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만에 다시 걸린 ‘자유언론실천선언’
입력 2018.10.25 (07:35)
수정 2018.10.2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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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국내 언론 탄압의 역사가 있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100명 넘게 해고당한 이른바 '동아투위'사건입니다.
당시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호준 기자입니다.
[리포트]
세로 3미터 30센티미터, 가로 50센티 미터의 족자가 공개됐습니다.
도배 벽지 위에 한자로 적힌 글씨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4년 전인 1974년 10월,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 선언 때 내걸렸던 족자입니다.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그게 편집국에 늘 걸려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면서 좀 더 박정희 정권 부정, 인권탄압을 더 열심히 보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죠."]
하지만 이듬해 언론인 113명은 끝내 동아일보에서 해직됐고, 회사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언론인들은 쫓겨났습니다.
[1975년 3월 17일 라디오 뉴스 : "오늘 새벽 이들 행동대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온 24명의 단식 농성기자들은 2~3명씩 차에 태워져..."]
회사에선 쫓겨났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7명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들은 '언론자유'를 외쳤습니다.
[장윤환/동아일보 분회장/민권일지 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1979년 : "어떠한 자유도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이 앞장서서 피로써 쟁취해야 하는 소중한 보화입니다."]
언론 자유를 외치고, 일터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들의 곁을 지켰지만, 이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족자가 돌아온 겁니다.
한 동아투위 위원 유가족이 최근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해 기증했습니다.
한국 언론 자유 투쟁사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이호준입니다.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국내 언론 탄압의 역사가 있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100명 넘게 해고당한 이른바 '동아투위'사건입니다.
당시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호준 기자입니다.
[리포트]
세로 3미터 30센티미터, 가로 50센티 미터의 족자가 공개됐습니다.
도배 벽지 위에 한자로 적힌 글씨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4년 전인 1974년 10월,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 선언 때 내걸렸던 족자입니다.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그게 편집국에 늘 걸려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면서 좀 더 박정희 정권 부정, 인권탄압을 더 열심히 보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죠."]
하지만 이듬해 언론인 113명은 끝내 동아일보에서 해직됐고, 회사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언론인들은 쫓겨났습니다.
[1975년 3월 17일 라디오 뉴스 : "오늘 새벽 이들 행동대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온 24명의 단식 농성기자들은 2~3명씩 차에 태워져..."]
회사에선 쫓겨났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7명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들은 '언론자유'를 외쳤습니다.
[장윤환/동아일보 분회장/민권일지 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1979년 : "어떠한 자유도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이 앞장서서 피로써 쟁취해야 하는 소중한 보화입니다."]
언론 자유를 외치고, 일터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들의 곁을 지켰지만, 이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족자가 돌아온 겁니다.
한 동아투위 위원 유가족이 최근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해 기증했습니다.
한국 언론 자유 투쟁사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이호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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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10-25 07: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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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국내 언론 탄압의 역사가 있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100명 넘게 해고당한 이른바 '동아투위'사건입니다.
당시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호준 기자입니다.
[리포트]
세로 3미터 30센티미터, 가로 50센티 미터의 족자가 공개됐습니다.
도배 벽지 위에 한자로 적힌 글씨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4년 전인 1974년 10월,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 선언 때 내걸렸던 족자입니다.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그게 편집국에 늘 걸려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면서 좀 더 박정희 정권 부정, 인권탄압을 더 열심히 보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죠."]
하지만 이듬해 언론인 113명은 끝내 동아일보에서 해직됐고, 회사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언론인들은 쫓겨났습니다.
[1975년 3월 17일 라디오 뉴스 : "오늘 새벽 이들 행동대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온 24명의 단식 농성기자들은 2~3명씩 차에 태워져..."]
회사에선 쫓겨났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7명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들은 '언론자유'를 외쳤습니다.
[장윤환/동아일보 분회장/민권일지 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1979년 : "어떠한 자유도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이 앞장서서 피로써 쟁취해야 하는 소중한 보화입니다."]
언론 자유를 외치고, 일터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들의 곁을 지켰지만, 이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족자가 돌아온 겁니다.
한 동아투위 위원 유가족이 최근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해 기증했습니다.
한국 언론 자유 투쟁사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이호준입니다.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국내 언론 탄압의 역사가 있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100명 넘게 해고당한 이른바 '동아투위'사건입니다.
당시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가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호준 기자입니다.
[리포트]
세로 3미터 30센티미터, 가로 50센티 미터의 족자가 공개됐습니다.
도배 벽지 위에 한자로 적힌 글씨는 '자유언론실천선언'
44년 전인 1974년 10월,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언론인 선언 때 내걸렸던 족자입니다.
[김종철/동아투위 위원장 : "그게 편집국에 늘 걸려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면서 좀 더 박정희 정권 부정, 인권탄압을 더 열심히 보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죠."]
하지만 이듬해 언론인 113명은 끝내 동아일보에서 해직됐고, 회사 안에서 싸움을 이어가던 언론인들은 쫓겨났습니다.
[1975년 3월 17일 라디오 뉴스 : "오늘 새벽 이들 행동대원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온 24명의 단식 농성기자들은 2~3명씩 차에 태워져..."]
회사에선 쫓겨났지만 투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7명이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들은 '언론자유'를 외쳤습니다.
[장윤환/동아일보 분회장/민권일지 사건 항소심 최후진술, 1979년 : "어떠한 자유도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자유는) 언론인 자신이 앞장서서 피로써 쟁취해야 하는 소중한 보화입니다."]
언론 자유를 외치고, 일터에서 쫓겨날 때까지 이들의 곁을 지켰지만, 이후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족자가 돌아온 겁니다.
한 동아투위 위원 유가족이 최근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해 기증했습니다.
한국 언론 자유 투쟁사의 상징과도 같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족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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