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스페셜] 백두산 마지막 심마니의 ‘보물 찾기’

입력 2018.09.15 (21:52) 수정 2018.09.1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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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 속담에 '황금은 가격이 있지만 삼에는 가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인삼 시장은 백두산 부근에 있는데요,

심마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령화로 심마니들도 이제는 대가 끊길 상황에 처했다는데요, 김경수 특파원이 사라져가는 백두산 심마니들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베이징의 한 산삼 경매장.

특별한 산삼 한 뿌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무려 325년 생인 이 산삼의 경매 시작가는 800만 위안, 우리돈 13억 원입니다.

황금은 가격이 있지만 삼에는 가격이 없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이 산삼은 1000만 위안, 16억 원 정도에 낙찰되면서 산삼 경매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백두산에서 나온 산삼의 1차 집결지는 푸송현의 인삼 시장입니다.

1989년에 세워진 완량 시장은 현재 아시아 최대 인삼 시장입니다.

하루 인삼 거래액이 200억 원에 이릅니다.

새벽 4시 문을 여는 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합니다.

["(한 근에 얼마인가요?) 20위안이요. (어제 왔을 땐 20원 안했는데요?)"]

대부분 인삼이나 장뇌삼이 거래됩니다.

[양푸헤이/인삼 고객 : "이곳이 인삼 원산지고 가격도 제일 싸요. 질도 가장 좋고요. 특히 산삼이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영초(신령의 풀)라고 하지요."]

가장 귀하다는 야생 산삼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수증싱/인삼시장 상인 : "산삼은 늙은 심마니가 캐야 가끔 볼 수 있고 시장에서는 볼 수 없어요. 영양 가치가 정말 높아요. 수십 년, 수백 년이나 5~60년 정도 된 야생삼이 가끔 나오긴 해요. 이런 건 심마니 집에 찾아가야 해요."]

중국 지린성 창바이현,

압록강 너머에 있는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접경지입니다.

백두산 자락의 이 작은 마을에 심마니 11명이 살고 있습니다.

새벽 산삼을 찾으러 나갔다 허탕을 치고 저녁 늦게 돌아온 중국 동포 이원주 씨가 옆 집 마당에 있던 닭을 사왔습니다.

40년 심마니 인생, 허탕친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다음날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합니다.

시장에선 그렇게 귀하다는 산삼이 이 집에는 마당 빨랫줄에 널려 있습니다.

30년 이상 자라지 못한 산삼은 큰 값을 주지 않으니 아예 식재료로 쓰고 있는 겁니다.

[이원주/중국 동포 : "(산삼은) 이 가락지(나이테) 돌아가는 게 (간격이) 얇아요. 재배한 것(인삼)은 넓어요. (몇 년 정도 된 거예요? 이게?) 한 30년 됐어요. 1년에 아주 조금 자라요."]

닭의 배를 가르고 약재와 산삼을 채워넣습니다.

["(어머니, 이 안에 이제 뭐가 들어가요?) 천마, 삼, 가루낸 것(산삼)이랑 향신료 넣어 요리한단 말이야."]

물이 펄펄 끓으면 닭과 마늘, 고추를 넣고 밤을 새워 기다립니다.

밤새 끓고도 미열이 남아있는 가마솥 뚜껑을 열자 닭이 샛노랗게 익어 있습니다.

진한 국물이 솥 바닥에 자작합니다.

[이원주/중국 동포 : "우린 이런 것 먹으면 봄, 가을에 먹어요. 더울 때 먹으면 땀을 흘리면 먹은 좋은 성분이 다 나가니까요."]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아침 6시 이 씨가 길을 나섭니다.

["(저 숲 속으로 들어가요?) 저 안으로 들어가지요. 여기에는 길이 있는데 저쪽으로 들어가서는 이런 데란 말이요. 풀이 이래요(높아요)."]

길이 사라지는 지점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인삼 양식지 보호를 위해 근처 농가에서 묶어둔 개입니다.

낯 익은 사람이 올 때만 밭주인이 개를 잡아 길을 터줍니다.

산짐승들만 다니는 험한 산길, 숨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산길을 따라 4시간, 이 씨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산삼입니다.

["(어느 거예요?) 이거, 누워있는 것"]

30년 전 버섯을 캐러 왔다가 우연히 봤지만 당시엔 산삼이 너무 어려 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다시 이 자리를 찾아오는 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이건 나이가 30년 넘소. 옛날 큰 삼 캘 때 그 씨가 퍼졌단 말입니다. 새가 물어가지, 다람쥐가 물어가지. 물어다가 똥 싸고 나온단 말이지."]

뿌리 하나 상하지 않게 잘 캐야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1시간 가까이 흙을 골라낸 뒤에 마침내 땅에서 건져낸 산삼, 40년 생입니다.

지금 막 땅에서 캐낸 산삼입니다. 40년 전 이 지역에서 큰 산삼이 발견됐는데 그때 땅에 떨어진 씨가 자라 이 산삼이 됐습니다.

["(이 꽃대 끝에 뭐가 달려 있었어요?) 씨가 달려 있었지. (다 어디 갔어요?) 떨어졌지. (그러면 여기서 한 30~40년 뒤에) (산삼이) 또 나오지."]

자식들은 모두 현대적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마을엔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심마니는 더이상 옛 영감들처럼 산삼 씨가 뿌려진 곳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가 그치고, 봇짐엔 보름치 생활비가 되어줄 산삼 한 뿌리를 담고, 백두산 마지막 심마니가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합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현에서 김경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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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스페셜] 백두산 마지막 심마니의 ‘보물 찾기’
    • 입력 2018-09-15 22:30:44
    • 수정2018-09-15 22:4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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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 속담에 '황금은 가격이 있지만 삼에는 가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큰 인삼 시장은 백두산 부근에 있는데요,

심마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령화로 심마니들도 이제는 대가 끊길 상황에 처했다는데요, 김경수 특파원이 사라져가는 백두산 심마니들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중국 베이징의 한 산삼 경매장.

특별한 산삼 한 뿌리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무려 325년 생인 이 산삼의 경매 시작가는 800만 위안, 우리돈 13억 원입니다.

황금은 가격이 있지만 삼에는 가격이 없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이 산삼은 1000만 위안, 16억 원 정도에 낙찰되면서 산삼 경매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백두산에서 나온 산삼의 1차 집결지는 푸송현의 인삼 시장입니다.

1989년에 세워진 완량 시장은 현재 아시아 최대 인삼 시장입니다.

하루 인삼 거래액이 200억 원에 이릅니다.

새벽 4시 문을 여는 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합니다.

["(한 근에 얼마인가요?) 20위안이요. (어제 왔을 땐 20원 안했는데요?)"]

대부분 인삼이나 장뇌삼이 거래됩니다.

[양푸헤이/인삼 고객 : "이곳이 인삼 원산지고 가격도 제일 싸요. 질도 가장 좋고요. 특히 산삼이 정말 좋은데 사람들이 영초(신령의 풀)라고 하지요."]

가장 귀하다는 야생 산삼을 찾긴 쉽지 않습니다.

[수증싱/인삼시장 상인 : "산삼은 늙은 심마니가 캐야 가끔 볼 수 있고 시장에서는 볼 수 없어요. 영양 가치가 정말 높아요. 수십 년, 수백 년이나 5~60년 정도 된 야생삼이 가끔 나오긴 해요. 이런 건 심마니 집에 찾아가야 해요."]

중국 지린성 창바이현,

압록강 너머에 있는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접경지입니다.

백두산 자락의 이 작은 마을에 심마니 11명이 살고 있습니다.

새벽 산삼을 찾으러 나갔다 허탕을 치고 저녁 늦게 돌아온 중국 동포 이원주 씨가 옆 집 마당에 있던 닭을 사왔습니다.

40년 심마니 인생, 허탕친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다음날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합니다.

시장에선 그렇게 귀하다는 산삼이 이 집에는 마당 빨랫줄에 널려 있습니다.

30년 이상 자라지 못한 산삼은 큰 값을 주지 않으니 아예 식재료로 쓰고 있는 겁니다.

[이원주/중국 동포 : "(산삼은) 이 가락지(나이테) 돌아가는 게 (간격이) 얇아요. 재배한 것(인삼)은 넓어요. (몇 년 정도 된 거예요? 이게?) 한 30년 됐어요. 1년에 아주 조금 자라요."]

닭의 배를 가르고 약재와 산삼을 채워넣습니다.

["(어머니, 이 안에 이제 뭐가 들어가요?) 천마, 삼, 가루낸 것(산삼)이랑 향신료 넣어 요리한단 말이야."]

물이 펄펄 끓으면 닭과 마늘, 고추를 넣고 밤을 새워 기다립니다.

밤새 끓고도 미열이 남아있는 가마솥 뚜껑을 열자 닭이 샛노랗게 익어 있습니다.

진한 국물이 솥 바닥에 자작합니다.

[이원주/중국 동포 : "우린 이런 것 먹으면 봄, 가을에 먹어요. 더울 때 먹으면 땀을 흘리면 먹은 좋은 성분이 다 나가니까요."]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아침 6시 이 씨가 길을 나섭니다.

["(저 숲 속으로 들어가요?) 저 안으로 들어가지요. 여기에는 길이 있는데 저쪽으로 들어가서는 이런 데란 말이요. 풀이 이래요(높아요)."]

길이 사라지는 지점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버티고 있습니다.

인삼 양식지 보호를 위해 근처 농가에서 묶어둔 개입니다.

낯 익은 사람이 올 때만 밭주인이 개를 잡아 길을 터줍니다.

산짐승들만 다니는 험한 산길, 숨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가족을 생각하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산길을 따라 4시간, 이 씨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산삼입니다.

["(어느 거예요?) 이거, 누워있는 것"]

30년 전 버섯을 캐러 왔다가 우연히 봤지만 당시엔 산삼이 너무 어려 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다시 이 자리를 찾아오는 데 30년이 걸렸습니다.

["이건 나이가 30년 넘소. 옛날 큰 삼 캘 때 그 씨가 퍼졌단 말입니다. 새가 물어가지, 다람쥐가 물어가지. 물어다가 똥 싸고 나온단 말이지."]

뿌리 하나 상하지 않게 잘 캐야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1시간 가까이 흙을 골라낸 뒤에 마침내 땅에서 건져낸 산삼, 40년 생입니다.

지금 막 땅에서 캐낸 산삼입니다. 40년 전 이 지역에서 큰 산삼이 발견됐는데 그때 땅에 떨어진 씨가 자라 이 산삼이 됐습니다.

["(이 꽃대 끝에 뭐가 달려 있었어요?) 씨가 달려 있었지. (다 어디 갔어요?) 떨어졌지. (그러면 여기서 한 30~40년 뒤에) (산삼이) 또 나오지."]

자식들은 모두 현대적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마을엔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심마니는 더이상 옛 영감들처럼 산삼 씨가 뿌려진 곳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가 그치고, 봇짐엔 보름치 생활비가 되어줄 산삼 한 뿌리를 담고, 백두산 마지막 심마니가 하산을 시작합니다.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합니다.

중국 지린성 창바이현에서 김경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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