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음성군 최귀동 노인의 이웃 사랑 한평생

입력 1990.01.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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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 앵커 :

나환자나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해오면서 한평생을 살아온 충청북도 음성군 꽃동네의 최귀동 할아버지가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충주에서 방석준 기자가 전합니다.


방석준 기자 :

지금의 꽃동네가 있게 된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해준 최귀동 할아버지가 81년의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자, 꽃동네 사람들은 가신분의 넋을 기리며 이렇게 그 분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지난 1909년에 충북 음성군 금화읍 모곡리에서 태어난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뒤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뒤부터 구걸 행각으로 얻은 밥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행주 병자들의 장례를 도맡아 하는 등 한평생을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오웅진 (꽃동네 주임 신부) :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말 없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배 곯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저분이 40여 년 동안을 그 뒷바라지를 했다는 겁니다.


방석준 기자 :

이렇게 시작된 꽃동네에는 현재 의지할 곳도 없고 일할 능력도 없는 천 6백 40명이 고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정성 속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도 불구이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랑을 실천해 온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86년에 가톨릭 사랑의 대상을 수상했고 사후에도 앞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눈을 기증할 만큼 몸소 사랑을 실천해 온 우리 사회의 길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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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북도 음성군 최귀동 노인의 이웃 사랑 한평생
    • 입력 1990-01-05 21:00:00
    뉴스 9

이규원 앵커 :

나환자나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해오면서 한평생을 살아온 충청북도 음성군 꽃동네의 최귀동 할아버지가 8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충주에서 방석준 기자가 전합니다.


방석준 기자 :

지금의 꽃동네가 있게 된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해준 최귀동 할아버지가 81년의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나자, 꽃동네 사람들은 가신분의 넋을 기리며 이렇게 그 분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지난 1909년에 충북 음성군 금화읍 모곡리에서 태어난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간 뒤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뒤부터 구걸 행각으로 얻은 밥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행주 병자들의 장례를 도맡아 하는 등 한평생을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오웅진 (꽃동네 주임 신부) :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말 없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배 곯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저분이 40여 년 동안을 그 뒷바라지를 했다는 겁니다.


방석준 기자 :

이렇게 시작된 꽃동네에는 현재 의지할 곳도 없고 일할 능력도 없는 천 6백 40명이 고 최귀동 할아버지와 오웅진 신부의 정성 속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도 불구이면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랑을 실천해 온 고 최귀동 할아버지는 86년에 가톨릭 사랑의 대상을 수상했고 사후에도 앞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눈을 기증할 만큼 몸소 사랑을 실천해 온 우리 사회의 길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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