들죠. 서로 간에 신변안전에 대한 합의를 다 하고 그런 것들이 보장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 내가 북한 땅에 와서 회담을 하는구나 그런 것이 때로는 좀 위축도 되기도 하고 걱정도 되기도 하고..."]

남북 대치의 한복판에서 열리는 회담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함이 필요하다고도 설명한다.

[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 "언제 어느 때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이제 남북 간에는 만나면 서로 말도 조심하고 또 제스쳐라든지 이런 것도 다 조심하거든요. 그러니까 말도 우리측, 귀측, 북측, 남측 이렇게 용어를 쓰지 북한 남한 뭐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용어들도 조심을 하고 행동도 예를 들어서 상대방을 향해서 뭐 손가락질 한다든지 그렇게 하질 않죠. 일거수일투족이 상대방에게 굉장히 민감하니까 그런 점에서 서로 간에 충분한 협의와 합의가 이루어져야 될 거예요."]

2015년, 북한의 목함 지뢰 도발과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당시에도 남과 북은 판문점에서 만나 공동보도문을 채택하며 위기 해소의 계기를 만들었다.

10년 가까운 경색 기간, 여기에 북한의 핵 도발이 겹치며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이달 말 판문점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고 있다.

판문점이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판문점이 대결과 갈등의 공간에서 대화와 협력,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는 그 계기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되어야 된다. 정상회담 이후에 판문점의 콘셉트 자체를, 판문점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바꿔야 되고 그 과정에서 판문점을 충분히 남북 당국 또 남북 구성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98년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판문점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판문점에서 열린 사상 첫 클래식 음악회...평화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 번 평화의 기운이 돌고 있는 판문점에서 남과 북 정상이 어떤 회담 결과를 내놓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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