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기록 230시간

입력 1995.07.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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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앵커 :

지난달 29일 오후5시57분 그리고 오늘아침 8시21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최씨의 230시간을 김환주 기자가 재구성 했습니다.


김환주 기자 :

사고가 나기 불과 10여분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5시40분. 저녁식사 전에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무소처럼 동료 4명과 지하3층 식당을 찾았습니다. 여자 친구 유정화양도 함께였습니다. 매장에 남아 일하고 있을 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리나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지상2층 매장까지 뛰어올라 갔습니다. 친구들과 지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왠지 느린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가 오후5시57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흔들리더니 벽이 갈라지고 천정이 내려않았습니다. 눈을 의심할 틈도 없이 비상계단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칠흑 같은 어둠속에 타는 듯 한 열기까지 치솟는 이곳은 어딘가?


“괜찮은 사람 있냐고 했더니, 두 사람이 대답하데요.”


“주위에 다른 사람 없었나?”


“반대쪽에 있었지만, 그 사람들과 얘기는 못 나눴어요.”


그나마 대답하는 목소리에 아직은 살아 있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불이 났는지 갑자기 연기가 새들어왔습니다. 타는 듯 한 갈증도 잊은 채 양말을 물에 적셔 코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쇠를 쳐서 소리를 보냈고, 맨 처음에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꼭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편하게 해보려고 두 다리를 뻗고 윗옷도 벗었습니다.


“이리저리 누웠다 돌아누웠다 했어요.”


적막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잠을 청했고, 꿈속에서는 지옥 같은 이곳을 빠져나가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깨어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로 잤습니다.”


깨어있을 때는 일주일이상 막장에 갇혀 있다 살아나은 광원의 얘기를 되뇌었습니다.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겼습니다. 갈증에다 이젠 혼자라는 두려움에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사고가 난지 며칠이나 흘렀는지 그리고 내가 이곳에 살아 있다는 것을 밖에서는 알고들은 있는지, 답답함을 잊기 위해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빛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구해주겠다는 대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소리는 질렀지만 들리는 것은 중장비소리였습니다. 허기를 잊기 위해 종이상자를 물에 적셔 씹었습니다.


“내가 없는 쪽을 파 내려가고 작업 중단 방송까지 들려 절망 했어요.”


이젠 포기해야 하는가! 문득 정화와 친구들 생각이 났습니다. 과연 살아들은 있는지. 한순간 잠든 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빛이 보여 소리를 질렀어요. 누가 있냐 하길래 있다고 했어요.”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전등이 어지럽게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구조대원들도 보였습니다. 꿈이 아니기만 을 바랬습니다.


“누가 가장 보고 싶었습니까?”


“부모님과 형제들…….”


KBS 뉴스, 김환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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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환기록 230시간
    • 입력 1995-07-09 21:00:00
    뉴스 9

김종진 앵커 :

지난달 29일 오후5시57분 그리고 오늘아침 8시21분,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들었던 최씨의 230시간을 김환주 기자가 재구성 했습니다.


김환주 기자 :

사고가 나기 불과 10여분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5시40분. 저녁식사 전에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무소처럼 동료 4명과 지하3층 식당을 찾았습니다. 여자 친구 유정화양도 함께였습니다. 매장에 남아 일하고 있을 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부리나케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지상2층 매장까지 뛰어올라 갔습니다. 친구들과 지하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는 왠지 느린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가 오후5시57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흔들리더니 벽이 갈라지고 천정이 내려않았습니다. 눈을 의심할 틈도 없이 비상계단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칠흑 같은 어둠속에 타는 듯 한 열기까지 치솟는 이곳은 어딘가?


“괜찮은 사람 있냐고 했더니, 두 사람이 대답하데요.”


“주위에 다른 사람 없었나?”


“반대쪽에 있었지만, 그 사람들과 얘기는 못 나눴어요.”


그나마 대답하는 목소리에 아직은 살아 있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불이 났는지 갑자기 연기가 새들어왔습니다. 타는 듯 한 갈증도 잊은 채 양말을 물에 적셔 코와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쇠를 쳐서 소리를 보냈고, 맨 처음에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꼭 살 수 있을 거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공간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편하게 해보려고 두 다리를 뻗고 윗옷도 벗었습니다.


“이리저리 누웠다 돌아누웠다 했어요.”


적막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잠을 청했고, 꿈속에서는 지옥 같은 이곳을 빠져나가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깨어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로 잤습니다.”


깨어있을 때는 일주일이상 막장에 갇혀 있다 살아나은 광원의 얘기를 되뇌었습니다. 갑자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겼습니다. 갈증에다 이젠 혼자라는 두려움에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사고가 난지 며칠이나 흘렀는지 그리고 내가 이곳에 살아 있다는 것을 밖에서는 알고들은 있는지, 답답함을 잊기 위해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어느 날 빛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구해주겠다는 대답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매일같이 소리는 질렀지만 들리는 것은 중장비소리였습니다. 허기를 잊기 위해 종이상자를 물에 적셔 씹었습니다.


“내가 없는 쪽을 파 내려가고 작업 중단 방송까지 들려 절망 했어요.”


이젠 포기해야 하는가! 문득 정화와 친구들 생각이 났습니다. 과연 살아들은 있는지. 한순간 잠든 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빛이 보여 소리를 질렀어요. 누가 있냐 하길래 있다고 했어요.”


목소리를 들었는지 손전등이 어지럽게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구조대원들도 보였습니다. 꿈이 아니기만 을 바랬습니다.


“누가 가장 보고 싶었습니까?”


“부모님과 형제들…….”


KBS 뉴스, 김환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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