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섣불리 말했다 화만 돋울라”…한국당 ‘백지 백보드’
입력 2018.07.05 (18:06)
수정 2018.07.0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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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잘못했어."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한번 얘기해봐."
"…"
연인 사이에서는 꽤 익숙한 이 풍경,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나의 잘못으로 연인이 상심했을 때, 우리는 보통 잘못했다며 사과를 하죠.
여기서 핵심은, 상대방이 납득할만큼 무엇을 얼마나 왜 잘못했는지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생략한 채 덮어놓고 사과한다면, '건성으로 사과한다', '진정성이 없다'며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을 수도 있죠.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과 연애하는 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치든 연애든,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무릎 꿇은 채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오버랩됐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늘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 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게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연애하면서 상대방에게 숱하게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본 저로서는 참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아, 저렇게 하면 역효과만 날 텐데….'
다소 성급한 사과로 무안만 당한 한국당은 요즘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내게 등 돌린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노심초사하는 20대 남성처럼 고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 회의실 벽면에 걸린 백보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국당의 주요 대국민 메시지가 적혀온 이 백보드에는 지방선거 이후 백지 상태입니다.
한국당 관계자에게 백지 백보드의 의미를 묻자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우리가 지금 당장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한국당 백보드는 톡톡 튀는 문구로 종종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지난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공천파동에 휩싸였을 때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백보드를 내걸었습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이 막 터져나오던 지난 4월에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백보드가 회의실 뒷면을 장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둘 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4.13총선 때는 결국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탓인지 원내 1당을 "훅" 더불어민주당에 내줘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던 백보드를 건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더 "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당의 백지 백보드가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그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인 거죠.
더 이상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 여러분도 살면서 한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할 때까지 백지 백보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합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오늘(5일)도 "기존의 가진 자와 기득권, 금수저, 웰빙정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상당수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차있습니다.
제70주년 제헌절인 오는 17일을 전후해 한국당의 혁신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백지로 남겨진 백보드에 새로운 메시지가 채워질 겁니다. 과연 그 메시지가 차갑게 식은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연인 사이에선 헤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수 있지만, 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정치와 연애의 결정적 차이점일 겁니다. 한국당의 고민이 깊은 이유입니다.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한번 얘기해봐."
"…"
연인 사이에서는 꽤 익숙한 이 풍경,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나의 잘못으로 연인이 상심했을 때, 우리는 보통 잘못했다며 사과를 하죠.
여기서 핵심은, 상대방이 납득할만큼 무엇을 얼마나 왜 잘못했는지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생략한 채 덮어놓고 사과한다면, '건성으로 사과한다', '진정성이 없다'며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을 수도 있죠.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과 연애하는 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치든 연애든,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무릎 꿇은 채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오버랩됐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늘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 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게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연애하면서 상대방에게 숱하게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본 저로서는 참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아, 저렇게 하면 역효과만 날 텐데….'
다소 성급한 사과로 무안만 당한 한국당은 요즘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내게 등 돌린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노심초사하는 20대 남성처럼 고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 회의실 벽면에 걸린 백보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국당의 주요 대국민 메시지가 적혀온 이 백보드에는 지방선거 이후 백지 상태입니다.
한국당 관계자에게 백지 백보드의 의미를 묻자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우리가 지금 당장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한국당 백보드는 톡톡 튀는 문구로 종종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지난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공천파동에 휩싸였을 때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백보드를 내걸었습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이 막 터져나오던 지난 4월에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백보드가 회의실 뒷면을 장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둘 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4.13총선 때는 결국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탓인지 원내 1당을 "훅" 더불어민주당에 내줘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던 백보드를 건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더 "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당의 백지 백보드가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그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인 거죠.
더 이상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 여러분도 살면서 한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할 때까지 백지 백보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합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오늘(5일)도 "기존의 가진 자와 기득권, 금수저, 웰빙정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상당수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차있습니다.
제70주년 제헌절인 오는 17일을 전후해 한국당의 혁신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백지로 남겨진 백보드에 새로운 메시지가 채워질 겁니다. 과연 그 메시지가 차갑게 식은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연인 사이에선 헤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수 있지만, 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정치와 연애의 결정적 차이점일 겁니다. 한국당의 고민이 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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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잘못했어."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한번 얘기해봐."
"…"
연인 사이에서는 꽤 익숙한 이 풍경,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나의 잘못으로 연인이 상심했을 때, 우리는 보통 잘못했다며 사과를 하죠.
여기서 핵심은, 상대방이 납득할만큼 무엇을 얼마나 왜 잘못했는지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생략한 채 덮어놓고 사과한다면, '건성으로 사과한다', '진정성이 없다'며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을 수도 있죠.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과 연애하는 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치든 연애든,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무릎 꿇은 채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오버랩됐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늘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 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게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연애하면서 상대방에게 숱하게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본 저로서는 참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아, 저렇게 하면 역효과만 날 텐데….'
다소 성급한 사과로 무안만 당한 한국당은 요즘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내게 등 돌린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노심초사하는 20대 남성처럼 고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 회의실 벽면에 걸린 백보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국당의 주요 대국민 메시지가 적혀온 이 백보드에는 지방선거 이후 백지 상태입니다.
한국당 관계자에게 백지 백보드의 의미를 묻자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우리가 지금 당장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한국당 백보드는 톡톡 튀는 문구로 종종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지난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공천파동에 휩싸였을 때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백보드를 내걸었습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이 막 터져나오던 지난 4월에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백보드가 회의실 뒷면을 장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둘 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4.13총선 때는 결국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탓인지 원내 1당을 "훅" 더불어민주당에 내줘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던 백보드를 건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더 "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당의 백지 백보드가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그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인 거죠.
더 이상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 여러분도 살면서 한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할 때까지 백지 백보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합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오늘(5일)도 "기존의 가진 자와 기득권, 금수저, 웰빙정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상당수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차있습니다.
제70주년 제헌절인 오는 17일을 전후해 한국당의 혁신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백지로 남겨진 백보드에 새로운 메시지가 채워질 겁니다. 과연 그 메시지가 차갑게 식은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연인 사이에선 헤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수 있지만, 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정치와 연애의 결정적 차이점일 겁니다. 한국당의 고민이 깊은 이유입니다.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한번 얘기해봐."
"…"
연인 사이에서는 꽤 익숙한 이 풍경,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나의 잘못으로 연인이 상심했을 때, 우리는 보통 잘못했다며 사과를 하죠.
여기서 핵심은, 상대방이 납득할만큼 무엇을 얼마나 왜 잘못했는지 잘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생략한 채 덮어놓고 사과한다면, '건성으로 사과한다', '진정성이 없다'며 오히려 상대방의 화를 돋을 수도 있죠.
연애를 해보신 분들은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지 않나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과 연애하는 것이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정치든 연애든, 본질적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행위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직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홀에 무릎 꿇은 채 국민에게 사과하는 모습이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오버랩됐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도,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도 늘 잘못했다, 앞으로 잘하겠다 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게 상당수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연애하면서 상대방에게 숱하게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본 저로서는 참 안타까운 광경이었습니다.
'아, 저렇게 하면 역효과만 날 텐데….'
다소 성급한 사과로 무안만 당한 한국당은 요즘 장고에 들어갔습니다.
내게 등 돌린 그녀에게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노심초사하는 20대 남성처럼 고민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당장 회의실 벽면에 걸린 백보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한국당의 주요 대국민 메시지가 적혀온 이 백보드에는 지방선거 이후 백지 상태입니다.
한국당 관계자에게 백지 백보드의 의미를 묻자 "지방선거에서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은 우리가 지금 당장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백지 상태에서 새롭게 거듭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한국당 백보드는 톡톡 튀는 문구로 종종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지난 2016년 4ㆍ13 총선을 앞두고 공천파동에 휩싸였을 때 당시 새누리당은 국회 대표실에 '정신차리자 한 순간 훅 간다'는 백보드를 내걸었습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의혹이 막 터져나오던 지난 4월에는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라는 백보드가 회의실 뒷면을 장식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둘 다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4.13총선 때는 결국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탓인지 원내 1당을 "훅" 더불어민주당에 내줘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서 망했다'던 백보드를 건 이후 치른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더 "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당의 백지 백보드가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그 잘못했다는 말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인 거죠.
더 이상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상황, 여러분도 살면서 한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할 때까지 백지 백보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국민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합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은 오늘(5일)도 "기존의 가진 자와 기득권, 금수저, 웰빙정당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권한대행 뿐만 아니라 상당수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들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에 차있습니다.
제70주년 제헌절인 오는 17일을 전후해 한국당의 혁신을 이끌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백지로 남겨진 백보드에 새로운 메시지가 채워질 겁니다. 과연 그 메시지가 차갑게 식은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연인 사이에선 헤어지더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 수 있지만, 당이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정치와 연애의 결정적 차이점일 겁니다. 한국당의 고민이 깊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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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원 기자 roedie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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