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탕 영화’ 범람 속 문화계 ‘여성의 시선’을 그리다

입력 2018.11.26 (12:29) 수정 2018.11.2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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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올해 영화계와 공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여성'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한국영화계에서는 남성 위주의 이른바 '남탕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미투 운동을 비롯해 성폭력과 성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물결을 이루면서,

문화계에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 늘고 있고 인물 설정도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송형국 기자가 그 흐름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한국영화에 흔히 보이는 짙은 남성성.

반복되는 건 거친 격투만이 아닙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눈 깔어. 안 깔어?"]

['아수라' : "눈 까세요. 눈, 까, 세, 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열.

['넘버3' : "에이 어떤 새끼가 넘버 쓰리래, 내가 넘버 투야."]

['친구' : "마이 컸네, 동수."]

['부당거래' : "우리 석구, 많이 컸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 "뭔 소리고? 형배는 내 밑이지"]

['아수라' : "내가 그 위에 위야"]

야만의 역사를 이끈 군사문화, 조폭문화.

["동작 그만. 충, 성!"]

집단의 논리에 개인은 짓눌립니다.

이 중에는 폭력성을 반성하는 작품도 많지만 어쩌면 이들 모두 마음 깊은 곳 욕망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죽고 싶나."]

["너 지금 나한테 뭐라 그랬냐?"]

["마, 내 누군지 아나?"]

이렇게 영화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것을 과시하는 쪽이든, 아니면 성찰하는 쪽이든, 남성 중심의 폭력 서사를 반복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런 속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소비되거나 보호받기만 하는 대상에 머물기 일쑤였죠.

최근 우리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 그간의 작품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오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대학로에서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온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오진/극작가 : "제가 데뷔하고 나서 쓴 작품들을 제가 스스로 돌아보니까 그 작품들 대다수가 남자 주인공이고 남자 캐릭터가 훨씬 많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작가들은 올 여름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로 뜻있는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는 대학로의 크고 작은 무대는 물론이고, 예술의전당이 페미니즘의 고전 '인형의 집'을 올리는가 하면 국립발레단은 '마타 하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시대를 잘못 만난 재능 있는 여성의 고뇌를 몸짓으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국립극단은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여성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등 공공 예술단체와 기관들까지 여성 서사의 대열에 가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얼핏 영웅이 약자를 구하는 흔한 이야기 같지만 여성감독의 눈길은 달랐습니다.

약자를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고 뻔한 모성애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남녀를 편가르려는 게 아니라 여성을 왜곡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이지원/'미쓰백' 감독 :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주고 서로의 연대를 통해서 우정을 다지게 되고 그 둘이 결속력을 통해서 세상을 뛰쳐나가는 그런 부분들이 관객분들께서 굉장히 깊게 공감을 해주시고. 얼마나 이런 여성서사나 이런 힘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는지에 대해서 너무 절감하게 됐고."]

개봉 초기 성적이 부진했다가 관객들 사이에 팬덤이 형성되면서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최차미/'미쓰백' 5회 관람 : "이 영화가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캐릭터 스스로가 자기 연민을 느끼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룬 대형 상업영화인데 여성 인물 설정이 남다릅니다.

당시 이 나라에 있었으면 하는 인물, 부당함에 대항하며 위기 앞에서 전문성을 발휘합니다.

["종금사에 부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서 대출을 받은 수많은 기업과 서민들이 있습니다."]

[김혜수/'국가부도의 날' 배우 : "약자를 위해서 맞서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거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요. '여성임에도 이런 것들을 해낸 사람이 있었어요'가 아니라, 마땅히 자기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한 인물로 그려졌다고 생각을 해요.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지에 대한 바람직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대중 예술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채택하는 경우가 늘고 여성을 대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 시대의 요구도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얘기일 겁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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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탕 영화’ 범람 속 문화계 ‘여성의 시선’을 그리다
    • 입력 2018-11-26 12:34:11
    • 수정2018-11-26 12:40:19
    뉴스 12
[앵커]

올해 영화계와 공연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여성'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한국영화계에서는 남성 위주의 이른바 '남탕영화'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미투 운동을 비롯해 성폭력과 성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물결을 이루면서,

문화계에서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 늘고 있고 인물 설정도 전통적인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송형국 기자가 그 흐름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한국영화에 흔히 보이는 짙은 남성성.

반복되는 건 거친 격투만이 아닙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눈 깔어. 안 깔어?"]

['아수라' : "눈 까세요. 눈, 까, 세, 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열.

['넘버3' : "에이 어떤 새끼가 넘버 쓰리래, 내가 넘버 투야."]

['친구' : "마이 컸네, 동수."]

['부당거래' : "우리 석구, 많이 컸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 : "뭔 소리고? 형배는 내 밑이지"]

['아수라' : "내가 그 위에 위야"]

야만의 역사를 이끈 군사문화, 조폭문화.

["동작 그만. 충, 성!"]

집단의 논리에 개인은 짓눌립니다.

이 중에는 폭력성을 반성하는 작품도 많지만 어쩌면 이들 모두 마음 깊은 곳 욕망을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죽고 싶나."]

["너 지금 나한테 뭐라 그랬냐?"]

["마, 내 누군지 아나?"]

이렇게 영화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것을 과시하는 쪽이든, 아니면 성찰하는 쪽이든, 남성 중심의 폭력 서사를 반복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런 속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소비되거나 보호받기만 하는 대상에 머물기 일쑤였죠.

최근 우리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건, 그간의 작품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오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대학로에서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온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오진/극작가 : "제가 데뷔하고 나서 쓴 작품들을 제가 스스로 돌아보니까 그 작품들 대다수가 남자 주인공이고 남자 캐릭터가 훨씬 많더라고요. 그걸 깨달은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작가들은 올 여름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로 뜻있는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는 대학로의 크고 작은 무대는 물론이고, 예술의전당이 페미니즘의 고전 '인형의 집'을 올리는가 하면 국립발레단은 '마타 하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시대를 잘못 만난 재능 있는 여성의 고뇌를 몸짓으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국립극단은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여성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등 공공 예술단체와 기관들까지 여성 서사의 대열에 가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얼핏 영웅이 약자를 구하는 흔한 이야기 같지만 여성감독의 눈길은 달랐습니다.

약자를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고 뻔한 모성애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남녀를 편가르려는 게 아니라 여성을 왜곡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이지원/'미쓰백' 감독 :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주고 서로의 연대를 통해서 우정을 다지게 되고 그 둘이 결속력을 통해서 세상을 뛰쳐나가는 그런 부분들이 관객분들께서 굉장히 깊게 공감을 해주시고. 얼마나 이런 여성서사나 이런 힘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었는지에 대해서 너무 절감하게 됐고."]

개봉 초기 성적이 부진했다가 관객들 사이에 팬덤이 형성되면서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최차미/'미쓰백' 5회 관람 : "이 영화가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캐릭터 스스로가 자기 연민을 느끼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다룬 대형 상업영화인데 여성 인물 설정이 남다릅니다.

당시 이 나라에 있었으면 하는 인물, 부당함에 대항하며 위기 앞에서 전문성을 발휘합니다.

["종금사에 부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거기서 대출을 받은 수많은 기업과 서민들이 있습니다."]

[김혜수/'국가부도의 날' 배우 : "약자를 위해서 맞서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거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요. '여성임에도 이런 것들을 해낸 사람이 있었어요'가 아니라, 마땅히 자기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는 한 인물로 그려졌다고 생각을 해요. 여성 캐릭터들이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지에 대한 바람직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대중 예술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채택하는 경우가 늘고 여성을 대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이 시대의 요구도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얘기일 겁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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