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찬 앵커 :
이 오익제氏는 자신의 종교적.정치적 입지를 월북하는데 최대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氏는 월북하기 전까지 종교계와 정치계 또 재야단체를 넘나들면서 국내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었고 또 종교인의 입장에 걸맞지 않는 통일주장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이화섭 기자가 오氏의 행적을 보도해 드립니다.
⊙이화섭 기자 :
오익제氏는 천도교 교령으로 있으면서 포교와 수도보다는 천도교의 남북 교류사업과 통일 문제에 남다른 집착을 보입니다. 지난 90년 11월 천도교의 남북교류와 통일을 촉구하는 대북 제의문은 그 시작이었습니다.
⊙오익제氏 (모 방송사와 대담(90년 11월))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그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화섭 기자 :
91년초에는 천도교의 전위단체를 육성해 민족통일의 기수로 삼자는 주장을 폅니다. 오氏는 지난 93년 3월 부패척결을 위한 3.1절 시국선언을 하는 등 현실비판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93년 10월에는 중국 북경에서 배석자없이 북한의 천도교 대표이자 월북한 최덕신의 부인인 유미영 등을 만나 남북한 천도교 대표들의 서울과 평양 교환방문에 합의합니다. 그러나 당시 오氏가 혼자서 북한의 노동당 전위조직인 천도교 천우당 대표를 만난 것이 상당한 돌출행동으로 비춰지는 등 오氏의 대북관이 천도교단의 집단적인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김재중 (천도교 교령) :
돌출적이랄까 좀 영웅심리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대여활동이나 그런 것이 좀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을 가미해서 한게 아닌가...
⊙이화섭 기자 :
동학 백주년 기념식에서 오氏의 통일관은 극단적인 면까지 내비칩니다.
⊙동학 100주년 기념사 (94년 3월 21일) :
평화적 남북통일을 위해서 나의 남은 일생을 불태워 기필코 이를 달성하는데 이한몸 바칠 것을...
⊙이화섭 기자 :
오氏는 지난 94년 6월 천도교 이사회의 의결없이 순일관 주차장을 지으면서 3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일로 천도교를 떠난뒤, 국민회의의 상임고문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습니다.
KBS 뉴스, 이화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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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북한 오익제씨, 천도교교령 당시 행적 ; 극단적 통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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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7-08-21 21:00:00

⊙류근찬 앵커 :
이 오익제氏는 자신의 종교적.정치적 입지를 월북하는데 최대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氏는 월북하기 전까지 종교계와 정치계 또 재야단체를 넘나들면서 국내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었고 또 종교인의 입장에 걸맞지 않는 통일주장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이화섭 기자가 오氏의 행적을 보도해 드립니다.
⊙이화섭 기자 :
오익제氏는 천도교 교령으로 있으면서 포교와 수도보다는 천도교의 남북 교류사업과 통일 문제에 남다른 집착을 보입니다. 지난 90년 11월 천도교의 남북교류와 통일을 촉구하는 대북 제의문은 그 시작이었습니다.
⊙오익제氏 (모 방송사와 대담(90년 11월)) :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그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화섭 기자 :
91년초에는 천도교의 전위단체를 육성해 민족통일의 기수로 삼자는 주장을 폅니다. 오氏는 지난 93년 3월 부패척결을 위한 3.1절 시국선언을 하는 등 현실비판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93년 10월에는 중국 북경에서 배석자없이 북한의 천도교 대표이자 월북한 최덕신의 부인인 유미영 등을 만나 남북한 천도교 대표들의 서울과 평양 교환방문에 합의합니다. 그러나 당시 오氏가 혼자서 북한의 노동당 전위조직인 천도교 천우당 대표를 만난 것이 상당한 돌출행동으로 비춰지는 등 오氏의 대북관이 천도교단의 집단적인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김재중 (천도교 교령) :
돌출적이랄까 좀 영웅심리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대여활동이나 그런 것이 좀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을 가미해서 한게 아닌가...
⊙이화섭 기자 :
동학 백주년 기념식에서 오氏의 통일관은 극단적인 면까지 내비칩니다.
⊙동학 100주년 기념사 (94년 3월 21일) :
평화적 남북통일을 위해서 나의 남은 일생을 불태워 기필코 이를 달성하는데 이한몸 바칠 것을...
⊙이화섭 기자 :
오氏는 지난 94년 6월 천도교 이사회의 의결없이 순일관 주차장을 지으면서 3억여원의 손해를 입힌 일로 천도교를 떠난뒤, 국민회의의 상임고문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습니다.
KBS 뉴스, 이화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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