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책방]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라곰 행복론

입력 2018.05.31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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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곰(Lagom)은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이란 뜻의 단어이다. 한 마디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혹은 지나친 것은 아니 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라곰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단어가 아닌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다. 연중 대부분을 북극권의 얼음과 비, 눈에 흠뻑 젖어 지내는 스웨덴 사람들이지만 스웨덴의 행복지수는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우울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함을 잃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비결은 바로 이 '라곰'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

온갖 소셜 미디어에 매달리는 것도 좋지 않지만 인터넷 선을 끊어버리고 세상과 인연을 접는 것도 극단적이다. 즉 라곰스럽지 않은 것이다. 너무 고칼로리 간식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루 세끼 굶는 것도 라곰하지 않다. 환경을 위한다고 숲 속 오두막집에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시에 살더라도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바로 라곰한 것이다.


"라곰이 최선이다"라는 말은 종종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다. 이제 와인은 그만 마셔라.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 장식은 그만하면 됐다는 거다. 반대로 부족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라곰은 레드와인 한 잔 없는 저녁 식사를 하거나 아무 장식도 없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삶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도 결국엔 지나친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라곰이 최선인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의 삶 속에 깊게 뿌리내린 라곰은 스웨덴의 문화와 건축, 경제 전반까지 바꿔놓았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한 로코코 양식을 흉내 내고 싶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불필요한 장식을 없애게 되었고 이게 오히려 세련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케아, H&M, 아크네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웨덴 브랜드의 특징은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그야말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함이 매력이 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웨덴의 정치에도 라곰이 깊게 뿌리내렸다. 스웨덴은 미국의 자본주의도 소련의 계획경제도 들여오지 않았지만 제3의 방식으로 노동시장 헌법과 사회보장제도를 갖추면서 공정하고 안정된 나라를 만들었다. 극적이나 혁신적이지 않고 그야말로 라곰할 뿐이지만 국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이 책은 스웨덴이 걸어온 역사는 물론 문화 음식. 디자인, 패션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라곰스러운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 실천해볼 만한 대안들을 소개하고 있다.

라곰한 행복을 만드는 라이프 스타일로 저자가 제시한 것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운동: 격한 운동을 꼭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게으르면 안 된다. 산책은 어떨까?
간식: 커피 한 잔과 비스킷 한두 개는 나쁠 것 없다.
여행: 유럽 패키지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면 주말 동안만이라도 충분히 충전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자

저자인 요란 에버달은 스웨덴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버달은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 '스파나르나(Spanarna)에 패널로 출연해 최신 트렌드를 선보이는데 큰 맥락 속에서 사소하지만 독특한 디테일을 찾아내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휘게(가족·친구들과 단란하게 모여 있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의 대를 이을 새로운 트렌드 용어로 '라곰'을 최초로 소개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 행복을 교육하듯 가르치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뭔가 불편하고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통해 '라곰'을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을 얻어보면 좋을 듯하다. 유명 디자이너 로타 큐르호른(Lotta Kuhlhorn)이 선보인 예쁜 북 디자인은 덤이다.

라곰 행복론
요란 에버달 지음. 이나경 옮김. 세종서적.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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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의도 책방]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라곰 행복론
    • 입력 2018-05-31 07:58:26
    여의도책방
라곰(Lagom)은 스웨덴어로 '적당한, 충분한'이란 뜻의 단어이다. 한 마디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혹은 지나친 것은 아니 함만 못하다는 뜻이다.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라곰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단어가 아닌 그들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다. 연중 대부분을 북극권의 얼음과 비, 눈에 흠뻑 젖어 지내는 스웨덴 사람들이지만 스웨덴의 행복지수는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우울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함을 잃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의 비결은 바로 이 '라곰'을 실천하는 데에 있다.

온갖 소셜 미디어에 매달리는 것도 좋지 않지만 인터넷 선을 끊어버리고 세상과 인연을 접는 것도 극단적이다. 즉 라곰스럽지 않은 것이다. 너무 고칼로리 간식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루 세끼 굶는 것도 라곰하지 않다. 환경을 위한다고 숲 속 오두막집에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도시에 살더라도 재활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바로 라곰한 것이다.


"라곰이 최선이다"라는 말은 종종 '이제 그만하라'는 뜻이다. 이제 와인은 그만 마셔라. 크리스마스트리에 반짝이 장식은 그만하면 됐다는 거다. 반대로 부족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라곰은 레드와인 한 잔 없는 저녁 식사를 하거나 아무 장식도 없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거나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삶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도 결국엔 지나친 것으로 다시 말하자면 라곰이 최선인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의 삶 속에 깊게 뿌리내린 라곰은 스웨덴의 문화와 건축, 경제 전반까지 바꿔놓았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화려한 로코코 양식을 흉내 내고 싶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불필요한 장식을 없애게 되었고 이게 오히려 세련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이케아, H&M, 아크네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스웨덴 브랜드의 특징은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그야말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당함이 매력이 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웨덴의 정치에도 라곰이 깊게 뿌리내렸다. 스웨덴은 미국의 자본주의도 소련의 계획경제도 들여오지 않았지만 제3의 방식으로 노동시장 헌법과 사회보장제도를 갖추면서 공정하고 안정된 나라를 만들었다. 극적이나 혁신적이지 않고 그야말로 라곰할 뿐이지만 국민들의 만족도는 상당하다.

이 책은 스웨덴이 걸어온 역사는 물론 문화 음식. 디자인, 패션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 라곰스러운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 실천해볼 만한 대안들을 소개하고 있다.

라곰한 행복을 만드는 라이프 스타일로 저자가 제시한 것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운동: 격한 운동을 꼭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게으르면 안 된다. 산책은 어떨까?
간식: 커피 한 잔과 비스킷 한두 개는 나쁠 것 없다.
여행: 유럽 패키지여행을 위해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면 주말 동안만이라도 충분히 충전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자

저자인 요란 에버달은 스웨덴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로 스웨덴 공영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버달은 매주 금요일에 방송되는 인기 프로그램 '스파나르나(Spanarna)에 패널로 출연해 최신 트렌드를 선보이는데 큰 맥락 속에서 사소하지만 독특한 디테일을 찾아내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휘게(가족·친구들과 단란하게 모여 있는,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의 대를 이을 새로운 트렌드 용어로 '라곰'을 최초로 소개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 행복을 교육하듯 가르치고 있다면, 그러면서도 뭔가 불편하고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 책을 통해 '라곰'을 실천할 수 있는 동력을 얻어보면 좋을 듯하다. 유명 디자이너 로타 큐르호른(Lotta Kuhlhorn)이 선보인 예쁜 북 디자인은 덤이다.

라곰 행복론
요란 에버달 지음. 이나경 옮김. 세종서적.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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