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9 현장 투란야의 비극

입력 1993.03.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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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찬 앵커 :

옛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시작된 이 지역의 처절한 민족분규는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전지역 가운데서도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둘러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이 두 민족 사이의 갈등으로 가장 먼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역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 근교의 한 작은 마을을 통해서 치열했던 유고내전의 비극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선규 특파원의 취재입니다.


박선규 특파원 :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에서 남쪽으로 60키로미터 정도. 이곳에 카르로바치란 도시가 있고 그 안쪽편에 투란야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강을 경계로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군인들이 지켜서 출입자들을 통제합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철저하게 부서진 건물들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중심부의 유엔군 초소. 이곳에서부터 1키로미터 정도를 비무장 지대로 정해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 사람들의 전부를 막고 있습니다. 투란야 마을, 전쟁전 이 마을의 인구는 크로아티아인 천 6백명에 세르비아인 4백명 해서 2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91년 6월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게 될 세르비아인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여기에 2차대전 당시의 대량학살 등 양 민족 사이에 숨어 있던 수 백년 민족 감정까지 뒤섞여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두 달 동안 진행된 처절한 전투에서 숨진 사람만 4백명 가까이. 전쟁 전 마을 인구의 20%가 숨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를 내고도 전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에지드 엘스키 (유엔보호군소속 폴란드군대위) :

정말 바보같은 전쟁입니다. 6개월 있었지만 이해 못하겠어요. 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아무도 이해 못 할 겁니다.


박선규 특파원 :

유엔경계 초소 부터는 유엔군들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전쟁은 그만두고 사랑합시다. 허수아비에 적힌 간절한 염원. 유엔군들이 있지만 건물 사이사이엔 무장한 경계병들이 지켜서 있습니다. 전투의 흔적인 상당히 깊고도 험한 상처를 남긴채 전투이후에도 여전한 위험 상황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 옆으로 보이는 넓은 흙구덩이. 바로 지뢰가 몇일전에 터졌던 자리입니다. 이미 전투가 끝난 상황 속에서도 이곳에서 터진 지뢰와 같은 여러 가지 위험 물질들이 이곳 곳곳에서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이러한 크레모아들은 이곳의 전투가 주민들만의 전투가 아니라 더 큰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대리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요즘은 직접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밤 시간을 이용해 상대지역에 지뢰나 크레무아 등을 설치해 놓거나 박격포 공격을 가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유엔병사들은 설명합니다. 도로에 깊게 패인 흔적, 이곳만 해도 1주일전 박격포탄이 떨어졌던 자리입니다.


“6일전에 세르비아인들이 쏜 박격포탄이 떨어진 자리입니다.”


이곳은 비무장 지대가 끝나는 지점. 세르비아인들의 전방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의 책임자는 지금은 적으로 맞서 있는 맞은편 크로아티아 지역 책임자와 고등학교 동창 사이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비극상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얀코 벨로미로비치 (세르비아군 지역책임자) :

전쟁전에는 서로 잘 지냈어요. 그러나 크로아티아 민주동맹이 집권하자 우리들이 탄압했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우리를 억압하면서 독립하려 해 전쟁이 난 것이죠.


박선규 특파원 :

그러나 크로아티아쪽의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이반 쇼스타리치 (크로아티아군 지역책임자) :

세르비아인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원했을 뿐인데 그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정 반대의 주장. 내전지역 어디에서나 공통되는 현상입니다. 마침 현장에서 휴전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럽공동체 감시단원들을 만났습니다.


호세 아르세니오 (유엔 감시단원) :

양쪽 책임자는 언제나 진실의 일부만을 얘기합니다. 우리는 양쪽 모두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는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시켜놓은 상태에서 또 무엇을 위한 전투를 준비한다는 것인지, 부서지고 깨지고. 이웃과 친구가 서로에게 적으로 변해 총을 겨누는 현실.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부탄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은 유고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만일 절친했던 세르비아인 친구가 조용히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선뜻 하지 못하던 크로아티아 병사. 그는 25년전 이 동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세르비아 친구들이 지금은 함께 전쟁을 하고 있다며 침통해 했습니다.


루볼로비치 (크로아티아군 병사) :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이 밑에서 전쟁놀이 공놀이를 했습니다. 그땐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구분이 없었는데...


박선규 특파원 :

크로아티아의 투란야 마을에서 KBS 뉴스 박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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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9 현장 투란야의 비극
    • 입력 1993-03-23 21:00:00
    뉴스 9

유근찬 앵커 :

옛 유고 연방이 해체되면서 시작된 이 지역의 처절한 민족분규는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내전지역 가운데서도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둘러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이 두 민족 사이의 갈등으로 가장 먼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역입니다.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 근교의 한 작은 마을을 통해서 치열했던 유고내전의 비극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박선규 특파원의 취재입니다.


박선규 특파원 :

크로아티아의 수도 쟈그레브에서 남쪽으로 60키로미터 정도. 이곳에 카르로바치란 도시가 있고 그 안쪽편에 투란야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강을 경계로 시작되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군인들이 지켜서 출입자들을 통제합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철저하게 부서진 건물들이 우선 눈에 들어옵니다. 마을 중심부의 유엔군 초소. 이곳에서부터 1키로미터 정도를 비무장 지대로 정해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 사람들의 전부를 막고 있습니다. 투란야 마을, 전쟁전 이 마을의 인구는 크로아티아인 천 6백명에 세르비아인 4백명 해서 2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91년 6월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게 될 세르비아인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여기에 2차대전 당시의 대량학살 등 양 민족 사이에 숨어 있던 수 백년 민족 감정까지 뒤섞여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두 달 동안 진행된 처절한 전투에서 숨진 사람만 4백명 가까이. 전쟁 전 마을 인구의 20%가 숨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를 내고도 전투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에지드 엘스키 (유엔보호군소속 폴란드군대위) :

정말 바보같은 전쟁입니다. 6개월 있었지만 이해 못하겠어요. 이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아무도 이해 못 할 겁니다.


박선규 특파원 :

유엔경계 초소 부터는 유엔군들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전쟁은 그만두고 사랑합시다. 허수아비에 적힌 간절한 염원. 유엔군들이 있지만 건물 사이사이엔 무장한 경계병들이 지켜서 있습니다. 전투의 흔적인 상당히 깊고도 험한 상처를 남긴채 전투이후에도 여전한 위험 상황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 옆으로 보이는 넓은 흙구덩이. 바로 지뢰가 몇일전에 터졌던 자리입니다. 이미 전투가 끝난 상황 속에서도 이곳에서 터진 지뢰와 같은 여러 가지 위험 물질들이 이곳 곳곳에서 수도 없이 발견됩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이러한 크레모아들은 이곳의 전투가 주민들만의 전투가 아니라 더 큰 세력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대리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요즘은 직접적인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밤 시간을 이용해 상대지역에 지뢰나 크레무아 등을 설치해 놓거나 박격포 공격을 가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유엔병사들은 설명합니다. 도로에 깊게 패인 흔적, 이곳만 해도 1주일전 박격포탄이 떨어졌던 자리입니다.


“6일전에 세르비아인들이 쏜 박격포탄이 떨어진 자리입니다.”


이곳은 비무장 지대가 끝나는 지점. 세르비아인들의 전방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의 책임자는 지금은 적으로 맞서 있는 맞은편 크로아티아 지역 책임자와 고등학교 동창 사이입니다.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의 비극상을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얀코 벨로미로비치 (세르비아군 지역책임자) :

전쟁전에는 서로 잘 지냈어요. 그러나 크로아티아 민주동맹이 집권하자 우리들이 탄압했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우리를 억압하면서 독립하려 해 전쟁이 난 것이죠.


박선규 특파원 :

그러나 크로아티아쪽의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이반 쇼스타리치 (크로아티아군 지역책임자) :

세르비아인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원했을 뿐인데 그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전쟁의 원인에 대한 정 반대의 주장. 내전지역 어디에서나 공통되는 현상입니다. 마침 현장에서 휴전감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유럽공동체 감시단원들을 만났습니다.


호세 아르세니오 (유엔 감시단원) :

양쪽 책임자는 언제나 진실의 일부만을 얘기합니다. 우리는 양쪽 모두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한다는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박선규 특파원 :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시켜놓은 상태에서 또 무엇을 위한 전투를 준비한다는 것인지, 부서지고 깨지고. 이웃과 친구가 서로에게 적으로 변해 총을 겨누는 현실.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 부탄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모습은 유고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만일 절친했던 세르비아인 친구가 조용히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답을 선뜻 하지 못하던 크로아티아 병사. 그는 25년전 이 동산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세르비아 친구들이 지금은 함께 전쟁을 하고 있다며 침통해 했습니다.


루볼로비치 (크로아티아군 병사) :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이 밑에서 전쟁놀이 공놀이를 했습니다. 그땐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 구분이 없었는데...


박선규 특파원 :

크로아티아의 투란야 마을에서 KBS 뉴스 박선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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