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107년 만에…국립묘지 잠드는 의병
입력 2018.11.07 (07:40)
수정 2018.11.07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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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26살 젊은 나이에 순국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동안 직계 가족도 없어 묘소가 방치돼왔는데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국립묘지에 편히 잠들었습니다.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주 출신 독립 운동가 정춘서 선생의 묘소.
광복회 회원들이 묘를 옮기기에 앞서서 예를 갖춰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정춘서 애국지사."]
정 선생은 구한말 일제의 군대 해산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 일본군 우편물 운반원 2명을 사살하고 밀정을 총살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겨우 26살 청년의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정제우/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손수 나서서 동료 농민과 손잡고 문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목숨을 내놓고 항일투쟁을 했다, 이런 데 의미가 있고."]
정부는 1977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이 없어 보훈처가 대신 정 선생 묘소를 돌봐왔습니다.
그리고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정 선생은 국립현충원에 영면했습니다.
[서상국/광복회 충청북도지부장 : "벌써 이뤄졌어야 할 일인데 좀 늦은 감이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훌륭하게 (묘지) 이전이 잘 돼서 고맙습니다."]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전국에 7천여 명,
보훈처는 이 가운데 남겨진 가족이 없는 선열들을 국립묘지로 모셔 숭고한 넋을 기릴 계획입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26살 젊은 나이에 순국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동안 직계 가족도 없어 묘소가 방치돼왔는데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국립묘지에 편히 잠들었습니다.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주 출신 독립 운동가 정춘서 선생의 묘소.
광복회 회원들이 묘를 옮기기에 앞서서 예를 갖춰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정춘서 애국지사."]
정 선생은 구한말 일제의 군대 해산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 일본군 우편물 운반원 2명을 사살하고 밀정을 총살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겨우 26살 청년의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정제우/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손수 나서서 동료 농민과 손잡고 문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목숨을 내놓고 항일투쟁을 했다, 이런 데 의미가 있고."]
정부는 1977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이 없어 보훈처가 대신 정 선생 묘소를 돌봐왔습니다.
그리고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정 선생은 국립현충원에 영면했습니다.
[서상국/광복회 충청북도지부장 : "벌써 이뤄졌어야 할 일인데 좀 늦은 감이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훌륭하게 (묘지) 이전이 잘 돼서 고맙습니다."]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전국에 7천여 명,
보훈처는 이 가운데 남겨진 가족이 없는 선열들을 국립묘지로 모셔 숭고한 넋을 기릴 계획입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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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11-07 07: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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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26살 젊은 나이에 순국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동안 직계 가족도 없어 묘소가 방치돼왔는데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국립묘지에 편히 잠들었습니다.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주 출신 독립 운동가 정춘서 선생의 묘소.
광복회 회원들이 묘를 옮기기에 앞서서 예를 갖춰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정춘서 애국지사."]
정 선생은 구한말 일제의 군대 해산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 일본군 우편물 운반원 2명을 사살하고 밀정을 총살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겨우 26살 청년의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정제우/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손수 나서서 동료 농민과 손잡고 문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목숨을 내놓고 항일투쟁을 했다, 이런 데 의미가 있고."]
정부는 1977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이 없어 보훈처가 대신 정 선생 묘소를 돌봐왔습니다.
그리고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정 선생은 국립현충원에 영면했습니다.
[서상국/광복회 충청북도지부장 : "벌써 이뤄졌어야 할 일인데 좀 늦은 감이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훌륭하게 (묘지) 이전이 잘 돼서 고맙습니다."]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전국에 7천여 명,
보훈처는 이 가운데 남겨진 가족이 없는 선열들을 국립묘지로 모셔 숭고한 넋을 기릴 계획입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구한말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26살 젊은 나이에 순국한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그동안 직계 가족도 없어 묘소가 방치돼왔는데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국립묘지에 편히 잠들었습니다.
송락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청주 출신 독립 운동가 정춘서 선생의 묘소.
광복회 회원들이 묘를 옮기기에 앞서서 예를 갖춰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절을 올립니다.
["정춘서 애국지사."]
정 선생은 구한말 일제의 군대 해산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듬해 일본군 우편물 운반원 2명을 사살하고 밀정을 총살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겨우 26살 청년의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정제우/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손수 나서서 동료 농민과 손잡고 문자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목숨을 내놓고 항일투쟁을 했다, 이런 데 의미가 있고."]
정부는 1977년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가족이 없어 보훈처가 대신 정 선생 묘소를 돌봐왔습니다.
그리고 순국 107년 만에 마침내 정 선생은 국립현충원에 영면했습니다.
[서상국/광복회 충청북도지부장 : "벌써 이뤄졌어야 할 일인데 좀 늦은 감이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안타깝지만 훌륭하게 (묘지) 이전이 잘 돼서 고맙습니다."]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전국에 7천여 명,
보훈처는 이 가운데 남겨진 가족이 없는 선열들을 국립묘지로 모셔 숭고한 넋을 기릴 계획입니다.
KBS 뉴스 송락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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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락규 기자 rocky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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