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인물] 야센 아라파트 PLO 의장

입력 1993.09.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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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으로도 중동평화는 국제정서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보게 되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LO를 승인하고 PLO는 이스라엘을 인정함으로써 중동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설 단계까지 와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도 PLO 승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팔 국 창성을 위한 투쟁의 45년, 그 뒤에는 아라파트라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금주의 초점인물 KBS는 야센 아라파트 PLO 의장을 선정했습니다. 보도에 신동윤 기자입니다.


아라파트 (PLO 의장) :

PLO와 협상하지 않으면 누구와 협상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평화는 없습니다. 협상만이 해결책입니다.


신동윤 기자 :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4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4천년동안 살아온 자기 땅에서 쫓겨났을 때 청년 아라파트는 카이로 대학 팔레스타인 연맹의 의장이었습니다. 중동지역 곳곳에서 아랍 민족주의가 분출하면서 청년 아라파트는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1959년 10월 알파타라는 무장 테러조직을 결성합니다. 알파타는 1964년 다이안 장군이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에 첫 번째 테러 공격을 가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아라파트는 그의 억센 턱수염과 바둑판무늬의 스카프와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의 상징이었습니다. 반 이스라엘 게릴라 작전의 모태가 된 알파타는 1968년 PLO의 중심세력으로 변하고 아라파트도 자연스럽게 PLO의 의장으로 피선됩니다. 이후 PLO는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하고 이 때문에 아라파트는 모두 50여 차례의 암살 위기를 맞았습니다. 1985년 이스라엘이 튀니스의 PLO 본부를 공격했을 대 세계는 그가 폭사했다고 믿었습니다. 지난해 4얼에는 자신이 탄 비행기가 모래폭풍에 휘말려 실종, 사망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뇌수술 끝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5군데 거주지를 돌아가면서 쓰고 있고 그가 도착하는 공항은 도착 5분전에 그의 도착을 알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극비에 부쳐지고 있습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지지했다가 중동 국가들로부터 궁지에 몰렸던 아라파트는 또 PLO내 강경파로부터 타협적이라는 이유로 의장직 사임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28살 된 여비서와 결혼 63살의 아라파트는 이제 평생을 걸었던 팔레스타인국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동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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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점인물] 야센 아라파트 PLO 의장
    • 입력 1993-09-03 21:00:00
    뉴스 9

물론 앞으로도 중동평화는 국제정서에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보게 되면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PLO를 승인하고 PLO는 이스라엘을 인정함으로써 중동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설 단계까지 와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도 PLO 승인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팔 국 창성을 위한 투쟁의 45년, 그 뒤에는 아라파트라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금주의 초점인물 KBS는 야센 아라파트 PLO 의장을 선정했습니다. 보도에 신동윤 기자입니다.


아라파트 (PLO 의장) :

PLO와 협상하지 않으면 누구와 협상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평화는 없습니다. 협상만이 해결책입니다.


신동윤 기자 :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4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4천년동안 살아온 자기 땅에서 쫓겨났을 때 청년 아라파트는 카이로 대학 팔레스타인 연맹의 의장이었습니다. 중동지역 곳곳에서 아랍 민족주의가 분출하면서 청년 아라파트는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해 1959년 10월 알파타라는 무장 테러조직을 결성합니다. 알파타는 1964년 다이안 장군이 버티고 있는 이스라엘에 첫 번째 테러 공격을 가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때부터 아라파트는 그의 억센 턱수염과 바둑판무늬의 스카프와 함께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의 상징이었습니다. 반 이스라엘 게릴라 작전의 모태가 된 알파타는 1968년 PLO의 중심세력으로 변하고 아라파트도 자연스럽게 PLO의 의장으로 피선됩니다. 이후 PLO는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 공격을 감행하고 이 때문에 아라파트는 모두 50여 차례의 암살 위기를 맞았습니다. 1985년 이스라엘이 튀니스의 PLO 본부를 공격했을 대 세계는 그가 폭사했다고 믿었습니다. 지난해 4얼에는 자신이 탄 비행기가 모래폭풍에 휘말려 실종, 사망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뇌수술 끝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5군데 거주지를 돌아가면서 쓰고 있고 그가 도착하는 공항은 도착 5분전에 그의 도착을 알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극비에 부쳐지고 있습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지지했다가 중동 국가들로부터 궁지에 몰렸던 아라파트는 또 PLO내 강경파로부터 타협적이라는 이유로 의장직 사임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28살 된 여비서와 결혼 63살의 아라파트는 이제 평생을 걸었던 팔레스타인국 건설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동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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