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만에 훈장 수여…“너무 늦었습니다”
입력 2018.06.07 (07:38)
수정 2018.06.07 (09: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3.1운동을 주도하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박계천 선생의 후손에게 현충일인 어제 중국 현지에서 훈장이 전수됐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해외 곳곳에 발굴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김경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1운동 당시 국내 항일 운동을 주도한 고 박계천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계천 선생은 광복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0년 중국땅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임시정부 활동 90년이 지난 후에야 백발이 된 손자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대신 받았습니다.
지난해에야 뒤늦게 유족임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박광우·이경자/박계천 선생 후손 : "할아버지가 잘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런 영광을 받게 됐으니까 거기 대해서는 늦었다는 생각 없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후손 확인 작업은 더딥니다.
문화혁명 등을 거치며 항일 운동 자료가 상당 부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전정혁/중국 지방 역사연구가 :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 후손들은 그 할아버지 역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다 구두로 이렇게 전해져 내려왔는데..."]
중국 정부가 항일 열사로 인정한 박대호 조선혁명군 부사령관과 박용호 소대장의 가족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가장이 일제에 처형당한 뒤 후손들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박홍률/중국 동포 :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쓸 줄도 모르고 남의 손 빌려서 써서 (한국에 유공자 신청)했는데 '증거부족(證据不足)'..."]
국가보훈처는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해외 독립유공자 발굴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경수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하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박계천 선생의 후손에게 현충일인 어제 중국 현지에서 훈장이 전수됐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해외 곳곳에 발굴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김경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1운동 당시 국내 항일 운동을 주도한 고 박계천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계천 선생은 광복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0년 중국땅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임시정부 활동 90년이 지난 후에야 백발이 된 손자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대신 받았습니다.
지난해에야 뒤늦게 유족임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박광우·이경자/박계천 선생 후손 : "할아버지가 잘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런 영광을 받게 됐으니까 거기 대해서는 늦었다는 생각 없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후손 확인 작업은 더딥니다.
문화혁명 등을 거치며 항일 운동 자료가 상당 부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전정혁/중국 지방 역사연구가 :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 후손들은 그 할아버지 역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다 구두로 이렇게 전해져 내려왔는데..."]
중국 정부가 항일 열사로 인정한 박대호 조선혁명군 부사령관과 박용호 소대장의 가족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가장이 일제에 처형당한 뒤 후손들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박홍률/중국 동포 :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쓸 줄도 모르고 남의 손 빌려서 써서 (한국에 유공자 신청)했는데 '증거부족(證据不足)'..."]
국가보훈처는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해외 독립유공자 발굴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경수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90년 만에 훈장 수여…“너무 늦었습니다”
-
- 입력 2018-06-07 07:52:25
- 수정2018-06-07 09:39:36

[앵커]
3.1운동을 주도하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박계천 선생의 후손에게 현충일인 어제 중국 현지에서 훈장이 전수됐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해외 곳곳에 발굴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김경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1운동 당시 국내 항일 운동을 주도한 고 박계천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계천 선생은 광복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0년 중국땅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임시정부 활동 90년이 지난 후에야 백발이 된 손자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대신 받았습니다.
지난해에야 뒤늦게 유족임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박광우·이경자/박계천 선생 후손 : "할아버지가 잘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런 영광을 받게 됐으니까 거기 대해서는 늦었다는 생각 없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후손 확인 작업은 더딥니다.
문화혁명 등을 거치며 항일 운동 자료가 상당 부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전정혁/중국 지방 역사연구가 :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 후손들은 그 할아버지 역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다 구두로 이렇게 전해져 내려왔는데..."]
중국 정부가 항일 열사로 인정한 박대호 조선혁명군 부사령관과 박용호 소대장의 가족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가장이 일제에 처형당한 뒤 후손들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박홍률/중국 동포 :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쓸 줄도 모르고 남의 손 빌려서 써서 (한국에 유공자 신청)했는데 '증거부족(證据不足)'..."]
국가보훈처는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해외 독립유공자 발굴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경수입니다.
3.1운동을 주도하고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박계천 선생의 후손에게 현충일인 어제 중국 현지에서 훈장이 전수됐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찾아낸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해외 곳곳에 발굴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이 퍼져 있다고 합니다.
김경수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1919년 3·1운동 당시 국내 항일 운동을 주도한 고 박계천 선생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계천 선생은 광복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0년 중국땅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임시정부 활동 90년이 지난 후에야 백발이 된 손자가 할아버지의 훈장을 대신 받았습니다.
지난해에야 뒤늦게 유족임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박광우·이경자/박계천 선생 후손 : "할아버지가 잘하셨기 때문에 오늘 우리 이런 영광을 받게 됐으니까 거기 대해서는 늦었다는 생각 없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후손 확인 작업은 더딥니다.
문화혁명 등을 거치며 항일 운동 자료가 상당 부분 소실됐기 때문입니다.
[전정혁/중국 지방 역사연구가 :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이 후손들은 그 할아버지 역사를 어떻게 알겠어요. 다 구두로 이렇게 전해져 내려왔는데..."]
중국 정부가 항일 열사로 인정한 박대호 조선혁명군 부사령관과 박용호 소대장의 가족도 정작 우리나라에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가장이 일제에 처형당한 뒤 후손들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박홍률/중국 동포 :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쓸 줄도 모르고 남의 손 빌려서 써서 (한국에 유공자 신청)했는데 '증거부족(證据不足)'..."]
국가보훈처는 내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해외 독립유공자 발굴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경수입니다.
-
-
김경수 기자 bada@kbs.co.kr
김경수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