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좁아진 비무장지대…DMZ를 가다

입력 2018.05.14 (09:33) 수정 2018.05.1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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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은 서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입니다. 연천 읍내를 지나 10여 분 더 북쪽으로 가면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나옵니다. DMZ 취재 허가가 나기까지 몇 주가 걸렸습니다. 이곳 출입구에서 또 신분증을 보이고, 방문자 확인 절차를 거칩니다.

민통선 마을로 들어서면 논밭을 일구는 우리 주민들이 보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엄격하게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지만 풍경은 한적합니다. 군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군용차 여럿을 지나쳐 북으로 더 올라가 철조망 문 안으로 들어섭니다. 한반도의 허리,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초소에 도착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언론사에 처음 공개되는 DMZ의 속살이 보입니다.

무장하며 좁아진 '비무장지대',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말 그대로 무장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 가운데를 가로질러 남과 북으로 2km씩, 4km 구간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DMZ 현장은 규정과는 달랐습니다. 알려졌듯이 남북한 모두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무장 상태인 겁니다. 또, 북한과 남한의 거리가 4km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좌 : 까맣게 녹슨 중서부 전선 DMZ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우 : 글씨가 선명히 보존된 서부전선 DMZ 표지판좌 : 까맣게 녹슨 중서부 전선 DMZ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우 : 글씨가 선명히 보존된 서부전선 DMZ 표지판

군사분계선은 철책으로 설치된 선이 아닙니다. 초소에서 본 DMZ는 평평한 들판이었지만 아무런 표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서로 248km에 걸친 군사분계선은 1953년 생겼습니다. 정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 200m 간격으로 작은 팻말 1,292개가 땅에 심어졌습니다. 하지만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표지판이 녹슬어 새까맣게 변해버렸거나, 관리가 닿지 않은 말뚝들은 비바람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은 "수풀의 모습이나 땅의 형태를 보고, 저 쯤이 군사분계선이라고 가늠한다"고 했습니다.


DMZ 안에는 '귀순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전한 귀순을 위해 아래와 같이 행동하십시오'라며 '"귀순합니다."라고 고아대십시오.'라고 적혀있습니다. '고아대다'는 소리치라는 뜻의 북한말입니다. 안전을 위해 흔들라며 깃발도 함께 꽂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은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산지가 많은 북한은 산 중턱에 흙길을 내서 북방한계선을 표시했지만, 그 앞쪽으로 고압선 철책을 세우면서 DMZ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우리 측도, 강과 습지를 피해, 그리고 산세를 따라 들쭉날쭉 남방한계선 철책을 세우며 곳곳이 군사분계선에서 2km 안쪽으로 들어섰습니다. 남북한의 초소가 겨우 1km 남짓만 떨어져 대치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딘가 매설돼 있을지 모르는 지뢰를 피해 난 오솔길, 군용차가 오갈 만큼 넓은 도로가 비무장지대 안쪽에 곳곳에 있어, DMZ 안쪽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척에 보이는 북한 초소…공놀이하고, 밭일구는 북한 마을 사람들

날이 흐린 편이었지만 북한군이 막사 뒤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인공기 꽂힌 북한 GP 안에 서 있는 군인도 선명히 보였습니다. 더 멀리 북한 마을에서는 여럿이 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시골 풍경과 비슷했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DMZ 인근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산비탈에 네모 반듯하게 드러난 흙바닥은 채소나 곡물을 농작했던 흔적입니다. 막사 옆에 빨래를 널고, 가을이면 인근 논에서 추수합니다.


손으로 일군 농경지, 총탄 맞은 비석…전쟁 이전 생활상 고스란히 보존된 DMZ

발길이 끊긴 곳인 만큼 울창한 숲과 곳곳에 습지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DMZ는 더욱 생생한 곳이었습니다. 전쟁 이전, 일군 농경지의 흔적이 물결무늬로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또렷했던 비명은 비바람에 깎여 흐릿해졌고, 여러 군데 총탄 흔적만 선명합니다.

20여 년 동안 녹지생태계를 조사하기 위해 DMZ를 수차례 방문해 온 시민사회단체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DMZ를 "근현대사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곳에 보존된 생태계와 생활의 흔적들이 어느 세계 유산 못지 않게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DMZ는 군사적 긴장이 빚어놓은 공간입니다. 무수한 불발탄과 미확인 지뢰들이 묻혀 있을 것입니다. 담벼락이나 철책선이 아닌, 이제는 사라져버린 팻말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라선 DMZ는 수십 년 동안 도발의 위협과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분단의 경계선이지만 다시 오갈 수 있는 시작선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DMZ 안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비무장지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위한 방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냉전의 유산에서 또 다른 화합의 물꼬가 트이는 공간으로서도 기대해봄 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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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좁아진 비무장지대…DMZ를 가다
    • 입력 2018-05-14 09:33:45
    • 수정2018-05-17 11:14:25
    취재후·사건후
경기도 연천은 서울에서 차로 2시간 거리입니다. 연천 읍내를 지나 10여 분 더 북쪽으로 가면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나옵니다. DMZ 취재 허가가 나기까지 몇 주가 걸렸습니다. 이곳 출입구에서 또 신분증을 보이고, 방문자 확인 절차를 거칩니다.

민통선 마을로 들어서면 논밭을 일구는 우리 주민들이 보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엄격하게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지만 풍경은 한적합니다. 군인들을 태우고 달리는 군용차 여럿을 지나쳐 북으로 더 올라가 철조망 문 안으로 들어섭니다. 한반도의 허리,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초소에 도착합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언론사에 처음 공개되는 DMZ의 속살이 보입니다.

무장하며 좁아진 '비무장지대', 보이지 않는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는 말 그대로 무장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 가운데를 가로질러 남과 북으로 2km씩, 4km 구간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DMZ 현장은 규정과는 달랐습니다. 알려졌듯이 남북한 모두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무장 상태인 겁니다. 또, 북한과 남한의 거리가 4km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좌 : 까맣게 녹슨 중서부 전선 DMZ의 군사분계선 표지판, 우 : 글씨가 선명히 보존된 서부전선 DMZ 표지판
군사분계선은 철책으로 설치된 선이 아닙니다. 초소에서 본 DMZ는 평평한 들판이었지만 아무런 표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서로 248km에 걸친 군사분계선은 1953년 생겼습니다. 정전협정 당시, 군사분계선 200m 간격으로 작은 팻말 1,292개가 땅에 심어졌습니다. 하지만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표지판이 녹슬어 새까맣게 변해버렸거나, 관리가 닿지 않은 말뚝들은 비바람에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은 "수풀의 모습이나 땅의 형태를 보고, 저 쯤이 군사분계선이라고 가늠한다"고 했습니다.


DMZ 안에는 '귀순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전한 귀순을 위해 아래와 같이 행동하십시오'라며 '"귀순합니다."라고 고아대십시오.'라고 적혀있습니다. '고아대다'는 소리치라는 뜻의 북한말입니다. 안전을 위해 흔들라며 깃발도 함께 꽂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은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산지가 많은 북한은 산 중턱에 흙길을 내서 북방한계선을 표시했지만, 그 앞쪽으로 고압선 철책을 세우면서 DMZ 안으로 성큼 들어섰습니다. 우리 측도, 강과 습지를 피해, 그리고 산세를 따라 들쭉날쭉 남방한계선 철책을 세우며 곳곳이 군사분계선에서 2km 안쪽으로 들어섰습니다. 남북한의 초소가 겨우 1km 남짓만 떨어져 대치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딘가 매설돼 있을지 모르는 지뢰를 피해 난 오솔길, 군용차가 오갈 만큼 넓은 도로가 비무장지대 안쪽에 곳곳에 있어, DMZ 안쪽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척에 보이는 북한 초소…공놀이하고, 밭일구는 북한 마을 사람들

날이 흐린 편이었지만 북한군이 막사 뒤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인공기 꽂힌 북한 GP 안에 서 있는 군인도 선명히 보였습니다. 더 멀리 북한 마을에서는 여럿이 밭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네 시골 풍경과 비슷했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DMZ 인근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산비탈에 네모 반듯하게 드러난 흙바닥은 채소나 곡물을 농작했던 흔적입니다. 막사 옆에 빨래를 널고, 가을이면 인근 논에서 추수합니다.


손으로 일군 농경지, 총탄 맞은 비석…전쟁 이전 생활상 고스란히 보존된 DMZ

발길이 끊긴 곳인 만큼 울창한 숲과 곳곳에 습지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DMZ는 더욱 생생한 곳이었습니다. 전쟁 이전, 일군 농경지의 흔적이 물결무늬로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또렷했던 비명은 비바람에 깎여 흐릿해졌고, 여러 군데 총탄 흔적만 선명합니다.

20여 년 동안 녹지생태계를 조사하기 위해 DMZ를 수차례 방문해 온 시민사회단체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은 DMZ를 "근현대사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곳에 보존된 생태계와 생활의 흔적들이 어느 세계 유산 못지 않게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DMZ는 군사적 긴장이 빚어놓은 공간입니다. 무수한 불발탄과 미확인 지뢰들이 묻혀 있을 것입니다. 담벼락이나 철책선이 아닌, 이제는 사라져버린 팻말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라선 DMZ는 수십 년 동안 도발의 위협과 긴장감이 서려 있습니다.

분단의 경계선이지만 다시 오갈 수 있는 시작선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DMZ 안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비무장지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위한 방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냉전의 유산에서 또 다른 화합의 물꼬가 트이는 공간으로서도 기대해봄 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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