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박정애, 김일성의 북한 주도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

입력 1994.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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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해방이후의 김일성이 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던, 북한의 여성 거물 박정애가 광복직후에 서울에 다녀간 사실이 KBS가 최근에 긴급 입수한 희귀 자료에서 밝혀졌습니다.

박정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에 얼굴을 내밀었던 그 현장을, 이재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소 공동위원회 환영,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촉성시민대회가 4월11일 서울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날 인민당...씨, 조선공산당 대표 박헌영씨 중앙인민위원회 회장....”


이재호 기자 :

광복 이듬해인 4월11일 오후2시, 10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이 대회에 당시의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참석한 박정애의 모습니다.

190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박정애는,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을 맡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졸업 경력을 발판으로 삼은 박정애는, 광복 직후 북한과 소련과의 관계에 깊숙히 관여해,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으로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습니다. 박정애는 경제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53년 9월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동행했으며, 5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최고희의에서도 김일성과 나란히 참석해 막중한 지휘를 과시했습니다. 박정애는 그후, 북한 농업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내뒤, 지난 87년 8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이재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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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박정애, 김일성의 북한 주도권 장악에 결정적 역할
    • 입력 1994-08-12 21:00:00
    뉴스 9

이윤성 앵커 :

해방이후의 김일성이 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던, 북한의 여성 거물 박정애가 광복직후에 서울에 다녀간 사실이 KBS가 최근에 긴급 입수한 희귀 자료에서 밝혀졌습니다.

박정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에 얼굴을 내밀었던 그 현장을, 이재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소 공동위원회 환영,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촉성시민대회가 4월11일 서울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날 인민당...씨, 조선공산당 대표 박헌영씨 중앙인민위원회 회장....”


이재호 기자 :

광복 이듬해인 4월11일 오후2시, 10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운동장에서 열린 이 대회에 당시의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참석한 박정애의 모습니다.

1907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박정애는,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뒤 당시의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을 맡고 있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졸업 경력을 발판으로 삼은 박정애는, 광복 직후 북한과 소련과의 관계에 깊숙히 관여해, 김일성이 소련의 지원으로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습니다. 박정애는 경제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53년 9월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동행했으며, 56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최고희의에서도 김일성과 나란히 참석해 막중한 지휘를 과시했습니다. 박정애는 그후, 북한 농업상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내뒤, 지난 87년 8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 뉴스, 이재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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