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미·중 패권다툼에 후순위로 밀려버린 북핵폐기

입력 2018.09.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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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담판이라 불렸던 마라라고 미중 정상회담

□ 먼저, 2017년 4월 마라라고 리조트로 돌아가보자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 스트롱맨간의 만남. 미국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반도 문제와 미중 무역불균형 해소 방안 등 굵직한 의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3시간여 독대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두 스트롱맨들은 이틀간의 회담 이후 공동 성명은 커녕 흔한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헤어졌다.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늘 그렇듯 베일은 트럼프가 벗겼다. 폭스 뉴스에 나와 시진핑과 회담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슈는 북핵이었다고 털어놨다. 중국은 북한과의 무역에 엄청난 힘을 지녔다며 대북제제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는 언급도 했다. 그리고 며칠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던 자신의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중 무역 적자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이긴하지만, 중국이 대북압박에 호응해준다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이유도 설명했다. 분명히 당시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는 무역 불균형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였다.


□ 1년 5개월 만에 뒤바뀐 우선순위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이 1년 5개월 만에 우선 순위를 뒤바꿔 버렸다. 24일 트위터에서 "미국과 중국간에 무역 문제 관계가 해결된 뒤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중 무역전쟁과 북한 비핵화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물론, 비핵화 협상을 미중 무역전쟁의 후순위로 밀어버렸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더욱 거칠어진 무역 입장 때문에 중국이 대북제재 이행 등에서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은 트럼프가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지난 5월에도 한차례 판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트럼프의 발언을 트럼프식 협상 전략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선순위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닌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핵화 협상이 부진한 책임을 중국에 돌린 측면도 있지만, 트럼프의 발언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절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한 이 마당에 최소한 미국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 직시해야할 몇가지 불편한 진실들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간 한판 싸움이 접입가경이다.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 구호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다니는 트럼프와 중국몽(中國夢)을 외치고 다니는 시진핑이 내는 파열음이 굉장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중국 패권 다툼의 일환으로 다뤄지고 있다. 우리 운명과 직결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 이해관계의 종속변수처럼 다뤄질 분위기다. 그 어떤 현란한 수사로도 이런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전제가 있다.자기 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내는 비핵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결과 중국의 힘이 커지게 된다면 미국이 반대할 것이고, 그 반대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어쩌면 미국과 중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최종 목표가 아닌 힘의 확장을 관철할 수단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얄타회담에서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한반도 신탁통치와 38선 분할 점령에 합의한다.얄타회담에서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한반도 신탁통치와 38선 분할 점령에 합의한다.

□ 마라라고에서 드러난 중국의 속내? 시진핑의 말실수?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인들이 배제된 채 강대국간 거래로 결정돼 왔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한국을 나눠갖자는 밀약을 맺었고, 1945년에는 미국과 소련이 얄타에서 모여 한반도 분단을 결정했다. 2017년 마라라고에서 만난 미국과 중국은 과연 무슨 얘기를 했을까?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나마 순진해 보인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가 인정한 세계 수준급 포커페이스다. 말 많은 트럼프가 마라라고에서 오간 얘기를 월스트리트 저널에 일부 털어놨는데, 시진핑이 10분동안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를 설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의 이 발언 진위에 대해 끝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우리의 목표는 지금 안녕하지 못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간 패권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역사를 또 경험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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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미·중 패권다툼에 후순위로 밀려버린 북핵폐기
    • 입력 2018-09-01 08:00:34
    특파원 리포트
▲ 세기의 담판이라 불렸던 마라라고 미중 정상회담

□ 먼저, 2017년 4월 마라라고 리조트로 돌아가보자

미국과 중국, 이른바 G2 스트롱맨간의 만남. 미국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은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반도 문제와 미중 무역불균형 해소 방안 등 굵직한 의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3시간여 독대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두 스트롱맨들은 이틀간의 회담 이후 공동 성명은 커녕 흔한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헤어졌다. 도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늘 그렇듯 베일은 트럼프가 벗겼다. 폭스 뉴스에 나와 시진핑과 회담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슈는 북핵이었다고 털어놨다. 중국은 북한과의 무역에 엄청난 힘을 지녔다며 대북제제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는 언급도 했다. 그리고 며칠뒤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던 자신의 공약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중 무역 적자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이긴하지만, 중국이 대북압박에 호응해준다면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이유도 설명했다. 분명히 당시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는 무역 불균형보다 먼저 해결해야할 최우선 과제였다.


□ 1년 5개월 만에 뒤바뀐 우선순위

그랬던 트럼프 대통령이 1년 5개월 만에 우선 순위를 뒤바꿔 버렸다. 24일 트위터에서 "미국과 중국간에 무역 문제 관계가 해결된 뒤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중 무역전쟁과 북한 비핵화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물론, 비핵화 협상을 미중 무역전쟁의 후순위로 밀어버렸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더욱 거칠어진 무역 입장 때문에 중국이 대북제재 이행 등에서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은 트럼프가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지난 5월에도 한차례 판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트럼프의 발언을 트럼프식 협상 전략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로 우선순위이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닌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비핵화 협상이 부진한 책임을 중국에 돌린 측면도 있지만, 트럼프의 발언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절실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추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중단한 이 마당에 최소한 미국에 대한 위협은 사라졌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 직시해야할 몇가지 불편한 진실들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간 한판 싸움이 접입가경이다. 미국 제일주의, America First 구호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다니는 트럼프와 중국몽(中國夢)을 외치고 다니는 시진핑이 내는 파열음이 굉장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한반도 문제는 미국과 중국 패권 다툼의 일환으로 다뤄지고 있다. 우리 운명과 직결된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 이해관계의 종속변수처럼 다뤄질 분위기다. 그 어떤 현란한 수사로도 이런 불편한 진실을 끝까지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반도 비핵화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전제가 있다.자기 나라에 유리한 결과를 내는 비핵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결과 중국의 힘이 커지게 된다면 미국이 반대할 것이고, 그 반대면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어쩌면 미국과 중국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최종 목표가 아닌 힘의 확장을 관철할 수단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얄타회담에서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한반도 신탁통치와 38선 분할 점령에 합의한다.
□ 마라라고에서 드러난 중국의 속내? 시진핑의 말실수?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인들이 배제된 채 강대국간 거래로 결정돼 왔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한국을 나눠갖자는 밀약을 맺었고, 1945년에는 미국과 소련이 얄타에서 모여 한반도 분단을 결정했다. 2017년 마라라고에서 만난 미국과 중국은 과연 무슨 얘기를 했을까?

노골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그나마 순진해 보인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가 인정한 세계 수준급 포커페이스다. 말 많은 트럼프가 마라라고에서 오간 얘기를 월스트리트 저널에 일부 털어놨는데, 시진핑이 10분동안 중국과 한반도의 역사를 설명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의 이 발언 진위에 대해 끝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우리의 목표는 지금 안녕하지 못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간 패권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역사를 또 경험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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