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예술인가? 흉물인가?…‘애물단지’된 공공 조형물

입력 2018.06.06 (08:32) 수정 2018.06.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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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 감상하려면 흔히 미술관, 전시회 쯤은 가야한다고 생각하실텐데요,

공원, 아파트, 건물 앞 등 우리 주변에 설치된 예술 작품만 만 7천여 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른바 공공 조형물인데요.

하지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든 예술 작품이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습니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일부 지자체의 공공 조형물의 경우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합니다.

뉴스따라잡기 오늘은 이른바 '애물단지'된 공공 조형물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주민 : "처음에 무덤인 줄 알았어요. 섬뜩하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좀 놀랄 거 같아요."]

[주민 : "혐오스러운 물건이 들어오니까 매일 매일 괴로워요."]

부정적이기만 한 주민들의 반응, 대체 뭘 보고 이러는 걸까요?

바로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이란 이름의 공공 조형물입니다.

총길이 20미터, 높이 6미터로 잠자는 원시인의 상반신을 형상화한 건데요.

이 지자체의 선사유적공원을 알리기 위한 테마공원이 조성되면서 2억 원을 들여 설치한지 석달.

설치 직후부터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더니 좀처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 : "이게 어떤 모양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예상할 수도 없었고……. 저희가 믿고 기다린 거죠. ‘알아서 잘 예쁘게 해주시겠지. 나랏일인데.’ 했는데 지금 그제서야 주민들도 반발이 일어나고……."]

지역의 볼거리가 될 거란 지자체 의견에, 위압감을 준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두달 전에는 주변 조명이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주민 : "아무래도 너무 크고 조금 흉측하다고 해야 되나. 첫째는 너무 커요. 생뚱맞게 있으니까 옆에 환경이랑 조화가 안 되잖아요. 지금. 그게 제일 큰 문제예요."]

보기에도 괴롭지만 조형물 주변에 안전 장치가 없어 사고의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최진혁/대구광역시 달서구 : "아이들이 조형물에 올라가서 있는 사진인데요. 제가 혼을 내서 내려 보냈는데 최고 높이가 6m 80cm입니다. 안전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죠. 추락하면 중상이라고 봐야죠."]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역 주민 2천9백여 명이 철거 요구 청원까지 넣은 상황.

해당 지자체는 이미 투입된 예산에 철거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박정희/대구 달서구청 관광진흥팀 : "상징적으로 만든 게 ‘이 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원시인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조성하자마자 철거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인 거 같고, 일단 환경을 개선하려고 저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이른바 '랜드마크'를 만들어보겠다며 잇따라 설치하고 있는 공공 조형물.

하지만, 주변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거나 굳이 왜 여기에 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강원도 인제의 마릴린 먼로상.

한국전쟁 당시 한번 왔다는 먼로 조형물에 5천만 원이 들었고요,

일부 지자체의 지역 홍보 욕심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05년 설치된 충북 괴산의 솥단지. 성금 2억 원을 포함해 5억 원을 들였는데, 막대한 철거 비용 등으로 이제는 '밥 해먹을 수 없는 세계 최대 솥단지'라는 오명을 들어가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건물 입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 조형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시민 : "존재 자체를 인식 못 하고 있었어요."]

[시민 : "지저분한 게 눈에 띄니까 '이건 뭐지? 왜 여기 있지?'"]

[박지혜/인천광역시 서구 : "평소에 지나다닐 때 저게 조형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냥 전봇대 정도로 생각했을까요? 물론 전봇대가 아니긴 하지만 그냥 길가에 서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죠."]

서울의 한 빌딩 앞에 설치된 작품.

설치 16년째 녹이 슬고 색이 바랬는데, 이 작품 주변에 이렇게 벤치가 설치되면서 흡연 장소가 돼버렸습니다.

[인근 상인 : "담배를 많이 피워요. 저쪽에는 아예 그냥 담배 피우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예술 작품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인근 상인 : "따로 관리하는 거 없어요. 나라에서 관리를 해주면 모르는데 누가 시간마다 와서 치워요. 저걸. 안 치우죠."]

한 아파트에 설치된 조형물.

나무를 지탱해주는 받침대로 전락했습니다.

깨지고 부서진 상태지만 보수를 할 여력은 없다고 합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 : "관리할 게 뭐 있어요. 뭐 비눗물로 닦겠어요. 뭐하겠어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죠. 뭐 안전에 문제없고 하면, 예를 들면 좀 기울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조치를 하겠지만 있는 자리 그대로니까 놔두는 거예요."]

거리에 설치된 이 공공 조형물은 노점상들 사이에 있어,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인근 상인 : "저녁까지 있으면 술 먹고 발로 차는 사람도 많고. 차로 막 들이받는 사람도 있고……."]

취객들이 주변에 노상 방뇨를 하거나, 광고 전단를 붙였던 흔적도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인근 상인 : "여기가 쓰레기 배출구여서……. 그냥 돌이라고 생각해요. 웬만한 사람들은 조형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우리 주변을 파고 들기 시작한 도심 공공 조형물.

사실 법 때문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건데요.

건축법상 연면적 만 제곱미터가 넘을 경우 최소 건축비의 0.7% 이상의 미술장식품을 설치하거나 문화예술진흥 기금을 내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여년 전 만들어진 이 법이 요즘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습니다.

[안창모/교수/경기대 건축학과 : "(법률이)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사실은 양질의 공공 조형물들이 도시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금액에 맞춰서 마치 거래하듯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지금은 도시 환경을 악화시키는 그런 부작용을 많이 겪고 있는 거 같습니다."]

지역 홍보와 건물 짓기의 ‘내키지 않는 통과 의례’가 돼 버린 우리 주변의 공공 조형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과연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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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6 08:36:49
    • 수정2018-06-06 09: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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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나 조각 등 미술 작품 감상하려면 흔히 미술관, 전시회 쯤은 가야한다고 생각하실텐데요,

공원, 아파트, 건물 앞 등 우리 주변에 설치된 예술 작품만 만 7천여 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른바 공공 조형물인데요.

하지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든 예술 작품이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습니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일부 지자체의 공공 조형물의 경우 오히려 시민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합니다.

뉴스따라잡기 오늘은 이른바 '애물단지'된 공공 조형물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리포트]

[주민 : "처음에 무덤인 줄 알았어요. 섬뜩하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좀 놀랄 거 같아요."]

[주민 : "혐오스러운 물건이 들어오니까 매일 매일 괴로워요."]

부정적이기만 한 주민들의 반응, 대체 뭘 보고 이러는 걸까요?

바로 '2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이란 이름의 공공 조형물입니다.

총길이 20미터, 높이 6미터로 잠자는 원시인의 상반신을 형상화한 건데요.

이 지자체의 선사유적공원을 알리기 위한 테마공원이 조성되면서 2억 원을 들여 설치한지 석달.

설치 직후부터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더니 좀처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 : "이게 어떤 모양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어요. 예상할 수도 없었고……. 저희가 믿고 기다린 거죠. ‘알아서 잘 예쁘게 해주시겠지. 나랏일인데.’ 했는데 지금 그제서야 주민들도 반발이 일어나고……."]

지역의 볼거리가 될 거란 지자체 의견에, 위압감을 준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맞서는 가운데, 두달 전에는 주변 조명이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주민 : "아무래도 너무 크고 조금 흉측하다고 해야 되나. 첫째는 너무 커요. 생뚱맞게 있으니까 옆에 환경이랑 조화가 안 되잖아요. 지금. 그게 제일 큰 문제예요."]

보기에도 괴롭지만 조형물 주변에 안전 장치가 없어 사고의 우려도 있다고 합니다.

[최진혁/대구광역시 달서구 : "아이들이 조형물에 올라가서 있는 사진인데요. 제가 혼을 내서 내려 보냈는데 최고 높이가 6m 80cm입니다. 안전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죠. 추락하면 중상이라고 봐야죠."]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지역 주민 2천9백여 명이 철거 요구 청원까지 넣은 상황.

해당 지자체는 이미 투입된 예산에 철거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박정희/대구 달서구청 관광진흥팀 : "상징적으로 만든 게 ‘이 만 년의 역사가 잠든 곳’, 원시인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조성하자마자 철거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인 거 같고, 일단 환경을 개선하려고 저희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마다 이른바 '랜드마크'를 만들어보겠다며 잇따라 설치하고 있는 공공 조형물.

하지만, 주변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거나 굳이 왜 여기에 하는 경우도 적지 않죠.

강원도 인제의 마릴린 먼로상.

한국전쟁 당시 한번 왔다는 먼로 조형물에 5천만 원이 들었고요,

일부 지자체의 지역 홍보 욕심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2005년 설치된 충북 괴산의 솥단지. 성금 2억 원을 포함해 5억 원을 들였는데, 막대한 철거 비용 등으로 이제는 '밥 해먹을 수 없는 세계 최대 솥단지'라는 오명을 들어가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건물 입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 조형물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시민 : "존재 자체를 인식 못 하고 있었어요."]

[시민 : "지저분한 게 눈에 띄니까 '이건 뭐지? 왜 여기 있지?'"]

[박지혜/인천광역시 서구 : "평소에 지나다닐 때 저게 조형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냥 전봇대 정도로 생각했을까요? 물론 전봇대가 아니긴 하지만 그냥 길가에 서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죠."]

서울의 한 빌딩 앞에 설치된 작품.

설치 16년째 녹이 슬고 색이 바랬는데, 이 작품 주변에 이렇게 벤치가 설치되면서 흡연 장소가 돼버렸습니다.

[인근 상인 : "담배를 많이 피워요. 저쪽에는 아예 그냥 담배 피우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예술 작품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스티커가 붙었습니다.

[인근 상인 : "따로 관리하는 거 없어요. 나라에서 관리를 해주면 모르는데 누가 시간마다 와서 치워요. 저걸. 안 치우죠."]

한 아파트에 설치된 조형물.

나무를 지탱해주는 받침대로 전락했습니다.

깨지고 부서진 상태지만 보수를 할 여력은 없다고 합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 : "관리할 게 뭐 있어요. 뭐 비눗물로 닦겠어요. 뭐하겠어요. 그냥 내버려 두는 거죠. 뭐 안전에 문제없고 하면, 예를 들면 좀 기울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조치를 하겠지만 있는 자리 그대로니까 놔두는 거예요."]

거리에 설치된 이 공공 조형물은 노점상들 사이에 있어,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인근 상인 : "저녁까지 있으면 술 먹고 발로 차는 사람도 많고. 차로 막 들이받는 사람도 있고……."]

취객들이 주변에 노상 방뇨를 하거나, 광고 전단를 붙였던 흔적도 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인근 상인 : "여기가 쓰레기 배출구여서……. 그냥 돌이라고 생각해요. 웬만한 사람들은 조형물이라고 생각 안 해요."]

우리 주변을 파고 들기 시작한 도심 공공 조형물.

사실 법 때문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건데요.

건축법상 연면적 만 제곱미터가 넘을 경우 최소 건축비의 0.7% 이상의 미술장식품을 설치하거나 문화예술진흥 기금을 내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여년 전 만들어진 이 법이 요즘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습니다.

[안창모/교수/경기대 건축학과 : "(법률이)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사실은 양질의 공공 조형물들이 도시에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금액에 맞춰서 마치 거래하듯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지금은 도시 환경을 악화시키는 그런 부작용을 많이 겪고 있는 거 같습니다."]

지역 홍보와 건물 짓기의 ‘내키지 않는 통과 의례’가 돼 버린 우리 주변의 공공 조형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과연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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