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제사유적 발견; 변산반도 채석강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제사유적터 와 발굴된 제사용품 파편들및 한영희 전주박물관장 인터뷰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 무렵 사용돼온 제사유적 터가 발견됐습니다.
바다를 향해 제를 올린 것으로 여겨지는 이 제사 터에는 민속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희귀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습니다.
이동식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동식 기자 :
제4 유적이 확인된 것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 채석강의 수선강이라고 불리우는 당집 뒤쪽입니다.
국립 전주박물관 발굴단은 동서길이 10미터, 남북 6미터 되는 땅을 파낸 결과 돌, 유리, 흙, 청동 등으로 만든 수많은 제사용품을 확인하고 이곳이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부터 바다를 향해 제를 올리는 제사 터임을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한영희 (국립 전주박물관장) :
삼국시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 제사행위가 가장 활발했던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되고 그 삼국시대 그 연대는 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의 전반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동식 기자 :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출토유례가 없는 구멍이 난 돌판 70여개가 나왔는데 이것은 실로 엮어서 성스러운 나무 주변에 걸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머리와 사지를 자른 흙으로 만든 말 모양 제품과 돌로 된 거울, 칼, 옥 등 이른바 무속에 쓰이는 3종의 신들을 모두 찾아냈으며 중국 동진시대의 귀달린 청자편, 용무늬가 투조된 말안장 조각, 말방울 등 수많은 유물을 확인함으로서 이 일대가 5세기 후반 이후 계속적으로 사용돼 온 것 임을 밝혔습니다.
바다를 면한 이곳은 황해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교통의 아주 요충입니다.
이곳은 후기 백제의 수도인 공주와 부여로 들어가는 길목에 해당하며 주위에 산성과 봉수대등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상왕국이던 백제의 바다로 향한 관문역할을 했었을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발굴된 토기의 질이 우수하고 크기도 대형인 점등으로 볼 때 생활유적이 아니라 백제의 왕권과 직접 관련된 제사 터로 보입니다.
이곳의 유물들은 일본 오키노시마의 유물과 비슷하나 돌의 질이 다르고 간갑 등 새 유물이 많이 나옴으로서 민속고고학성으로 일본과 어떤 관계인가에도 관심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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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제사 유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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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2-06-01 21:00:00

삼국시대 제사유적 발견; 변산반도 채석강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제사유적터 와 발굴된 제사용품 파편들및 한영희 전주박물관장 인터뷰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 무렵 사용돼온 제사유적 터가 발견됐습니다.
바다를 향해 제를 올린 것으로 여겨지는 이 제사 터에는 민속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희귀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습니다.
이동식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동식 기자 :
제4 유적이 확인된 것은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 채석강의 수선강이라고 불리우는 당집 뒤쪽입니다.
국립 전주박물관 발굴단은 동서길이 10미터, 남북 6미터 되는 땅을 파낸 결과 돌, 유리, 흙, 청동 등으로 만든 수많은 제사용품을 확인하고 이곳이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부터 바다를 향해 제를 올리는 제사 터임을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한영희 (국립 전주박물관장) :
삼국시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국시대에 제사행위가 가장 활발했던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되고 그 삼국시대 그 연대는 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의 전반에 해당되는 유적으로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이동식 기자 :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출토유례가 없는 구멍이 난 돌판 70여개가 나왔는데 이것은 실로 엮어서 성스러운 나무 주변에 걸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머리와 사지를 자른 흙으로 만든 말 모양 제품과 돌로 된 거울, 칼, 옥 등 이른바 무속에 쓰이는 3종의 신들을 모두 찾아냈으며 중국 동진시대의 귀달린 청자편, 용무늬가 투조된 말안장 조각, 말방울 등 수많은 유물을 확인함으로서 이 일대가 5세기 후반 이후 계속적으로 사용돼 온 것 임을 밝혔습니다.
바다를 면한 이곳은 황해를 통해 중국과 일본을 잇는 해상교통의 아주 요충입니다.
이곳은 후기 백제의 수도인 공주와 부여로 들어가는 길목에 해당하며 주위에 산성과 봉수대등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상왕국이던 백제의 바다로 향한 관문역할을 했었을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발굴된 토기의 질이 우수하고 크기도 대형인 점등으로 볼 때 생활유적이 아니라 백제의 왕권과 직접 관련된 제사 터로 보입니다.
이곳의 유물들은 일본 오키노시마의 유물과 비슷하나 돌의 질이 다르고 간갑 등 새 유물이 많이 나옴으로서 민속고고학성으로 일본과 어떤 관계인가에도 관심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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