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토크] 68년만의 형제 상봉…“10년만 더 살자”
입력 2018.08.24 (23:20)
수정 2018.08.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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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부터 금강산에서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시작됐죠.
이렇게 1,2차를 합쳐서 모두 170여 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이산의 한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 1차 상봉 때, 60여 전 헤어진 북의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김광호 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오십시오. 할아버님 원래 고향이 북이십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함경북도 명천군 남면 마전리예요.
[앵커]
네, 이번에 북에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셨는데 몇 년 만에 만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68년 만에 만난 겁니다.
[앵커]
68년. 지금 갖고 오신 물건들은 동생이 선물해주신 건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동생이 선물 준비해 온 거라고 해요.
[앵커]
예. 동생을 처음에 딱 만났더니 만나 보니까 첫눈에 동생인 걸 알아보시겠던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전혀 그런 감이 안 들었어요. 내 동생인가 이런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첫 일성으로 "너 광일이니?" 그랬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네." 이래요. 그래도 믿음이 안 가는 거예요.
[앵커]
어떻게 동생인 걸 확인하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어릴 때에 우리 같이 나온 누나가 허벅지에 종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 종기가 낫질 않아요.
낫질 않아서 그때 당시에 옥수수떡을 해가지고 그걸 기름에 지져서 그걸 하루에 몇 번씩 갈아주고 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걔가 그걸 기억하더라고요.
'그럼 너는 틀림없이 내 동생이 맞구나.' 하는 신념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부터 탁 터놓고 이제부터는 묻는 거죠. 어릴 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앵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 사실 겉모습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습니까.
그런데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헤어진 동기는 전쟁이 일어나니까 그때의 분위기가 "한 3일에서 일주일만 조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얘기가 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가 제일 큰형하고 셋째 형하고 누나하고 나하고 이렇게 5명이 일단 피하자, 그리고 동생은 아직 제일 어리고 그 다음에 어머니도 여자고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헤어진 것 같아요.
[앵커]
동생이 당시에 11살, 할아버지가 14살. 그때 헤어진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만나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소감이 어떠셨는지?
[김광호/82살/이산가족]
이제 처음에는 그런 서먹서먹했는데 확인이 되고 나면서부터는 감개무량하고 그 상봉시간이 짧은 거에요.
[앵커]
만나시면서 동생 분이 준비한 선물도 갖고 나오셨는데 북에서 좀 이름난 술들인 것 같습니다. 앞에 저건 뭡니까? 테이블본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테이블보예요.
[앵커]
우리 할아버지는 동생한테 어떤 선물 준비해가셨어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제 고향은 겨울이 되면 추우니까 외투 같은 거 몇 벌 사고 양말도 사고 시계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그 다음에 영양제 같은 걸 조금 준비하고, 그 초코파이를 두 통을 샀어요.
우리가 시간을 너무 소비해가지고 선물 교환할 때 되니까 방송에서 "이제 상봉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뭐 그걸 열어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가지고 온 채로 그냥 줘버렸어요.
그러니까 동생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한 거예요.
[앵커]
68년을 기다렸는데 그렇게 만남의 시간이 짧았습니다. 헤어질 때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아, 힘들었죠. 그런데... 만날 때는 그렇게 서먹하게 만났지만 막상 헤어지려고 그러니까 정말 눈물 없이는 헤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앵커]
어떤 말씀 해주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지금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까 만났지 않았나. 앞으로 10년만 더 살자." 그래서 내가 제수씨한테 "동생한테 술도 먹이지 말라, 담배도 피우지 말라, 그러고 커피도 몸에 나쁜 건 절대로 먹지 못하게 감시해라." 당부도 했어요.
[앵커]
끝으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죠.
[김광호/82살/이산가족]
들어보니까 이런 규모로 만나다간 500년이 걸린대요.
그럼 다 된 거지.
그래서 이제 규모도 크게 확대하고 일회성이 아닌 정례화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좀 해줬으면 좋겠고. 좀 더 나아가서 영상통화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남북 이산가족들이 좀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그렇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이산가족 김광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금강산에서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시작됐죠.
이렇게 1,2차를 합쳐서 모두 170여 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이산의 한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 1차 상봉 때, 60여 전 헤어진 북의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김광호 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오십시오. 할아버님 원래 고향이 북이십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함경북도 명천군 남면 마전리예요.
[앵커]
네, 이번에 북에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셨는데 몇 년 만에 만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68년 만에 만난 겁니다.
[앵커]
68년. 지금 갖고 오신 물건들은 동생이 선물해주신 건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동생이 선물 준비해 온 거라고 해요.
[앵커]
예. 동생을 처음에 딱 만났더니 만나 보니까 첫눈에 동생인 걸 알아보시겠던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전혀 그런 감이 안 들었어요. 내 동생인가 이런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첫 일성으로 "너 광일이니?" 그랬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네." 이래요. 그래도 믿음이 안 가는 거예요.
[앵커]
어떻게 동생인 걸 확인하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어릴 때에 우리 같이 나온 누나가 허벅지에 종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 종기가 낫질 않아요.
낫질 않아서 그때 당시에 옥수수떡을 해가지고 그걸 기름에 지져서 그걸 하루에 몇 번씩 갈아주고 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걔가 그걸 기억하더라고요.
'그럼 너는 틀림없이 내 동생이 맞구나.' 하는 신념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부터 탁 터놓고 이제부터는 묻는 거죠. 어릴 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앵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 사실 겉모습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습니까.
그런데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헤어진 동기는 전쟁이 일어나니까 그때의 분위기가 "한 3일에서 일주일만 조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얘기가 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가 제일 큰형하고 셋째 형하고 누나하고 나하고 이렇게 5명이 일단 피하자, 그리고 동생은 아직 제일 어리고 그 다음에 어머니도 여자고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헤어진 것 같아요.
[앵커]
동생이 당시에 11살, 할아버지가 14살. 그때 헤어진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만나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소감이 어떠셨는지?
[김광호/82살/이산가족]
이제 처음에는 그런 서먹서먹했는데 확인이 되고 나면서부터는 감개무량하고 그 상봉시간이 짧은 거에요.
[앵커]
만나시면서 동생 분이 준비한 선물도 갖고 나오셨는데 북에서 좀 이름난 술들인 것 같습니다. 앞에 저건 뭡니까? 테이블본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테이블보예요.
[앵커]
우리 할아버지는 동생한테 어떤 선물 준비해가셨어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제 고향은 겨울이 되면 추우니까 외투 같은 거 몇 벌 사고 양말도 사고 시계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그 다음에 영양제 같은 걸 조금 준비하고, 그 초코파이를 두 통을 샀어요.
우리가 시간을 너무 소비해가지고 선물 교환할 때 되니까 방송에서 "이제 상봉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뭐 그걸 열어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가지고 온 채로 그냥 줘버렸어요.
그러니까 동생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한 거예요.
[앵커]
68년을 기다렸는데 그렇게 만남의 시간이 짧았습니다. 헤어질 때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아, 힘들었죠. 그런데... 만날 때는 그렇게 서먹하게 만났지만 막상 헤어지려고 그러니까 정말 눈물 없이는 헤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앵커]
어떤 말씀 해주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지금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까 만났지 않았나. 앞으로 10년만 더 살자." 그래서 내가 제수씨한테 "동생한테 술도 먹이지 말라, 담배도 피우지 말라, 그러고 커피도 몸에 나쁜 건 절대로 먹지 못하게 감시해라." 당부도 했어요.
[앵커]
끝으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죠.
[김광호/82살/이산가족]
들어보니까 이런 규모로 만나다간 500년이 걸린대요.
그럼 다 된 거지.
그래서 이제 규모도 크게 확대하고 일회성이 아닌 정례화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좀 해줬으면 좋겠고. 좀 더 나아가서 영상통화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남북 이산가족들이 좀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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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산가족 김광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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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토크] 68년만의 형제 상봉…“10년만 더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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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8-24 23:23:39
- 수정2018-08-24 23: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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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금강산에서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시작됐죠.
이렇게 1,2차를 합쳐서 모두 170여 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이산의 한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 1차 상봉 때, 60여 전 헤어진 북의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김광호 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오십시오. 할아버님 원래 고향이 북이십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함경북도 명천군 남면 마전리예요.
[앵커]
네, 이번에 북에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셨는데 몇 년 만에 만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68년 만에 만난 겁니다.
[앵커]
68년. 지금 갖고 오신 물건들은 동생이 선물해주신 건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동생이 선물 준비해 온 거라고 해요.
[앵커]
예. 동생을 처음에 딱 만났더니 만나 보니까 첫눈에 동생인 걸 알아보시겠던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전혀 그런 감이 안 들었어요. 내 동생인가 이런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첫 일성으로 "너 광일이니?" 그랬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네." 이래요. 그래도 믿음이 안 가는 거예요.
[앵커]
어떻게 동생인 걸 확인하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어릴 때에 우리 같이 나온 누나가 허벅지에 종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 종기가 낫질 않아요.
낫질 않아서 그때 당시에 옥수수떡을 해가지고 그걸 기름에 지져서 그걸 하루에 몇 번씩 갈아주고 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걔가 그걸 기억하더라고요.
'그럼 너는 틀림없이 내 동생이 맞구나.' 하는 신념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부터 탁 터놓고 이제부터는 묻는 거죠. 어릴 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앵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 사실 겉모습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습니까.
그런데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헤어진 동기는 전쟁이 일어나니까 그때의 분위기가 "한 3일에서 일주일만 조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얘기가 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가 제일 큰형하고 셋째 형하고 누나하고 나하고 이렇게 5명이 일단 피하자, 그리고 동생은 아직 제일 어리고 그 다음에 어머니도 여자고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헤어진 것 같아요.
[앵커]
동생이 당시에 11살, 할아버지가 14살. 그때 헤어진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만나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소감이 어떠셨는지?
[김광호/82살/이산가족]
이제 처음에는 그런 서먹서먹했는데 확인이 되고 나면서부터는 감개무량하고 그 상봉시간이 짧은 거에요.
[앵커]
만나시면서 동생 분이 준비한 선물도 갖고 나오셨는데 북에서 좀 이름난 술들인 것 같습니다. 앞에 저건 뭡니까? 테이블본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테이블보예요.
[앵커]
우리 할아버지는 동생한테 어떤 선물 준비해가셨어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제 고향은 겨울이 되면 추우니까 외투 같은 거 몇 벌 사고 양말도 사고 시계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그 다음에 영양제 같은 걸 조금 준비하고, 그 초코파이를 두 통을 샀어요.
우리가 시간을 너무 소비해가지고 선물 교환할 때 되니까 방송에서 "이제 상봉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뭐 그걸 열어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가지고 온 채로 그냥 줘버렸어요.
그러니까 동생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한 거예요.
[앵커]
68년을 기다렸는데 그렇게 만남의 시간이 짧았습니다. 헤어질 때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아, 힘들었죠. 그런데... 만날 때는 그렇게 서먹하게 만났지만 막상 헤어지려고 그러니까 정말 눈물 없이는 헤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앵커]
어떤 말씀 해주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지금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까 만났지 않았나. 앞으로 10년만 더 살자." 그래서 내가 제수씨한테 "동생한테 술도 먹이지 말라, 담배도 피우지 말라, 그러고 커피도 몸에 나쁜 건 절대로 먹지 못하게 감시해라." 당부도 했어요.
[앵커]
끝으로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남북 당국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주시죠.
[김광호/82살/이산가족]
들어보니까 이런 규모로 만나다간 500년이 걸린대요.
그럼 다 된 거지.
그래서 이제 규모도 크게 확대하고 일회성이 아닌 정례화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좀 해줬으면 좋겠고. 좀 더 나아가서 영상통화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루 빨리 남북 이산가족들이 좀 상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통로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그렇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이산가족 김광호 할아버지였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금강산에서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시작됐죠.
이렇게 1,2차를 합쳐서 모두 170여 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론 이산의 한을 풀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난 1차 상봉 때, 60여 전 헤어진 북의 동생을 만나고 돌아온, 김광호 할아버지를 모셨습니다.
할아버지 어서 오십시오. 할아버님 원래 고향이 북이십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네. 함경북도 명천군 남면 마전리예요.
[앵커]
네, 이번에 북에 동생을 만나고 돌아오셨는데 몇 년 만에 만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68년 만에 만난 겁니다.
[앵커]
68년. 지금 갖고 오신 물건들은 동생이 선물해주신 건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동생이 선물 준비해 온 거라고 해요.
[앵커]
예. 동생을 처음에 딱 만났더니 만나 보니까 첫눈에 동생인 걸 알아보시겠던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전혀 그런 감이 안 들었어요. 내 동생인가 이런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첫 일성으로 "너 광일이니?" 그랬다고. 그랬더니 동생이 "네." 이래요. 그래도 믿음이 안 가는 거예요.
[앵커]
어떻게 동생인 걸 확인하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어릴 때에 우리 같이 나온 누나가 허벅지에 종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 종기가 낫질 않아요.
낫질 않아서 그때 당시에 옥수수떡을 해가지고 그걸 기름에 지져서 그걸 하루에 몇 번씩 갈아주고 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걔가 그걸 기억하더라고요.
'그럼 너는 틀림없이 내 동생이 맞구나.' 하는 신념이 생기는 거예요.
그때부터 탁 터놓고 이제부터는 묻는 거죠. 어릴 때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앵커]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 사실 겉모습은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습니까.
그런데 가족들하고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신 겁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헤어진 동기는 전쟁이 일어나니까 그때의 분위기가 "한 3일에서 일주일만 조금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바로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얘기가 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가 제일 큰형하고 셋째 형하고 누나하고 나하고 이렇게 5명이 일단 피하자, 그리고 동생은 아직 제일 어리고 그 다음에 어머니도 여자고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라." 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헤어진 것 같아요.
[앵커]
동생이 당시에 11살, 할아버지가 14살. 그때 헤어진 동생을 만나셨습니다.
만나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소감이 어떠셨는지?
[김광호/82살/이산가족]
이제 처음에는 그런 서먹서먹했는데 확인이 되고 나면서부터는 감개무량하고 그 상봉시간이 짧은 거에요.
[앵커]
만나시면서 동생 분이 준비한 선물도 갖고 나오셨는데 북에서 좀 이름난 술들인 것 같습니다. 앞에 저건 뭡니까? 테이블본가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테이블보예요.
[앵커]
우리 할아버지는 동생한테 어떤 선물 준비해가셨어요?
[김광호/82살/이산가족]
제 고향은 겨울이 되면 추우니까 외투 같은 거 몇 벌 사고 양말도 사고 시계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그 다음에 영양제 같은 걸 조금 준비하고, 그 초코파이를 두 통을 샀어요.
우리가 시간을 너무 소비해가지고 선물 교환할 때 되니까 방송에서 "이제 상봉시간이 끝났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 뭐 그걸 열어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가지고 온 채로 그냥 줘버렸어요.
그러니까 동생은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한 거예요.
[앵커]
68년을 기다렸는데 그렇게 만남의 시간이 짧았습니다. 헤어질 때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김광호/82살/이산가족]
아, 힘들었죠. 그런데... 만날 때는 그렇게 서먹하게 만났지만 막상 헤어지려고 그러니까 정말 눈물 없이는 헤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앵커]
어떤 말씀 해주셨습니까?
[김광호/82살/이산가족]
"지금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까 만났지 않았나. 앞으로 10년만 더 살자." 그래서 내가 제수씨한테 "동생한테 술도 먹이지 말라, 담배도 피우지 말라, 그러고 커피도 몸에 나쁜 건 절대로 먹지 못하게 감시해라." 당부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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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보니까 이런 규모로 만나다간 500년이 걸린대요.
그럼 다 된 거지.
그래서 이제 규모도 크게 확대하고 일회성이 아닌 정례화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좀 해줬으면 좋겠고. 좀 더 나아가서 영상통화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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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이산가족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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